

99
플라잉K9의 비밀
가을 새벽은 서늘하지만 바닷물은 오히려 따뜻했다. 노랑머리의 드라이브를 맞고 바다로 떨어진 선글라스와 나머지 중절모들은 혹시나 요트가 되돌아올까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요트는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섬 모퉁이 새벽어둠속으로 사라진 이후 되돌아오지 않았다.
요트가 사라진 섬 끝을 향해 선글라스는 파도위에서 손을 들어 올린 후, 다른 한 손으로 활시위를 당기듯 쓸어내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악을 썼다.
“야이니더워꿔! 리추안 첸모꾸왕!야이개새끼야! 침몰해 뒈져라”
.
사무실로 돌아 온 장달수는 책상 뒤의 대형사진을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녹슨 철로와 늙은 여자.
무슨 사연이나 연관이 있을 듯 한데 짐작할 수 없다.
장달수는 딱상무와 뽑상무가 소리없이 들어 올 때까지 그렇게 서 있었다.
방금 들어 온 딱상무와 뽑상무.
이름은 부르기 좋고 편하고 외우기 쉽고 잘 안 까먹는 이름이 최고의 이름이다.
딱이란 이름도 그렇고 뽑이란 이름도 그렇다.
딱이라는 이름은 딱지와 연관이 있고 뽑은 뽑기와 연관이 있다.
딱상무,
어릴 땐 딱지로 유명세를 떨쳤고 성인이 되어서는 교통딱지로 명성을 날렸다. 물론 어릴 땐 동네였고 성인이 된 후는 경찰서나 구청교통과다. 동네 딱지는 거의 싹쓸이했기 때문에 개구쟁이들이 프리미엄을 붙여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딱은 동네 코흘리개 딱지를 싹쓸이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뽑상무.
제비뽑기에 비상한 기술과 재주를 가지고 있는 뽑이지만 아직 복권뽑기는 단 한 번도 성공한적 없다.
동네구멍가게 주인들이 뽑만 나타나면 뽑기70년대경품뽑기상품를 감추느라 혼줄 내던 인물이지만 이상하게 복권숫자뽑기는 아직 한 번도 뽑지 못한 것이 유일한 뽑기실패기록이다. 허지만 패싸움이든 맞장이든 대결 후엔 언제나 그의 주머니에 상대의 머리카락 한줌이 들어 있다. 언제 뽑았는지 전리품으로 상대의 머리카락을 뽑아 주머니에 넣는 습성이 있는 뽑이다. 그의 취미이기도 했다.
장달수는 이 두 사람을 자신의 조폭에 캐스팅한 후 제일 아꼈다.
딱과 뽑이 장달수의 등 뒤에서 허리를 90도 숙이며 말했다.
“형님! 아참, 사장님 정말 신출귀몰합디다.”
“화! 저는 천둥소린줄 알았다니까요.”
장달수가 중절모들을 잠재우기 직전 천정으로 수직이륙할 때 낸 굉음을 두고 한말이었다.
장달수가 말했다.
“야! 딱상무!”
“네! 형님, 아참 사장님.”
“그리고 뽑상무!”
“네, 사장님!”
“그게 그렇게 신기해?”
“네. 사람이 어떻게 로켓처럼 치솟을 수 있어요? 그걸 보고 신기해하지 않으면 그놈은 후레자식이죠.”
장달수가 그림을 등으로 돌리고 돌아서며 말했다.
“자네들도 열심히 수련하면 할 수 있어.”
“아휴 뭔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린 죽었다 깨도 못합니다.”
“저는 백골이진토 되어도 못합니다.”
장달수가 쓰윽 웃었다.
“야! 사람은 말이야 먹은 만큼 나오는 법이야. 먹어봐야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지, 먹어 보지도 않고 겁부터 낸다는 게 말이돼? 조폭답지 못하게.”
딱과 뽑이 놀라 눈을 크게 열고 말했다.
“먹다니요? 뭘 먹는다는 겁니까? 먹은 만큼 나온다니요? 먹은 후 나오는 건 물과 똥 밖에 더 있습니까?”
장달수가 다시 쓰윽 웃었다.
“한번 먹고 해 볼래?”
“뭘요? 랍스타요?”
“그런 건 너무 비싸고 먹어야 소용없어!”
“오늘 형님, 아참 사장님 좀 이상합니다.”
“수련할 거야 말거야?”
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딱과 뽑은 하늘을 나는 기술은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장달수와 비교해 중량과 길이가 달랐기 때문이다.
장달수가 민거적거리는 딱과 뽑을 질타했다.
“인생은 심사숙고해야 하지만 전쟁이란 심사숙고하면 안 되는 거다! 인생은 심사숙고하다 때를 놓쳐도 기회가 있지만 전쟁은 심사숙고하다 때도 놓치고 기회도 놓치는 거야. 먼저 맞았으면 앞뒤가릴 것 없이 원점 타격해야지 이리재고 저리 재다 보면 때도 놓치고 기회도 놓치는 거란 말이다.”
딱지와 뽑기가 부동자세를 취했다. 장달수의 말이 백번 지당했기 때문이다. 머리를 꼿꼿이 세우며 대답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뭐야? 뒈지고 싶어?”
“아닙니다!”
“그럼 즉시 수련준비!”
“복창!”
딱과 뽑의 수련다짐을 받은 장달수가 사장실을 나가자 딱이 뽑기에게 말했다.
“야! 인간도 아닌 형님의 기술을 물려받는다고 했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너! 자꾸 형님소리 반복할래? 지난번처럼 혼난다.”
“아! 난 머리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기도해도 안 돼!”
“너 교회나가냐?”
“아니!”
“근데 왜 하나님은 찾고 지랄이냐?”
“내가 언제?”
“조금 전에 기도 어쩌고 저쩌구했잖아?”
“부처님은 기도 안하냐?”
삐리삐리삐리리리.
뽑이 얼른 스마트폰을 꺼냈다.
“네! 알았습니다 오바!”
“누구냐?”
“형님!”
“또 형님이다. 뭐래?”
“오래!”
“왜?”
“수련 시작한대!”
뽑과 딱지가 사장실바닥이 꺼지도록 한숨을 팍팍 팍 쉬었다.
.
장달수는 건너편 식당에서 뽑과 딱을 기다리고 있었다.
뽑과 딱이 의자에 마주 앉으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장달수를 쳐다보기만 했다.
“뭘 봐?”
딱과 뽑이 동시에 말했다.
“보리밥요!”
“보리밥 처음보냐?”
“처음본건 아니지만 이거 뭐할 건데요?”
“지금부터 한 톨도 안남기고 다 먹을 거다!”
“네에? 이걸요?”
마침내 뽑과 딱의 아구창은 탈골하고 말았다.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두 개의 보리밥 양재기알루미늄함지박를 쳐다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형님 이 새끼가 보리밥으로 우릴 아주 죽이려고 작정한 모양이네? 속에서 끓기만 하는 부아를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고 아구창 빠진 입안에서 따닥따닥 요란하게 소리 내는 딱과 뽑을 향해 장달수가 말했다.
“내가 개발한 플라잉K9의 추진동력은 가스야!
매탄가스라는
거지.
매탄가스 생산의 최고
원료는 보리밥이야!
보리밥 먹고 뻥뻥 소리
안내는 놈 봤냐?
봤어?”
간신히 아구창을 끼워 맞춘 딱과 뽑이 동시에 물었다.
“그럼 플라잉K9의 추진력이 방귀란 말입니까?”
장달수가 엄숙하게 말했다.
“매탄가스와 또 하나 더 있다.”
장달수가 꺼내 놓은 것은 깔때기 모양의 덩어리였다.
뽑과 딱이 또 한번 경악했다.
“이 이건 고체헬륨가스 아닙니까?”
장달수가 경이로운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며 설명했다.
“이걸 싸움직전 똥꾸멍에 박아 놓는단 말씀이야. 기회가 왔을 때 축적한 매탄을 발사하면 매탄과 헬륨이 융합해서 초저열엔진이 되는 것이지.”
장달수가 완전히 얼이 빠져 두 눈알만 껌뻑이고 앉아 있는 딱과 뽑에게 단호한 카리스마로 말했다.
“내가 선글라스 일당이 쳐들어 올 때, 그래서 꼼짝도 않고 움직이지 않았던 거야. 움직이면 똥꾸멍에서 헬륨이 이탈될 수 있거든. 이제 알았나?”
장달수가 말을 끝냈을 때 이미 딱과 뽑은 냉동상태가 되어 있었다.
허지만 장달수는 초연하게 이들에게 특강했다.
“이게 바로 플라잉K9의 극비사양이다! 그럼 지금부터 실시한다. 실시!
장달수의 구령에 딱과 뽑은 냉동된 상태로 보리밥을 먹기 시작했다. 먹으면서 헛구역질은 기본이고 몇 번이나 토한 보리밥을 다시 질겅질겅 씹어 삼키느라 흐르는 눈물콧물을 닦을 틈도 없었다.

첫댓글 무술을 전수해주는 군요..
겁부터 먹은 딱과 뽑, 죽을 지경입니다.
소설 잘읽었슴니다.
세상미님 명절 잘 보내셨죠?
요즘 책 읽는 사람 귀한데....아직도 독서열 간직한 모습 정말 좋습니다
다음 소설은 더 재미있게 써 드릴께요
오늘도 행복한 날되십시오
썬그라스가 탄배가 돌아오지 안으니 바다속에 가라 앉은건지
죽었을것 같군요.K9의 비밀이 얼마나 혹독한 훈련인가를 짐작이 됩니다.
님, 추석연휴 잘보내고 계신지요?
연휴 마지막날 오늘도 즐거움 만땅 되시길 바랍니다.
그건 비밀!
ㅎ
젠틀맨님도 플라잉K9수련 하실래요?
ㅋㅋㅋㅋㅋ.
좋은 날 멋진날되세요
네 버들피리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