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연우라는 배우가 있어요. 학교 동기면서 형이에요. 학교에서 <해무>라는 연극을 하면서 알게 됐어요. 그 형이 아는 분이 영화를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감독 입봉작이었어요. 300만원 가지고 찍은 거예요. 300만 원으로 장편영화에 도전해보자고 한 거죠, 그 분도 배우 출신인데 감독에 도전한 거예요. 대단해요.
세혁
기간은 얼마나 걸렸어?
기둥
6개월이요. 여름에 고등학생 찍고 6개월 후에 바로 어른이 된 모습 찍고. (웃음) 돈이 없으니까 회차를 최대한 줄여야 했죠. 저예산이라 힘들지 않냐고 하는데 저는 아주 재밌었어요. 행복했어요.
세혁
<양손 프로젝트>의 손상규, 양조아 배우도 나오던데? 아주 반가웠어! (웃음)
기둥
그분들도 남연우 형을 통해서. (웃음) 저랑 조아 누나는 <해무>에 같이 출연해서 같이 캐스팅 된 거고 상규 형은 조아 누나를 통해서 캐스팅 된 거죠.
세혁
왜 양종욱 형만 출연 안했지?
기둥
글쎄요. 조아 누나가 추천해서 상규 형이 오고 꼬리에 꼬리를 문거라. (웃음) 종욱 형은 영화에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상당히 열정이 좋았어요. 함께 했던 배우들이.
세혁
영화제에서 상도 많이 받았지?
기둥
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상들을. 부산도 가고 베를린도 가고. 좋은 영화니까요.
세혁
그 이후로 그 감독님과 또 찍을 계획도 있어?
기둥
그러게, 약속은 했는데. (웃음)
뮤지컬배우 강기둥
세혁
‘달나라 동백꽃’ 얘기는 여기저기서 많이 하니까 딴 얘기 좀 많이 해보자. (웃음) 변정주 연출님하고 작업을 많이 하던데 둘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된 거야?
기둥
학교에 뮤지컬 관련 학과가 있어요. 1년에 한 번씩 짧은 공연을 만들어서 발표를 하죠. 그 뮤지컬에서 제가 배우였고 정주 형이 연출이었어요. 뮤지컬로 처음 만난 거죠. 그때 잘 보셨나 봐요. (웃음) 김광림 선생님의 <우투리>라는 작품도 같이 해서 프랑스도 다녀오고, 그 다음에 <도둑맞은 책>도 같이 하고.
세혁
학교에서 했던 뮤지컬은 밖에서 다시 안했어?
기둥
두산아트랩에서 다시 했어요. 근데 저는 <달나라 연속극>준비할 때라 같이 못 했어요.
세혁
제목이?
기둥
<우리들의 언어영역>이요.
세혁
아! 그거!
기둥
보셨어요?
세혁
아니, 좋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
기둥
참 좋은 작품이에요.
세혁
<도둑맞은 책>은 그냥 연극이지?
기둥
네, 2인극. 이번에 다시 올라가요
세혁
박호산 형님 나오시던데.
기둥
네, 원래 처음에 같이 하기로 하셨다가 <데스트랩>이랑 겹쳐서 못하셨죠. 이번에 의리를 지키셨죠. (웃음)
세혁
내 친구가 뮤지컬 작곡가인데 <도둑맞은 책>을 보고 너무 좋아서 자기가 대본을 썼어. 대사를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필사를 해버렸어.
기둥
정말요?
세혁
응
기둥
왜요?
세혁
두고두고 읽고 싶다고. (웃음)
기둥
대단하네요. 작가도 아니신데.
세혁
이번에 작가 됐어. 자기가 뮤지컬 대본 써서 당선됐어.
기둥
아, <도둑맞은 책> 필사가 효과가 있었네요. (웃음)
세혁
변정주 연출님도 참 대단하신 것 같아. 작업을 그렇게 끊임없이.
기둥
뜨거우시죠, 잘하시기도 하고.
세혁
얼굴이 스님 같기도 하고. (웃음) 여배우 예찬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재밌고. (웃음)
기둥
여배우 없으면 힘들어하시죠. 도둑맞은 책 하면서 죽을 뻔 하셨어요. (웃음)
세혁
변정주 연출의 매력은 뭐야?
기둥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배우가 이해될 때까지.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소통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화는 거의 안 내요. 화를 내면 자기 손해라는 걸 아시는 것 같아요. (웃음) 연습 중에 배우가 예민해져서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얘기를 해도 절대로 화를 내지 않고 논리적으로 받아주죠.
세혁
사회적으로는 화를 많이 내시던데. (웃음)
기둥
뜨거우시니까. (웃음)
세혁
키보드 워리어. (웃음)
기둥
SNS에서 토론을 한 번 붙으면 책을 쌓아놓고 끝까지 토론하신다고. (웃음)
세혁
뮤지컬 <러브레터>에서는 어떤 역이었어?
기둥
‘후지이 이츠키’라고, 영화 보면 잘 생긴 애 있잖아요. (웃음) 도서관에서 책 보는 애. (웃음)
세혁
학교가 아니라 현장에서는 뮤지컬이 처음인가?
기둥
정확히는 뮤지컬로 데뷔를 했죠. 2008년에 <피크를 던져라>라고, 소극장 락뮤지컬이었어요.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곡도 만들고 대본도 써서 공연했었죠. 그 이후로 뭐랄까, 외부에서 갖춰진 뮤지컬로는 <러브레터>가 처음이죠.
세혁
원래부터 뮤지컬에 관심이 있었어?
기둥
노래 부르는 건 좋아했죠. 하고 싶었어요. 하고 싶으니까 했겠죠. 그러니까 학교에서 뮤지컬 작업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러브레터>는 좀 민망하긴 했어요. 뮤지컬을 계속 해왔던 것도 아니니까. 정주 형은 같이 작업했던 것을 아니까 제의를 해준 거고.
세혁
그래서 그런가, 페이스북 보니까. 기둥 배우를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 ‘강배우 데뷔 순간입니다.’ ‘강배우 잘해냈네요.’ ‘강배우 인기 많네요.’ 등등이 실시간으로 올라오더라고. (웃음)
기둥
절 너무 좋게 봐주시죠. 감사해요. 사실 이런 말 정주 형은 안 좋아하겠지만. 여배우 말 아니면 다 외면하니까. (웃음) 하지만 느껴져요. 관객과의 대화를 하면 옆에서 도와주기도 하고. ‘강기둥 배우의 생각은 이렇다.’ 이러면서.
연극배우 강기둥
세혁
변정주 연출 얘기를 너무 많이 했다, 안되겠다. ‘달나라동백꽃’(이하 달동) 얘기하자. (웃음) 달동하고는 인연이 어떻게 시작된 거야?
기둥
달동은 2010년에 만들어졌어요. 군대를 제대하고 학교에서 만난 첫 작품이 <로풍찬 유랑극장>이었어요. 이수현 형이라고, 로풍찬 역을 원래 했던 분인데 그 형이 지나가다가 ‘야 너 뭐하냐. 작품 안 하냐’, 이러면서 로풍찬 같이 하자고. (웃음)
세혁
기둥 배우의 역사는 형들의 역사로구만. (웃음)
기둥
제대하기 전에 학교에서 올라갈 대본들을 보고 있었는데 로풍찬은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근데 갑자기 수현 형이 그거 하자고 하니까 너무 좋았죠. 거기서 만난 은성 형(김은성 작가)과 새롬 누나(부새롬 연출)가 극단을 만든다고 함께 하자고 했고. 극단을 한다는 게 사실 좀 두려웠는데 은성 형의 작품이 좋고 새롬 누나 연출도 좋으니까 용기를 낸 거죠.
세혁
달동은 어떤 식으로 모이지?
기둥
언제 어느 때 모이자는 건 없어요. 작년까지는 <희곡을 들려줘>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다보니까 한 달에 한 번은 무조건 모였어요. 작업들도 계속 생기다보니 한 달에 한두 번씩은 어떻게든 모이게 되더라고요, 올해는 은성 형이 진행하는 극작워크숍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모일 것 같아요. ‘어떤 것 때문에 모이자’ 보다는 ‘모여서 어떤 걸 얘기해보자’가 많은 것 같아요. 술 때문에도 자주 모이고. (웃음)
세혁
단원들이 술 잘 마셔?
기둥
대규모 아니면 소규모로 늘 마셔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세혁
누가 제일 잘 마셔?
기둥
음… 은성 형이 한 번 마시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이죠. 근데 술을 끊어서 지금은 23일이 됐다고. (웃음)
세혁
작년 여름이었나. 새벽에 은성 형한테 갑자기 연락이 왔어. 막걸리가 너무 마시고 싶으니 같이 좀 마시자고. 새벽 1시쯤 만났는데 앉자마자 하는 말이 “나 오늘 반드시 아침까지 마시고 싶다. 아침까지 견뎌주었으면 한다.” (웃음) 6시 정도까지 버티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습니다.” 하니까 “알겠다. 나는 성북천으로 간다.” 하면서 가시더라고. (웃음)
기둥
아! 그때였구나! 달동 카톡방에 은성 형이 글 올린 게. “나랑 술 마실 사람 성북천으로.” (웃음)
달나라동백꽃 배우 강기둥
세혁
단원들끼리 가끔 싸울 때도 있어?
기둥
‘논쟁’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빈정 상해서 싸우는 건 없어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논쟁들이 많아요. 의견이 부딪힐 때는 그 날 풀기는 꼭 풀어요. 우리가 확실히 능숙하게 잘 싸운다는 느낌이 들어요. (웃음)
세혁
달동의 많은 작품 중 <뺑뺑뺑> 얘기를 좀 해보고 싶어. 하면서 어땠어?
기둥
음… 형이 기자였다면 그냥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웃음)
세혁
얘길 좀 편하게 해보자.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까.
기둥
음… 힘들었어요. (웃음) 팀 분위기는 전혀 나쁘지 않았어요. 형식이 새로워서 도전하느라 힘들었던 거죠. 사실주의를 하다가 표현주의를 하는 느낌이었달까. 텍스트 자체가 되게 분명한데, 그걸 되게 여러 방식으로 풀어놓으니까, 이건 와! (웃음)
세혁
남산예술센터에서 낭독회 할 때는 어땠어?
기둥
완전히 좋았어요. 그전에는 사실 절반의 확신이었는데 이게 발현되는 순간 ‘아 이게 소통이 되는구나.’ 느낌이 확 오더라고요. 그런데 선돌극장에서 공연을 했을 때는 극장도 달라지고 배우도 열두 명이니까 새롬 누나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세혁
사실 대단한 거야. 이런 걸 누가 시도하겠어. 우리 역시 전체를 통으로 종횡무진 보여주려는 시도가.
기둥
솔직히 말하면, <뺑뺑뺑>을 안 하려고 했었어요. 좀 쉬고 싶었거든요. <파인땡큐앤드유>를 하면서도 그랬는데, 새로운 형식을 하는 데 있어서 뭔가 부딪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으니까 새롭게 재충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더라고요. 그래서 술 먹으면서 나도 울고 새롬 누나도 울면서… 하고 나서는 뿌듯했어요. 시대에 맞는 이야기였고, 필요한 이야기였고, 후회는 없지만, 미안한 느낌이랄까. 내가 괜히 어렵게 생각하고 그러지는 않았을까 하는.
세혁
나는 <뺑뺑뺑>이 참 좋았어. 만듦새가 아니라 도전이 좋았어. 사실 달동이 젊은 극단이잖아. 하지만 이전의 작업들은 여러 의미로 좀 노련했어. 어떻게 만들어야 잘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는 듯한 느낌이었어. 나는 달동의 작품이 너무 좋으면서도 그 노련한 만듦새가 간혹 아쉬웠어. 하지만 <뺑뺑뺑>을 보면서 참 시원했어. 이건 노련하지 않잖아. 거침없잖아. 눈치 안 보잖아. 이게 젊은 극단의 진짜 모습 아닌가. 도전했으니까. 사실 내가 가장 지향하는 작품이 이런 거야. 그래서 보고 나서 너무 흥분됐어. 걸판에서도 해보고 싶더라고. (웃음) 그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가 달린 ○○아이를 낳을 거야!” 라고 외치는 장면은… 와, 진짜. 그 장면만 따로 만들어서 실제로 그 현장들에 가서 공연하고 싶어.
기둥
그런 장면들은 너무 좋았죠. 연습하면서 다들 울고. 은성 형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작가 식으로 표현하자면, 내 작품들은 내 자식들인데 <뺑뺑뺑>은 우리를 힘들게만 한 자식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좋은 자식이에요. (웃음)
세혁
나는 <뺑뺑뺑> 보러 갔을 때 극장 앞에 서 있는 은성 형의 모습이 좋았어. 뭔가 떨고 계시더라고. (웃음) 그 떨림이 참 좋았어. 형이 아직 점잖이 어울릴 나이는 아니잖아. 너무 빨리 성취해서 점잖이 생겨난 거지. (웃음) 형이 아직 많이 뜨겁다는 생각을 하면서 너무 좋더라고. 그날 안산 가서 많이 마셨지. (웃음)
모든 걸 다 떼고, 배우 강기둥
세혁
달동의 단원들을 보면 기운이 좀 비슷해. 같은 기운이 나와.
기둥
그러게, 요즘 그런 얘길 많이 듣네. 어떤 기운이에요?
세혁
뭐랄까, 겉으로는 조용하고 수줍고 겸손한데 속으로는 자신만만한 기운이랄까. (웃음)
기둥
아, 그런 기운이구나. (웃음)
세혁
부새롬 연출이 특히 그런 기운이 강해. 성공하실 거야. (웃음) 이번에 대전 예술의전당에서도 연출하시지?
기둥
네, 망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잘하고 다니니까. (웃음) 농담이었고, 모르는 배우들하고도 잘했으면 좋겠어요, 어딜 가서든 좋은 연출이 되었으면 해서. 사랑하니까. (웃음)
세혁
달나라동백꽃은 추구하는 큰 가치가 있나?
기둥
어유, 작은 가치가 우선이죠. 아직은 연습실도 없고. (웃음) 한 해 한 해 어떤 작품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올봄에 함께할 ‘극작워크숍’, 올해 재공연할 <파인땡큐앤드유> 등등, 당장 눈앞의 하나하나를 잘 하는 거요. 다행히 4년을 잘 왔어요. 망할 것 같다는 느낌이 없어요. (웃음) 그 4년도 4년간 계획으로 온 게 아니라 한 해 한 해 잘 온 거죠. 우리는 대규모를 잘 못 해요. 소규모로 한 걸음 한 걸음이죠. 그게 모이면 대규모가 되겠죠. (웃음)
세혁
그럼 올해의 달동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뭘까?
기둥
올해는 작은 워크숍들을 많이 할 계획이에요. 단원 개인들의 작업과 역량을 키우는 한 해가 될 거고. 은성 형의 신작이 다른 극단과 올라가고, 석찬 형은 TV에 나오고, 새롬 누나도 외부 연출을 맡고,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예요. 무조건 모여라 이런 극단이 아니니까 서로서로 슬며시 모여드는 거죠. <작은문공장> 할 때도 윤혜숙 연출이 여배우들하고만 했지만 스태프는 꾸준히 서로서로 함께했죠, 아무리 바빠도 서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죠.
세혁
달동은 오래갈 거야. 다들 자기 행성이 있어. 김은성 작가의 달동, 부새롬 연출의 달동이기도 하면서, 윤혜숙 연출의 달동, 이지혜 배우의 달동, 김미나 디자이너의 달동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호환되는 느낌이야. 곧 출시될 구글폰처럼. (웃음) 각자의 별들로 빛나지만 하나의 은하계에서 사이좋게 돌고 있는 느낌이야.
기둥
배우란 결국 자기 안의 빛이 얼마나 있느냐는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 안의 빛들을 서로서로 계속 찾아주는 게 너무 좋아요. 우리도 시작은 김은성, 부새롬의 달동이 강했지만, 이제는 우리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극단인 것 같아요. 계속 잘해야죠.
세혁
그래, 계속 잘해줘, 달동이 잘해줘야 걸판도 달동을 이기기 위해 열심히… (웃음) 마지막 질문이야. 강기둥 배우에게 연극이란 무엇이지?
첫댓글 "세상이 더 좋게 가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무대위에서 그런 것들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음... 무대 위에서도 참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하는 것도 멋지네요^^
와웅 ... 보지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것...!! 도전.................>.<
'로풍찬 유랑극단'에서 너무나 인상적이게 봤었는데~멋진 생각을 가진 배우네요~~~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장난아님
흠..
이름이 기둥이야?... 기둥서방 처럼 생겨가지고 연기를 그렇게 잘 해?... 달나라 연속극은 봤는데.. 저 친구 기억이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