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을 칠려거든 초록으로 치어야지
어찌 먹물에 입을 다물 줄 모르노
붓쟁이 3년이면 난을 넘본다지만
고고하게 뻗어난 이파리가 진정,
흙색이란 말을 믿는 것이었더냐...
밴댕이 새가슴의 준태(글 속의 이름이므로 태클 걸기 없기요)가 한 일과 길 영자를 떼더니
싸부가 난을 치는 모습에 동하여 집으로 줄달음을 쳤다. 아파트 현관 문짝이 온통 싸부가
그리던 난초로 채색되었으니 어지간이도 급한 마음이었나보다. 준태는 빵 부스러기가 담긴
식탁 위의 접시를 방정맞게 치우고는 이내 필목함을 펼쳤다.
난이 과연 검은색이었더냐. 붓을 잡아도 창의력이 있어여하거늘 남들이 난을 묵으로 친다고
나 또한 묵으로 난을 쳐봐야 평생 배움에서 탈피할 수 없을 터, 오월의 실록과 어우러지는
초록색으로 사실감을 더해볼까나...
해서, 지필묵을 밀어놓고 초록색을 동원했다는 이야기인데...
초록과 연두색 싸인펜을 준비하고, 명암을 넣고자 아파트 근처에서 곱살스럽게 자라나는
질경이를 뜯어다 곱게 빻았다하니 화선지에 난초 만 그려넣으면 될 것인즉,
이것이 난을 치는 것인지, 정물화를 그리는 것인지, 아니면 풍경화인지...
역시 난초는 먹물인가 하노라...암만...
붓을 접자하니 홀애비 10년에 느는 것이라고는 역시 여인들의 눈웃음을 온 몸으로 애무하는 것이니
만발하는 꽃일망정 이보다 더 이쁘겠는가!
"이쁘기는 첫날 밤 황촉불빛에 물든 색시 얼굴이라오
또, 이쁘기는 세상에 태어나 등잔불빛에 물든 아가의 얼굴이고
이쁘기야 술 걸르다가 술찌게미에 취한 마누라 얼굴이지
그래도 이쁘기야 옆에 누워있는 달빛에 물든 기생 얼굴이 아니겠소."
붓을 놓자니 참 좋은 세상이로세......
첫댓글
ㅎ잼 나게 읽고 갑니다.
고운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