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많이 회자되는 이 문장이 나온 이영도의 『피를 마시는 새』에 대한 비평과 해석
원문은 네이버 카페 '피눈물을 마시는 새'의 운영자이신 네스트로님
1
『퓨처 워커』가 전작인 『드래곤 라자』의 모든 세계관과 다수의
등장인물을 공유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연속성은 결여되어 있다. 두
작품은 하나의 세계관과 중복되는 등장인물을 두고 연속적으로 벌어
진 커다란 사건을 그리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어떤 시대적 근접성
이외에 이 두 가지의 사건이 가지는 관련성은 없다고 보아도 좋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작품의 관계는 『눈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는 다분히, 『피를 마시는 새』라는 작품을 형식주의적
으로 비평한다고 할 때에 『눈물을 마시는 새』의 비평과 상당 부분
동어반복이 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 매력적이고
생소한, 그러나 동양적인 친근함을 가진 『눈물을 마시는 새』의 온
전한 세계관과 서술방식이 『피를 마시는 새』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반드시 『피를 마시는 새』에 대한
어떤 독립적인 비평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불안하고도 어쩔 수 없는
가능성을 무릅쓰는 시도 외에 달리 방법은 없어 보인다.
『피를 마시는 새』는 장편 소설이다. 그것도 마찬가지로 장편 소설
인 전작의 뒤를 이어, 수치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전작과 연속성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도 모든 설정을 능가하고 있다.
장편 소설의 사전적 정의는 분량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문학적인
시각을 보태서 가름한다면 장편 소설이 지녀야 할 필요조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길다고 말할 수 있는 어
떤 사건 전개의 논리적 아귀를 지키지 못하는 장편 소설은 그저 많은
양의 이면지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미 팬터지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고전적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작가는 『눈물을 마시는 새』를 통하여 한국적 팬터지의 가능성을 열
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러므로 새로이 『피를 마시는 새』에 어
떤 기대적인 언명을 추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장편 소설의
형태를 제시했다는 점을 꼽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어떤 정형화된 문학적 구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 실제로 그런 것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 『반지의 제왕』
이 명작으로 인정받는 이유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그 중에 반드시 지적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반지의 제왕이라
는 독립적인 작품은 작가가 구상한, 가상적이지만 거대한 역사의 일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역사학은 본질과 현상에 관한 선후 순서와 인과 관계를 규명하는 학
문이다. 그러므로 역사학에서 역사를 다룰 때에, 어떤 원인이 없이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대개 다음의 두 가지로 정의를 내린다. 아
직 밝혀지지 않았거나 규명할 수 없는 숨은 이유가 있거나, 혹은 아
예 그 사건 자체가 모두 거짓이거나.
모든 소설이나 문학 작품이 다 역사적 구조를 담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은 장편 소설에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
이다. 우리가 『반지의 제왕』을 읽고 장대한 가운데 땅의 역사 전체
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런 덕목이 작용한 결과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 나라에서 팬터지라는 카테고리를 지니고
선보여지는 작품들 중 아직도 많은 수가 아직도 역사학적 판단으로
볼 때에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다못해 이는 어떤 거시적인 사건의 흐름이 아니더라도, 쉽게 생각
하고 수긍해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회색의 간달프가 미스란디르라 불
리게 된 데에는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극연왕의 오라버
니가 스스로 지어 썼던 케이건 드라카라는 이름에도 그것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소설 내의 설정은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연고가 존재
하는 편이 좋다. 그러므로 『눈물을 마시는 새』가 완결되고 『피를
마시는 새』가 연재되면서, 사건 구조의 자체에 역사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작품 내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제국>이라고 생각
한다. 전작들로부터도 작가는 국가가 가지는 여러 문화적 정통성에
무게를 두어 왔다. 그것이 대개의 상황에서는 충성이라는 보편적 가
치로 표현되곤 하였으나,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부터 이어지는 왕
의 귀환에 관한 하나의 패러다임은 '피를 마시는 새'라고 정의되는 <
제국>으로 귀결된다. <제국>이라는 구조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오히
려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이 한 풀 죽는 듯할 정도로 보일 지경이다.
<제국>이라는 것이 작품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이와 함께 드러나는
의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피를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북부의 국가는 전작에서 건국된 나라인 신 아라짓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나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굳이 <제국>이라는 새로운 체제를
부여하여 등장시킨 것은 이 자체가 왕국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정체성
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을 때에 왕의 귀환을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
리던 북부인들의 모습과, <제국>의 이름으로 짜여진 정치적 구조 아
래에서 부단한 권력 투쟁과 제국 전복을 노리는 사건들이 반복되는
모습을 단순히 조명되는 계층의 차이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
이 있다.
또한, <제국>은 인물과 대상이 역전되는 드라마틱한 상황을 상징적
으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위대한 영웅이 단신으로 적들을 물리치
며 분투한 결과 결국 자신의 나라를 가지게 되는 상투적인 상황을 자
주 보아왔다. 주체는 왕국을 만들고 얻어낸 '사람'이고 그에 의해 창
조된 것은 나라이다.
그러나 『피를 마시는 새』에서 <제국>은 수동적인 외부로부터의 완
성을 기다리는 객체라기 보다는, 사건 자체를 설명하는 주인공이다.
제국을 완성하기 위해 황제가 움직이고, 제국을 전복하기 위하여 발
케네 공작이 움직이며, 제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대장군이 움직인다.
다름 아닌 <제국>이 이들을 움직인다.
물론 여기에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들어있다고
단정하는 것도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전작들이 어떤 비상식
적으로 특화된 존재나 상황에 의해 사건이 전개되는 양상이었다면,
『피를 마시는 새』에서 그런 것은 일차적인 도구일 뿐이다. 그러므
로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드래곤이 등장하여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거나 어느날 갑자기 시간이 멈추어 서지는 않지만, 하늘누리가
떠다니는 가운데 대단히 현실적인 정치적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
난다.
그래서 <제국>을 설명하는 것이 작가의 말하고자 하는 바나 의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 되겠지만, 연재가 끝나지 않
은 상황에서 유감스럽게도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
2
안정된 상황이 불안한 상황으로 치닫는다는 것은 전편인 『눈물을
마시는 새』와 유사한 전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국가가 운영되는 구조에 대한 작가의 상반된 견해
가 함께 들어 있다. 이는 고대 국가와 현대 국가에서 통용되는 사회
학적 근거의 차이, 혹은 단순히 문화사적 측면에서 드러나는 인식의
차이일 수 있는 흔한 내용이다.
그럼에도 작품 초기의 사건 진행의 기제가 되고 곧 작품 전체에 전
반적인 영향을 주게 되면서 이를 작가만의 독보적인 재료로 아이템화
한 것이 있다. 바로 서약 지지론과 서약무용론의 대결이다.
역사를 통하여 충성이라는 가치가 많은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해
내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가치라는 사실은 증명되었지만, 이것
이 실제로 정치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가치일수 있는지에 대
한 의문은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므로 서약무용론은 단순한
국가적 효율성의 문제로 정의해버리고 끝낼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실
제로 문화사의 초기에 어떤 의도를 지니고 성립된 가치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많은 상황에서 충성이라는 가치는 오랜 시간 동안 귀히 여겨야 할
덕목으로 인정받아 왔다. 그것은 전근대적인 국가를 좀 더 오래 존속
시키는 힘으로 믿어져 왔고, 사람이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서 올바른
정체성을 지닐 수 있게 해 주는 이정표로 대접받고 교육되어 왔다.
그럼에도 작가의 <제국>이 취하는 입장은 이에 대한 냉소마저 묻어
있다. 반역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지만 충성의 반대 개념
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는 <제국>을 설명하는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버려 두었던 딸이 변경백의 자리에 오르는 아이러니컬한 상
황까지 만들어내어 규리하를 욕보인(!) 작가이지만, 한편으로 서약을
지지하는 아이저 규리하와 이이타 규리하의 도전마저 불가능한 것으
로 만들지 않는 것은 단순히 사건의 갈등을 전개시키기 위한 방법이
라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치천제의 눈으로 바라본 <제국>이 잃어버린 충성 서약이라는 가치에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냉혹한 정치 구조 아
래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감상적 가치인 충성에 대한
마지막 희망인지, 아니면 잔인한 조롱의 확인사살인지 아직은 확연하
게 결론지을 수 없다.
작품 내의 비중 있는 인물들에 의해 부단히 격파되고 비하된 서약
지지론은, 그러나 결국 아이저의 말과 같이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방법적 가치일 수 있다. 그것이 과거 수백, 수천 년간
인간 사회에서 절대적 가치로 보호받아온 것은 그런 정의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그럼에도 그 충성이라는 가치가 정치적 정합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검증이 없었다는 점은 서약 지지론의 치명
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약점을 받아들인다 해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충성이라는 추상적 가치가 검증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선뜻 결
론을 낼 수 없다. 이는 규리하의 변경백이라고 해서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제국의 황제라 하여 검증이 가능한 것도 아
니다. 이에 황제는 검증이라는 절차를 아예 포기함으로써 처음부터
제국을 그것과는 무관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제국>은 대단히 비인간적이다. 등장 인물들은 이런 <제국>
의 비인간성에 찬성하는 부류와 반대하는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아이
저 규리하로 하여금 황제에게 충성하기 위해 황제에게 반기를 들게
만드는 역설을 강요한 것이 <제국>이다.
이를 가지고 국가가 개인을 어떤 방식으로 구속하고 함몰시키는지에
대한 결과라고 결론지어 버리기에는 논리적인 비약이 있지만, 결국
작가가 <제국>을 바라보는 방식이 그에 걸맞은 답이 될 것이다.
패러다임은 혼재 되기는 하지만 융화되지는 않는다. 오로지 개종만
이 있을 뿐이다. 서약 지지와 서약 무용이라는 것도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패러다임이다. 서약 지지가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 가치이고, 서양무용은 대단히 비인간적인 통치방식이라
는 설명은 현상만을 지칭할 뿐이다.
인간을 신뢰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에서 두 가지의 전제는 사실 정반
대이다. 서약을 지지하고 충성이라는 가치를 귀히 여기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불신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틀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충성을 강요하고 맹세하는 번거
로운 행위는 불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비인간적인 <제국>을 상징하는 황제의 서약 무용론은
오히려 제도적 인간에 대한 신뢰로부터 시작된 논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합성을 담보할 수 있는 구조만 있다면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하고 발전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다. 배
신하리라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 굳이 배신하지 말라고 반복적으로 말
할 필요는 없다. 충성의 서약을 주고받는 것은, 결국 주종 관계나 군
신 관계에 있어 서로 대립하고 서로를 배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
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무엇은 비인간적으로, 무엇은 인간적으로 나눠 놓고 보
는 것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임을 증명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도 있
다. 그러나 작가의 위치가 두 가지를 놓고 완전한 중립에 있는 것 같
지는 않아 보인다.
이것이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느냐'라는 형이상학적이고도
매우 진부한 철학적 의문으로 치환되는 것은, 세상사 이야기가 다 거
기서 거기인 때문일까. 확신할 수 없는 작가의 입장을 그릇되게 추측
하는 것보다는, 단지 이런 오래된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내놓은 사람
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결론이 아닌가 한다.
3
『폴라리스 랩소디』에 정치와 종교가 함께 했다면, 『피를 마시는
새』는 전편을 고려하더라도 종교적인 작가의 입장은 거의 보이지 않
는 데에 비해 정치적인 서술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고
전적으로 이어지는 정치사적 발전의 흐름에서 특히 작가의 입장으로
해석되고 적용되는 정치논리에 작품 내의 상당부분이 할애되어 있음
을 뜻한다.
전쟁이라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급박한 정치적인 변화, 중앙정부의
형태가 미치는 지방에 대한 권력의 영향력, 그리고 비록 진부한 부분
이기는 하지만 황위 내지는 황권을 놓고 벌어지는 귀족들의 암투 같
은 것은 모두 하나같이 작가가 바라보는 입장으로 재해석되어 있다.
단일화되어야 하는 정치 체제를 놓고 이루어진 비스그라쥬 백작 데
라시와 아실의 논쟁은 인상적이었다.
첫째, 같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은 단계를 거치는 쪽
이 더 효율적이다. 이것은 공리다. 타이모의 제안을 염수 얻기라는
일에 비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염전 건설 - 소금 채취 - 물에 소금
용해 - 염수 얻기'. 하지만 염수가 필요하다면 그냥 바닷물을 한 그
릇 떠오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 견해로는 그것이 염수를 얻는 훨씬
간단한 방법이다. 타이모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소금이 아니라 염수
임을 명백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왜 제국에서 분리되었다가 다시 제
국에 융합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가. 레콘들은 제국 내부에서 그렇
게 할 수 있다. (4-1)
데라시의 견해에는 모든 정치적 절차는 최대한 간소화되어야 한다는
스스로의 상식과, 제국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함께 들어 있다. 데
라시의 제국에 대한 믿음은, 그것이 결국 북부의 선민 종족에 대한
믿음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상적인 측면이 있다. 물론 데
라시 자신은 제국이라는 구조적 틀에 대한 신뢰에서 더 나아간 것은
아니지만, 그의 황제와 제국에 대한 믿음은 순진한 데가 있을 정도이
다. 그래서 단순히 작품 내에서의 제국 옹호론자로 치부될 수도 있었
을 데라시의 주장에 설득력이 부여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다음의 논리 즉 지배와 피지배의 논리에 관한 숫자를
논하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과 함께 제시되어 있어, 일견 무개성적인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한 번도
입밖에 내어 밝힌 적이 없었던 치천제와, 제국을 지지하면서도 오히
려 자신을 신뢰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엘시를 제외한다면 데라시는 적
극적으로 제국을 지지하는 거의 유일하게 드러난 사람이다.
흥미롭게도 황제와 제국을 분리해서 생각한 아이저 규리하와 마찬가
지로, 데라시 또한 황제와 제국을 떼어 설명하면서 제국 자체에 대한
믿음을 피력하는 것으로 황제권을 정당화했다 - 비록 그것이 황제 덕
분에 얻게 된 믿음이라 하더라도 -.
비스그라쥬백 데라시의 두번째 주장을 보자. 지배권은 지배자가 아
닌 피지배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그의 분석에는 이의가 없다. 피지배자
의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동의 없이는 어떤 자도 다른 사람들을 지
배할 수 없다. 그런데 비스그라쥬백 데라시는, 고의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능동적 동의만을 전제하고 있다. 비스그라쥬백은 지배
자가 되길 원하는 한두 명의 레콘은 존재할 수도 있지만 피지배자가
되길 원하는 절대다수의 레콘 집단을 구성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이
유에서 타이모를 비웃었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술했
듯이 동의에는 능동적인 동의뿐만 아니라 수동적인 동의도 있다. 레
콘이 왜 수동적인 동의를 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능동적이라는 말의
예로서 부족함이 없는 레콘들도 자신의 숙원에 관계된 일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수동적일 수 있으며, 실제로 현재 레콘들은 치천제의 지배
권을 수동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만약 비스그라쥬백 데라시가 능동적
인 동의만을 동의로 인정하겠다면, 나는 그에게 충성 서약에 대한 치
천제의 반감을 설명해보라고 말하겠다. 충성 서약이야말로 황제의 지
배권에 대한 영주들의 능동적인 동의 수단이다. 하지만 치천제는 그
런 능동적 동의를 부정하고 있으며 오히려 수동적인 동의만을 요구하
고 있다. (5-4)
서약 지지론이 황제와 사상적으로 대립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
지만, 마찬가지로 황제와 사상적 대립을 보인 아실의 분리주의는 서
약 지지론과는 근본적으로 출발부터 다른 것이다. 아실 또한 비인간
적인 <제국>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인간, 나아가 선민종족에 대한 스스
로의 믿음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수 차례 언급하는 수동적인
동의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데라시가 제국을 믿었기에 절차의 간소화를 주장했다면, 아실은 그
제국을 믿기 위한 방법을 위해 레콘들을 믿었다. 사상 전개의 시기적
인 차이는 있지만, 결국 이것이 제국이라는 일원화된 집단으로 결론
지어지는 것은 동일하다. 아실이 치천제와 데라시의 방법에는 반대했
지만 제국 자체의 존속에 반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의견은 우리가 국가의 이름으로 요구하는 강요나 권위
를 적극적으로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물론 전자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
은 없어도 된다 하고, 후자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을 요구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런 방식으로, 국가가 가지는 모순적 틀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이것이 반드시 어떤 현실적인 상황에 대입시켜 놓고 볼 수 있
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국가라는 것을 놓고 해석하는 방향의 차이
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방식으로 대립하는지에 대해 비
교적 명쾌한 답이 될 수 있다.
4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야심차게 구성되었던 사건 전개의 치밀함
은 『피를 마시는 새』에 들어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형이상학
적 담론을 희생하여 얻은 줄거리의 정교함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제국>에 대한 작가의 시점은 한 다리 걸쳐 떨어져 있는
것이라 하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개입적인 것이다. 그래서 <제국
>과 그를 둘러싼 많은 정치적 사건에 작가의 해석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한편으로 혼란한 제국의 정치적 상황을 설정하면서 부차적으
로 설정된 가치판단의 혼란이 수반되어, 상당히 재미있는 논쟁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유료도로당주 게라임 지울비와 그의 아들 시오크 지울비의 가치 판
단에 대한 이견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간적인
것이라 여기는 가치는, 악인은 악인으로 대접하고 선인은 선인으로
대접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료도로당이 신봉하는 가치는, 도로 이용
자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를 평가하는 기준은 그가 여행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일 뿐이다. 윤리와 도덕이라는 인위적인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모든 도로 이용자를 여행자라는 단순한 분류로 환원
함으로써 유료도로당은 오랜 시간동안 존속할 수 있었다.
결국 이것도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수준으로 신뢰
하느냐의 문제와 닿아 있다. 시오크 지울비는 인간을 신뢰하지 못하
기에, 인간을 선험적 가치로 평가하고 유료도로당은 그에 따라 여행
자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상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는
것은, 기준에 알맞지 않은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신으로부터 기
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여행자의 신상에 대해 비인간적으로 무관심해 보이는
앞선 수많은 유료도로당주와 게라임 지울비는 역설적으로 그 누구보
다도 인간을 신뢰한다. 다른 모든 것을 신뢰하기에 유료도로당은 그
사람이 목적을 지닌 여행자인지 아닌지만 평가하면 되는 것이다.
제국 정부가 사라진 혼란의 시기에 제국을 위하여 유료도로당의 윤
리관을 확립하자는 시오크 지울비의 주장이 시의가 적절함에도 불구
하고, 오히려 <제국>과 같은 방식의 가치관을 가진 것은 게라임 지울
비이다. 유료도로당이 자의적인 기준을 세워 도로를 걷는 자들을 제
멋대로 평가했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존재할 수는 없었을 것이
다. 언제나 자의적 해석은 자의적 반발을 낳기 마련이다.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충성이라는 의무가, 윤리라는 잣대
가, 도덕이라는 강요가 결국 인간이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한 결과 만
들어진, 사실은 불필요한 가치들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추측이다.
이것은 수천 년에 걸쳐 인간 스스로에 의해 수호되어온 것이다. 그러
므로 실제로 이것에 어느 정도의 필요성이나 정합성이 들어있지 않다
고 완전하게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인간적이라 믿어왔던 것들이 인간의 비
인간성을 우려하여 나온 결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그런 것들
의 필요조건이 하나도 없다고 결론짓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대체로 눈물을 마시는 새로부터 시작된 세계관에서 정통성이
라는 가치에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정통성을 뒤엎는
것을 출발로 거의 모든 이야기들을 만들어 왔다. 이는 정치사적 흐름
에서 정통성이라는 가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 이외의 상황에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켜야 한다고 믿은 가치
들을 부정함으로써 사건 전개의 부분 부분에 인상적인 굴곡을 주고
있다.
정통성이라는 것은 상당히 자의적인 가치이다. 과거 북부인에게는
왕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정통성이었지만, 반대로 남부의 나가들은
왕과는 무관하게 대가문들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정통성이었다. 그러
므로 우리가 '정통성이 없다'라고 판단하는 상황마저도 그것이 일정
이상의 시간을 두고 유지된 상황이라면, 그에 나름대로 정통성이 주
어질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런 복잡한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보다
『피를 마시는 새』의 스케일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은 과정의 문
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불모의 땅에 정통성을 새로 세워 올리는 일보
다, 거의 완성되어 있었던 정통성이 무너지고 그것이 다시 세워지는
과정이 훨씬 장대하고 드라마틱할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엘시 에더리는 비인간적인 제국과 인간적인 인간들의 타협선이었다.
엘시 에더리는 황제에게 충성하지만, 주군인 치천제가 원하는 것은
충성보다는 복종이다.
데라시는 사욕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데라
시가 내놓을 답은 황제와 제국을 위해 그랬다는 것일 테고, 유감스럽
게도 그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엘시는 서로 처지가 바뀌었다
면 데라시가 주저 없이 정우 규리하와 결혼했을 거라는 것을 도저히
의심할 수 없었다. 데라시의 의도와 동인(動因)은 엘시가 온전히 납
득할 수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엘시는 그것에 대해 화를 낼 수 없었
다. 그것이 엘시의 고민이자 엘시를 처참한 기분에 젖게 만드는 원인
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엘시를 미치도록 분노하게 하는 이유였
다. (10-2)
굳이 평가하자면 엘시 에더리는 중간자적 인물이다. 그 또한 이제까
지 북부가 겪어본 적이 없었던 <제국>에 대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거부감을 느끼고 반발한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이 적극적으
로 표현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대개 사람들은 황제의 논리에 동의
하거나, 혹은 아이저 규리하의 논리에 동의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특히 락토 빌파는 아실의 논리에 동의한 셈이다.
결국 이런 양분된 입장의 대립은 규리하 전쟁, 발케네 전쟁이라는
불행으로 현실화되었다. 북부의 반발을 무마시키면서도 제국의 시스
템을 유지시킬 수 있는 인물을 꼽는다면 엘시 에더리만한 사람이 없
을 것이다.
이것을 일반적인 국가가 가지는 모순 내지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거부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엘시 에
더리가 상징하는 어떤 심정적인 가치가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시 에더리가 황제가 되는 상황을, 작가가 제시한 <제국>이
만들어내는 갈등의 해소로 결론지을 수도 없다. 결국 엘시 에더리 또
한 지금으로서는 미봉책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5
사건 전개의 영향력이나 전반적인 구성력은, 시기적으로 그다지 떨
어져 있지 않은 전편 『눈물을 마시는 새』를 능가하고 있다. 작가의
스케일은 나날이 커지기만 할 뿐 줄어들지는 않는 핸드레이크의 마법
항아리 같다. 자칫 장대한 시나리오에서 잃어버릴 수 있는 정교함은
시간이 흐를수록 첨예하게 발전되어 가고, 비로소 작가는 독자들이
예측할 수 없어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창조자의 반열에 올랐다.
다만 여전히, 등장 인물의 대부분이 입지전적이거나 입체적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약간의 부담감으로 남는다. 대개 평면적 인물
이 작품의 사건을 주도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여겨지지만, 작품에 등
장하는 입체적 인물의 앞날은 아예 예측이 불가능하며 우리가 생각하
기에 비교적 평면적 인물로 여겨지는 자들도 돌발적 행동으로 독자들
을 당황케 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들은 언제나 그
렇게 비중 있는 인물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일반적으로 우리의 모습을 가진 평범한 사람
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만큼, 작가가 부여한 특화된 성격
을 지닌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독특함은 모두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다.
앞서 말했던 <제국>이라는 키워드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결코
건조하지도, 무심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독특한 해석
적 관점을 부여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객관성을 잃지 않고, 한편으로
는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가치 판단에 적극적이면서도 결코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지 않는 마법을 선보이고 있다. 전편들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작가의 인간적인 시각들이, 작품을 불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가능성을 극복하여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또한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1] 변화의 장, 북부
작가께서 '눈물을 마시는 새' 의 후편으로 연재하고 있는 '피를 마
시는 새' 는 전작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계관이
공유되는 것뿐만 아니라 전편의 혈통과 사건, 정통성, 문화적 시류가
이어진다. 그러므로 어떤 세계관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에, 설정상 몇십 년의 시간이 흐른 것을 전제로 변화된 일부를 제외
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전편에서 언급된 것들이다.
눈물을 마시는 새가 끝나는 시점에서, 문화적 변화를 담당하는 신인
어디에도 없는 신이 케이건 드라카라는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면서 -
혹은 그렇게 추측되면서 - 남북부는 대변화의 계기를 맞이한다. 역시
어떠한 상황에서든 변화는 기존 사회의 반발을 겪기 마련이지만, 북
부와 남부가 정체된 상황을 놓고 가지는 인식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
었다. 그것이 사람들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의 차이인지, 혹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북부보다는 남부
가 훨씬 보수적이었다는 것이다.
권능왕이 한심스럽게 행방불명된 이후, 북부는 항상 왕을 원해 왔
다. 정치적 구조에서 왕이 있는 구조와 없는 구조가 크게 차이가 나
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의 머리 위에 지배자가 하나 더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적어도 일반 백성보다 다스리는 자들에게 엄청난 차
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명시적으로 왕의 귀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인샤 대사원에 모인 각처의 지배자들을 공통적으로 묶어내
야 할 필요가 있다면, 모든 북부인이 그런 것처럼 그들 또한 '왕의
귀환을 바라는 자들'로 이름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현상적 상황만을 놓고 보자면 변화에 적극적인 것은 남
부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전쟁을 주도한 자들이, 여존남비의
나가 사회에서 수백 년을 억눌려 지냈던 피지배의 성인 남자라는 사
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전쟁 직전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
는 자들의 대표' 인 갈로텍은 비아스에게 여자들의 보수성을 나무라
며 개전의 필요성을 역설한 적이 있다. 제 2차 대확장 전쟁은 남자인
수호자들이 여신의 힘을 빌어 주도적인 위치에 서지 못했다면 일어나
지 않을 전쟁이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증거는, 갈로텍과 대립하
게 된 하텐그라쥬 평의회가 소메로 마케로우의 발언을 지지하면서 그
녀를 마케로우 가문의 가주가 되는 데에 제청하는 것으로 충분히 증
명될 수 있다. 소메로 마케로우는 평화로웠던 이전의 보수적 사회를
지지하고, 수호자들이 일으킨 전쟁을 남자들의 무가치한 소동으로 치
부함으로써 위협받고 있는 여자들의 우위적 성 위치를 회복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정체된 상황을 놓고 언제나 변화를 바라는 자들과 - 물론 그것이 더
옛날로 돌아가는 반동적 복고주의일 가능성은 있지만 -, 지금 이대로
가 좋다며 변화를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자들이 있다고 할 때에 새로
운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이 전자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초기
남부의 도발로 시작된 변화의 양상은 점점 그것을 주도하는 쪽이 북
부로 바뀌게 된다. 이 변화라는 것이 어떤 효과적인 국가 체계를 새
로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를 주도하는 세력의 크기가 커
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라짓 제국과 지도그라쥬를 주축으로 하는 남부가
대결한 것은 세계의 주도권을 놓고 남북부가 벌인 마지막 대결이었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사도 라수 규리하와 대수호자 키베인의 회담에
따르자면, 갑작스러운 남북부 판도의 변화에 따른 불안 요소의 축적
이 가져온 비극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단편
적인 분석은 역사학자들을 즐겁게 해줄지는 몰라도 정치학자들을 즐
겁게 해 주지는 못한다.
사실상 변화의 주도권, 남북부 정치적 판도의 주도권은 대호왕과 그
의 군사들이 하텐그라쥬에 난입할 때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보는 편
이 옳다. 천일전쟁은 북부로 넘어간 주도권을 다시 빼앗아 오기 위한
남부의, 나쁘게 말하자면 '마지막 발악'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
다. 속성으로 제국을 완성하고자 했던 천재적인 원시제가 이끄는 북
부의 아라짓 제국을 지도그라쥬가 전쟁으로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
다. 명시적으로 남부가 패배했다는 기록도 없지만, 어쨌든 이로 인하
여 아라짓 제국이 세계를 제패하고 모든 변화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다.
천년 전에도 천년 후에도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가만히 있는 돌덩
이로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빗물에 깎이고 바람에 에면서, 뜨거운
태양과 차가운 달에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그 모습이 변해야 그것이
역사가 되고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작과 달리 당 작품에서
남부가 이야기의 중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중 있게 등장할 수 없는
것, 그나마 등장한 시모그라쥬도 아라짓 제국으로 북진하는 것은 북
부가 모든 역사와 이야기의 중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2] 신 아라짓 왕국과 아라짓 제국
봉건 국가가 항상 왕권의 약화로 곤란함을 겪고, 이것을 극복하느냐
못 하느냐의 차이로 나라가 왔다갔다하는 것은 고대와 중세 정치사의
상례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통치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필수불가결
한 것이 정보통신의 수단이다. 군사력만으로는 창업은 할 수 있다.
춘추시대 비교적 소국 축에 드는 노나라보다도 못했던 나라가 있으니
그것이 주 왕실이다. 이런 주나라도 은주혁명 초기에는 은나라 80만
군사를 격파한 우수한 군사력으로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제후국이 조공을 소홀히 해도 그것을 파악할 방법이 없고, 제후들이
자신들의 영지에서 몰래 군사력을 키워도 그것을 확인할 수단이 없다
면 이미 그 나라는 망한 것이다. 한 무제는 주금(酎金)으로 왕권 강
화를 꾀했지만 주 왕실에게 있어 기준 미달의 조공이란 왕실의 몰락
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상징이었을 따름이다. 진시황이 제위 내내 나
라를 순시하고, 카롤루스 대제 또한 많은 시간을 들여 변경백령을 일
일이 방문한 것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신 아라짓 왕국은 봉건 국가이다. 그것도, 초기에는 국왕 직할령이
하나도 없는 대단히 위험한 형태의 봉건 국가였다. 제 2차 대확장 전
쟁이 벌어지기 직전에 돌아온 북부의 왕은 귀환하자마자 불사의 괴물
들인 남부와 대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떤 일률적이
고 정합성을 담보할 수 있는 행정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거니와, 일원화된 명령선을 지닌 군사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제 2차 대확장 전쟁 당시의 북부군은
그 또한 왕의 군대이기는 하지만, 굳이 역사학적 용어를 사용하자면
귀족 연합군의 성격이 강했다. 대호왕이 직접적으로 군대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 라수 규리하는 대호왕을 버리고 남
부로 진격했다 -. 라수 규리하가 전략을 맡고, 괄하이드 규리하가 전
술을 맡은 것은 대호왕이 이런 분야에 문외한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
게 작용한 것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급조된 북부 연합군을 통제하는
데에 강대한 규리하의 권위가 상당부분 쓸모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
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 2차 대확장 전쟁이 끝나고, 대호왕과 신 아라짓
왕국은 승자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만약 하늘누리가 만들어지
지 않았다면 아라짓 제국은 성립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며, 신
아라짓 왕국 또한 존속을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북부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호왕이 국왕인 나라가 존속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
상한 수단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전근대적인 통치권력은 거리에 반비례한다. 수도로부터 멀어질수록
왕권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지방 영주의 권력이 강해진다. 이는 상식
적인 정치사에서 절대로 극복될 수 없는 원초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라수 규리하는 엄청난 면적으로 떠다니는 평반면이라 할 수 있는 하
늘치의 등위에 수도를 건설케 함으로써 이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
하였다 - 물론 라수 규리하가 수도 건설을 주도했다는 기록은 없다
-. 하늘치 위에 건설된 신 아라짓 왕국의 수도 하늘누리가 가져다주
는 이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물리적인 위치의 우위다. 공중을 이용하는 군대가 없었던 세
계관에서의 일상적인 전투는 아군과 적군의 높낮이가 항상 거의 비슷
했다. 이는 어떤 특수한 지형적 상황이 아니고서는 전투상황을 고려
할 때에 고도가 큰 변수가 되지 못해 왔음을 뜻한다. 그런데 하늘누
리는 공중에 떠 있다. 이 하늘누리로부터 무력이 사용될 경우 전략가
들은 기존의 전략 전술을 모조리 폐기해야 한다. 엄청나게 높은 고도
로부터 내리꽂히는 공격이란 유사이래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누리를 통하여 국가를 통제하는 데에 어느 정도 필요한 군사적
물리력을 상상 이상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초기 전쟁의
여파로 따로 더 많은 군사를 둘 수 없었던 북부에 회복의 시간을 줄
수 있는 좋은 장치였다. 200만 제국군이 처음부터 200만이지는 않았
을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수평적인 위치의 변동이다. 말 그대로 하늘누리는 떠
다니는 이동수도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근대적인 통치권력은
거리에 절대적으로 반비례하게 되어있다. 이 거리는 물론 수도와 지
방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때때로 통치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천
도가 단행되는 것은, 기득권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수도와 지방의 거리를 새롭게 설정함으로써 중앙정부의 정치적 영향
력을 일신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 하늘누리라는 수도는 '언제나 천도중' 이다. 언제나 원할
때마다 수도와 지방의 거리를 마음대로 재설정할 수가 있다. 국왕은
굳이 수도를 비워두고 지방을 순시하는 위험과 수고로움을 감수할 필
요 없이 나라 전체를 언제나 자신의 영향권 하에 둘 수가 있다. 가장
중요한 전투단위와 행정단위가 하나 되어 원하는 장소로 언제든지 이
동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이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거니와 이로 인하여 중앙정부의 권력이 극단적으로 전제화 될 수 있
다.
[3] 치천제와 서약 지지파
원시제의 뒤를 이어 아라짓 제국의 지배자로 등극한 '하늘을 다스리
는 황제' 인 치천제 라세에게는 제국을 완성해야 하는 책무가 있었
다. 초인적이고 천재적이었던 원시제 그리미 마케로우에게 하나의 결
점이 있었다면 너무 일찍 죽었다는 점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
하지만, 만약 원시제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규리하를 중심으로 하는
서약지지파의 준동이나 발케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원시제의 뒤를 이은 치천제는 마찬가지로 하늘누리가 가지는 물리적
이점과, 뱀단지를 통한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정보통신 체계를 이용
함으로써 원시제 시대 이상의 전제 권력을 조성한다. 사실 진정한 권
력이란 직접 창칼을 들이대어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리
하도록 하게 만드는 힘이다. 200만 제국군과 하늘누리를 가진 치천제
가, 명백하게 저항한 규리하와 발케네를 제외하고는 어떤 곳에 권력
강화를 목적으로 무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은 없다. 우리가 볼 수 있었
던 것은, 제국 각처의 분쟁을 조정하는 조회에서 치천제가 권고의 방
법으로 신민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모습이었다.
원시제와, 그의 뜻을 이은 치천제가 완성하려 했던 제국의 모습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치천제가 황권 강화사업을 벌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아라짓 제국은 황제 국가이지만, 한편으로는 전형적인
봉건 국가이기도 했다 - 공작령은 제국군의 출입을 거부할 권리가 있
었다 -. 전북부 6억의 신민을 다스리는 데에 일극 직할 체제는 사실
상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봉건 제도는 그것이 상당하든 부분적으로
든 존속시켜둘 필요성이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이 황권을 위협
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여서는 치천제가 두고볼 수 없는 것이다.
규리하의 서약 지지는 그 의도가 정말 서약이라는 가치를 귀히 여기
는 순수한 것에서 출발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서약 지지파들
의 순수한 대의는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 '황제에게 충성하는 방
법인 서약을 지키기 위하여', 규리하 변경백 아이저 규리하는 '황제
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 시니컬한 상황 이외에도, 서약 지지파가 주
장하는 내용을 따른다면 이것은 황제권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책동으
로 볼 수밖에 없다.
지상의 땅을 가지려 하지 않는 치천제의 의지대로 아라짓 제국에 황
제령은 없지만, 새로이 개척되거나 정복된 지역을 다스리기 위하여
중앙정부로부터 행정관이 파견된 제국령은 각처에 존재했다. 황제가
간섭할 수 없는 지방 영주들의 땅과 달리, 이 제국령이 황권을 공고
히 하는 데에 그 영향력이 크든 작든 하나의 지지력이 되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제국 행정관의 경우 황제와 봉신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서약이 유지된다면 제국령의 신민들은 황제에게 직접
충성의 서약을 해야 하므로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을 해결
하는 방법으로 서약 지지파가 내어놓은 대안이 제국령의 점진적인 축
소다. 결국 이는 완전한 제국령의 삭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그 제
국령이 어떠한 형태로든 봉신들에게 하사된다면 상대적으로 황제권은
약화되고 지방 영주들의 세력은 강화될 것이다.
서약을 폐기하여 전 제국에 일률적인 통치 구조를 완성시키고자 하
는 치천제의 의지는, 오히려 충성의 서약으로 유지되는 봉건적인 구
조에서 볼 때에 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개연성이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규리하는 규리하 변경백 아이저 규리하의 선
언에 따르자면 '제국'이 아닌 '황제'에게 반기를 들게 되었고, 하늘
누리의 압도적 무력에 간단히 진압되어 버리고 말았다.
첨언하자면, 이는 서약 지지라는 가치를 놓고 그를 지지하는 규리하
와 이를 반대하는 황제가 대립한 것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서약을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상당수의 지방 세력들이 있
음에도 굳이 규리하가 중심이 되고 규리하가 정벌의 목표가 되었다는
점에서 추측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전근대적인 통치 구조에서의
국왕과 변경백의 관계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예상
이다.
변경백은 왕국 내 또 하나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갖
는다. 고 아라짓 왕국법을 상고하여 만들어진 아라짓 제국의 귀족법
에 따르면 변경백의 지위는 공작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이다. 그런데
이런 변경백의 권리는, 변경백이라는 제도가 정착되면서 후세에 정리
된 법률의 의미로 한정시키기에는 문제가 있다. 처음부터 이런 막강
한 권력을 어째서 유독 변경백에게 허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느냐
는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변경백의 책무는 말 그대로 변경을 방위하는 것이다. 물론 이 변경
이라는 의미가 반드시 국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일반적으로 자
연적 장애에 의하여 중앙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운 지역을 대리통치하
는 경우에도 그 대리인을 변경백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변경백의 권
력은, 나아가 변경백의 정체성은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이 지속적으로
중앙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만 유지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
변경백령은 언제까지나 변경으로만 남아야 한다.
이동수도 하늘누리가 건재하는 한 아라짓 제국에 변경은 없다. 모든
지역이 수도 인접 지역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늘누리가 아라짓의
수도가 되는 그 순간 변경백의 권위는 그저 일반적인 지방 영주의 그
것과 똑같은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고 아라짓 왕국 시대까지 가문의
혈통이 이어진다고 주장하며, 왕의 귀환을 위하여 왕의 것을 지켜왔
다는 자부심의 규리하에게 이는 실제 이상의 모욕이었을 수 있다. 또
한 황제로서도, 이제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변경백이라는 것
을 제국 내에 그대로 존속시킴으로써 막강한 지방 권력을 용인하기보
다 황제의 영향권 아래에 두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규리하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규리하는 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완전히 상실하게 되고, 제국 정부는 가장 큰 세력을 가졌던 대
귀족인 규리하 변경백령을 굴복시킴으로서 제국에 그 위엄을 떨치게
되었다 - 한편으로 불순한 의도를 가진 무리들을 더욱 자극하거나,
혹은 그 뜻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 그리고 황권 안정사업의 마지막
귀결인 '북부인에 의한 북부 왕조의 승통'을 이루기 위한 작업의 초
석을 놓았다. 엘시 에더리를 전쟁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4] 엘시 에더리와 발케네 전쟁
우리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치천제는 황권을 강화
하고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치천제의 모든 정치적 행
동을 그러한 목적의 맥락에서 이해해왔다. 1인자의 절대 권력을 유지
하기 위해서 2인자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2인자가 존
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가능한 2인자를 많이 만들어놓는 것이 그나
마 낫다. 그럼에도 후자가 전자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위험한 상황
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치천제가 황권을 강화하고 안정시키려 하는 과정에서 치천제
는 이에 정면으로 반하는 존재를 함께 키워 왔다. 그가 강대한 칼리
도의 백작이자 200만 제국군을 통솔하는 황제의 대장군인 엘시 에더
리였다. 게다가 엘시 에더리에게는, 동원 병력 만명 미만의 인원으로
벌이는 일에 반역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초
법적인 면책특권을 지닌 만병장이라는 직위가 보태져 있었다.
제국인들은 이 사실을 의도적으로 방기해 왔다. 그 치밀함이 원시제
에 비견되는 치천제의 완벽성을 믿고, 한편으로는 야심이라고는 조금
도 없는 성실함의 화신 엘시 에더리의 성품을 믿었다. 그래서 결국
엘시 에더리는,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크기로 볼 때에 명실상부한
제국의 제 2인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제국인에게 어떤 정치적
인 위협을 줄 수 없는 부류로 분류되어 있었다. 이것이 엘시 에더리
의 성품에 기인한 면이 큰 것인지, 아니면 치천제가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조성한 면이 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정
치적 존재로서 엘시 에더리를 우려하는 드러난 제국인이 별로 없게
되었다.
물론 언제나 가능성은 제기되어 왔다. 치천제가 엘시 에더리와 비셀
스 규리하를 혼인시키려 하고자 할 때에 비로소 귀족원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스카리 빌파를 통하여 엘시 에더리와
보다 직접적으로 관계되어 있던 락토 빌파는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
로 우려를 표시하곤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치천제는 지속적으로 엘
시 에더리에게 중첩된 권력을 하사해 왔고, 그래서 정말 제국인들은
어느날 갑자기 '차기 황제가 될지도 모를' 엘시 에더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발케네 전쟁은 엘시 에더리와 관계가 있다기 보다는 치천제와 관계
가 있는 것이다. 발케네가 도둑의 땅으로서 유서가 깊지만, 그룸 빌
파에 의해 빌파 가문의 안정적인 통치 구조가 자리잡게 된 뒤 발케네
또한 하나의 제국을 구성하는 지역으로 인정받아 왔다. 락토 빌파가
처음부터 치천제와 제국에 역심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정황은 충
분히 존재한다. '술 퍼 마시다 대장군 자리를 빼앗긴 얼간이'라는 평
가를 자신의 아들 스카리 빌파에게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자신의 아들이 대장군이 되기를 바랬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는
현존하는 제국 질서를 인정하며서 그 속에서 보다 큰 권력을 지향하
고자 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락토 빌파가 언제부터 역심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
은 적어도 그가 제도권 내에서 세력을 키우겠다는 시도를 하고 있을
때에도 하나의 다른 방법으로서 지속적으로 고려되어 온 것일 가능성
이 높다. 락토 빌파는 아실이 주장한 분리주의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는데, 이는 그가 분리주의를 통하여 오래 전부터 제국에 대항할
논리를 구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락토 빌파는, 제국이라는
시스템이 언젠가는 완성되어야 할 것임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그것이
이렇게 갑자기 한두 세대만에 완성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
래서, 그 이전에는 락토 빌파가 아들 스카리 빌파와 규리하공 비셀스
규리하의 혼인을 바란 것이 귀족원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되었
으나, 이 이후 이 또한 하늘누리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정략의
일환으로 이해되고 있다.
시모그라쥬와의 공조는 락토 빌파가 대단히 오랜 시간동안 반역을
준비해 왔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될 것이다. 물론 이는 락토 빌파가
대장군 엘시 에더리를 황제로부터 떼어놓음으로써 황제를 전략적으로
불리하게 하겠다는 의도일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엘시 에더리가 발케
네 전쟁에서도 활약하여 그 명성을 다시 한번 제국 전역에 떨치게 되
는 것을 일부 우려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미 락토 빌파는 치천제의
황권 안정사업의 결과가 엘시 에더리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으며, '북부의 지배자는 북부인으로' 라는 거병의 캐치
프레이즈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엘시 에더리는 없는 편이 나았을 것
이다. 나가 지배자를 거부한다는 명분으로 일어났는데 인간 엘시 에
더리가 지배자가 되면 그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발케네 전쟁은 '준비된 전격전' 양상을 띄었다. 규리하 전쟁만큼은
아니지만 이 또한 상당히 단기간에 끝이 나버리고 말았다. 일만의 레
콘으로 이루어진 사라티본 군의 활약으로 초기 발케네에게 유리했던
전세는, 하늘누리가 식수를 방수함으로서 혼전 양상으로 치닫게 되었
다. 결국 아들 스카리 빌파에게 살해당하기 직전 락토 빌파는 하늘누
리에 항복 의사를 전달하게 되었으며, 그대로 모든 상황에 끝났다면
치천제의 의지에 따라 발케네는 제국 지도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하늘누리가 단 한 사람의 상상만으로도 통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라수 규리하의 배짱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를 증명해줄
뿐, 그로 인하여 제국은 전복의 위기를 맞이했다. 천경비록으로 생각
해 볼 때에 라수 규리하는 생존 당시에도 이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
럼에도 광활한 제국을 다스리는 정점으로 태연하게 하늘치를 선택했
다 - 물론 이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데, 하늘누리를 건설하고 나서
이미 돌이킬 수 없었을 때에 알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 게다가
그것을 기록으로까지 남겼다는 것은, 라수 규리하가 이 사실을 언제
까지나 비밀로 둘 의사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아실에 의해 폭주한 하늘누리는 라호친의 저 너머로 날아가 행방불
명이 되었고 제국의 시스템은 완전히 정지되고 말았다. 이것을 제국
의 멸망이라 말하지 않는 것은, 굳이 말하자면 시스템을 움직일 사람
들만이 일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일 뿐 제국이라는 구조 자체는 북부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제국의 멸망이라 말하는
자들이 있는 것은, 이 광대한 시스템을 움직이려면 반드시 하늘누리
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장나 움직이지 않는 기계는 고물 취급을 받
고 버려질 뿐이다.
[5] 무정부상태의 제국과 시모그라쥬의 북진
6억이나 되는 인구와 세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영역으로 구성되
어 있는 아라짓 제국을 다스려온 것은 하늘누리라는 정점을 지배하는
치천제였다. 하늘누리의 이동성과 뱀단지의 실시간 전달성에 의해 하
나의 단일한 행정 체계로 운영되어 온 아라짓 제국은, 그런 만큼 원
시제가 단기간에 제국을 거의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뒤집어 말
하자면 그런 특이한 요소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유지되기 힘든 구조라
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발케네 전쟁을 통하여 하늘누리
가 실종되면서 제국의 모든 시스템은 일시에 정지되어 버렸다.
이는 정치사적 입장에서 대단한 구조적 후퇴이다. 다시 반동적 봉건
시대, 전국시대로 되돌아가고 마는 것이다. 기존에 존재하던 큰 국가
가 무너지고 나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군사권역의 재편이다.
200만 제국군은 아직 그 대부분이 제국 전역에 남아있다. 그러나 상
당수는 그 제국군이 주둔하는 지역에서 가장 강대한 지방 세력으로의
흡수가 진행되고 있다. 아라짓 제국의 시스템이 정지는 되었어도 완
전히 소거되지 않는 이유는 200만 제국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제국군이 제국 전체의 권력 판도에 영향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들
때에, 제국은 사라진다.
구조가 남아있으면 정통성도 남아 있다. 아이솔 형제가 처음에는 엘
시 에더리를, 나중에는 가능성의 측면에서 비셀스 규리하를 차기 황
제로 지지하는 것은 더 이상 혼란이 가중되어 시스템에 가해지는 피
해가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기 전에, 이를 안정시키고자 함이
다. 시모그라쥬가 대호왕의 이름을 빌어 북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
대한 정치적 기로는 이미 넘어선 셈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엘시 에더리는 남아있는 구조 속에서 대장군이라는
지위로 제국군을 규합하고자 한다.
가능은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정지된 구조 속에서 200만 제국군
을 빠른 시일 내에 규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하늘누리가 하던
일을 대지를 밟고 걸어다녀야 하는 대장군 엘시 에더리 일인이 해내
야 하는 것이니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라수 규리하가 이런 상황까
지 예측하고 제국 전역에 비밀 보급창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제국의 무정부상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혼란에 빠진 제
국군을 하루빨리 수습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 됨은 재론할 필요가 없
다.
이런 상황에서 시모그라쥬의 북진은 인상적이다. 시모그라쥬공이 은
거중이던 대호왕을 앞세워 북부로 진격하고 있는 것은, 일단 그가 제
국에서 황제 본인이 아닌 이상은 그 정통성에 대항할 수 없는 대호왕
을 내세웠다는 점을 차치한다면 발케네공을 포함한 북부의 귀족들과
다를 바가 없다. 대호왕이 시모그라쥬공에게 협력하고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설사 시모그라쥬공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하여 대
호왕이 아라짓 제국의 제위에 재등극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 그녀의 행적으로 판단할 때 -. 그리 된다 하더라도 실권을
쥐는 것은 시모그라쥬공이지 대호왕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것은 군사권역의 재편에 의한 혼란 이외에도, 정신적인 문제
로 제국 전역을 총체적인 혼란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
하다. 제국이라는 구조가 있고, 현재 황제와 중앙정부는 사라져 있지
만 이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추대되기만 하면 다시 채워 넣을 수 있
다 - 고 믿어진다 -. 이런 상황에서, 비록 대호왕이 신 아라짓 왕국
의 개조開祖이기는 하지만 대호왕은 아라짓 제국과는 분리되어 있는
정통성을 지닌다. 결국 이는 대호왕이라는, 옛날에 있었던 지금과는
다른 신 아라짓 왕국이라는 정통성이 다시 새로이 등장하는 것이지
지금의 아라짓 제국이라는 정통성을 충족시켜줄 조건이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제국 시스템의 재개를 도와줄 선택이라기보
다, 치천제의 후계자냐 아니면 대호왕이냐를 선택하는 골치 아픈 선
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7] 제국 세력의 판도
현재 제국 각처의 지배자의 무리는 '황제 등극의 가능성이 있는 자'
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누어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봉건
제도의 온존으로 제국 정부가 사라진 상태에서 수많은 소국들이 난립
할 가능성이 있으나, 한편으로는 이런 황제 등극의 가능성이 있는 대
귀족간의 세력 조정으로 인해 기대 이상으로 혼란이 억제될 수도 있
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만 노력하면 제국 전체가 평온할 수도 있는
데, 그 가능성을 지닌 자들 중 시모그라쥬공과 발케네공이 여기 저기
서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관계로 제국 전체가 어수선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엘시 에더리는 황제의 대장군이자 만병장이었다. 그리고 율형부사와
유수부차사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이제는 선제가 되어버린 치천제의
유지를 잇고 있다. 부사와 부차사의 주장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거의 저항할 수 없는 정통성이다. 부사와 부차사의 주장이 어느
정도 신뢰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지금
으로서는 하나의 '주장'일 뿐이고, 그것을 웃는 얼굴로 무시할 수 있
는 자들이 상당수 있는 상황에서 엘시 에더리가 얼마만큼의 권위를
발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치천제가 원하는 대로 엘시 에더
리가 비셀스 규리하와 혼인한다면 문제는 거의 정리되지만, 엘시 에
더리와 비셀스 규리하 본인들에게 그럴 의지는 없으므로 비셀스 규리
하는 엘시 에더리와는 분리하여 고려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규리하공 비셀스 규리하는 권력에 뜻이 없는 인물이지만 이번에도
성품이 정치적 판도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처음부
터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비셀스 규리하는 규리하공에 오르지도 않았
을 것이다. 오랫동안 엘시 에더리와 연결지어 생각되어 왔지만, 결국
양자의 결합은 무산되었고 엘시 에더리가 제국군을 규합하기 위해 규
리하에서 떠난 상황에서 비셀스 규리하는 독립적으로 이해되어야 한
다. 규리하 변경백의 지위를 되찾으려는 이이타 규리하의 무리가 습
격을 하는 상황에서 규리하는 엘시 에더리에게 우호적인 세력으로 계
산될 수는 있겠지만 합산이 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유수부차사의 지적은 옳다. 본인들에게 제위의 의사가 별로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엘시 에더리나 비셀스 규리하나 둘 다 마찬가지일 것
이다. 그러나 비셀스 규리하에게는 강대한 규리하 변경백령이 있고,
판사이의 남작 발리츠 굴도하의 지지를 받으며, 세퀴라도의 지테를
당주를 외조부로 두고 있다. 게다가 비셀스 규리하에게는 하늘치와
관계된 독보적인 능력이 있다. 규리하 전쟁으로 피폐해진 규리하가
외부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고, 그 지배자가 차기 황제감으로까지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은 이이타 규리하가 말하는 규리하의 정통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비셀스 규리하가 동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
의 권력에 있는 것이다.
팔리탐의 진술을 따르자면 스카리 빌파는 황제감이 아니다. 그럼에
도 스카리 빌파에게는 황제군을 격파한 발케네와 사라티본 군대가 있
다. 황제의 자격에 개인적인 성품이나 능력이 완전히 배제된다면 스
카리 빌파 또한 가능성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실제로
스카리 빌파는 황위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었고, 지금은 팔리탐의 조
언에 따르고 있으나 그것으로 그 야심을 접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팔리탐이 지속적으로 스카리 빌파를 통제할 수 있다면 스카리
빌파가 황제가 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스카리 빌파
를 팔리탐이 언제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시모그라쥬는 상당히 의외의 요소다. 시모그라쥬가 지배되는 형태는
북부와는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시
모그라쥬의 군세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가 아니고, 또한 무엇
보다도 대호왕을 북진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만큼 이는 어떤 새로운
가치판단의 혼란이 추가된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대호왕의 귀환
은 북부가 귀족원 회의를 열어 자결권을 행사하여 차기 황제를 선출
하는 정통성과는 구분되는 독립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이외에도 비셀스 규리하와 관계되는 자유무역당이나, 최근의 혼
란스러운 상황에 대한 개입 여부를 두고 갈등 중인 유료도로당이 제
국 판도에 상당한 변화의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금권으로 상징되
는 자유무역당의 지지는 곧 경제권의 우위를 가져오고, 제국 전역의
도로망을 통제하고 있는 유료도로당의 협력은 제국 전체의 행정권을
재편할 수 있는 파괴력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8] 제국
제국이 너무 갑작스럽게 성립되었다는 발케네 공작 락토 빌파의 말
은 일단 옳은 말이다. 이것이 지난 수백 년간 존재해왔던 고 아라짓
왕국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라는 점에서도, 말하자면 이전에 볼 수 없
었던 너무나도 거대한 정치 체제가 일시에 등장해 버린 셈이다. 원시
제와 치천제에게는 그런 이유로 치명적인 결함을 내포하고 있는 제국
을 완성하고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이탈리아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카보우르는 이탈리아 통일을 완수
하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이탈리아를 만들었다. 이제
는 이탈리아인을 만들 차례다." 사실상 원시제의 시대에 제국은 거의
완성되고 그것이 치천제에 의해 완료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럼
에도 제국이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소요를 겪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문
제가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북부에 제국
은 있지만 제국인이 두루 자리잡지 않은 것이다. 황제는 발케네를 지
도에서 지워버리고 발케네인들을 모두 제국인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발케네인들은 아직까지도 온전한 제국인이 아니라
는 말이다.
이이타 규리하는 산공부사 파라말 아이솔에게, 파라말 아이솔이 규
리하를 미시적인 것으로, 제국을 거시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산공부
사가 규리하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는
이이타 규리하 자신은 규리하인이기 때문에, 제국보다는 규리하를 먼
저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는 왕국을 지키는 방패라는 규리하의 변경
백을 자처하는 자가 사실상 그의 주군인 제국보다 규리하를 더 소중
하게 생각한다는 선언이다. 제국이라는 정치 구조 속에서 절대로 인
정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성립 기간만을 놓고 볼 때에 급
조되었다고 볼 수 있는 - 대충 만들었다는 의미가 아닌 - 제국에 그
렇게 큰 애정과 충성을 가질 수 없다는 점 또한 당연하다.
이것이 반드시 규리하 가문이 고 아라짓 시대로부터 이어지는 유서
깊은 가문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단정짓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
다.
먼저, 제국에 대한 불신의 이유는 앞서 여러 번에 걸쳐 밝힌 바와
같이 제국이 가지는 엄청난 영역과 정치력의 크기에 비하여, 그것이
너무나도 빨리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대단한 것은 반드시 천천히 만
들어져야 한다는 법칙은 어디에도 없지만, 대기만성이라는 고정관념
은 여전히 제국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원시제가 그런 관
념까지 뛰어넘어 제국을 거의 완성했다고 칭송 받는 것은 순전히 원
시제 개인의 초인적인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
다.
북부의 지배자인 제국의 황제가 나가라는 사실은, 대호왕과 원시제
를 거쳐 치천제에 이르기까지 이제 대체로 부자연스러움 없이 받아들
여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에 반발하는 북부인은 계속 존재해왔을 것
이다. 나가가 북부에서 활동이 어렵고, 제국의 완성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안정적인 황권을 위해서는 먼저 안정적인 황위 계승부터 이루
어져야 하는 것임을, 락토 빌파가 북부의 지배자는 북부인이어야 한
다며 반역하기 이전에 치천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치천제에게 있어
제국의 완성은 엘시 에더리에게 황위를 넘겨주고 자신은 폭군으로 생
을 마감하는 것이었을 수 있다.
황제와 제국 정부 전체를 잃어버린 이 시점에서 북부가 정도 이상으
로 혼란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
을 것이다. 먼저, 북부인들은 이전의 왕이 없었던 수백 년에 걸친 전
국시대를 거쳤기 때문에 이 정도의 혼란기는 익숙한 것일 수 있다.
몇십 년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선조들이 누대에 걸쳐 겪어온 상황이
기 때문에 아예 그런 적이 없었던 것보다는 도움이 될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제국 성립의 결함에 대한 부연이며,
위에서 밝힌 이전 전국시대에 대한 빠른 적응의 근거이다. 제국이 성
립되고 나서 백년도 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북부인들이 오히려
제국에 아직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사실 아라짓 제국
이 성립된 후에도 규리하 지방의 신민들에게 나라님은 규리하 변경백
이었지 황제는 아니었다.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제국인들과 접
촉하는 지배자는 각처의 영주들이었고 이것은 제국 시대나 이전의 전
국 시대나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상 지금 황제와 하늘누리가 사라진
공위 상황이 제국인들에게는 달리 영향을 줄 것이 없는 높고 높은 곳
의 이야기, 먼 나라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9] 분리주의와 제국의 완성
완성만 될 수 있다면 가장 빠른 절차를 밟는 것이 효율적이라 주장
하는 비스그라쥬 백작 데라시는 냉정한 실용주의자이다. 완성품의 질
을 높이기 위해서 정해진 절차를 밟는 것이 오히려 이후에 더 효율적
이라 주장하는 아실은 감상적 실용주의자이다. 둘 다 제국의 완전한
완성이라는 점을 결과로 두었다는 점에는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비스
그라쥬백 데라시는 현재의 치천제 하의 제국 체제에서, 논쟁의 대상
이 되는 레콘들이 자연스럽게 제국 체제로 편입될 것이라 주장하고,
아실은 그것은 종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함으로써 레콘을 함몰시
키는 획책이라 주장한다.
통치의 효율성이라는 면만을 두고 볼 때에 레콘은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이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레콘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대단히 다
행스러운 일이다 - 그렇기에 정치에 너무 관심이 없어서, 황제가 죽
으면 그 이후의 상황을 추측해 보지도 않고 황제를 죽이겠다는 것을
숙원으로 삼는 레콘이 등장하는 경우 대단히 곤란하다 -. 사실상 생
물학적 구조로 보나 문화적으로나 일반적인 북부인, 즉 인간들과는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는 레콘들을 확실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다.
치천제의 방법은 대통합과 편입이었다. 레콘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일부 잃는 한이 있어도 - 소위 가짜 레콘이라 하는 -, 제국인으로 온
전히 편입됨으로써 그것으로 레콘의 위험성을 가능한 최소화하는 것
이 우선적인 과제라고 본 것이다. 숙원이라는 독특한 레콘만의 가치
를 보고 평가할 때에도 치천제의 이런 의도는 일단 설득력이 있다.
그것은, 숙원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으로 레콘 자신에게는 소중한 것이
겠지만 그것이 다른 선민 종족의 사정은 전혀 고려치 않고 나오는 것
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제 2차 대확장 전쟁 당시 레콘 즈라더의 숙원은 나가를 죽이는 것이
었다. 이것이 나가들의 북부 침공이라는 매우 특이한 상황에서 이루
어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넘기기에 문제가 있다. 물론 그럴 가능성
은 거의 없겠지만, 어떤 레콘을 인간들이 지속적으로 불쾌하게 만들
었다고 하자. 그래서 그 레콘이 '인간을 죽이는 것'을 숙원으로 삼았
다고 하자. 당장 인접 사회가 대단한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레콘
은 그 숫자에 관계없이, 적으로 돌리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존
재다. 이미 그 위험성과 가능성은 황제를 죽이겠다는 숙원을 삼은 레
콘 지멘의 등장으로 온전히 증명이 된 상태다.
아실의 방법은, 그녀가 스스로 밝힌 단편적인 설명 이외에는 실제로
적용된 바가 없기 때문에 그 효용성을 이렇다 저렇다 확실하게 이야
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분리주의의 골자, 즉 레콘만으로 이루어
진 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레콘의 분리된 정치 집단의 독립적 성립
후, 제국의로의 재편입이라는 것이 얼마만큼의 정합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록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치천제와 아실의
대화에서 치천제는, 분리되어 있는 종족은 틀림없이 다른 종족과 반
복하게 된다는 논리를 폈다. 그리고 그것은 나가들의 사례로 볼 때에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논리다.
물론 성공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기간이 길지 않고 치천제가 말
하는 사례로 발전하지 않을 수 있는 확실한 수단만 있다면 아실의 방
법이 최선일 수 있다. 레콘으로 하여금 종족성을 잃게 하는 것은, 그
것이 정치적인 목적이 있든 없든 간에 종족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적인 살해에 비견되는 잔인한 일이다. 제노사이드는 반드시 생물학적
혈통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순수하게 레
콘으로만 구성된 일만 군사 집단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
다.
처음부터 정치사적으로 접근하느냐, 혹은 문화사적으로 접근하느냐
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치천제의 방법은 실행되어
일부 진행을 보았고, 아실의 분리주의는 아직까지도 '주의'로 남았다
는 것이다. 치천제와 제국 정부 실종 뒤 무정부상태가 된 제국은 단
순히 정치적인 혼란으로 결론지을 것만은 아닌, 이런 종족성이 결부
된 문제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레콘이 일만 부대를 구성한 것이
'레콘의 한계를 뛰어넘은'것인지, 아니면 '레콘의 종족성이 죽어버
린'것인지 평가할 시점은 가까운 장래에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