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竹馬故友) 홍사덕(洪思德) 전 국회부의장의 부음(訃音)이 전해진 새벽, 남쪽 항구에는 비가 내렸다. 이승과 저승, 생(生)의 경계(境界)를 달리한 별리(別離)의 슬픔인가? 아니면 사람 가고 정만 머문 인거유정(人去留情)에 대한 정한(情恨)의 눈물이 비가 되어 내렸는가? 이렇게 훌훌 떠나갈 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살아남은 자의 우둔함이 부끄러울 뿐이다.
먼 길 떠난 친구야, “지금 잠이 옵니까?”며 외치던 정치인 홍사덕의 사자후(獅子吼)도 이제 잊어버리고 영생(永生)의 꽃가마 타고 고이고이 잘 가시게나. 정치인 홍사덕에 대한 공인(公人)으로서의 행적(行跡)은 널리 알려진 바이니 사인(私人) 홍사덕에 대한 사연들을 적으며 추모(追慕)의 념(念)을 남기고자 한다.
홍사덕은 소백산(小白山) 정기(精氣)를 받고 태어난 수재였다. 유년 시절 경북 영주(榮州)의 세탁소집 아들로 태어나 초·중등학교를 고향에서 마치고 서울 사대부고(師大附高)를 거쳐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했다. 합격했을 때 고향마을에는 축하의 격문 플래카드가 내걸렸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는 동문수학한 사이다.
홍사덕은 대학을 졸업한 뒤 중앙일보 기자가 되었다. 순회특파원 등 기자로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당시 중앙일보 홍 모 부사장과의 사소한 의견 차이가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데까지 확대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자직을 그만둔 홍사덕 앞에 다양한 형태의 직업이 전개됐다. 부산의 모 관광호텔 임원과 종로에서의 부동산중개업 등 생소한 생업현장에 뛰어들었으나 그에게는 적성이 맞지 않았다.
고민하던 홍사덕에게 정계 입문의 기회가 찾아 왔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시 야당이던 민한당(民韓黨)이 고향 영주에 후보공천을 한 것이다.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낸 국회의원 신상우가 민한당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을 거친 홍사덕을 발탁했다. 선거결과 홍사덕은 124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로부터 홍사덕은 YS, DJ, 이민우같은 정치지도자 밑에서 정치를 배우며 정치 인생을 살아왔다. 5선 국회의원에다 국회부의장, 정무장관(김영삼 정권)까지 지냈다.
홍사덕은 해병대 출신이다. 군 복무시에는 해병대 대표로 KBS의 국군을 위한 라디오 프로그램 ‘위문열차’ 등에 출연해서 해박한 상식과 재담으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홍사덕은 MBC 라디오 ‘홍사덕이 만난 사람’도 맡아 직접 마이크를 들고 인터뷰도 해가면서 제작·방송해 청취율 높은 인기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다. 출마를 위해 김한길에게 프로그램 제작을 넘긴 적도 있다.
홍사덕은 외형으론 온유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정치인이었지만 실제로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전형이었다. 원내대표까지 지낸 홍사덕을 일산(一山) 험지로 공천하여 한명숙과 대결하게 했어도 불평하지 않고 당당하게 경쟁했다. 종로에서도 정세균과 맞붙어 비록 낙선했지만 당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솔선수범을 보인 정치인이 홍사덕이다. 홍사덕은 경쟁자를 헐뜯거나 욕하지 않고 항상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정치인이었다. 대구로 내려가 출마할 때는 빨간 명찰과 카키색 해병대 군복을 입고 출마 선언을 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남북화해협력위원회의 중책을 맡기도 했다. 정계를 은퇴한 뒤에는 ‘새롭고 아름다운 조국을 위하여(새조아)’란 단체를 만들어 NGO 활동을 했다.
말년에는 심장질환으로 급하게 삼성병원을 찾아갔더니 담당 의사가 “이런 상태로 어떻게 병원까지 오셨느냐”며 질문을 하더란다. 홍사덕은 권좌에 오래 있었으나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았다. 선후배 모두에게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써가며 고향 친구들을 즐겁게 만나 주던 홍사덕의 너그럽고 넉넉한 도량을 이제는 대할 길 없으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홍사덕은 고향 땅 경북 영주군 순흥면 소재 선산의 아버지 산소 아래로 묻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사덕이 걸어온 77년의 인생역정, 어렵고 암울한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같이 갈 친구가 있어 위안을 얻기도 했다. 어느 하나 순탄한 것이 없었지만 그의 도전과 집념은 결국 이루어내고야 마는 질곡과 성취의 환상곡이었다.
사무실 들러 차 한잔 나눌 향우 홍사덕도 이제 먼 길 떠났으니 홀로 남은 이 심정 주체하기 어렵구나. 그래도 잘 가시게,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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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 홍사덕 의원은 이명박 정권 시절 대구 서구의 국회의원을 지낸 분이다.
당시 평리 1동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던 나와의 첫 만남에서 나는 홍의원에게 "대구 서구 전체를 살릴수 있는
방법은 서구청 (중리,상리 포함) 와룡산 밑에서 서문시장 지나 중앙통 지나 동대구방향 반야월 쪽 지하철을
추진함이 제일 좋은 방법인데 추진을 부탁한다"했드니 지금 생각하니 참 솔직한 대답이 나왔다.
웬만한 정치인이라면 표를 위헤 "고려해 보겠다"는 둥 공수표를 남발 할텐데,..
"내 능력으로는 할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지하철 사업이 국회의원 1명의 힘으로 되는것이 아니지만 솔직한 표현이 참 마음에 와 닿는다.
아직 떠날 나이도 아닌데 모든 짐 내려놓고 펀안한 쉼 되시기를 기원한다.
송암과 그런 인연이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