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발광은 밝다
푸첸성에는 단 스무 마리만으로도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하게 발광하는 반딧불이 있다고 했고*
언젠가 중국에서 만난 푸첸성 출신 시인 루딘에게
이제는 아예 내 머릿속에 들어와 사는 스무 마리 반딧불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그는 금시초문이라며 고개를 내저어 나를 실망시켰지만
어쩌면 내가 읽은 문장은 이미 너무 낡은 것이어서
사실 푸첸성의 반딧불은 그 스무 마리가 마지막이었고
한 마리 두 마리 죽어갈수록 광도는 조금씩
낮아져 나중에는 책은 커녕 문장 하나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두워져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실은 모든 불빛은 과거에서 오는 것
지금 저 달빛은 일점삼 초 전으로부터
아까 그 햇빛은 팔 분 이십 초 전으로부터 온 것이고
반딧불은 더 까마득한 과거에서 온다
반딧불에 의지해 책을 읽었다던
형설지공(螢雪之功) 같은 말도 안 되는 옛이야기들은
이제는 다 꺼져버린 반딧불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아직
도 오고 있다
오늘도 누군가가 그 불빛 아래 한 권의 책을 펼쳐 들고
깜박, 깜박
머나먼 과거를 수신하고 있다
*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 '발광' 항목에 수록된 예문에서.
[일요일의 예술가],난다, 2025.
첫댓글 이십여 년 전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창문 방충망에 붙어 깜빡이던 반딧불이는
아무도 살지 않던 농장 단지 맨 꼭대기
산 밑 논을 매립하고 지은 우리 집 위로
하나둘 집이 생기고 공장도 생기면서 사라져갔고
언젠가 가을날
헛헛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밤 산책을 나가
눌노천 뚝방을 걷다 보면
차는 못 다니고 사람도 잘 안 다니는 건너편 뚝방에
흐드러지게 열린 산딸기와 함께
여기저기서 깜빡이며
서늘한 푸른 합창으로 캄캄한 밤을 비추던 반딧불이들이 무척이나 반가웠던 것인데
넉넉한 살림의 파주시청이 산책로를 낸다고 공사를 하고
태양광 LED 등을 여기저기 세우면서
이제는 등이 없는 좁은 구간에서만
운 좋은 날에 몇 마리씩을 만나곤 하던 것이 작년인데
올해는 과연
그 고맙고 반가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는지
벌써부터 근심과 걱정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좋은 시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