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 직전 주간, 그러니까 아마도 9월 중순 어느날로 기억이 된다.
01:00 즈음해서 분당에서 백운호숫가 모 라이브카페에 가는 콜을 수행, 종료 후
피댕이에 열거된 오더를 보니 오더창 최상위에 반짝반짝 눈에 들어오는 오더...
"오전동 오매기-->둔촌동 "
냉큼 잡아 입력된 전번으로 통화를 하니 오매기 누룽지 백숙집이란다.
백운호수길에 있는데 어찌 찾아가야 하고 물으니, 의왕쪽 고개를 넘어오다 보면 보일거란다.
내 위치를 말했던 바, 10분 정도면 오시겠네요... 라며 못찾으면 다시 전화하라는 상큼한 친절이
돋보이는 업소의 여주인인지 여종업원이다. 그 아리따운 목소리는 지금도 귀에 선~~하다.
백숙집에 도착하면 이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을 꼭 봐야지...하며 비탈진 고갯길을 앞에 두고서
하염없이 걸었다. 한참을 걷다보니 언덕배기라 그런지 이내 숨이 차 오른다. 졸 힘들다...라는
생각이 미칠 즈음에 힘없이 걷는 나를 외면한 채 달리는 차들이 얄미워 보이기까지 한다.
(쫌 태워 달라고 해볼까...? )
아휴~ 난 이런 말이 안 나온다. 말도 못하는데 하물며 너 잘났다라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고
까딱거리는 액션은 더 더욱 못하겠는 "나"다. 내가 투잡으로 대리를 하며 즐기는 것 중의 하나가
그닥 혼자 앉았거나, 걷거나, 또는 서 있거나, 때론 뜀발질을 하면서도 골똘이 삶의 이 편, 저 편을
넘나드는 생각에 빠져 드는, 또 그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음이 매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냥 걷기로 마음을 굳히니 조금은 맘 편히 걷게 된다.
언덕 중간 쯤 올라갔을까...?
송알송알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오르는데 도로 우측가 숲 사이에 무언가 하얀 물체가 보인다.
섬뜩함에 온 몸에 전율이 전해져 온다. 제발...절대 아니길 바라면서 다시 한번 그 물체에 시선을
가져가 보았다. 아이고... 그 순간부터 앞이 깜깜해진다. 다시금 확인되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분명 나무에 목을 매달은 사람이다. 그나마 힘들게 걷던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어찌해야 하나...
정말이지 순간 아무생각이 나질 않았다가는 매우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상념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일단 벗어나자... 한데 하필이면 간간히 오가던 차 마저 보이질 않는다.
도로 가운데로 걸음을 옮겨 마구 뛰었다.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아내, 소중한 딸 아이, 친구들이며... 하지만 그들이 지금 아무도 내 곁에 없다.
대리초보가 (급!! 5분) 콜을 잡아도 이렇게 달리진 못할 거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뻥이 확실하다..
얼마를 뛰었을까... 뒤에서 환한 불빛을 동반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뛰던 방향을 돌려 차를 향해 달렸다.
아니~ 이게 아니다... 다시 가면 그 영혼을 또 만나게 되는 거 아니던가... 다시 돌아서 뛰며 차가 가까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한다. 드디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는 때, 나보고 뒤지기 싫으면 비키라는 건지 경음기가 삑사리가
났는지 찢어지듯 삑삑~~ 거린다.
스토옵~~!! 스토~~옵!!!!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있는대로 다 벌려 차를 가로 막았다.
"저...쩌...쩌..." (ㅆㅂ~ 갑자기 더듬이가 되었는지 말이 안 나온다)
그래~! 말은 나중에 하고 일단 타자.. 차 옆으로 도는 순간 걍 내 뺀다. :''ㅠ.ㅠ'':
다시 뛰었다... 이번엔 맞은 편에서 차가 온다. 이번엔 기필코 잡아 타리라 다짐을 한다.
스토옵~~!! 스토~~옵!!!!
1톤 화물차다.
숨을 고르며 말을 하려는 순간 나이 지긋하신 기사 할배가 대뜸 내게 이런다.
"아니~ 이거 미친 늠 아녀? 뒤질라구...." 나는 절규에 가까운 말투로 말을 했다.
"아저쒸~~ 나 죽까씨요!! 날 좀 데리고 가 주삼~~~!$%@#$%%!"
얘긴 쫌 있다 할테니 일단 태워달란 애원 끝에 조수석에 올라탔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헐떡거리는 내게 할배가 재차 말을 건넨다.
"어디 아퍼?"
"아뇨.."
"죽겠다며?"
"예"
"왜 죽어?"
"......."
"어디 가는겨?"
"그냥 큰길까지만 태워다 주세요.."
"담뱃값은 줄꺼지?" 닝기리... --.-;;
"한 보루 사 드릴게요"
"그라믄 내가 미안항께, 한갑만 사줘..."
"예"
인덕원까지 타고 나왔다. 할배에게 만원을 건넸더니 그냥 가란다.
이젠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할 시간이다...
폰이 진동을 울린다. 업소다...
"아저씨! 왜 안와요?"
"죄송합니다. 가다가 일이 생겼어요..."
"못 온다구요?"
"뛰다가 다릴 다쳐서 경황이 없어서 전활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전화라도 해 주셔야죠.. 손님 기다리시게 만들면 안되죠.."
"다른 기사를 빨리 다시 보내 드릴게요.."
"아녜요~ 그냥 우리 기사 아저씨가 간다니까 안오셔도 됩니다"
"네에.. 그러세요. 나중에 찾아뵙고 정황을 말씀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담배 한개비를 뻑~뻑 피우고 난 뒤 핸폰을 꺼내 눌렀다. 하나, 하나, 두울...
"경찰입니다"
"시체를 봤는데요..."
"시체를 봤다구요? 어디서요?"
"백운호수에서 오매기 넘어가는 고개 중간 숲에서요"
"지금 어디 계세요?"
"인덕원에 있습니다"
"경찰 보내 드릴게요"
"예..."
이내 순찰차가 왔고, 다시 보고 싶지 않았지만 목매단 시체를 한번 더 봐야만 했다.
나무에 줄을 걸어 목을 맨, 발은 땅에서 약 10여센티 밖에 안 떨어져 있는 그런...
눈은 반 쯤 뜨고 혀를 조금 내밀은 채 츄리닝에 흰 운동화를 신은 젊은 20대 남자다.
발견시간과 내 인적사항을 알려주곤 경찰에게 집이 있는 민속촌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러겠단다...
집에와서 별짓을 다 해도 잠이 오질 않는다.
왜 죽었을까...? 그 젊은친구의 모습이 눈을 뜨거나 감아도 자꾸만 떠오른다...
냉장고에 있는 캔맥주를 여섯개를 마셨다. 억지로 잠을 청하기엔 턱없이 모자라는 양이다. 더 마시려면
아파트 입구 편의점을 가야한다. 주방 양념통 주위에 있는 정종이며 사용하다 남은 소주를 다 비웠다.
조금은 안정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엔 의문으로 가득차 있다...
왜 죽어야만 했을까...
베란다로 나와 까만하늘을 한참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젊은 친구의 명복과 그 젊은이의 죽음에 대해서 더 이상 궁금함을 갖지 않게 해 달라고...
이후, 아이콘 수수료 인상과 맞물려 아이콘을 빼겠다는 바람이 불던 시기라 로지로 이동하는 분들이
많아지던 때고, 하루 서너콜을 타는 나로서 전업으로 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미안함을 덜고자
대리일을 당분간 접기로 했다. 물론 그때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위한 수단이도 했다.
지난 겨울 내내 일을 안하다 4월부터 시작한 지금, 그래도 간간히 한적한 길을 걸을 때면
여지없이 그날의 섬뜩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럴 때면 이런 기대와 바램을 수 없이 되뇌이곤 한다.
"두번 다시 밤길에 다른 대리기사가 겪지 않도록 해달라고..."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몇 번 그때의 기억으로 하여 소름이 돋는다. 흐흑~!!
첫댓글 ㅠㅠ ...소름 끼쳐요..
글을 참 재밌게 쓰시네요 ~~ 저같으면 단 한문장으로 줄여서 쓸텐데 시체를 봐서 도망왔다 ㅎㅎ 어떻게 이렇게 길게 쓸수 있는지 ㅎㅎ 담에 또 좋은글 부탁 드릴게요 ~~
흐음... 재미라뇨... 한번 겪어 보실랍니까? ㅠ.ㅠ
아겅 무지유 재미는 있어유 근디유 넘 정황이 리얼허구먼유 긍게 야밤에 대리타러가다가 껌껌한디서 것두 산에서 정상 다다를즘에 먼 힌것이 눈앞을마려 가려버렷다고 글구이 샤람죽은 것두이 목을 흐미 미차부러이 겁나서 어티기 갓슈 나가트믄 그자리서 기절을 확 해부럿을것이여이 워~메 심장은 강심장이구먼유 암튼 고생좀 쪼가혓소이 좋은일찾고 추억으로 잊어버리소마.알앗능겨 아거 놀래삐라~~^^*
슬픈 일을 겪은 후일담이 또한 슬프군요....저 또한 불과 20일 전에 젊은 조카를 비명에 보내고 (뺑소니 교통사고) 아직도 착하디 착한 조카 생각이 납니다.....헌데, 감성을 표현하는 솜씨가 대단합니다....
아.. 그런 안타까운 일이 있으셨군요. 조카분...평화로 가득찬 좋은 곳에서 머무시기를...
참 외로운 직업이죠 특히 인적 없은 밤길을 걸을때 마음이 찹찹 하죠
음 정말 마음이 아픈 일이네요..고생많으셨습니다...
대리회사에 캔슬처리는 했나요? 경황이 없었을텐데요 ㅎㅎ
집에가서야 생각이 나더군요. 만사 귀찮아 그냥 완료처리를 했습니다.
못 볼걸 보셧네....
얼마나 놀라셨을까???놀라셨을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합니다`~한적하고 외딴 밤길을 그것도 추운 겨울날 걷다보면 정말 자신이 왜 이리 초라해 지던지~~그런데 그런곳에서 평생 잊혀지지 않는 일까지 보셨으니`~~~정말 마음에 와닿게 글 잘 쓰신다는것 다시 한번 실감 합니다`~앞으로는 좋은일만 가득 하실것 입니다`~~
저도 오지?에서 오지?로 가는걸 즐기는?편인데 놀라는 경우 자주있죠 나뭇가지에 비니루걸쳐진거 휘날리는거보고놀래...멍멍이들 무섭게 짖으며 쫓아오질않나.. 시체를 직접보셨다니 제가 놀란것들은 일도 아니네요 고생하셨네요
전 개인적으로 시체보다는 멍멍이가 더 무섭네요..시체는 저를 물지는 못하잖아여~~~ 제가 군생활을 병원 중환자실에서...그래서 염이 주특기거덩요>ㅎ
basic님 웃겼습니다.염이 주특기 시라니..ㅎㅎ.일반사람은 엄두도 못낼일인데..
사실 시체라구 해봐여 무서워 할 필요는 없죠...ㅎㅎㅎ 으메 무서분거...^^
흐미...앞으로 백운호수 오더는 쳐다도 보지말자...
백운호수는 거의 우리가 접수하는데..그런일이 있엇군요..정말 무서웠겠네요...부디 좋은 세상으로 가길.._()_
고인의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 청년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읽고 있는 저로서도 소름이 돋네요.. 후...
고인의 삼가? 명복? 뭔말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