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법, 집어치우라!>
한 남자가 아내와 아이들 곁을 떠났다. 다른 여자와 살기 위해.
남자는 아이들을 한 번도 보러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보러가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엄마는 남자의 빚을 갚아주고 친권을 가져왔다. 아이들의 성을 바꾸었다.
남자와 아이들은 생물학적관계 외에 법적관계는 단절되었다.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사람이 법을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엉성한 법이 친권을 남자에게 부활시키자마자 그가 한 일은
자기가 버리고 떠난 여자의 통장에 자물쇠를 채운 것이었다.
남자는 전 아내의 통장을 발로 밟고 서서 아이들과 양육자들을 울리고 있다.
누가 그에게 전 아내의 통장에 자물쇠를 채울 권리를 주었는가?
법이 그에게 자물쇠를 채우도록 허했다면,
그리하여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본 가족들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면,
그 법은 잘못된 법이다. 미련한 법이다. 그 법, 집어치우라.
아이들은 ‘권리’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다.
‘권리’를 행사하는 재미에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권리’를 행사하는 맛에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워온 사람들의 가슴에 비수를 찌르는가.
못난 법이, 게으른 법이, 불친절한 법이 그런 권력을 주어도 사양해야 옳거늘,
오로지 돌봄이 필요한 자들에게 따스한 에너지를 보태주어야 옳거늘,
법보다 더 중한 책임도 사랑도 팽개치고 주먹 쥐고 떠난 자가
이제 주먹 쥐고 돌아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그 법을 앞세워 통장을 움켜쥐는 것인가.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을 가지고 추워 떠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허심탄회하게 판단해보자. 그것은 그들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관리’를 하겠다고? ‘투명’하게? 차갑고 엉성한 법을 앞세워서?
죽이 되건 밥이 되건 그들에게 맡겨라.
아이들이 곤란에 빠지면 그때 두 팔 걷고 나서라.
아이들이 커서 두 발로 찾아오면, 고개 숙여 안아주라.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 아이들을 가장 큰 사랑으로 보실필 사람.
아이들의 미래를 자기 목숨보다 소중히 지켜줄 사람.
많은 아버지들이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해 등이 휘게 일을 하는데
그동안 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볼 할머니와 삼촌이 있으니 감사하게 생각하라.
그들을 돕고 또 도울 일이다.
필요한 게 뭐냐고, 도울 일이 뭐냐고 묻고 또 물을 일이다.
하늘처럼, 태양처럼, 바라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그저 줄 일이다.
어디, ‘가족’에게 와서 엉성한 법을 들이대며 족쇄부터 채우려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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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거 참 세상이 아무리 비정하다지만 아비된 사람으로서 어떻게 5년동안 자녀를 외면하고 살았을까요? 정말 씁쓸한 소식이고 여러 모로 화가 나는 소식이네요...
참 그 아버지 끝까지 눈쌀 찌뿌리게 합니다. 그래도 마지막 지아비 사랑 놓지 못하고 우울증에 목숨 놓은 진실씨 마지막 길 지켜보길래 그래도 많이 반성했구나 생각했는데 참 치사합니다. 정말 외할머니 피멍들게 합니다. 딸의 상처 지켜 본 어머니 그냥 두는 게 먼저 간 전처를 위하고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나 봅니다. 요즘 마흔도 불혹이 아니라고 하니......참 화나고 화가 납니다.
아비란자가 고인을 두세번 죽이고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