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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 고목들이 사는 컴컴한 숲 속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한 결 같이 바깥세상 쪽을 향하는 것을 보면 현재는 불행할지라도 꿈을 잃지 않는 사람에 비유된다는 생각이다.
바늘을 가는 기계 발강색의 납[knob]를 돌리면 직선의 바늘이 숫돌에 갈려서 뾰족하게 된다.
회전판의 속도조절기.
1921년산 음반. 오른쪽에는 음악. 춤추기, 듣기, 기분전환.
그당시 소리나는 기계가 있어서 극장에 가지않고도 가요를 들 을수가 있었다는말이 있다.
되찾은 축음기-3
우리 집에서는 전후(戰後)가 되어, 6각형 너트, 6각형볼트(망치로 두드려 만들어 해드가 두루뭉술함), 뤼베트(rivet)는 자급자족 하니 영세성을 벗어 날수가 없는 것이 그 당시의 실정이었다.
버킷도 만들어 팔았는데 함석(3'x 6') 한 장을 자르면 4개 반을 만들 수 있다.
결국 나는 고등교육이 마지막인데 아버님의 무모(無謀; 꾀와 수단이 없음)한 성품, 남들이 원하면 뿌리치지 못하는 약한 마음씨, 흔한 동정심 때문에 가계는 풍비박산이 되고 온 식구들은 가난에 쪼들리는 고생길로 들어서게 됐다.
예로 자전거 부속 도매상 종업원 한S규라는 분과 우리 집 종업원이었던 장Y찬이라고 이름한 두 사람이 자기들의 새로운 점포를 개업할 때 김주사님! 김주사님! 하면서 권모술수(權謀術數;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변통성 있게 둘러맞추는 모략이나 수단)로 내숭(겉으로는 순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함)을 떠니 아버님은 솔깃해지셨다.
보증을 서고 남의 사체를 빌린 후에 그들에게 차용증도 받지 않고 돈을 만들어 주었으나 그들은 돈을 갚지 않아서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들어보지 못하고 아버님께서 채무자가 되셨는데 우리 가족이 못 먹는 한이 있어도 이자로 부자들의 살을 찌워야 하니 그 후유증은 수 십 년 동안 우리의 전 가족에게 미치게 됐다.
재산을 유지하는 요소로서 힘든 노력과 쉬운 관리가 병행이 되어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전자는 있지만 후자가 없으니 살림이 거덜 날 수밖에 없다.
나는 가도 가도 벼랑뿐인 가난에 넌덜머리가 일었는데 나는 아버님의 전철(前轍; 앞 수레의 바퀴가 남긴 자국)을 밟지 않으려고 지금도 노력을 기울인다.
스프링은 누르면 누를수록 더욱 강한 반동을 생성하는 법, 약한 아버지 밑에서도 강한 아들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다행한 일이며 만년(晩年, 말년으로 발음)에는 아들 덕에 돈 걱정 없이 사시다 타계하셨는데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다하여라........’
라는 선인의 시조에도 있고 주자 십회훈(十回訓)에
“불효 부모 사후회(不孝 父母 死後回)”
가 있다.
예를 들어 그 당시 우리 집에서 있었던 예로 장리곡(長俚穀)1가마니를 빌려먹고 연리(年利)40%로 복리로 계산하여 5년 후 타작마당에서 5가마니를 갚은적이 있는데 엄청난 변리(邊利)이고 보니 부익부 빈익빈을 만드는 셈이다.
이런 역경들은 나에게는 비켜갈 수 없는 크고 가혹한 시련 이었지만 벼랑이 아니었기에 해쳐 나갈 수가 있었고 곁들여 인내심을 창출했으며, 다른 한편으론 산 교훈이 되어 나의 삶의 진로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이 학문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나는 가난의 질곡(桎梏; 차꼬와 수갑)으로부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필요한 터전, 연장, 재료를 준비하며 밝게 그리고 맑게 자란 셈인데 볼품은 없는 굴속에서도 값비싼 진주가 자라고, 하잘것없는 넝쿨에서도 달디 단 수박이 자라 아름다운 변화를 주는데 이역(移易)을 한다면 “가난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실제 생활체험으로 보여주는 예방접종 같은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아버님께 시계를 사달라고 말씀을 올렸더니 벽시계를 짊어지고 다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농담이었겠지만 상심[傷心]이 있으셨으리라 예상이 되느데 아버님의 심중[心中]을 지금의 나는 이해를 한다.
지금의 아이들이야 세상이 변하여 일감이 있어서 용돈을 벌수가 있으니 늦게 태어날수록 살기가 좋은 것이다.
나 자신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보겠노라고 어릴 때부터 줄 곳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금 보면 200만년동안 있었던 조상의 대(代)를 합치면 한 줄로 세워서 60마일(97㎞)이나 된다는데 나 또한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닌 아버님과 아들사이를 연결해주는 갑돌이 같은 하나의 초라한 범속인일 뿐이다.
범인(凡人)이 아닌 사람을 비범(非凡)이라 하는데 어쩌면 범부로 남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으며 가장 긴 이파리의 풀이 가장 먼저 낫에 베이듯이 비명에 간 한동네의 아버님의 단짝 친구는 젊은 나이에 출세가도를 달려 해방직후 총경이 되어 평양에서 도경국장으로 있다가 저격을 당하는데 30대이니 요절(夭折)인 셈이다.
학교에서는 중학을 하면 중등인물이 되고 고등학교를 나오면 고등인물이 되며 대학을 나오면 큰 인물이 된다고 배웠다.
졸업식에서 사각모를 쓰는 유래는 흙손판을 손에 들고 열심히 일하기 위해 사회로 떠나는 것이라고 하며 같은 4각모일지언정 황제가 써는 면류관의 방향과는 달리 뾰족한 모서리가 앞뒤로 향하는 것을 눈여겨보면 흙손판을 손바닥을 위로하여 손잡이를 45도 각도로 거머쥐면 벽으로부터는 90도 가 되니 쓰기에 적격이다.
하기야 사정만 허락한다면야 높은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교육이란 부모의 영향력 밑에 존재하니 내 인생의 기본은 다진 지반(地盤)이 되고 다른 부잣집 교우들은 석반(石盤)이 되는데 6명의 동생을 거느리는 내가 사반(砂盤)을 면한 것은 다행한 일이며 선택권 없이 내가 일을 하여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근근득생(僅僅得生)이 되어 큰대(大)자가 들어간 학교는 아예 사주팔자[四柱八字(생년, 생월, 생일, 생시, ; 8개의 글자)]에도 없어 먼 피안(彼岸)의 경지에 있고 차안(此岸)에서는 기회가 없으니 세상에는 행과 불행이 공존 하고 있는 셈인데 미끄럽긴 하여도 낭떠러지는 아니며 시궁창에서도 해맑은 연꽃이 피어나는 이치다.
내가 큰 배움터(大學)에 가 본 것은 서울 성북구 정능동에 살 때 예비군 훈련 때 사용하던 국민대학교 운동장이 고작이었다.
삶(?)의 배움터라는 사회생활에서 본다면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사실로서 깨달으며 살았는데 내가 겪은 이런 시련들이 모두 미래가 쏟아 내고야 말 엄청난 것들에 대한 정신무장의 한 부분이었고 귀중한 입지(立志)모럴(moral)이었는데 그동안 인생의 사다리를 남들보다 4계단을 먼저 오르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폭풍이 지난 후에는 반드시 고요가 찾아들게 마련(After a storm comes a calm)이고 낙엽이 떨어져도 봄이 되면 잎이 다시 솟는 조건을 전제(前提)로 하듯, 전반전은 가난하여 조금 험난(rough)하더니 더 중요한 후반전은그 후의 내 생활에 큰 변화를 주어 시간이야 오래 걸렸을지언정 지속적인 성장을 하여 지금의 나는 그래도 조금은 자수성가(自手成家)에 평탄(smooth)하다고 말 할 수 있고 아버님이 잃으셨던 재산을 다 복원 했으며 내가 예정했던 목표량보다도 조금은 더 번 셈이다.
들은예로 이야기로 아버지가 기타를 갖고 있으면 그의 아들은 알아주는 작곡가가 되며 아버지가 약방을 하면 아들은 의사가 된다는 이야기 같은 것이다.
나를 거쳐 간 기타는 3개이며 키보드도 있지만 영 신통치가 않았는데 학창시절에 못 배운 피애노(piano; piæno)키보드를 비록 늦긴 했지만 지금은 군청 주관으로 가르치는 피아노 클래스에서 정식으로 배우고 있는 중인데 ‘피아노’라는 말은(하프는 소리를 약하게 할 수 없다)라는 말은 “음을 약하게 하다”라는 뜻에서 나왔단다.
아이 셋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1인1기의 악기프로젝트에 의하여 첫째는 초등학교이니까 소형 바이올린, 둘째는 플루트, 셋째는 플루트에 앰프기타를 갖추어 나의 무능함을 간접적으로 보상해 주었다.
나의 경우는 아버님께서 농기구제작과 자전거를 고치시니 그 기본이 되는 기술 사회주특기(社會主特技)를 사용하여 3년이란 군대 생활동안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자동차 수리 기술을 배우니 내가 아버님보다도 기술이 더 좋은데 그 기술을 밑천 삼아 이곳 미국에서 생활비를 벌게 된다.
아들은 주말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배운 자동차 수리기술을 응용하여 컴퓨터를 핸들링하게 되는데 히브리인은
“자식들에게 잡은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먹지만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영원히 먹고 살수 있고, 남으면 남에게 주기도 하고, 남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는데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돈을 바르게 버는 길, 관리하는 법, 쓰는 길을 일러준다는 뜻이며 이 방법이 평생 먹고 사는데 만은 걱정을 접는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A smooth sea never made a skilled mariner : 땅을 긁는 닭은 무엇인가를 얻지만 웅크린 닭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는 영국 속담이 있는데 안이(安易)가 태만을 불러 온다는 것이다.
나도 여기서 다른 집 자식들을 보고 얻은 지혜로 자식농사에 실패하지 않아야 되겠다는 지론은 서 있는데 아들이라곤 외동(윷판에서의 말 한필)이라 염려가 되니 응석을 불허하고, 세상 보는 눈을 틔워 주고, 자기 방어능력을 가지게 하고, 또 강하게 키우기로 작정을 하게 된다.
달을 가리키기 위해서 최소한 한번정도의 손가락을 필요로 하듯이 14살 때부터 주말 2일간은 한차로 출퇴근을 하지만 방학이면 매일 정비소에 데려다 일을 시켰는데 그렇다고 무급(無給)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을 해야 돈(일당 지금의 3백불에 해당)이 나온다는 것을 체험으로 느끼게 하기 위함이고 자식들은 가정무대에서 주역이 되기를 바라니 사랑하다 보면 자칫 보호관능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동아들은 대게가 맛이 가는데[spoil], 다른 사람들의 예를 많이 보아온 나는 내 유니폼 작업복을 입혔는데 처음에는 헐렁하던 것이 몇 년 후에는 몸에 맞다가 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상의 단추가 꽉 끼더니 더 나중에는 더 큰 옷이 필요하게 되었다.
지금은 차동차정비소[대지1100평, 65%사용]를 하고 있는데 정직성과 기술을 인정받아서 장사를 잘하고 있다.
아난데일[아난골]정비소부근 2마일 직경 안에는 모두 17개의 정비소가 있어서 경쟁이 많은데 임차료를 못내는 망한 정비소를 헐값으로 구입을 하게된다.
두 살때 이민을 온 아들은 영어권이고 고지식하며 기술, 품질, 가격면에서 흠잡을곳이 없다.
인터넷 옐프[yelp]에 별이 5개가 되어서 미국인들 단골고객[regular customer]이 많은데 정비사 2명을 데리고 직접 차를고치기 때문에 전화를 받을시간이 없을 정도이며, 정비소가 고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고객이 정비사를 기다려야한다.
에난데일 Top 10 오일첸지 엘프라고 입력을 하면 가장먼저 뜨는데 5스타로 나온것은 오직 이곳 한곳뿐이다.
아들의 고지식함과 정직성이 인정을 받았는지 44명이 마음속에서 울어나는 느낀의 칭찬하는 글을 올렷는데
자금을 투자하고도 너무바쁘니 그만두고 조용히 삶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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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강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