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1852젼 네덜란드의 준데르트에서 태어나 1890년 3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반고흐는 예술에 모든 것을 바친 비운의 화가이다.
10년이라는 짧은 활동기간 동안 가난으로 점철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동시대의 어떤 예술가보다도 처절한 삶을 살았으며 예술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고 말로 할 수 없는 영혼의 모든 것을 담아내려 했다.
후기 인상파작가로 구분되는 반 고흐의 화풍은 1886년 파리에서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을 발견하면서부터 어두운 색채는 밝은 색상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테마는 빛으로 가득한 야외 풍경으로 바뀌였다.
예술가로서 너무나 짧았던 불꽃 같은 삶을 통해 900여점의 작품을 남겼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의 작품은 거의 인정 받지 못했으며 생존 시에 단 한 점의 작품만을 팔았다.
예술은 그에게 유일한 피난처였고 오직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창조력 넘치는 삶으로 바꾸어 놓으려 했다. 태양을 찾아 남불로 내려간 그는 정신적 고통과 영혼의 구도적인 길을 찾아 불꽃 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고, 미술사상 유례없는 걸작들을 남겼다.
자화상 1887. 8. 9
안트베르펜에 머무는 동안 반 고흐는 돈을 벌 생각에 초상화를 많이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안트베르펜에 많은 초상 사진작가가 있지만 초상화가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다음과 같이 썼다.
"이곳엔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많은 사진작가들이 있다. 하지만 그 초상들은 늘 같은 틀에 박힌눈, 코, 입에 창백하고 차가운느낌이다. 항상 죽어있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림으로 표현된 초상화에는 기계로는 도달할 수 없는 화가의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오는 그 자체의 생명력이 있다. 사진으로 찍은 초상을 보면 볼수록 일반 사람들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이렇듯 경제적인 이유가 초상화라는 주제 선택에 영향을 미쳣지만 반 고흐는 주로 초상화를 그리기 원했기 때문에 인물 연구작을 자주 그렸다. 1885년 12월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사람이가진'고유한 특색'을 묘사하는 연습을 하려고 했으며 색체와 붓놀림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자 했다.
반 고흐는 돈이 없었고 모델 또한 부족했기 때문에 자신이 초상화의 주요 모델이 되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테두리에 가벼운 양복쪼끼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이 작품은 소묘성이 짙은 작품으로 매우 날카롭게 관찰된 초상화인 것 같다.
우체부 조셉 룰랭 1889. 2. 3
반 고흐가 조셉룰랭을 그린 여섯점의 초상 가운데 하나이다.
반 고흐는 롤랭을 '우체부'라고 불렀으나 엄밀히 말해 롤랭은 우체부가 이니였다. 롤랭은 아를르역의 우편물 저장소에서 일했는데, 우편물을 기차로 발송하거나 수령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
1888년 7월 말 롤랭은 처음으로 반 고흐의 모델이 되었으며 여동생 빌레민에게 쓴 편지에서 반 고흐는 그를 열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같은 머리에 코는 거의 없고 높은 이마와 대머리에 작은 회색 눈, 진한 색 볼, 커다란 수염과 희끗희끗한 머리에 큰 귀를 가졌다. 열성적인 공화당에 사회주의자고, 논리적 사고가 뛰어난 해박한 사람이다." 다시 말해 반 호그의 마음에 든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친구가 되었으며 반 고흐가 룰랭은 '알코올 중독자 같은 사람'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아 둘이 카페에서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낸것 같다.
아를르에 정착한 초기부터 반 고흐는 인생의 무상함과 인간이라는 개체를 초월한 초상화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한 초상화의 모델을 단 두 번 구했을 뿐이었는데, 군인과 어린 소녀였다. 반 고흐는 스스로 현대미술의 미래라고 여긴 초상화라는 장르에 진정으로 몰두하기 위한 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는데, 롤랭이 그의 모델이 되면서 1888년 7월 말, 그는 드디어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반 고흐는 그가 의자에 앉은 모습을 담은 커다란 회화를 그렸으며 그의 얼굴을 그렸고 전 룰랭 일가가 12월에 반 고흐의 모델이 되어주었을 때 그의 얼굴을 또 한번 그렸다.
이 초상화는 반 고흐가 1889년 2월에서 3월 사이에 커다란 초상화를 보고 그린 세 개의 얼굴 그림들 중 하나이다. 당시 룰랭은 이미 마르세이유로 이사하고 난 후였으므로 더 이상 모델이 되어줄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룰랭의 아내 오귀스틴을 위해 그린 세 점의 그림 중 두 번째일 것으로 추정된다. 반 고흐는 오귀스틴을 위해 양귀비, 수레국화, 데이지등 여름 꽃을 모티브로 배경을 채웠는데, 그녀를 모델로 한 초상화 <아이보는 여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에서도 달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파란 화병 속의 꽃
꽃핀 복숭아나무
사상 최대 규모의 반 고흐전
반 고흐전은 전세계에 반 고흐 작품의 절반 이상을 소장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과 크뢸러 뮐러 미술관으로부터 엄선한 진룸유화작품 45점과 드로잉 및 판화 작품22점. 총 67점을 한자리에 모은 국내 초유의 회고전일 뿐만 아니라 1990년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서 열린 작가 사망 100주기 전시 이후 사상 최대규모로 국내 미술전시의 새로운 장을 여는 기념비적인 전시이므로 기회가 닿으면 꼭 관람해 보세요 2007.11.24~2008. 3.16 서울 시립미술관.
네덜란드 시기(1881~1885)가난한 농민사회의 생활상을 통해 인류애를 실현코자 화가의 길을 택한 초기
파리 시기(1886~1888)빛을 발견하면서 자신의 화풍의 기틀을 마련한 시기
아를르 시기(1889~1890)이상향을 꿈꾸며 색채의 마법을 구현한 시기
셍레미 시기(1889~18890)불타는 예술혼을 자연을 통해 분출한 시기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1890)생의 마지막을 장식한 70일간의 시기를 나뉘어 구성되있다.
그외 풍경들
2008년 1월25일 반 고흐전을 다녀와서...
첫댓글 보리님 잘 감상하였습니다. 자주 와 주세요......합장()
감사합니다.
나도 가보려구 생각중인데......
ㅎㅎㅎ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