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채로 떨어진 눈물은
때가 껴서
목마른 이끼도 마시지 않습니다
때가 낀 과거는
쌀뜨물로 씻어도 씻기지 않아서 버려집니다
표지에서 멈춰지는 책 때문에
공릉천에 와서 개망초를 펼치는 것으로
한을 풉니다
먹구름과 가까워지지 않으려
기러기의 비행을 모른 척하고
곤충을 잡아서
거미줄에 못 대신 박습니다
이래도
책이 펼쳐지지 않습니다
떼 지어 몰려다니는 낱장을
흐트러트리지 못하겠습니다
나의 할아버지는 책을 펴내시며
유서를 대신한 거라고 하셨습니다
먹고 자라지 못해
얇은 한 권이지만
하중을 견딜 물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누구의 탓도 적혀 있지 않지만
가슴에 번번이
여러 잘못들이 되살아납니다
이제라도 잘해드리고 싶은 걸 보니
돌아가신 게 맞습니다
후회는 늘
높고 선명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먼 곳은
하늘이 아니라
다음 생임을 깨닫습니다
[이별이 올 때 봄도 오는 겁니다],문학동네,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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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랑
과거는 쌀뜨물로 씻어도 씻기지 않습니다 / 이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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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04 10:4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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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는 천국으로 이주하신 여러 얼굴들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