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장 1~8절에 “따라서 유죄판결이 예수 안에 자들에게 없으니. 이는 생명의 그 영(the Spirit)의 그 법이 죄와 사망의 그 법에서 크리스트 예수 안에(through) 너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니. 이는 그 율법이 그 육체를 통하여 약한 것 안에 그것이 할 수 없는 것을, 자기 아들을 죄의 육체의 모양으로 죄에 관하여서 보내신 하나님께서 죄를 그 육체 안에 유죄판결을 내리셨음이니(condemn). 영(Spirit)을 따라다니는 우리 안에 율법의 요구가 이행되기 위하여서니. 육체를 따라 있는 자들은 그 육체의 것들을 생각하나(set their minds), 영(Spirit)을 따라 있는 자들은 그 영(the Spirit)의 것들을 그러한 것이니. 육체의 사고방식(mind set on the flesh)은 사망이나, 그 영(the Spirit)의 사고방식은 생명과 평화라. 그 이유는 그 육체의 사고방식은 하나님 안으로 적의인 까닭이니, 이는 그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음이니 이는 할 수 있지 아니함이나. 육체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기쁘게 할 수 없노라”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구절이나 본문을 문맥에 상관없이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1) 로마서 8장 1절의 “그러므로”는 앞의 내용에 연결된 결론을 뜻합니다. 이 연결은 7장의 마지막 절이 아닌 5장의 마지막 절에 연결된 것입니다.
로마서 5장은, 믿음에서 옳다고 칭함을 받은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이었습니다.2)
6장과 7장은 부연 설명이었고 줄거리는 5장에서 8장으로 이어집니다. 5장은 믿음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과 구원의 확신에 대한 것입니다.
죄가 죽음 안에 지배한 것처럼(just as), 은혜도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영생 안으로 지배하게 됩니다(롬 5:21).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아무 유죄판결이 있지 아니합니다. 의로운 사람으로 선언된 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를 언급하였으며 “칭의”는 철저히 “행위”와 관련되지 아니하고 “믿음”과 관련된 말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며 행위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믿음”은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완결되지 아니한 지금 현재진행형입니다.
“믿음”과 관련된 “칭의”도 믿는다고 고백한 때에 완성되지 아니하였고 “믿음”이 믿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면 “칭의”도 현재진행형이어야 합니다.
1. 크리스천들에게는 유죄판결이 하나도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 “따라서 유죄판결이 예수 안에 자들에게 없으니. 이는 생명의 그 영(the Spirit)의 그 법이 죄와 사망의 그 법에서 크리스트 예수 안에 너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믿음”이 과거에 완성되었으며 믿음에 의한 “칭의”도 그러하다면 여러 구절에서 종교 배반의 위험을 언급하였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포함해 종교 배반에 대한 경고에 근거하여 생각하면 “믿음”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음으로써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마 13:20).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믿고 있고 끝까지 믿음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종말론 같이 “믿음”과 “칭의”도 “이미”와 “아직”의 긴장 사이에 있습니다.
확실히 심판은 하나에서 유죄판결(condemnation) 안으로지만, 그 은사는 많은 범죄에서 의로운 행동 안으로입니다(롬 5:16).
하나의 범죄를 통해 모든 사람 안으로 유죄판결 안으로인 것과 같이, 하나의 의로움을 통해 모든 사람 안으로 칭의 안으로입니다(롬 5:18).
믿는 자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된 것은 그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으로 세례 베풂을 받을 때, 예수님 안으로 들어갑니다(롬 6:3). 세례를 받는 것은 죄에 죽었고 죄 안에 살던 나는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세례”라는 약식으로 세례를 받게 되나 실제는 “침례”인 것입니다. 물에 잠겨 물에 빠져 죽은 후 물에서 올라올 때는 과거의 내가 아닙니다. 나병 환자가 물 안에 잠근 후 물에서 올라올 때는 새 사람이 올라옵니다. 죄 안에 있던 나는 죽게 되고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는 내가 올라옵니다.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유죄판결이 없습니다(롬 8:1).3) 법정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의롭다 칭함을 받았으므로 유죄판결이 없습니다.
이제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유죄판결이 없습니다. 크리스천은 자신에게 비난(condemnation)에 빠지게 하면 안 됩니다.4)
우리가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으면, 늘 거기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5) 이전에 우리가 아담 안에 있었던 때 우리에게 유죄판결이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으며 우리에게 유죄판결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아담 안에 있지 아니하고,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믿음에서(by)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롬 5:1). 그러므로 유죄판결이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자들에게는 없습니다(롬 8:1).
이 말씀은 믿음을 고백하였다가 종교를 배반한 자에게 해당하지 않고, 현재의 믿음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에 유죄판결이 없는 것입니다.
2절의 “이는”이라는 말은 2절이 1절의 이유를 말하고 있음을 보이는데 지금 유죄판결이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 없는 것은 왜입니까? 2절은 “이는”이라는 말로 유죄판결이 없는 이유를 밝혀 줍니다(롬 8:2).
생명의 그 영(the Spirit)의 법이 예수 안에 자유롭게 한 까닭입니다. 그 법이 해방하였고(set free)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make free).
과거에 예수 안에 있은(?) 자들이 아니라 현재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었으므로 유죄판결(정죄)을 받지 아니합니다. “믿음”은 예전에 믿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믿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법(law)”이라는 말에는 “원칙(law)”이라는 뜻이 포함되었으며 ‘법대로 하자’는 말의 뜻은 ‘원칙대로 하자’는 말입니다.
“존 머리”라는 학자는 “법”을 “권위”와 “통제력”으로 이해합니다.6)
무(Moo)는 2절의 “법”을 “원리”(principle)로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법”을 “구속력 있는 권위”(binding authority)라고 주장합니다.7)
“생명의 성령”은 동격의 소유격(“생명 곧 성령”)으로 보는 것이 좋으나 의도나 목적의 소유격(“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일 수도 있습니다.8) 크랜필드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9)
“그리스도 예수 안에”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생명으로 이해하기보다 “해방하였다”를 수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게 보입니다.10)
한글 번역은 “크리스트 예수 안에” 생명이 있다는 해석에 의한 것인데 이것보다 “크리스트 예수 안에서 해방하였다”가 더 좋을 것입니다.
“안에”에 수단을 뜻하는 전치사 “through”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11)
해방하였다는 말은 ‘통치권 영역의 변경’으로 단순과거시제는 믿는 자가 처음 구원받은 것을 가리킨 것이 분명합니다. 죄와 사망의 통치권에서 해방되어 성령의 통치권으로 옮긴 것입니다.12)
2번째 “법”도 권위와 지배력(control)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13)
“법”은 “원리”입니다.14)
성령은 옛 통치권 영역에서 해방하는 핵심적인 주체입니다.15)
“생명의 성령의 권위”가 “죄와 사망의 권위”에서부터 해방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통치권 영역에 갇혀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권위가 죄와 사망의 권위에서부터 우리를 해방한 것이며,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은 이미 자유롭게 만들어졌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권위가 크리스트 예수를 통하여 해방한 것입니다.
2. 죄가 예수님의 육체에 유죄판결을 내림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 “그 율법이 약한 것 안에 그것의 할 수 없는 일을 자기 아들을 죄의 육체의 모양으로 죄에 관하여 보내신 하나님께서 죄를 그 육체 안에 유죄판결을 내리셨음이니(condemn). 영(Spirit)을 따라다니는 우리 안에 율법의 요구가 이행되기 위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3절은 한국어 번역에 없는 “이는(For)”이라는 말로 시작되며(롬 8:3), 예수 안에 자들에게 유죄판결이 없는 또 하나의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육체에 유죄판결이 내려졌기에 그 안에 있으면 유죄판결이 없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은 로마서 6장 14절의 설명에 지나지 않습니다.16)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은혜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롬 6:14).
그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 육체를 통하여 그것이 연약한 것 안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을 죄의 육체의 모양 안과 죄에 관하여 보내셔서 그가 그 육체 안에 죄에 유죄판결을 내리셨습니다.
파울은 “육체”를 여러 문맥 속에서 여러 용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문장 속에서 문맥에 따라 용법을 결정지어야 합니다.
“육체”는 “탐심을 가지는 나”입니다(롬 7:7~12).17)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대부분 그 초점이 성육신에 있습니다.18)
이 진술은 성육신(Incarnation)의 교리에 있어서 중요합니다.19)
“성육신”은 ‘육신(肉身)을 이루다[成]’며 영어로 “Incarnation”입니다. “Incarnation” 교리는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셨다는 중심적 교리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사람(아담)을 죄가 없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20)
3절의 “모양”이라는 말은 영어로 “likeness”(닮음)이라고 번역됩니다. 우리는 이것이 “닮음”(likeness)인지 “모양”(form)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는 “죄의 육체”가 되신 것이 아니라 “죄의 육체의 모양”으로 오셨고, 그는 “죄의 육체”가 되지 아니하셨고 언제나 자신으로 남으셨습니다.21)
그는 피곤과 고통과 슬픔과 지침과 무력함과 눈물을 지니셨습니다.22) 그는 피곤하고 목마르고 배고픈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십니다.23) 그가 사람으로서 직접 이런 일들을 체험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에 관하여”라는 말은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를 뜻합니다.24)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죄를 위한 희생 제물로 오셨습니다.
죄에 관해 하나님께서 죄를 그 아들의 육체에 유죄판결을 내리셨는데, 그 율법의 요구가 우리 안에 이루어졌기 위하여서입니다. 육체에 따라 행하지 아니하나 성령에 따라 그러는 우리입니다(롬 8:4).
율법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도 언급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15절은 자유를 육체에 기회로 삼지 말라고 권고하며 이것은 믿는 자들이 자유를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것에 근거합니다. 파울은 계속 그들에게 “사랑을 통해 서로 종이 되어라”라고 권고합니다. 자유를 육체에 기회로 이용하지 말고 종이 되는 것에 사용하여야 하는데 율법이 ‘너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라는 말씀에 이루어졌음입니다.
죄에 관해 하나님께서 죄를 그 아들의 육체에 유죄판결을 내리셨는데, 크리스트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셨습니다.25)
우리가 크리스트 안에 있는 순간 이미 성화가 시작된 것입니다.26) 성령(Spirit)에 따라 행하는 우리 안에 열매가 맺힙니다.27)
1)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331.
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333.
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344.
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347.
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350.
6) John Murray, 『로마서 주석』, 아바서원 번역팀 역 (서울: 아바서원, 2014), 375.
7)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W. B. Eerdmans, 1996), 474-476.
8) G. K. Beale, 『신약성경신학』, 김귀탁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266, n. 7.
9) C. E. B.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1, Romans 1-8 (New York: T&T Clark Ltd, 2004), 376.
10)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1, 375.
11)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73, n. 21.
12) 이한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8), 753.
13)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1, 377.
14) Joseph A. Fitzmyer, 『로마서』, 김병모 옮김 (서울: CLC, 2015), 770.
15) 이한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754.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380.
17) James D. G. Dunn, 『바울 신학』, 박문재 옮김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3), 126.
18)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478-479.
1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06.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15.
21) Cranfield, The Epistle to the Romans Volume 1, 381.
2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17.
2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20.
2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24.
2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32.
2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34.
2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4』, 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