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고비아에서 백설공주의 성(알카사르)를 보고 톨레도로 출발한 시간이 열두시로 톨레도까지는 160㎞에 두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마드리드에서 세고비아로 오던 길을 되돌아서 마드리드 옆을 거쳐서 오는데 죄측에는 눈덮힌 과달라마 산맥을 넘어 톨레도 쪽으로 빠지면서 봄이 와 있는 들판이 보인다.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서 톨레도 근교에 있는 식당에 들러서 점심을 먹는데 이곳이 점심식사도 하고 스페인에서 나는 올리브유나 와인 같은 것을 파는 면세점도 같이 있는 곳이다.
점심은 돈까스 같이 생긴 스페인 음식에 상그리아라는 와인을 곁들인 것으로 스페인에서 먹는 마지막 스페인 음식이다.
식사를 하고는 식당 뒷문에 있는 면세점으로 들러서 와인과 올리브유 등 스페인 특산품을 사고 톨레도로 가서 톨레도 관광을 시작하였다.
톨레도로 가는 길의 과달라마 산맥
아마도 이곳이 동치호태와 산쵸판자가 누비던 라만챠 고원지대인 듯....
평야지대에는 봄이 와 있고...
톨레도 근처의 모습
톨레도 가는 길에 있는 식당
요리 이름은 모르지만
이 와인은 상그리아라고 한다.
이곳은 우리 말고도 한국 관광객이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아 톨레도를 오는 관광객은 반드시 거쳐 가는 곳인 듯
식사를 하고 뒷문으로 가면 이런 면세점이 나온다.
여러가지 제품들을 구경하고...어제 마드리드에서는 가죽제품들을 주로 보았는데 이곳은 식표품이다.
와인과 식초 오일류들
식당 카운터에 있던 톨레도 그림...이 강이 타호강이고 톨레도가 도시가 있는 곳이 세르반테스 언덕이라고
톨레도는 강이 둘러사고 있는 언덕위에 있는 오래된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서 몇 단(段)으로 되어 있는 에스컬레이트를 타야 도시로 들어갈 수가 있다.
톨레도는 마드리드 남서쪽으로 약 67km에 있는 고대도시로 세르반테스 언덕을 타호 강이 둘러싸고 있어서 로마시대부터 요새(要塞)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요새도시로 발전해 온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로마시대에는 '톨레툼(Toletum)'이라고 불렸었는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이 세운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다가 8세기에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10세기에 무어인(아프리카)이 세운 코르도바 칼리프국(이슬람)의 북부 전진기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레콩키스트 운동으로 1085년 레온-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가 이슬람 왕국으로부터 톨레도를 탈환하여 스페인 통일 왕국의 발판이 된 곳이다.
이후 스페인 통일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나 1561년 펠리페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김으로써 수도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이곳은 고대 시대부터 품질 좋은 강철의 생산과 검 제작으로 유명했으며, 고대 로마시대부터 중세 때까지도 톨레도산 검은 최고의 명품으로 호평받았다고 한다. 현재도 시 중심부에서 검과 철제 가공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다만 이전과 달리 실전용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의 소품용 검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곳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유적지가 모두 남아있으며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중세 가톨릭 성당, 이슬람 왕궁 등 여러 문화의 유적이 공존하는 역사가 깊은 도시로서
역사성과 문화성을 인정받아 1986년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식당에서 톨레도 가는 길
에스컬레이트를 타기 위해서 버스에서 내리는 곳...이 도시도 이런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런 에스컬레이트를 몇 번이고 갈아타면서 올라간다.
에서컬레이트에서 내려서 보는 신시가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가 ‘라만챠의 기사(騎士)’인데 라만챠 고원이 속한 카스티야라만챠의 주도(主都)가 이곳 톨레도이니 이곳이 돈키호테의 소설의 배경인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의 톨레도는 기독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톨레도 공의회가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총 18차례의 공의회가 열렸었는데 589년에 열렸던 제3차 공의회를 통해서 이곳의 국왕이었던 서고트 왕국의 레카레드 왕이 아리우스주의에서 아나타시우스주의로 전향을 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소위 고무줄 없는 빤스를 입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서양의 역사가 기독교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아나타시우스파와 아리우스파는 기독교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파로 이 두파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교리적 대결을 한 결과 아나타시우스파가 승리해서 현재의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삼위일체 교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아리우스파와 아나타시우스파의 근본적인 차이는 예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아리우스파는 예수는 신성을 가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아나타시우스파는 예수는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며 동시에 아들이다. 라는 차이이다.
요즈음의 지성으로 보더라도 그러고 그 당시에도 아리우스파의 교리가 더 설득력도 있고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더 지지를 받았지만, 이 두 교리로 인에서 기독교가 두 동강으로 갈라지게 생겼고 따라서 기독교가 이미 로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태에서의 로마도 두 동강이 나게 생겨서 그 당시의 로마의 황제였던 콘스탄틴 대제가 이 문제에 적극 개입을 하게 되고 결국은 아나타시우스파가 승리하게 되면서 325년에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몰리게 되고 아나타시우스파에 의해서 오늘날의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인 성부성자성신은 동일체(同一體)라는 교리가 만들어져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리우스파가 신도들이 다 없어진 것이 아니고 200년이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서고트왕국의 레카레트 왕처럼 아리우스파의 교리를 믿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개종(改宗)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신라 때에 기독교가 전파되기도 했는데 그 때 전래된 기독교는 아리우스파의 기독교였었다.
서고트 왕이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면서 백성들도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스페인이 통일되면서 가톨릭은 스페인의 국교가 되었고 스페인은 가톨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톨레도의 대성당은 스페인 가톨릭의 총 본산의 역할을 하는 성당이 되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공의회는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로 삼위일체와 사도신경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새서 미안하구요....
몇 단으로 된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올라가면 톨레도 구시가지 입구에 도착하게 되는데 티구스강 건너편으로 넓은 들판과 신도시들이 보인다.
곧바로 구 시가지 길로 들어가게 되는데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골목을 보게 되는데 유대인 회당인 시나고그가 있던 건물들도 보인다.
그런 골목들을 지나 면 고개를 넘으면서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있고 그런 골목들을 지나 톨레도 대성당 쪽으로 간다.
아마도 대부분의 패키지관광객이 거치는 코스일 것이다.
에스컬레이트에서 내려서 곧바로 골목길로 들어간다.
이 곳은 로마시대부터 만들어졌던 도시이다.
골목의 모습들
엣날에는 도시의 방어를 위해서 좁은 골목을 만들었는데 모로코에 가면 이보다 더 좁은 목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스라엘 국기에 있는 다윗의 별이 그려진 건물...유대인 회당인 시나고그??
골목의 건물들에 대한 설명을 하는 가이드
이곳은 좋은 무기를 생산하던 곳으로 장식용 칼과 도자기들이 유명하다고... 도자기 가게
골목들
골목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오고...
톨레도 대성당쪽으로 가는 골목...건물마다 담벼락의 문양이 다르다.
이곳은 로마, 기독교, 이슬람, 다시 기독교가 지배했던 곳으로 건물들도 그 역사의 흔적들을 간직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문양은 이슬람 양식이라고...
톨레도 대성당이 보인다.
일행 중에 또 한사람이 같이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이 중에는 천주교 신자도 있지만 성당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도 없다.
성당앞 마당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물이 흐르는 바갇...마치 미나리를 베어낸 시골의 미나리깡처럼 생겼다.
이곳이 스체인 천주교의 총 본산이라고 한다.
비신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성당이 그 성당일 뿐.....
앞에 보이는 다리의 창문에서 주교가 설교를 했다던가 인사를 했다던가....
톨레도 대성당의 외부
톨레도 대성당은 1225년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페르난도 3세의 명에 따라 원래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고딕 양식을 기반으로 성당을 짓기 시작하여 1493년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증축과 개축을 반복하면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많은 예술가들의 손길을 거쳐 현재의 엄청난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현재는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본당 보물실에는 16세기 초 엔리케 아르페가 만든 성체 현시대(Custodia)가 보관되어 있는데, 5,000개의 금 · 은 · 보석으로 만들어져 무게가 무려 180kg, 높이가 3m가량 된다고 하며, 본당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성가대석에는 그라나다가 함락되는 전쟁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해 놓은 조각이 있고 성물실에는 엘 그레코의 종교화와 고야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이곳에서 미술품들을 관람할 수가 있다고 한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처정의 스테인드 글라스...
성물실의 성체 현시대(Custodia)...페루에서가지고 온 금과 은이라고
웅장하고 화려한 내부의 모습들...이곳도 죽기 전에 봐야 할 건물들의 목록에 있다고 한다.
예수의 탄생과 고난 부활 등을 새긴 화려한 재단의 벽면...
어머니의 턱을 만지고 있는 예수...성모상으로 스마일링 마돈나라고
예수 변모상이라고...
화려하고 웅장한 셩당의 내부
엘 그레코의 가장 유명한 작품중의 하나인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El Expolio)이라는 그림
하늘에서 지상의 성인에게 내리는 빛줄기 이탈리아의 화가 루카 조르다노의 작품이라고...
고야의 그리스도의 체포
나르시스 토메가 만든 엘 에스파란테...외부에서 들어노는 빛에 따라 조각의 분위기가 달라지도록 만들었다고
천정에 있는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지금은 화려하게 보이는 엘에스파란테
스테인드 글라스...옆에 뿦처럼 보이는 것은 파이프 오르간으로 세로가 아니고 가로로 되어 있다.
여헹자와 운전자의 수호신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250 ?]
가톨릭 성인(축일 7월 25일). 시리아에서 출생. 안티오키아(현재의 안타키아)의 주교 바빌라스에게 세례를 받고, 리키아 지방에서 선교하던 중 사모스 마을에서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14성인(聖人)의 한 사람으로서, 여행자의 수호 성인으로 추앙된다. 《성인전(聖人傳)》에 의하면, 그가 어떤 소년을 업고 강을 건너는 동안 점점 무거워져서 물 속에 잠기게 되어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강을 건넌 다음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가 바로 그리스도였고, 따라서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나른 자’라는 뜻의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성당 내부
외부에서 보는 건물은 웅장하며 고딕식 건축양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가톨릭 교리와 관련된 회화라든가 장식물들이 있는데 가톨릭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그냥 화려한 장식일 뿐이나 그 규모도 어마무시하고 화려하기도 그지없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장식물들의 금과 은들은 페루의 잉카신전에서 가져온 것들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면서 피정복자의 문화와 종교는 정복자에 의해서 말살되고 압살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이곳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왕궁이나 성당 등이 이슬람의 왕궁이나 사원을 허물고 세운 것이고, 페루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에 있는 성당들도 잉카신전이 있던 곳을 허물어서 지었으며, 인도의 델리 같은 곳의 이슬람 건축물들도 힌두교사원을 허물고 그 위에 이슬람 사원 등을 건축하였으며 동로마제국의 이스탄불도 오스만제국에게 함락되면서 이스탄불의 기독교의 성당들도 이런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첫댓글 똘레도는 역사가 깊은 오래된 도시였던 것 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몇년전에 갔던 스페인
다시한번 기억나게 해주네요
잘 보고갑니다
스페인의 옛 서울. 꽤 높은 언덕위를 한참 올랐었는데요.
에스컬레이터가 생겼나 봅니다.
골목 골목 찾아찾아 많은 볼거리가 있었구요.
저 강은 개울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ㅋ
기차로 갔었구요. ~
톨레도 대성당이 스페인에서 세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