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신앙이 아직 걸음마 단계일 때, 어느 분께서 축일을 맞은 저에게 장미꽃 향이 풍기는 묵주를 선물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알맹이가 장미 꽃잎 색깔인 예쁜 묵주였는데, 로즈마리처럼 손으로 만지작거릴 때마다 온 방안에 장미향이 가득해서 묵주기도가 신나고 은혜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죽음보다 깊은 절망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와 신앙에 맛 들이는 나날이 너무 행복했고, 그 시기엔 만나는 사람마다 천사로 보였지요.
비록 세속의 때가 다 벗겨지지 않은 불량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나를 형제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더 이상 흉악범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금 돌이켜 보건데,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는 교회공동체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천국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나는 여전히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삶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 죽음의 손님과 교회의 손님을 동시에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참으로 오랜 세월을 그리 살아왔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법으로는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형수 본인들에겐 하루하루가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습니다.
만 10년 동안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나라는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된다지요?
그와 관련된 기사들이 자주 눈에 띄는 요즘, 고무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안도감보다는 더 큰 죄책감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에겐 그런 기사가 또 한 번의 악몽일 테니까요.
피해자 가족들을 위해서는 아무런 장치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자의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만 강조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염려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사형수들이 피해자 유가족에게는 계속 아픔을 주는 존재잖습니까? 그래서 신부님의 ‘희망여행’에 내심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이제는 피해자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 한이 되어 남아있는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는 데에도 우리가 다 함께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는 범죄 피해자나 유가족 스스로가 말하고 싶은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열린 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은 평생을 암덩어리처럼 지독한 고통을 그대로 안고 살아야 합니다. 계속 증오하거나 원한을 품과 사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봐야겠습니다.
하느님께 용서를 빌고 그의 자녀가 됐다하여, 다가 아니라는 것을 영화 밀양은 말해줍니다. 우리는 피해자에게 뿐만 아니라 이 사회와 국민들 한사람 한 사람에게도 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