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기억될 이름 제62회
이헌 조미경
퇴근시간이 아직 한 시간이 남았지만, 선임 작업자들은 조금 전부터 장갑을 벗어던지고, 난로가에 앉아 불을 쪼이고 있다. 난로에서는 누군가 고구마를 넣어 두었는지, 현장사무실까지 달큼한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점심후 시린 손을 녹이려 난로가로 몰려든 작업자들 중에, 나이가 지긋한 오 씨로 불리는 남자가 어디서 구했는지, 고구마를 한 아름 들고 현장으로 왔다. "어디서 난 거야? 고구마." "잉 알제 우리 국민학교 다닐 때, 교실 난로에서 고구마 구워 먹었잖아 그 생각이 나서, 집에서 좀 가지고 왔지.' 오씨의 말에 옆에서 불을 쬐던 남자들이 허허 하는 웃음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오 씨라 불리는 남자는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흙 묻은 고구마를 한 개씩 장작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고구마를 넣자 여기저기에 앉아 있던 현장 일하는 남자들이, 입맛을 다시며 쩝쩝 소리를 냈다.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러 난로가에 몰려들었다.
바람에 천막이 펄럭이며 소란을 일으킨다. 사무실에서 경리 담당 미스강은, 아까부터 사무실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사장을 보며 불편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아침 현장 작업자들이 출근할 시간이 되면, 현장 근처 동네에서 한꺼번에 몰려온 사람들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주민들은 공사로 인해, 조용한 동네가 자동차 소음과, 대형 트럭들의 과속으로 교통사고 위험에 대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공사 진행을 방해했다. 이 때문에 우진도 골머리를 썩고 있다. 더구나 요즘은 지하 약 20미터 구간에 거대한 바위 산을 만나 폭파를 위한 장치 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서, 폭파하면 분진과 소음등이 발생하기에, 구청에 사전 신고를 해 놓은 상태 지만 지역 주민들과의 분쟁을 최소화할 명분 찾기에 고민 중이다.
우진은 현장에서 작업자들을 지켜보다 사무실로 들어왔다. 작업자들은 느릿한 걸음으로 현장을 오가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우진이 보기에는 시간만 때운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흡연자들은 담배를 핑계로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한 두 번은 꼭 현장 소장인 영훈에게 들 켜서 잔소리를 들었다. 영훈은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인원을 최대한 투입하면서 불필요한, 공정을 줄였다. 그는 본사에서 근무를 하다 이곳 경기도 광주현장으로 내려와 인부들과 동고동락을 하며 지내온 시간이, 5개월이 지났다. 이젠 누가 성실 하고 게으름을 피우는지 금방 알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영훈은 가뜩이나 예민한 시기에 작업자들이 일은 안 하고 담배를 핑계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일의 효율이 오르지 않아 사장님 볼 면목이 없는데, 그들은 영훈의 입장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가롭게 잡담을 즐기고 있다. 건설 현장은 언제 누가 부상을 당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진은 현장 소장과 각각의 공정 책임자들과 회의할 때면 안전에 최선을 다할 것을 강조한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자 현장은 작업자들이 웅성거리며 작업화 먼지를 털거나,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고단한 하루를 보상받으려는 듯 하늘을 향해 연기를 내뿜는다. 그들의 얼굴에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냈음을 감사하는 눈빛이다.
. 현장 소장 영훈은 작업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 피우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끝내 한 마디를 내뱉는다. "일 안하고 난로 옆에만 앉아 있으면 일이 빨리 끝납니까. 어서 현장으로 돌아가세요." 우진의 심기를 살피던 중 현장 인부들이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 난로 옆에서 잡담을 즐기는 것이 오늘은 더욱 심경을 거슬렸다. 토목공사 진척이 더디다. 현장 책임자인 영훈은 자연히 마음이 급하다. 터파기 공사 공정에 따라 일의 공정이 정해지기 때문에,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렇지만 현장 잡부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작은 실수나 빈틈은 눈을 감아 주는 편이다. 겨울은 해가 일찍 뜨고 일찍 진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 탓에 사고에 대비해서 늘 긴장을 늦추지 않는 사무실은, 마지막까지 작업자들의 동선과 그날 현장 인원 투입등 챙겨야 할 일이 무척 많다.
우진은 현장 작업자들이 모두 퇴근한 후 자신도 차를 몰아 본사로 돌아왔다. 아직 챙겨야 할 일이 덜 끝났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평소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같은 업종의 종사자인 임 회장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우진은 젊은 혈기로 시작한 일에, 자금 문제까지 불거지면 회사는 유지가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매사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은행에서는 신용도가 낮은 업체에는 더 이상의 대출을 연장하지 않아 평잔고에 신경을 쓰면서 다각도로 사업 구상을 하는 우진으로서는 하루가 너무나 짧았다.
작업자들이 일터에서 장비를 가지고 일하는 소리가 끊긴 저녁 현장은 금방이라도 귀신이라도 나올 듯 을씨년스럽게 변하고 사위는 어둠에 갇힌다. 마지막 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던 영훈도 사무실 문을 잠그고 자신도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
첫댓글 잘보고갑니다
소설이 재미 있게 이어가네요
인생의 삶에 길이 이토록 험한줄,
이제야 절실히 느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