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 깊은 곳에는 열수분출공이라는, 일종의 심해 생물들의 놀이터가 있는데 거의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는 곳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심해에는 독일 과학자가 광합성할 만한 태양조차 없다. 지상의 생명체들이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듯이 심해의 생물들은 바로 이곳을 근원으로 생존한다. 열수분출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을 먹고 사는 세균들이 있는데 이들이 똥을 싸면 그게 바로 심해 생물들이 먹을 수 있는 탄수화물이다. 태양의 광합성이 없이 탄수화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역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게 세상의 진리다.
(69-70)
미래에서 온 관광객이 아직까지 없다는 점이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보는 관점도 있다. 미국의 한 과학자는 타임머신이 일종의 체크포인트 역할을 해서 최초의 기계가 가동을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가 돌아갈 수 있는 과거의 시작점이 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즉, 타임머신이 작동되기 전의 과거는 타임머신상에서 없는 시대이며 오직 타임머신이 작동된 이후만 자유롭게 시공간을 오갈 수 있는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아직까지 미래 관광객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일리가 있다. 미래에서 봤을 때 지금 우리 시대는 돌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는 것이니까.
(90)
서울에 사는 결혼적령기의 한 남성의 경우, 서울의 인구를 1,000만 명이라고 가정하고 이 중 50퍼센트를 여성이라고 하자. 남성의 출퇴근하는 방법이나 동선에 따라 지나가다 이성을 만날 확률은 달라지겠지만 1퍼센트 정도라고 하면 이미 대상자는 5만 명으로 줄어든다. 같은 결혼적령기 여성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대상자의 나이 분포를 1세부터 100세까지 일정하다고 했을 때 15퍼센트 정도와 나이가 맞을 것이다. 비슷한 교육환경에 있을 확률은 1퍼센트 정도로 보고 매력을 느낄 확률은 5퍼센트, 서로 만날 때까지 살아 있을 확률 10퍼센트까지 계산을 하면 고작 0.375명이 이 남자와 연애 가능한 여성의 숫자라고 볼 수 있다. 아쉽게도 1명도 되지 못했다.
(113)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를 때, 기분이 안 좋아지는 게 바로 이 현기증 뉴런 때문이다. 심해지면 두통이나 현기증까지 나기도 하지만 일단 현기증 뉴런이 활성화되면 불쾌하고 울적해진다. 반대로 음식을 먹어서 현기증 뉴런이 작용을 멈추게 되면, 뇌에서 보상회로가 가동되면서 평소에 먹던 음식이라고 해도 더욱 맛있게 느끼게 된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맞다.
(117)
당신의 뇌는 매우 똑똑해서 혹시나 운동으로 평소보다 더 많은 칼로리가 소모되면 어떻게든 수를 써서 당신이 더 많은 칼로리를 먹도록 만든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난 뒤에 라면을 끓여서 먹어보아라. 몇 젓가락 먹지도 않았는데 이미 라면은 국물만 남아 있고 바로 하나를 더 끓여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왜? 평소보다 더 먹도록 뇌가 유인하기 때문이다.
(137)
그리고 그 흔적은 당신에게도 남아 있다. 바로 흰자. 달걀 노른자 흰자 말고 눈동자의 흰자 말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은 눈에 흰자가 없다. 하지만 사람은 흰자가 눈동자에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려동물도 마찬가지다. 흰자가 많다고 시력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동공이 크면 클수록 시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오히려 흰자가 많으면 보는 성능이 떨어진다. 그럼 왜 이렇게 불리한 상황을 감당하면서도 흰자가 많아진 걸까? 역시 뭔가 이득이 있을 것이다.
흰자가 있다면 멀리서도 상대방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서로 마주 본다는 것도 느낄 수 있고 소통하는 데 눈짓이 굉장히 많이 쓰인다. 눈동자의 방향을 통해 상호 신뢰를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서로가 잘 길들여졌다는 증거로 이만한 게 어디 있을까?
(175)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전자는 단백질을 조립하는 매뉴얼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을 제대로 조립하기 위해서 특이하게 생긴 레고블록 같은 것을 이용하는데 이걸 아미노산이라고 부른다. 출신이 고작 블록 조각 비스무리한 녀석이라 아무리 백날 열심히 조립을 해도 단백질의 기능을 넘어서는 것들은 못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 즉, 원래 단백질은 하늘을 나는 기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단백질을 아무리 잘 조립해도 하늘을 날지 못한다. 눈으로 레이저를 쏘고 타인의 마음을 조종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218)
우선 용어부터 정리해보자.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가상화폐라는 표현부터 마음속에서 지우자. 가상화폐는 마치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통화와 같은 느낌이다. 정확하게는 암호화폐라고 한다. 단어의 핵심은 ‘암호’이며 지불 수단으로서의 화폐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필이면 최초로 발행된 비트코인이 화폐 기능에만 집중한 암호화폐다 보니, ‘실물화폐 대신 가능성’만이 암호화폐의 전부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덩달아 블록체인 기술마저도 가짜 화폐를 만들어내는 위조 수단쯤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실물화폐의 단순한 대체품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가치를 지닌다. 기존 화폐의 역할을 그대로 하지 않아도 좋다. 대신 탈중앙화와 암호화라는, 상당히 불가능한 상황을 동시에 만족하는 방법을 찾아낸 해결사다. 바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말이다.
(222)
거래 내용에 대한 신뢰도를 보증하는 중앙이 없고 거래에 참여하는 사람 개개인이 모든 거래 내역을 기록하고 확인한다. 따라서 물리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암호화에 도달한다. 기존의 보안 방식이 최대한 복잡하고 많은 자물쇠를 금고에 빽빽하게 거는 형태라면, 블록체인을 이용한 이 방식은 금고 자체를 전 세계를 셀 수도 없이 많은 곳에 뿌려두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금고들은 정기적으로 암호가 바뀌며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를 옮겨다닌다. 내가 해커라도 맥이 빠지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