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체대비와 공명지조(共命之鳥)(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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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이면 2019년의 마지막 날이 됩니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대학교수들이 공명지조(共命之鳥)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사자성어는 <불본행집경>과 <잡보잡경> 등 불교경전에 있는 말입니다.
이 새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으며, 히말라야 기슭인 극락에 산다는 상상의 새입니다.
몸은 하나인데, 머리가 두 개인 새로 두 생명이 서로 붙어 있어 상생조相生鳥ㆍ공생조共生鳥ㆍ생생조生生鳥라고 합니다.
두 머리를 가진 새의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나는 등 일상 패턴이 다르다보니 다투는 일이 잦았습니다.
한 머리가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는데, 다른 머리는 질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기심에 가득 찬) 머리의 새는 언제고 보복하기 위해 벼루고 있다가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었습니다.
결국 독이 온 몸에 퍼져 두 머리를 가진 새는 죽게 되었습니다.
시기심으로 심술부렸다가 상대방은 물론이요 자신까지 함께 죽게 된 것입니다.
함께 죽음을 자초한 공멸共滅이라고 볼 수 있는데, 혹 그 반대로 상대에게 양보ㆍ배려했다면 공생共生이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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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가르침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우리 모두는 허공에서 나왔다고 비유합니다.
허공은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를 다 수용하고 다 인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한 몸이라고 하여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으면 한 몸이므로
내가 고통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보살이라 합니다.
보살은 한 편으로는 위없는 보리(진리)를 구하고 한편으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발원하고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보살은 우리 모두 허공이라는 한 몸에서 나왔음을 압니다.
한 몸이므로 다투지 않고 갈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극락은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는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 긴 수저로 서로 상대의 입에 넣어줍니다.
극락에 사는 사람은 서로를 배려하고 즐겁게 해줍니다.
그런데 지옥은 긴 수저로 자기 입에 먼저 넣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자신의 입에 넣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의 이속만을 챙기기 급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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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공명지조 처럼 현재 우리의 삶도 이와 유사합니다.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해 상대를 시기질투해서 상대를 해한다면, 결국 자신도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대학교수들이 오늘날 지구촌이나 우리나라를 진단해 보니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보다 자신의 이익에 골몰하고 배신하고 상대 잘되는 꼴을 못보고 서로의 밥에 독을 넣는 일이 비일비재한 오늘날의 상황을 표현한 것입니다.
20세기 대석학인 역사학자 토인비는 ‘미래 21세기는 유일신으로 세상을 구하는 시대는 끝이 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유일신을 고집하는 자체가 극단적 종교이기주의요, 세상을 편가르기 하는 행위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우주는 한 허공 안에 있습니다. 이 허공에는 무한한 별과 하늘이 있습니다.
그 각각의 세계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하늘의 신이 있습니다.
이는 유일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우주에는 유일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면 그것은 우주질서의 원리만 있는 것입니다.
우주질서의 원리는 인연과법입니다. 무상과 무아입니다.
그러므로 토인비는 21세기는 모두를 포용하는 종교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라 미래 예축을 했던 것입니다.
현대 우리나라 불교의 지도자이시던 탄허 스님은 돌아기 몇 달 전부터 임종일과 임종시간까지 예언하셨고 실제 그 일시에 임종하신 큰 스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탄허 큰스님은 유훈으로
“21세기에 한국에서 큰 정신적 지도자가 1만 명이나 배출된다.”고 하시고
“그들이 이 세상을 정토로 바꾸는 역할을 할 것.”이라 예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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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우 여러분
우리 모두가 마음을 밝혀
너와 내가 모두 잘사는 세상으로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공명지조(共命之鳥)는 죽었습니다.
공명지조의 이야기를 거울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두 한 몸이라는 허공같은 마음을 내어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며
너와 내가 모두 이익 되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허공같은 동체대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보살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보살은 사무량심(四無量心)을 가집니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은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모두를 한 몸으로 보기 때문에
모두를 조건 없이 한량없이 사랑합니다. 이를 자무량심(慈無量心)이라 합니다.
모두가 한 몸이므로 고통 받는 사람을 보면 측은한 마음을 내어
그를 구하고자하는 마음을 한량없이 냅니다. 이를 비무량심(悲無量心)이라 합니다.
모두가 한 몸이므로 다른 사람이 기뻐하면
함께 기뻐하는 마음을 냅니다. 이를 희무량심(喜無量心)이라 합니다.
한 몸이므로 나만을 고집하는 아상(我想), 분별심을 내는 인상(人相),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중생상(衆生想), 영원히 살고 싶은 무명심인
수자상(壽者相) 등 사상(四相)을 모두 버리는 것을 사무량심(捨無量心)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법우님들
우리 모두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보살로 다시 태어납시다.
마음속에 사무량심(四無量心)이 가득한 보살로 태어납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합시다.
감사합니다.
자비불교정토회
정인 합장
2019년 12월 30
아미타불천일기도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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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탄허큰스님의 예언대로 되었으면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의가 실종되어 가는 국민성에 여건이 되면은 이민을 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