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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사랑할 시간] 09
1. 미연집 / 거실 (밤)
<많은 절제를 했지만, 대본에 아직도 눈물과 슬픔이
과합니다.
주연 배우분들께 좀 더 절제된, 또는 다른 방식으로 표
현된
눈물 연기를 부탁드립니다...연출!!>
바닥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사과를 집는 손. 미연이
다.
미연은 봉지를 들고 다니며 굴러다니는 사과를 천천
히 주워든다. 현관까지 굴러간 사과를 주워 담다가, 엎어져서 뚝
떨어져 있는 태훈의 신발을 보고 애잔해진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
는 모습에서 인써트.
#8회 전회 엔딩
태훈 난...
미연 (집중하는)
태훈 난... 미연이 너랑... 우리 애기랑... 같이 셋이 소파에
엉켜 누워서 티비 보고... 주말이면 같이 손잡고 공원으로 놀러나
가고... 그러는 게 내 꿈이야.
미연 ... !!
태훈 내 꿈이 너무 크니?
미연 ... !!
태훈 응? 내 꿈이 너무 크니? (그렁그렁한 눈물. 흘리진 말
고)
미연 (철렁해) 왜 그래? 왜 울어, 응? (크게) 왜 그러는 데
에---!
현재의 미연, 울컥해서 신발을 소매 끝으로 먼지를 닦
아낸다.
2. 미연집 / 침실 (밤)
태훈은 외투만 대충 벗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있고,
침대 모서리에 앉아 그런 태훈을 애잔하게 보는 미연.
이불을 끌어당겨 올려준다.
그리고 바닥에 널부러진 태훈의 외투를 집어 들고 나
간다.
3. 미연집 / 거실 (밤)
미연, 침실에서 나와 태훈의 외투를 반으로 팔에 접으
며 옷방 쪽으로 가려는데, 외투에서 지갑이 떨어진다. 쪼그려 앉
아 지갑에서 삐져나온 흩어진 내용물을 챙겨 넣다가 방바닥에 있
는 지석의 명함을 발견. 충격... 천천히 손을 뻗어 명함을 들어본
다. 확실하다. 너무 놀라 입을 막으며 침실 쪽을 돌아보는 데서.
4. 미연집 / 주방 (아침)
미연과 태훈, 말없이 아침을 먹고 있다. 긴장되고 어색
한 침묵.
한참 만에 그 침묵을 깨는 태훈.
태훈 (시선 안주고 덤덤히) 콩나물 국,
미연 (흠칫)
태훈 시원하다.
미연 ...
다시 아무 말이 없는 두 사람. 긴장... 살얼음판...
미연의 얼굴 위로 후룩후룩 국물을 들이키는 태훈의
소리가 얹힌다.
5. 미연집 앞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건물에서 나오는 미연과 태훈.
두 사람 모두 굳은 얼굴.
태훈 (살짝 미소) 가.
각자의 차로 가기 위해 등지고 멀어지는 두 사람.
미연 굳은 얼굴로 가는데, 그때! 역시 굳은 얼굴로 가
던 태훈이가 문득 돌아보며,
태훈 (조금은 밝게) 오늘 늦어?
미연 (뭐라고 해야 하나) .............. 아니.
태훈 집에서 같이 저녁 먹자.
그리고 태훈은 다시 돌아서 간다.
그대로 굳어서 태훈을 보고 서 있는 미연.
6. 지석 집 / 앞 (낮)
지석의 아파트 동에 이삿짐 차가 서 있다.
짐꾼들이 화물칸으로 이삿짐을 옮기고, 지석모가 옆에
서 안달하며 주의를 준다.
지석모 아이구! 거 거! 거기 기스 안 나게 조심해요. (일꾼 들
보고) 그걸 그렇게 굴리면 다 망가지지, 무슨 사람들이 일케 조심
성들이 없어!
7. 지석 집 / 거실 (낮)
싸구려 소파와 테이블이 자리를 잡지 못한 채 한 가득
이다.
일꾼들이 현관으로 짐을 들여오고 있는데,
짐 정리를 하던 지석모, 옆에서 손놓고 있는 정란을
홱 돌아보며,
지석모 그럼 이 멀쩡한 걸 다 버리냐? (일하며) 중고 시장에
내다 팔라구 가 봤더니 뭐? 산지 삼년도 안 된 가구를 오만원? 췌!
그나마 냉장고 테레비는 헐값에 팔구 온 거야. 걱정 마. 지희 오면
걔한테 주면 돼! 다시 살려면 그게 다 얼만데.
지석모, 다시 열심히 손을 놀리는데,
정란, 영 대책이 안서는 얼굴로 둘러보다 시선 돌려 침
실 쪽으로 가려는데
짐꾼1 (정란에게) 이건 어디로 들어가요?
정란 (무시하고 가고)
지석모 (자신의 방 가리키며) 저쪽으로 들어가요, 저쪽으로.
(말 끝에 정란이 꼭지를 노려보는) 들어오는 날부터 튕그러지네,
들어오는 날부터. 싹수...
8. 대학 / 지석 연구실 (낮)
지석과 덕구 있다. 지석, 기가 많이 꺾인 분위기.
덕구 (눈치 보며) 그럼... 미연이 살던 자취방에 들어가는
건, 물 건너 간 거야? 보증금까지 냈다며?
지석 혼자 나가 살겠다 그럼, 우리 엄마가 오냐 그래라 하시
겠냐? 왜 그러냐, 무슨 일이냐... 들들 볶이다 남은 생 끝나지.
덕구 (이런 말 뭐하지만) 너 암이라구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석 (OL) 됐다. 땅 치면서 통곡하는 우리엄마 보는 게, 더
힘들다.
덕구 ...
지석 깝깝-하다... 미연인 꼭꼭 숨어버리고... 인생 막판까
지 오리무중이다. 죽을 날 받아 노면 좀 선명해질까 했더니.
덕구 (딱한)
지석 아씨, 저번에 주문한 냉장고랑 티빈 다 어쩌냐. (자조
섞인, 피식) 차암 정신 못 차린다 나. 이 와중에 냉장고 티비 걱정
이니...
9. 방송국 / 프로그램 사무실 (낮)
앉아있는 미연의 얼굴로 넘어온다.
맞은편엔 정피디가 앉아있다.
정피 (약간 떨떠름) 딴 작가 알아보고 있으니까, 일 이주만
더 해주면 될꺼야.
미연 ...
정피 지금이라두 계속 하겠다고 하면 작가 알아보는 거 중
단하고. 어떻게? 계속할 생각 없어? 끽해야 오육개월 더 가면 쫑인
데.
미연 ... 죄송해요.
정피 (대본 챙기며) 끝이 안 좋다. 왜 이렇게 됐나 모르겠
네. 작가랑 헤어지면서 담에 또 할 정도로 좋게 맺고 싶었는데. (일
어나 가는)
미연 ...
10. 자산 운용사 / PT 룸 (낮)
조명이 어두운 회의실. 은행 피비들이 예닐곱명 앉아
있고.
태훈, 그 앞에서 프로젝션 빔으로 프레젠테이션 하고
있다.
스크린엔 [왜 동유럽 펀드에 투자하는가?]라고 떠 있
다.
태훈 최근 일어나는 동유럽의 변화는 단순한 내수 및 경제
의 성장이 아니라 전반적인 구조의 변화라고 할 수 있으며 놓치기
아까운 투자의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모컨을 딸깍 누르면,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바뀌며
관련 자료들이 나온다.
태훈 보시는 바와 같이 러시아와 동유럽은 고급 내수시장
을 기반으로 꾸준히 5~6퍼센트 대의 안정적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
기 때문에 시중에 판매되는 중국, 인도 펀드에 비해 동유럽 펀드
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리모컨 딸
깍 누르면, 프리젠테이션 화면이 바뀌고)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봤
을 때 동유럽주식 펀드에 장기 투자시 연 (화면 가리키며) 30퍼센
트 수준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11. 동 / 본부장실 (낮)
태훈, 굳은 얼굴로 본부장 앞에 서 있고,
본부장, 자리에 앉아 거만한 표정으로 서류를 보고는
휙 앞으로 던져놓는다.
태훈 !!
본부 이런 식으로 수탁고 빠져나가면 샌프란시스코 행 물
건너갈 수 있다는 거 알지?
태훈 !!
본부 이걸루 선배 뒤통수까지 쳤는데, 그냥 주저앉게 되면
우습지 않겠어? 어떻게든 떠나야지?
태훈 !!
12. 미연집 근처 / 빠 앞 (밤)
미연, 터벅터벅 걸어온다. 핸드폰을 열어본다. 닫는다.
갈 곳 없는 사람처럼 막막하게 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지나온 뒤로 자주 가던 빠가 보이고.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미연.
13. 빠 (밤)
문을 열고 들어와 빈 테이블에 앉으려고 하는데,
한쪽 구석에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태훈을 본다.
태훈, 뒤늦게 미연을 보고, 미연과 태훈의 어정쩡한 시
선.
컷 튀면 마주 앉는 미연과 태훈.
미연 집에서 같이 밥 먹자더니...
태훈 (자신의 잔에 따르며) 추워서... 몸 좀 녹일라구. (미
연 보며) 집에서 같이 밥 먹기로 해놓고. (당신은 여기 왜 들어왔
어?)
미연 나도 추워서...
태훈 한 잔 할래?
미연 줘요.
태훈 (따라주고)
미연과 태훈, 잔을 부딪친다.
태훈이 벌컥 마시고, 미연이 잔을 물끄러미 보다가 마
신다.
14. 지석 집 / 주방 (밤)
지석은 식탁에 앉아 있고.
정란은 지석이 앞으로 생야채와 계란찜등 자극성이 없
는 반찬 접시를 놓고.
지석모는 가스렌지 위에서 끓고 있는 찌개를 수저로
떠서 간 본다.
지석모 음- 딱이네. 딱 좋아. (하며 간 보던 수저의 국물을 다
시 찌개에 털어내는데)
정란 (그게 눈에 거슬린다)
지석모 (찌개를 식탁에 놓고 앉으며) 너도 얼른 와 앉아라.
(지석이 앞의 반찬을 보며) 뭔 토깽이새끼마냥 풀들만 잔뜩...
정란 !! 아범은 이런 거 먹어야 돼요.
지석모 한국사람은 그저 뜨신 밥에 찌개가 최고야. (비어있는
한 자리 가리키며, 들뜬) 이제 요기에 혜진이만 와 앉으면 딱인
데... 혜진이 언제 들어온다구?
정란 (한쪽에 세팅 되어있던 사기그릇들 중에 국자와 개인
접시를 챙기며) 다음 주에요.
지석 !!
지석모 (들떠) 에우, 고거 이 할미 얼굴이나 알아볼라나 몰라.
알아볼 리가 있나, 세살 때 보고 못 본 걸.
정란 (사람 별로 접시를 놓자)
지석모 그건 뭐할라구?
정란 찌개 떠 드시라고요.
지석모 (밀며) 치워라. 거 거추장스럽게... 설거지꺼리만 나오
게.
지/정 !!
지석모 (눈치없이 얘기 계속) 혜진인 사부인이 데꾸 들어오시
냐?
정란 네. (찌개에 국자를 박고 푼다)
지석모 (요게? 하는 눈빛/이내) 오시면 어디서 주무시냐?
정란 (찌개 뜨며) 제 화실방 쓰시면 돼요. 오래 안 계세요.
정란, 지석과 자신의 찌개만 뜨고 지석모 것은 떠주지
않는다.
지석모, 그 모양새를 보다가 찌개에 수저를 콱 박아서
떠먹으며,
지석모 아우, 내가 했지만서도 맛나네.
지석 ... (정란을 본다)
정란 (먹다가 지석과 눈이 마주친다. 시선 피하지 않는다)
지석 (먼저 시선 피하고 먹는다)
15. 지석 집 / 지석모 방 (밤)
문 열고 들어오는 지석모. 꺼억-꺼억- 가슴 몇 번 두
드리고.
지석모 (밖을 흘기며) 으구... 싸가지...
하다 문뜩 뭔가 생각나는 듯, 옷 장 서랍 속에 깊숙이
넣어 둔 통장을 꺼내본다.
지석모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일십백천만 십만 백만 천만..
오천만원! (히익... 좋아라)
16. 지석 집 / 침실 (밤)
말없이 뚝 떨어져 앉아 있는 지석과 정란.
어떤 기운도 없는 사람처럼 맥놓고 앉아있는 지석.
지석 ...
정란 학교는 언제까지 나갈 거에요?
지석 ...
정란 그만 나가고 집에서 셔도 되지 않아요? 그만 나가요.
지석 집에서 혼자 뭐해.
정란 저도 당분간, 일 쉴 거에요. 몇 달 휴가 내고,
지석 일 놓지 마. 나, 가고 나면, 혜진이 데리고 살아야지.
돈 벌어야지. 그냥 다녀.
정란 ...
지석 나도 혼자 있는 것보단 학교가 낫고.
정란 ...
지석 우리 엄마, 전세금 뺀 돈 어디 엉뚱한데 쓰지 않게 잘
봐줘. 쫌 있으면, 또 혼자 사셔야 되잖아.
정란 ...
17. 빠 (밤)
태훈, 안주로 나온 소시지를 잘라 미연의 앞 접시에 놔
준다.
미연, 그걸 보다가 태훈을 보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
는 기분...
태훈 (분위기 바꾸려 괜히) 이 집은 이 쏘세지 안주가 젤 괜
찮은 거 같애.
미연 (시선 못주고, 조심스레)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태훈 ... !!
미연 어제... 왜 그랬어?
태훈 !!
미연 ... 왜 울었어?
태훈 (이내 미소) 별 거 아냐... 왜? 신경 쓰였어?
미연 한 번도 그런 적 없었잖아. ... 왜 그랬어?
태훈 진짜 별 거 아냐.
미연 (보는)
태훈 (가만있다가) 집에 오다가 젊은 엄마 아빠가 양쪽에서
아이 손잡고 웃으면서 가는데, 그게 그렇게 부럽드라구, 저게 행복
이구나 싶은게... 술도 취했겠다... 주책 부린 거지 뭐. 신경 쓰였
어? 미안해...
미연 그게... 전부야?
태훈 (술 따르며) 딴 게 있을 게 뭐 있어.
미연 ... 갑자기 샌프란시스콘 왜 가자고 했어?
태훈 당신이 옛날부터 가고 싶어 했잖아.
미연 ...
태훈 당신이야 말루 왜 그래?
미연 같이 밥 먹자고 해놓고선, 여긴 왜 이러고 있어?
태훈 !!
미연 왜 여기 이러고 있어?
태훈 (조금 정색) 그만 하자. 내가 뭐 대닪 잘못한 거 같아
서 기분 그렇다.
미연 !!
태훈 (완샷하고, 따르는)
미연, 시선 내리고 가만히 있다가 왈칵 감정이 일어,
일어나 밖으로.
태훈, 미연의 뒤꽁무니를 본다. 답답하다...
18. 빠 / 앞 (밤)
미연, 벽보고 서 있다가...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눈
물을 닦는다.
19. 지석 집 / 서재 (밤)
덤덤히 핸드폰에 문자를 찍는 지석의 모습에,
핸드폰이 진동으로 울리는 소리가 선행되고,
20. 빠 (밤)
핸드폰 액정 화면으로 넘어온다.
INS//문자 : 잘 지내니? 살아있긴 한 거니?
그걸 보고 있는 태훈. 조용히 문자를 지우고, 핸드폰
을 제 위치에 놓는다.
다시 잔을 채우고... 원샷... 답답하다...
(F.O)
21. 갤러리 / 전시 홀 (낮)
정란과 연희, 차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다.
정란 (찻잔 똑바로 놔주며) 드세요.
연희 음. (찻잔 들어 한 모금 마시고) 요즘... 어떻게... 괜찮
아?
정란 ...
연희 현교순... 끝까지 수술 안 받겠대?
정란 ...
연희 그렇다구, 그렇게 손 놓고 있어도 돼?
정란 ...
연희 (접자 싶어) 그래 뭐... 나보다야 정란씨가 더 깝깝하겠
지. 옆에서 이런 말 해봤자 도움도 안 되고... (하다가 슬쩍 정란 살
피며) 그래서, 재산 정리 들어가는 거야?
정란 ... ??
연희 현교수, 우리 WCS에 투자 상담 받으러 왔었다구 하더
라구. 개인은 상대 안 하는 거 알텐데, 우리 바깥양반이 있는 회사
니까, 대충이라도 조언 좀 구할 수 있을까 해서 왔나분데,
정란 !!
연희 (정란의 표정 보고) 몰랐어? 어머... 몰랐나 부네. 난
상담 받으러 왔다길래 현교수 집안엔 돈 없는 거 내가 아니까, 정
란씨 집안 쪽 돈인가부다 해서...
정란 ...
연희 아니 그럼... 현교수가 무슨 돈이 있어서 상담까지 받
구 그랬지? (속물) 저기, 슬쩍 물어봐봐. 어디 꿍쳐둔 돈 있나 없
나. 내가 봤단 말은 하지 말구.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현교
수가 재산 정릴 하려나분데, 어떻게 정리하는진 알아둬야 될 꺼 아
냐. 아니 뭐 얼마 있다고 정확히 액수를 밝힌 건 아닌데, 어쨌든 상
담은 받았대니까...
정란 (도대체 무슨 일일까?)
22. 작업실 (낮)
왈숙, 충격에 얼얼한 얼굴로 미연을 보고 있다.
미연은 맥놓고 있는 얼굴이고.
왈숙 (이내 충격을 접고) 야, 고미연 이거 강심장이네? 뭐
믿구 니가 먼저 물어봤냐? 속아주겠다는데 무슨 배짱으로 먼저 까
뒤집을라구 했어? 취했었니?
미연 안 취했어.
왈숙 근데? (철렁하며 혹시) 너... 태훈씨하고 끝낼라구 했
어? 그런 거야?
미연 (답답해 짜증) 그런 거 아냐.
왈숙 근데 얼굴이 왜 그래? 왜 골난 얼굴이야? 속아주겠다
는데 감지덕지하진 못할망정.
미연 (안쓰럽고 답답한) 따지고 들면 우리 사이 깨질가봐,
그거 겁나서 태훈씨 나한테 못 따져. 태훈씨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알기 때문에 왜 알면서 모른 척 하냐고 나도 못 따져. 우린 그냥
둘 다 속아주는 연기하면서 살아야 돼. 평생을.
왈숙 ...
미연 ... 그래두 태훈씬 나한테 끝가지 잘 할 거야. 끝까
지... 그게 태훈씨니까... 한 번 정주면 절대 안 거두는 사람... 못
거두는 사람... (지석이 생각에 더욱 애잔...) 마음 접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그거 내가 모르면 누가 알아...
23. 자산 운용사 앞 (낮)
정란이가 차에서 내려 운용사 건물을 올려다본다.
연희E 현교수가 투자 상담을 받으러 왔었다구 하더라고. 한
번 알아봐, 무슨 일인지...
24. 자산 운용사 / 홀 (낮)
태훈, 책상 앞에 서서 서류를 챙기다가,
창밖으로 정란이가 들어와 조심스레 들어와 주변을 둘
러보는 모습을 본다.
태훈, !! //플래쉬 컷:6부 엔딩에서 정란이 지석과 미연
이 탄 차를 보고 충격에 젖어 있던 모습.
제복을 입은 여직원이 정란에게 다가가고
정란 (어떻게 설명할가 조금 난감) ... 저희 남편이 여기 어
떤 분한테 투자 조언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 분 좀 뵐 수 있을
까 싶은데요.
여직 어떤 분한테 받으셨죠?
정란 성함은... 모르고요. (하다가 유리창 너머의 태훈을 본
다. 그 얼굴 위로)
여직 (E) 직함도 모르세요?
정란 (대수롭지 않게 태훈에서 시선을 거두고, 직원에게)
네.
여직 그럼 좀 곤란할 것 같은데요. 직원이 워낙 많아서.
그때 정란의 얼굴에서,
//플래쉬 컷: 5부. 마트에서 접촉사고로 만났던 태훈
과 정란.
정란, 이제야 생각난 듯 다시 태훈을 본다.
25. 자산 운용사 / 태훈 자리 (낮)
태훈의 앞에 앉아있는 정란.
정란은 태훈을 접촉사고 상대자로만 알고 있고, 느낌
이 좋은 남자였다.
대화 중반까지는 그 느낌으로.
정란 여기서 이렇게 뵐 줄은 몰랐네요. 차는 괜찮으세요?
태훈 흠집 쫌 난 건데요 뭐. 카센타 가기도 뭐한 수준이에
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정란 정말... 처음이었어요. 접촉사고 나고 그렇게 유쾌하
게 지나간 거.
태훈 (미소 후... 물어보기 겁나지만) 여긴 어쩐 일로...?
정란 ... (난감. 둘러대는) 요즘 다들 재테크다 뭐다 해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데, 전 어떻게 돈 관리를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
고... (어렵게) 저희 남편도... 여기서 어떤 분한테 투자 조언 받았
다고 해서요...
태훈 !! (현지석 얘기다...)
정란 (겸손) 뭐 상담 받을 정도로 돈이 많은 건 아닌데, 왜
받았나 궁금하기도 하고...
하다가 책상 위에 있는 태훈과 미연의 사진을 본다. 사
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그대로 보고 있는 정란. 태훈도 정란
의 시선을 느낀다. 정란은 지석이가 왜 여길 왔는지 감을 잡는다.
떨린다. 한참 말을 못하다가,
정란 (사진 보며) ... 아내 되시는 분인가요?
태훈 ... 네.
정란, 떨리는 숨이 터져 나온다. 서럽고 어처구니없어
눈에 눈물이 고인다. 얼른 고개를 숙여 눈물으 감추고. 태훈은 그
런 정란을 말없이 보는데,
정란 ... 혹시 현,지,석이라고 아시나요?
태훈 ... !!
정란 ... 상담하신 분 중에, 현지석이란 사람 있지 않았나요?
태훈 ... (어떻게 말할까...) 개인상담하는 데도 아니고... 일
일이 다 기억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정란 ...
태훈 ...
정란 ... (눈물 고인 채로, 웃으며) 그쪽도 착하신 분 같은
데...
태훈 ...
정란 (고개 숙이고) 나만 못 돼서, 나만 나쁜 사람이라, 내
가 뭘 크게 잘못해서 이런 일이 겪는 줄 알았는데...
태훈 ... (다 알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정란 (얼른 감정 추스르려, 웃으며) 좋으신 분 같애서요. 그
냥 고맙네요. 그때도 고마웠고... 고마워요. (눈물 나서 안되겠는
지 얼른 가방을 챙겨 일어난다) 실례했습니다. (돌아서 가는데)
태훈 (일어나) 다, 잘 될 겁니다.
정란 (!!, 돌아서서 본다)
태훈 ... 무슨 일이신진 잘 모르겠지만... 다 잘 될 겁니다.
정란, 희미한 미소를 보이곤 돌아서 간다.
태훈, 멀어지는 정란을 보다가... 묵묵히 시선이 내려
진다.
천천히 자리에 앉는다. 시선을 들어 책상 위의 사진을
본다.
미연이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26. 원룸 복도 앞 (밤)
문이 벌컥 열리면 안에서 왈숙.
덕구, 넥타이를 목에 걸고 있는.
왈숙, 통째로 깨물어 먹던 사과를 든 채로 빼꼼히 현관
문을 열고 서고.
덕구 안 주무셨나 봐요?
왈숙 잘라구요.
덕구 아 예... 저기... 혹시 (목에 걸린 거 가리키며) 넥타이
멜 줄 아세요? 내일 중요한 발표가 있는데, 맬 줄을 몰라서... 괜찮
으시면 안에 들어가서 좀... (하는 표정에서)
27. 왈숙 원룸 (밤)
왈숙, 사과 먹으며 침대 위에 발랑 올라 앉아 덕구를
빤히 보고 있다.
덕구,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서 시선을 피하고 있다.
덕구 (머쓱해서 얼른 넥타이 집어 들고) 저기... 넥타이는 어
떻게 매는...
왈숙 (OL) 넥타인 개뿔. (하면서 다 먹은 사과 심지를 그 자
리에서 개수대로 휙 던지고)
덕구 !! (겁먹는다)
왈숙 나 눈치 대따 빠르거든요. 용건이 뭘까아? 왜? 잠이
안 와요?
덕구 예? (차라리 그쪽이 낫겠다) 예...
왈숙 나 좋아해요?
덕구 예. (정신 차리고 얼른) 아뇨아뇨. 아뇨...
왈숙 (빤히 보다가) 나 좋아하는데 뭐.
덕구 (손 저으며) 아녜요 아녜요. 진짜 아녜요.
왈숙 그렇게 너무 펄쩍 뛰면 기분 나쁘고오. (침대에서 내려
오며) 뭐 넥타이 때문이라고 끝까지 우기면, 별 수 없지 뭐. 넥타이
나 매죠 뭐. (덕구 앞에 앉아 넥타이 들고) 이렇게 해봐요.
덕구 (쑥스러운 듯 고개를 내밀어주고)
왈숙 (매며) 넥타인 길이 다 똑같이 나와요? 목 굵은 사람
들 껀 더 길어줘야 되는 거 아닌가? 이게 아닌가... (다시 하고)
덕구 (슬쩍 침대 위 노트북 보며) 글은... 집에서 써요?
왈숙 아뇨. 작업실에서 해요.
덕구 (어설픈 연기) 와, 작업실도 있어요? ... 어딘데요?
왈숙 종로 쪽이요.
덕구 나도 종로... 거기 자주 가는데.
왈숙 그래요?
덕구 종로 어디에요?
왈숙 운현궁 쪽에 이양원 빌딩이라구 있어요.
덕구 이양원 빌딩? (모른다) 아... 그... 그... 빌딩! 알죠.
건물에서 일해요?
왈숙 (넥타이를 메다가 문득 손동작 멈추는 그 표정 위로)
덕구 (E) 아아... 그랬구나. 몇... 혼데요?
왈숙 (휘릭) 현지석 그 인간이 알아봐 달래요?
덕구 (떠덩) 에?
왈숙 맞구만.
덕구 저기... 그게요...
왈숙 (넥타이 잡고 일어나며) 참 나... 미연이 작업실은 알아
서 뭐하게?
덕구 (딸려 일어나며) 일단... 이것은 놓으시고...
왈숙 (잡아채며) 이봐요, 박덕구씨. 당신 방자야??
덕구 켁켁켁... 아닌데요...
왈숙 (꽥) 내가 향단이로 보여?
덕구 아뇨...
함과 동시에 왈숙에게 목이 잡힌 채로 침대로 같이 쓰
러지고 뒹굴고 일어나고.
덕구 (다 죽어가는) 일단 이건 놓으시고, 컥!
덕구, 왈숙의 손에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고.
28. 원룸 복도 (밤)
덕구, 목에 넥타이 조여 맨 채로 켁켁거리며 문을 확
열고 도망가려는데,
뒤춤을 왈숙에게 잡혀 있고
왈숙 (E) 이리 안 와? 어딜 도망 가?
덕구 (있는 힘껏 빠져나와 도망가는데, 신발도 하나만 꿰었
다)
왈숙 (덕구의 힘에 휙 딸려 나오다가 나뒹굴고, 크게) 한번
만 더 와서 수작 부리면 죽을 줄 알어!! (씩씩대다가 현관을 보곤
신발 한짝을 마저 들고 나와) 니가 응 (힘껏 던지며) 신데렐라냐--
-?
29. 대학 / 지석 연구실 (다음날, 낮)
단정히 넥타이 매고 있는 불쌍한 얼굴의 덕구.
어처구니 없어하며 보고 있는 지석.
지석 (한심) 넥타인 왜 매고 왔냐?
덕구 ...
지석 나오다가 그 여자 마주칠까봐?
덕구 (머쓱)
지석 거짓말인 거 다 들통 났는데 뭐하러? 속 터진다 진짜.
시키지도 않은 일은...
덕구 (뿌한) 니가 미연이랑 연락 안된다고 그래서... 그래도
종로라는 건 알아왔잖아.
지석 (답답) 건 나두 알어 임마!
덕구 ...
지석 (한숨 쉬는데)
덕구 (그래도) 운현궁 근처에 이양원 빌딩인가 뭔가 그랬는
데...
지석, 그 말에 뭔가 생각나는 눈빛. 불현듯 일어나 확
나간다.
덕구, 의아하게 보다가, 넥타이에 서선 꽂히자 홱 넥타
이를 푸는.
30. 갤러리 건물 앞 (낮)
지석, 길 건너편에서 기막힌 얼굴로 건물을 보고 있
다. 빌딩 간판이 보인다.
정란이가 운전을 해서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지석, 막다른 길에 도달한 듯 그냥 그렇게 서 있는데,
미연이가 그 건물 입구에서 나온다. 지석, !!
미연은 땅만 보며 신호등을 건너온다. 건널목 끝엔 지
석이가 기다리고 있는데, 거의 다 건너와서 지석을 보고 멈춰서는
미연.
지석 !!
미연 !!
지석 ... (엷은 미소) 살아있었네?
31. 자산 운용사 / 화장실 (낮)
태훈, 소변기 앞에서 일을 보고 돌아서는데,
들어오던 최팀장과 눈이 마주친다. 껄끄러운 시선.
최팀장, 무시하는 얼굴로 소변기 앞에 서면, 태훈이 조
용히 나가려는데,
최팀 사고쳤대매? 여자 사고?
태훈 !! (돌아선 채로 가만)
최팀 소문이 그렇게 돌더라고. 사고쳐서 와이프 달래줄라
구 미국 갈라구 근다구. 근데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열받은 와이프
가 남편을 왜 쫓아가? 남편이 바람난 와이프 단도리할라구 억지로
데꾸 가는 거면 몰라두. ...와이프가 바람 난 거 아냐?
태훈, 조용히 울분이 올라온다.
최팀장, 볼 일을 끝내고 돌아서서 나가려는데,
태훈, 한손으로 최부장의 멱살을 잡아챈다.
의외의 행동에 놀라서 꼼작 않는 최부장.
태훈은 한손으로 멱살을 잡고 나머지 한손은 주먹을
꽉 쥔 채로 떨기만 한다. 차마 때리진 못한다. 잠시 후, 그냥 멱살
쥔 손의 힘을 푼다. 최팀장, 기막혀 하며 허둥지둥 나가고, 고개 숙
인 태훈의 모습에서.
32. 운현궁 (낮) -날 변화 될 수 있게, 해질녘이나 밤이면
좋을 듯.
미연, 벤치에 앉아 말없이 있다.
지석, 굳은 얼굴의 미연을 보며 히죽거리며 보다가,
지석 안 추워? 뭐 마실래?
미연 아니.
지석, 분위기를 풀려고 발아래의 납작한 돌을 주워들
고 이리저리 보다가,
일어나서 허리 숙여 멀리 던지는 흉내.
지석 이거 뭐라 그러지? 사방치긴가? (가슴팍에 납작한 돌
을 얹고 허리를 뒤로 젖혀 종종종 걸어가는) 이거... 사방치기 맞
지?
미연 ...
지석 (깽깽이 발로 돌을 조금씩 차며 밀어가는) 이건 뭐지?
이런 거 뭐 있었는데... (돌을 집어 들고) 저 세상 가서 암기력 시
험 볼 것도 아닌데, 갑자기 무지하게 외워댄다. 이건 뭐였지, 저건
뭐였지... 그냥 다 아쉬워.
미연 (애잔한데)
지석 (미연의 어깨에 손가락을 콕 꽂고) 이건 뭐였지?
미연 ... !!
지석 (장난이었는데, 감정이 인다. 손가락 꽂은 채로 아쉽
게 보며) ...이건 뭐였지?
미연 ... !!
지석 ... 뭐길래 미친놈처럼 이렇게 찾아 헤맬까?
미연 ...
지석 ... 뭐 땜에 못 잊는 걸까?
미연 ............ 처음이었으니까. 둘 다한테.
지석 ... !!
지석 그럼 딴 여자가 첫사랑이었으면 그 여잘 못 잊었을라
나...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미연 ...
지석 왜 하필 이렇게 오랫동안 너인지 잘 모르겠다. 죽기 전
엔 알려나...
미연 ...
지석 (분위기 바꿔서, 고궁을 보며) 좋다... 한국... / 아마
두 미국에서 암이란 소리 들었으면, 막막해서 미치고 팔딱 뛰다가
지레 죽었을 거야. 여긴 니가 있으니까, 한 시간 후에 죽는다그래
두 막 달려가서 니 앞에서 쓰러져 죽으면 되니가, 그렇게 생각하
면 쫌 위안이 돼. 한국 땅덩어리 좁은 게, 이렇게 고마울 줄 몰랐
다.
미연 ...
지석 부담 줄라고 하는 말 아냐. 이젠 살잔 말 안 할게. 만나
만 줘. 손도 안 잡을게. 그냥 봐주기만 해.
미연 ...
지석 애들도 혼자 잘 놀다가두 엄마만 눈에 안 보이면 울드
라. 그거하고 똑같애. 같이 놀아다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봐줘. 울
지 않게 봐줘. 불안하지 않게 봐주기만 해.
미연 ...
지석 나 혼자 노는 것도 봐줄만 해. 재밌어. 너 보여줄라고
연습한 것두 많아. 요즘 새롭게 개발한 거, 딱따구리 성대모사...
들어볼래? (김경식의 딱따구리 성대모사) 에에에헤에--.
미연, 웃음과 슬픔이 동시에 와락.
지석, 미연의 눈물에 자신도 짠해진다. 하지만 밝음을
잃지 않으려,
지석 ... 비슷해? (미연을 보다가 고궁을 향해 한번 더) 에에
에헤에--.
미연은 그런 지석이가 안타깝고 사랑스럽고.
공원에 울리는 지석의 딱따구리 소리.
(F.O)
33. 자산 운용사 (낮)
영화, 복도에 난 의자에 앉아있는데,
태훈, 회의실에서 나오다가 영화와 마주친다.
컷 튀면, 자리에 앉아있는 두 사람.
영화 (낮게) 이번에도 병원 가서 올케한테 별 문제없다 그르
면, 너 혼자 슬-쩍 가서 검사 한번 받아봐.
태훈 누나.
영화 (OL) 내 말 들어. 요즘 젊은 부부들 애 없어도 자기들
만 좋으면 그만이랬지만, 그거 아니다. 애 있는 거하고 없는 거하
고 부부 사이 많이 달라. 니들이 애를 얼른 낳아야 내가 맘이 좀 노
일 꺼 같애. 태훈아, 응?
태훈 ...
34. 백화점 (낮)
왈숙, 전화통화하며 건성으로 옷을 훑는다.
왈숙 축구 중계 땜에 방송 죽는대. 박 터지게 회의 하러 갔
다가 이게 왠 횡재냐? 쇼핑 나왔어. 어디야? 작업실 갈라구?
하다가 어떤 남자와 살짝 부딪히고, 서로 가볍게 목례.
왈숙 착한 남편 만난 걸 다행으로 알고, 이쯤에서 끝내라.
더 이상 끌다간...
의례적으로 부딪혔던 남자의 동선을 따라 시선이 가는
데, 그 남자와 일행으로 보이는 다정한 여자1에게 시선이 꽂힌다!!
왈숙, 그대로 표정 굳어 버린다. 저 여자...!! 남자와 행복해 보이
는 여자1.
35. 백화점 화장실 (낮)
왈숙, 세면대 잡고 고개 숙이며 진정하려 애쓴다. 그
때, 그 여자1이 아무생각 없이 들어온다. 여자1, 아무렇지 않게 자
신의 옆에서 화장을 고친다.
왈숙, 고개를 천천히 들어 여자를 본다.
여자1, 뒤늦게 왈숙을 보고 그대로 정지한다.
여자1, 뭐라 말을 붙여야 하는지 미적대는 분위기.
왈숙 (한참 보다) 바람피나 봐요?
여자1 ...
왈숙 남의 눈에 피 눈물 뽑고 남자 뺏어 갔으면 잘 살아줘
도 원통할 텐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래?
여자1 ... 저... 재혼 했어요.
왈숙 !! (처음엔 놀라고, 다음엔 기막힌다) 왜? 살아보니 별
루야?
여자1 ... (대답 못한다)
왈숙 ... (시니컬하게 보는데)
여자1 ... 모르셨어요?
왈숙 ??
여자1 그이... 죽었어요.
왈숙 !!
여자1 교통사고로.
왈숙 !! (멍-- 머릿속이 정지한다)
36. 갤러리 (낮)
앉아있는 지석모 앞에서 여직원이 고개를 조아리고
서 있다.
지석모 (궁시렁) 하튼 붙어있는 꼴을 못봐요. (기다릴 기세로
앉으며) 차나 한잔 줘 봐요.
여직 박실장님 언제 들어오실지 모르는데.
지석모 대놓고 가라고 등 떠미네?
여직 아녜요. 녹차, 커피, 뭐 드릴까요?
그때 지석모의 핸드폰 벨이 울리고.
지석모 (전화 받으며) 커피요. 찐하게.
여직 (목례하고 아웃)
지석모 여보세요? 어. 나왔다가 혜진 에미 보러 잠깐 들렀어.
하다가 창밖에 시선이 닿는다. 미연이가 유리창 앞을
지나간다.
지석모, 어서 많이 본 사람인데 하는 느낌으로 미연을
힐끗거리며 통화한다.
지석모 혜진 에미랑 친한 사람이 은행 부행장인가 뭔가 그르
태잖어. 소개받아서 돈 튀길 방법 좀 알아볼라 그러지. 전세금 뺀
거 있잖어.
37. 갤러리 앞 (낮)
미연, 작업실로 가기 위해 갤러리 통 유리창 앞을 지나
다가,
멈춰서 유리창을 통해 안에 부쳐 놓은 포스터를 본다.
상단에 크게 'San Francisco MOMA(샌프란시스코를 크게 쓸 것)'
라고 쓰여 있는 포스터...
*포스터의 대략 내용 : San Francisco MOMA 소장
현대 사진 걸작선, 서울 나들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진 컬렉
션의 하나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사진 특별
전.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사진의 정수를 만나는 기회
38. 갤러리 (낮)
지석모, 창밖의 미연을 보며 통화하는.
지석모 (액수를 숨기고픈) 얼마는... 얼마 안 돼, (하다가 생각
난 얼굴)
#플래쉬 컷 : 4부. 미연을 패악질 하던 지석모. 어디 붙
어먹을 남자가 없어서!
#플래쉬 컷 : 8부. 우연히 마주친 지석모와 미연. 혹시
나 모르우?
지석모, 놀라 기절하겠는데 미연이가 유리창에서 물러
서 지나간다.
39. 갤러리 / 엘리베이터 안과 밖 (낮)
덤덤히 시선 내리고 있는 미연의 얼굴에서 엘리베이
터 문이 스르륵 닫히는데!
갑자기 하나 손이 쑥 들어와 문을 막는다. 미연, 놀라서
보면, 지석모다.
지석모 (떨리는 분노) 맞지? 제주도 고미연?
미연 !! (공포에 질린)
지석모, 미연을 확 잡아끌어낸다.
40. 엘리베이터 밖 (낮)
미연, 얼어붙은 채 서 있는데,
지석모, 한쪽 구석을 몰아가며 부들부들 떨며 낮게 으
르렁거린다.
지석모 (현관에 누가 오나 안 오나 의식하며) 이이! 감히 여기
가 어디라구! 이딜 기웃거려?
미연 !!
지석모 (거의 때리기 직전) 우리 지석이 애비 잡아먹고, 멀쩡한 남
의 집안 말아먹은 년이! 내 자다가도 니년만 생각하면 이가 갈려.
여기가 어디라고! 또 우리집안 말아먹을라구 왔냐, 또? 이이이 씨
를 말릴 고씨 종자들... 너 행여 우리 지석이한테 허튼 수작 부릴
생각이면, 맘 고쳐먹는 게 좋아. 이번엔 내 그냥 안 둬. 알아들어-
?
공포에 질려 꼼짝도 못하는 미연.
지석모, 강하게 한번 노려본 후 쌩하니 돌아서 허위허
위 간다.
41. 작업실 (낮)
미연, 들어와 떨리는 손으로 문을 잠근다.
물을 따르는데 너무 떨려 제대로 따를 수가 없다.
마시기를 포기하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는 미연.
42. 지석집 / 서재 (낮)
방문이 반쯤 열려져 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지석의 외투며 가방이 바닥에 대충 떨어져 있다.
지석, 책상 아래에서 무릎 꿇고 쪼그려 앉아 남방의 앞
섶을 풀어헤치고,
고통이 밀려와 떨리는 손으로 패치를 뜯어낸다.
병찬E 이젠... 약만으론 버티기 힘들꺼야... 그때 부쳐.
그때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
43. 지석집 / 거실 (낮)
지석모, 전화를 하며 들어오는데 아직도 살 떨린다. 주
방으로 직행하며,
지석모 아 못 알아들어? 고미연 그 기지배 봤다구, 제주도 그
기지배!
#서재에서의 지석의 표정
지석모 (물을 마시고, 애닳아) 아우, 고년이 왜 혜진 에미 사무
실은 기웃거려 왜애? 또 뭔 짓을 할라구? (다시 분노) 내가 가만 뒀
겠냐? 다신 얼씬도 못하게 반 죽여놨지?
44. 지석집 / 서재 (낮)
지석, 고통에 충격에... 몸을 가누기 힘들다.
지석, 행여 신음소리를 지석모가 들을까 숨을 죽인다.
힘겹게 가슴에 패치를 부친다.
패치를 부치고는 양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몸을
새우처럼 구부린다.
바닥에 머리를 대로 으-- 낮게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
는 지석.
미연이 생각에, 고통에, 눈물이 난다.
45. 거리 일각 (밤)
벌건 눈으로 휘청거리면서 핸드폰을 하며 걸어오는 지
석.
신호음이 한참 가다가,
소리 (F)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지석, 핸드폰을 접고 걷는데, 숨이 차는지 허리를 숙
여 무릎을 짚는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면 멀리 택시가 온다. 후
룩 도로로 내려가 손을 든다.
지석 택시!
지석, 택시를 집어타고... 지석이가 탄 택시가 쌩하니
달려 나가고.
46. 미연집 / 거실 (밤)
택배용 운동화 박스 풀어 헤쳐져 있고.
소파에 앉아있는 미연에게 운동화를 신겨줘 보는 태
훈.
미연은 초췌한 얼굴로 태훈을 내려다보고 있다.
태훈 (시선은 운동화에만) 낼부터 아침에 나랑 공원 나가.
오래 데꾸 살려면 억지로 끌고 나가서라두 운동시켜다지 별 수 있
어? 둘 다 몸 만들고... 그 다음에 애기 갖자... (신발 앞코를 눌러
보며) 좀 큰 거 같은데?
미연 (가만히 그런 태훈을 본다)
태훈 양말 신으면 괜찮을라나?
미연 우리...
태훈 (올려다보면)
미연 샌프란시스코... 가버릴까?
태훈 !!
미연 다 잊구.. 그냥 가버릴까...
태훈 ...
미연 응?
태훈 ... (덤덤) '가버릴까' 가 아니고, 확실히 결심 서면 말
해.
미연 ...
태훈 (짐짓 밝게) 세탁기 다 돌아간 거 같은데? (빈 박스를
챙겨 일어난다)
미연 ...
47. 원룸 복도 (밤)
왈숙이 사는 2층 복도다.
덕구는 지석의 뒤에서 허리를 잡고 필사적으로 막고,
지석은 뿌리치고 앞으로 전진하려는 분위기.
지석 아 놔봐아 조옴!
덕구 너 그 여자한테 잘못 걸리면 죽어. 야구 빠따 들고 휘
둘러 마.
지석 (한풀 꺾인 듯) 아이씨이... 아 알았어 알았어.
덕구 (데리고 가며) 그래, 나중에 기회 봐서 천천히... (하는
데)
지석, 덕구를 쫓아가는 듯하다가 냅다 왈숙의 현관문
으로 돌진해 벨을 누른다.
덕구, 야! 기겁하며 지석을 잡아채고 다시 실갱이.
덕구 야!
지석 (잡힌 채로 버둥대며 문을 두들기는) 이봐요! 아가씨!
이쁜 아가씨! 나 좀 잠깐 봅시다! (덕구에게) 아 놔봐아 좀!
그때 철컥 문 여는 소리가 난다. 어디가 아픈지
완전히 초토화 된 얼굴. 울었는지 어쨌는지 눈도 빨갛고, 기운도
하나 없어 보인다.
지석 !!
덕구 !! (괜히 주눅 들어 회피하고 싶고)
48. 원룸 계단 (밤)
지석, 창밖을 보고 서 있다.
왈숙의 상태를 보자 전투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지석 맞아죽을 각오하고 찾아왔는데... (돌아보며) 어디 아
파요?
왈숙은 잠바를 뒤집어쓰고 벽에 머리를 기대로 계단
에 쪼그려 앉아있다.
덕구는 저 위에서 어정쩡하게 숨어 눈치만 보고 있고.
지석 미연이 전활 안 받아요. 안 좋은 일 당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어디까지 당했는지...
왈숙 (처연한 얼굴)
지석 죽었는지 살았는지... 목소리만이라도 들어야 안심이
될 꺼 같은데...
왈숙 (주머니에서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지석에게 내민다)
지석 !!
왈숙 자요. (시선은 안 주고)
지석 !!
49. 미연집 / 베란다 (밤)
빨래를 널던 중이었던 미연, 영화가 떠 준 그 파란 스
웨터를 손에 들고 있다. 형편없이 쪼그라들어 못 입게 된 스웨터
를 애잔하게 보는. 거실에서 저 안에서 젖은 빨래를 마저 들고 나
오던 태훈, 멈춰 서서 그런 미연을 보고 있다.
50. 미연집 / 거실 (밤)
태훈, 서서 아주 작아진 스웨터를 머리에 끼워 내리느
라 얼굴이 기이하게 늘어지고, 그걸 보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웃
는 미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미연 못 입어. 삶은 세탁 돌려서 안 돼.
태훈 (그래도 어떻게든 내리려하고)
미연 (웃으며) 안돼애.
태훈 (간신히 입까지 내리고) 늘려서 말리면 돼. 이 옷 땜에
당신 만났는데... (이젠 팔을 끼우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우스꽝스
럽다) 누나가 똑같은 거 떠줘서... 이거 인연으로 만나나 건데... 못
버려.
미연, 옷의 의미에 집착하는 태훈이가 슬프기도 하고,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해서 눈물을 흘리며 웃는데, 미연의 핸드폰
이 진동으로 울린다. 미연, 액정을 보면, INS// 핸드폰 액정 : 김왈
숙... 미연, 핸드폰을 받으며 태훈을 보는데, 더욱 우스꽝스러워진
태훈의 모습.
미연 (태훈의 모습에 간간히 웃으며, 핸드폰 귀에 대고) 빨
래 잘못해서 줄어든 옷, 세탁소 갖구 가면 늘려주나? (어떻게든 팔
을 끼워 넣으려는 태훈을 보며 웃으며) 아 안 돼...
51. 원룸 계단 (밤)
굳은 얼굴로 핸드폰을 들고 있는 지석.
왈숙과 덕구는 자리를 피해준 상황.
미연 (F) 태훈씨, 나랑 첨에 만났을 때 입었던 옷, 세탁 잘못
해서 완전히 손바닥 만해졌는데, 입어서 늘린다구 난리야.
태훈 (F) 이게 어떤 옷인데.
미연 (F, 웃으며 태훈에게) 태훈씨... 그러다 찢어져... (왈숙
에게) 이거 세탁소 갖다주면 늘려줘?
지석, 조용히 핸드폰을 내린다.
52. 원룸 앞 (밤)
지석, 원룸 앞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덕구, 손에는 왈숙의 핸드폰을 들고, 뒤늦게 후다닥 뛰
어 나와 서서
덕구 (소리치는) 늦었는데 자구 가아! (대답 없다) 얌마--!
지석, 말없이 간다. 점점 멀어지는 지석과 덕구간의 거
리.
걸어가는 지석의 뒷모습에서.
53. 어느 담벼락 (밤)
지석, 갈 곳 없는 사람처럼 벽에 기대어 서 있다.
씁쓸하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고. 입을 쓸어내리고,
하늘을 본다.
하... 긴 한숨이 터져 나오면서 미소.
지석 다행이다... 행복해서...
(F.O)
54. 지석집 / 서재 (낮)
(BGM) 지석, 덤덤한 얼굴로... 책상 서랍을 바닥에 꺼
내놓고, 박스들도 다 꺼내놓고, 돈 될만한 통장들과 보험증서를 책
상 위로 골라낸다. 서류철 사이에 끼어있던 낡은 사진도 골라낸
다. 죽음을 통보받으면 진작했어야 되는 일인데, 미연이한테 마음
을 놓게 되면서, 이제야 한다. 커다란 박스 뚜껑을 열면, 수학정
석, 성문영어, 때묻은 영어사전 등등... 그러다가 94년도 고3 국어
교과서를 본다. 겉표지엔 3학년 2반 현지석. 안을 보면 책 모서리
에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앉아있는 그림(상체만)이 어설픈 솜씨로
그려져 있다. 이게 뭔가 싶은 얼굴. 뒤를 한 장 넘겨본다. 역시 비
슷한 그림이다. 이제 생각난 얼굴. 그대로 가만...
55. 지석집 / 침실 (낮)
정란, 화장대 앞에 앉아 루즈를 칠하고 있는데, 화장
대 위에 놓이는 집문서 보험증서 통장들... 지석이가 놓았다. 그걸
보는 정란.
지석 아무리 뒤져봐도 남길 게 이거 밖에 없네.
정란 ...
지석 미안해...
지석이 나가면,
정란, 문서와 통장들을 보다가... 울컥 눈물이 난다.
화장을 하고 있는 내 처지...
56. 지석집 / 서재 (낮)
지석, 책상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아 그 고3 교과서
를 본다. 한손으론 책등을 쥐고, 한손으로 책갈피를 후루룩 넘겨본
다. 동영상처럼 흐르는 그림. 눈을 감은 남녀가 고개를 옆으로 맞
대더니 마주 보고 뽀뽀한다. 뽀뽀하고 있는 마지막 그림에서 남자
애 밑에 '현지석', 여자애 밑에 '고미연' 이라고 써있다. 미소와 눈
물... 다시 한 번 후루룩 넘겨본다. 그렇게 그림을 보고 있는 지석
의 모습 위로,
남자 (F) 저번에 주문하신 냉장고요, 오늘 두시에 배달 가는
데 그때 있으세요?
57. 자취방 앞 (낮)
자취방 건물을 배경으로 천천히 프레임 인되는 지석.
애잔하게 물끄러미 올려다본다.
58. 자취방 (낮)
설치를 끝낸 일꾼 두명이 빈박스를 챙겨 나가고, 지석
과 관리인이 있다.
일꾼1 (나가며) 한 시간 동안은 냉장고 키시면 안 됩니다.
지석 수고하셨습니다.
관리 바루 이사 들어올 줄 알았드니, 뭔 일 있었는감? 밤에
요 앞에 있는 가로등 땜에 잠 안 오믄 꺼달라고 하믄 꺼줘.
지석 낮에만 있을 거에요.
관리 사무실로 쓸라구하는 구먼. 이 건물 사무실로 쓰는 사
람들 많어. 저런 건 분리수거 허고. (나가는) 수고혀.
지석 예. 가세요.
지석, 방을 휘 둘러보다가... 창밖을 본다. 지치고 쓸쓸
한 얼굴.
59. 원룸 복도 (낮)
미연, 죽이 든 쇼핑백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전화
통화를 한다.
미연 예 형님...
영화 (F) 오늘 병원가기로 한 날인 거 알지?
미연 (올라가던 걸음이 멈춰진다. 이내 다시 올라가며) 예,
아녜요. 시간 맞춰 갈게요.
60. 왈숙 원룸 (낮)
왈숙, 문 열어주고 침대로 와 뻗어 눕는데 완전히 초토
화된 얼굴이다.
미연, 죽이 든 쇼핑백을 들고 들어온다.
미연 많이 아퍼? 약은?
왈숙 (반쯤 눈감고 가만)
미연 (침대 모서리에 앉아 보다가) 혼자 보기 아깝다... 얼굴
은 땡땡이 부어갖고... (겉옷 벗으며) 일어나. 먹고 기운 차려. (쇼
핑백에서 죽을 꺼내는)
왈숙 (힘들게 일어나 앉아 코 풀며) 당황스런 시츄에이션이
겠다? 족칠라구 왔는데, 내가 싸매고 누워 얼굴 땡땡이 부어있어
서?
미연 (무슨 뜻인지 몰라 힐끗 보고 계속 밥상 차리는)
왈숙 열나서 제정신 아니라서 현지석 그 인간한테 핸드폰
빌려준 거 아냐.
미연 ?? (동작 멈추고 왈숙을 보는)
왈숙 정말 유치뽕짝인 대사지만... (죽은 애인 생각에 목 메
인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아직은 살아있
는 사람 소원 못 들어주겠나 싶어서... 그래서 핸드폰 빌려준 거야.
미연 !! (그럼 어제?)
왈숙 그러드라. 죽었나 살았나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은데,
답답해 돌아버리겠다고.
미연 (주루룩 힘이 풀린다. 테이블에 앉는다)
왈숙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는 거, 미치고 팔딱 뛰다가 심장
터져 죽을 거 같은 거, 알아... 이 미치겠는 감정이 도대체 어디에
숨었는지, 머리를 열어봐야 끄집어 낼 수 있는지, 심장을 제껴봐
야 끄집어 낼 수 있는지, 미치겠어서 꺼내 버리고 싶은데, 몰라, 어
디 박혔는지. 그 심정을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냐... 그래서 핸드
폰 내준 거야.
미연 ... (고개 숙이고 암담해 하다가, 언성 높여) 그걸 왜 이
제 얘기해-?
왈숙 ... (미연의 반응이 의외고) ... 몰랐던 거야?
미연, 다시 옷을 챙겨 입고 가방을 챙겨들어 나가는
데,
왈숙, 보다가 울컥하는 얼굴로.
왈숙 옘비... (크게) 지금 내 머리도 미친년 꽃다발이거든!
사랑은 이쁜 것들만 하는 줄 알어--?
왈숙, 얼굴이 일그러지며 울컥 눈물이 쏟아진다.
61. 원룸 계단 (낮)
미연, 거칠게 계단을 내려오는데 전날 통화중의 자신
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미연 (F, 웃으며 태훈에게) 태훈씨... 그러다 찢어져...
순간 허리가 확 굽어지면서 난간을 잡고 왈칵. 아주 짧
게.
얼른 감정 재정리하고 내려간다.
62. 원룸 앞 (낮)
#미연은 후회와 자책으로 거칠게 나오는데, 그대로 굳
어서 멈춰선다. 지석이가 땅만 보며 걸어오고 있다. 뒤늦게 지석
도 미연을 보고. 지석, 잠시 표정 없는 얼굴이었다가 이내 엷은 미
소를 보여준다. 지석, 온순하고 예의 바르게 말하는데 왠지 쓸쓸
한 분위기.
지석 선배네 왔다 가는 거니?
미연 ...
지석 ... 가아. 운전 조심하고.
미연 ... (발걸음을 떼고, 지석을 지나쳐 가려는데)
지석 (OL) 작업실,
미연 !!
지석 마땅한 곳 없으면, 옛날 니 자취방... 거기 써.
미연 !!
지석 밤엔 아무도 없으니까, 써도 돼.
미연 ...
지석이가 먼저 발걸음을 떼서 지나간다.
미연, 지석을 등지고 천천히 차로 가는 얼굴.
지석이가 안쓰럽고 안타깝고...
63. 덕구 원룸 (낮)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에서 돌돌 말은 종이 뭉치를 덕
구에게 떠안기는 지석.
덕구 뭔데?
지석 냉장고에 사니까 주드라. 나도 맘엔, 드는데, 별 필요
없을 거 같애서. ... 그림 죽이드라. 간다.
지석이 나가고, 그걸 펼쳐보면 2007년도 달
력...
덕구, 먹먹한 얼굴로 달력을 보고 있다...
64. 원룸 앞 (낮)
원룸에서 나와 쓸쓸히 걸어가는 지석...
65. 병원 / 산부인과 층 (낮)
산부인과 팻말이 보이고,
대기석에 앉아 있는 미연, 지석이 생각에 빠져있다.
66. 동 / 입구 (낮)
영화, 허둥지둥 계단을 올라와 눈으로 산부인과를 찾
는다. 찾고 그쪽으로 허위허위 움직인다.
67. 동 / 산부인과 층 (낮)
산부인과 대기석. 어린 아기를 포대기에 안고 생각에
빠져 있는 미연의 앞을 지나치던 30대 후반의 여자, 다시 돌아와
힐끗 미연을 본다.
여자 저기... 혹시...
미연 (고개를 든다)
여자 (확인하고 반색) 어머, 맞죠? 옛날에 **동 원룸에 살
던... 맞죠? 나, 앞집에 살던 신혼부부. 기억 안나요?
미연 !! (일어선다)
여자 어머 이게 얼마만이야? 한 십년만인가? 아우 알콩달
콩 학생 부부 사는 모습 진짜 보기 부러웠는데.. 그때 그 잘 생긴
신랑은 잘 있어요? 애기는?
그때 미연의 시선에 한쪽에 굳어 서 있는 영화가 들어
온다.
미연 !!
영화 !!
영화, 미연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충격에 멍하니
앉아있다.
여자, 미연과 영화 사이에 오가는 기류에 먼가 이상함
을 감지하고.
여자 담에 또 봐요... (허둥지둥 간다)
미연, 꼼짝도 하지 못하고 영화를 보고 있는.
영화, 뒤돌아서는데 순간 휘청한다.
미연, 형님! 하며 얼른 부축하는데,
영화, 미연이가 잡은 손을 조용히 뺀다.
충격에 텅 빈 얼굴로 그 손을 보는 미연.
영화 내가... 일이 있는 걸 깜빡...
말을 맺지 못하고 허위허위 걸어간다.
벽을 짚으며 가는 영화의 뒤로, 먹먹한 얼굴로 서 있
는 미연.
간호사가 미연을 보며 뒤에서 호명하나, 아무 것도 듣
지 못하고 그대로 있는 미연.
간호 고미연씨! ... 고미연씨!
#미연이 넋 놓고 앉아있는 모습에서, 스텝 프린팅으로
사람들이 휙휙 빠르게 지나가고... 나중엔 아무도 없이 혼자 앉아
있다.
68. 자취방 (밤)
지석, 창가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사이드 테이블엔 읽다만 책('뇌혁명')
이 펼쳐진채로 엎어져 있다.
69. 미연집 앞 (밤)
미연, 불 켜진 자신의 집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다.
태훈E 어디야? 늦어?
미연, 처연한 미소로 올려다보다가,
미연 ............. 이젠... 다 끝났어.
이내 고개를 숙인다.
70. 자취방 복도 (밤)
지석, 빈박스류를 접어들고 현관문을 나와 잠그려고
열쇠를 꽂으려다가... 잠그지 않고 그냥 돌아선다. 미연이가 올지
모르니까. 복도를 걸어가는 지석.
71. 자취방 건물 앞 (밤)
분리수거함이 쪼르르 있고, 그 옆에 쌓인 폐지쪽에 박
스를 얹어놓고 돌아서려는데,
지석, 분리수거가 되지 않은 채 비닐봉지에 빈캔이 담
겨져 있는 것을 본다.
컷 튀면, 계단에 쪼그려 앉아 멀리 있는 분리수거 통
에 캔을 던져놓고 있는 지석.
옆엔 빈캔이 담긴 비닐봉지가 있고.
몇 개는 정통으로 들어가고, 한 개는 옆으로 떨어지
고.
그렇게 혼자 있는데, 잠시 후, 한곳에 시선이 닿으면
서 동작 정지.
그쪽을 보면, 미연이가 걸어오고 있다. 미연, 지석을
보고 멈춰 섰다가,
지석이 앞에 뚝 떨어진 곳에 앉는다.
지석 !!
미연 (엷은 미소)
지석 !!
미연 .......... (엷은 미소) 미안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지석 !!
미연 .......... 놀아(라)......... 지켜봐줄게......
눈물이 차오르면서 미소가 번지는 지석. 역시 눈물이
차오르는 미연. 그렇게 뚝 떨어져 마주 앉아서, 그렁그렁한 눈으
로 미소를 띠며 서로를 보는 모습에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