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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 35
#.1 씬. 강석의 사무실.(낮)
34회 연결 상황에서, 문 벌컥 열리고, 천갑 화가 나서 들어오는.
태영 : (인사하는)
강석 : (앞으로 나서며) 나오셨어요?
천갑 : 너 이 놈의 자식. (뺨을 갈기고) 기어코 네가 에비 뒤통수를 쳐. 그깟 계집애 하나 때문에.
태영 : (놀라서 보고)
강석 : 아버지?
천갑 : 네 놈이 어떻게 에비한테 이딴 짓을 할 수가 있냐?
네 에비 인생을 쓰레기통에 처박아도 분수가 있지.
강석 : (태영 보고) 자리 좀....
태영 : (나가려고 하면)
천갑 : 이봐요.
태영 : (돌아보면)
천갑 : 이 자식이 미쳐 날뛴다고 다같이 얼씨구나 하겠지만 어림도 없으니 행여 딴 생각들 말아요.
강석 : 나가세요, 형님.
천갑 : 형님?
강석 : 어서요.
태영 : (모멸감을 느끼면서 나가는)
천갑 : 어떻게 하과장이 네 형님이야?
강석 : 제 아내 될 사람 오빠시니까요.
천갑 : 네 놈이 아주 헤까닥 했구나.
강석 : 진정하시고 앉으세요, 아버지. 제가 다 설명 드릴게요.
천갑 : 설명이고 뭐고 들을 게 뭐가 있어. 내가 전상길이 앞에서 사람 꼴이 얼마나 우습게 됐는지 아냐?
아니, 회장님께서 어떻게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모르십니까 하는데,
기가 막혀서 숨이 턱하니 막히더라.
강석 : 빨리 정리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전상길 같은 인간한테 회사가 위험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잖아요.
천갑 : 이젠 회사가 문제가 아니야. 네 놈이 에비를 배신할 수 있다는 게 문제지.
강석 : 배신이 아니에요, 아버지. 최선의 방법을 찾은 거라구요.
천갑 : 계집애 집안 살리자고 지 에비를 배신하는 너 같은 놈을 아들이라고 믿고 살 수는 없다.
강석 : 아버지.
천갑 : 차라리 인연을 끊고 말자.
강석 : 정말 왜 이러세요? 아버지.
천갑 : 이젠 너한테 달렸어. 에비냐, 계집애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나가는)
강석 : (암담한 느낌으로)
#.2 씬. 수영의 사무실.(낮)
수영, 자리에서 일어서며.
수영 : 그럼, 이천갑 회장님이 모르고 계셨던 거란 말이냐?
태영 : (어두운 표정으로 서서) 이강석 뺨까지 맞더라구.
수영 : 그럼?
태영 : 계집애 하나 때문에 에비 뒤통수를 쳤다고 그야말로 길길이 뛰더라구.
수영 : (힘없이 주저앉는)
태영 : 우리 단아 저 자식한테 시집가는 거 물 건너 간 거겠지?
수영 : .....
노크 소리.
수영 : 네.
들어오는 강석.
강석 : 작은 형님 여기 계시단 말 듣고 왔습니다.
태영 : (퉁명스럽게) 뭐하러 날 찾아다녀?
수영 : (일어서며) 어떻게 된 겁니까? 이실장님? 아버님께서 심하게 역정을 내셨다는데?
강석 : 죄송합니다. 그렇게 밖에는 처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영 : 그건 미봉책에 불과한 거 아닌가요?
강석 : 이미 공시가 뜬 상태니, 번복하면 신뢰에 문제도 생기고
아버지께서도 더는 어쩌지 못하실 겁니다.
수영 : 하지만 그건 이실장님 판단 아닌가요?
아버님께서 극단적인 방법으로 대응하실 수도 있는 일인데?
태영 : 지금 회사 일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잖아? 이강석? 너?
강석 : 네, 형님.
태영 : 형님 소리 가증스러우니까 집어 쳐. 너 어쩌자구 일을 여기까지 끌고 와?
우리 단아 네 아버지 입에서 그깟 계집애란 소리까지 듣게 할 거면서, 결혼?
이 결혼이 가능키나 해? 이 자식아?
강석 : 그래서 두 분 형님을 찾아온 겁니다.
태영 : 가증스러우니까 형님 소리 집어치라고 했지.
강석 : 저 그 사람하고 결혼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 합니다.
그러니까 저희 부모님은 제가 설득하게 해주십쇼. 시간을 조금 주시면 제가 해결 하겠습니다.
태영 : 해결은 무슨 해결을 해? 네 아버지 저렇게 막무가내신데?
강석 : 도와주십쇼.
태영 : 도와주긴 우리가 뭘 도와줘.
강석 : 형님들까지 반대를 하시면, 그 사람과 저 더 많이 힘들어집니다.
형님들만이라도 저희 편에 서주십쇼.
태영 : 너 제정신 아니지? 우리 단아 싫다고 저렇게 난리인 부모 둔 집안에 우리가 단아 보낼 거 같냐?
우리 단아가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강석 : 그 사람 저하고 같이 겪어내겠다고 했습니다.
태영 : 뭐? 그럼 이미 네 집에 가서 당했다는 거 아냐?
강석 : 죄송합니다. 별 것도 아닌 놈이, 형님들 귀한 동생에게 겪지 말아야 할 일 겪게 해서 면목 없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견디겠다고 한 일입니다. 그러니 두 분만이라도 끝까지 저희 편에 서주십쇼.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3 씬. 강석의 집 거실.(낮)
아줌마, 인터폰 누르며.
아줌마 : 회장님 들어오세요.
영자, 순진 앉아서 얘기하는.
순진 : 애는 아주 멀쩡하게 생겼드라구요.
영자 : 지금 혜주 연애하는 애가 어떻게 생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순진 : 그래서 저도 그랬죠. 집안은 난리 법석인데, 넌 애인 집에까지 데려왔냐?
이럴 때 집에 인사시키고 그러는 거 아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돌아가라.
제가 타일러서 보냈다니까요.
천갑, 들어오는.
영자 : (일어서며) 전상길도 만나고, 주주들 많이 만나야 해서 늦을 거라 더니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와요?
천갑 : (화가 나서 방으로 들어가는)
영자 : 왜 저러신대.
#.4 씬. 천갑의 방.(낮)
천갑, 들어와서 웃옷을 벗는데, 영자 들어오는.
영자 : 뭐가 잘 안됐어?
천갑 : (웃옷을 방바닥에 패대기치는)
영자 : 여보? 왜 그래?
천갑 : (그래도 화가 안 풀려서, 의자를 들어 화장대 거울을 향해 던지는. 박살이 나는 화장대 거울)
영자 : (기겁을 해서) 여보.
#.5 씬. 남교수 사무실.(낮)
단아, 책상 앞에 앉아 시계를 보는데, 들어오는 강석.
단아 : (일어서며) 왜 이렇게 늦었어요? 점심시간 끝나갈 시간이잖아요?
강석 : 일 좀 처리하다보니 늦었어요.
단아 : 그럼 그냥 회사 근처에서 먹지 그랬어요?
강석 : 퇴근하고 오는 길이예요.
단아 : 높은 자리 있다고 너무 땡땡이치는 거 아니에요?
강석 :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만든 게 누군데.
단아 : 나가요, 해장국 사줄게요. 학교 앞에 유명한 해장국 집 있어요.
#.6 씬. 해장국 집.(낮)
현규, 혜주 앉아있는.
현규, 해장국을 먹고 있으면. 혜주, 수저만 들고 멍하니 앉아있는.
현규 : 안 먹어요?
혜주 : 처음 먹어보는 거라서.....
현규 : 해장국 안 먹어봤어요?
혜주 : 술을 못 마시잖아요?
현규 : 그럼 다른 데로 가자고 하든지.
혜주 : 그쪽 속 풀어야 하잖아요? 밤새 술 마셔서.
하는데, 들어오는 단아와 강석.
혜주 : (일어서며) 오빠?
강석 : 니들도 해장국 먹으러 왔냐?
현규 : (일어서서 인사하는)
강석 : (끄덕이고) 먹어라. 우린 저리로 가서 먹을 테니.
강석, 단아, 다른 자리로 가서 앉는.
강석 : (종업원에게) 해장국 둘 줘요.
현규 : (암담한 시선으로 단아를 보는)
혜주 : (그런 현규의 시선이 가슴 아프고) 못 먹겠으면 그냥 나가요.
현규 : (고개 숙이고 해장국을 먹는)
강석 : 저 녀석 아직도 술 퍼먹고 다니는 모양이군.
단아 : (안타까운 시선으로 잠시 현규를 봤다가 시선 돌리는)
강석 : 그래도 다행이군. 혜주 저 녀석 옆에 붙여 놓는 거 보면.
현규 : (수저를 놓고 일어서서 강석 옆으로 걸어오는)
강석 : (올려다보고)
현규 : 식사 하시고 잠시 뵐 수 있겠습니까?
#.7 씬. 상가내 일각.(낮)
혜주, 단아 앉아있는.
단아 : (혜주를 보면)
혜주 : 알아요, 저 사람.
단아 : 왜 얘기 했어? 현규가 알아서 좋을 게 뭐가 있다구?
혜주 : 제가 얘기 한 거 아니에요.
#.8 씬. 커피숍. (낮)
현규, 강석 앉아있는.
현규 : 혜주 운전 연습 시켜주려고 집 앞에까지 갔다가
혜주가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는 말 들었습니다.
강석 : (보면)
현규 : 하교수님, 댁 부모님한테 생과부 소리 듣고 있다는 거.
강석 : (어두워지고)
현규 : 어제 술 마시면서, 갈등 많이 했습니다.
다시 한강으로 불러내서 실컷 두들겨 패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참았습니다.
이제 내가 끼어들면 안 되는 일이니까요.
강석 : 불러내서 두들겨 팼으면 그냥 맞았을 거다.
네가 목숨까지 걸고 싶을 만큼 사랑한 사람한테 그런 소리나 듣게 만든 못난 놈이니까.
그때처럼 때리면 때리는 대로 맞았을 거다.
현규 : 제가 왜 그 사람이라고 안하고 하교수님이라고 하는지 압니까?
강석 : ......
현규 : 이젠 저한테 여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강석 : .....
현규 : 하교수님을 여자로 봐야 하는 사람은 댁뿐이니까. 그래서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끼어들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교수님 놓지 마십쇼.
도저히 못 견디게 힘들어서 가겠다고 하더라도 보내지 말아달라는 겁니다.
강석 : 알겠다. 명심하마.
현규 : 됐습니다. (일어서는)
강석 : (일어서고, 손을 내미는)
현규 : (보는)
강석 : 사과의 의미로 청하는 악수다. 수없이 널 어린놈이라고 불렀던 거에 대한 사과로.
현규 : .....(강석의 손을 잡는)
강석 : 언젠가 그 사람한테도 말했지만, 너와 연적으로 만나지 않은 게 다행이다.
널 이기기가 쉽지 않았을 테니까.
#.9 씬. 상가 내 일각.(낮)
혜주, 단아, 앉아 있다가, 강석 걸어오는 것 보고 일어서는.
강석 : 혜주야?
혜주 : 응?
강석 : 난 저 녀석이 마음에 든다.
혜주 : .....
강석 : 그래서 난 네가 저 녀석 바라보는 거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쉽게 마음이 움직일 놈은 아니지만,
착한 놈이니 언젠가는 착한 널 알아봐줄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든다.
혜주 : 가. 오빠. (단아에게 인사하고 걸어가는)
강석 : 걱정하더군요. 그 녀석. 혹시나 당신이 힘들어서 가겠다고 해도 절대 놓지 말아달라구.
단아 : .....
강석 : 잠깐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봤어요. 나한테는 귀하디귀한 여자가 다른 놈한테 가서
그 부모님한테 몹쓸 소리나 듣고 있으면, 난 다시 가서 그만두라고 매달려봤을 거 같은데.
저 녀석처럼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놈이
혜주를 다른 눈으로 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군.
단아 : 언젠가는 알게 될 거예요. 저 아이 둘, 너무 많이 닮았으니까요.
사람은 자기와 닮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라고 하니까요.
강석 : (보고) 당신과 난 닮은 구석이 전혀 없는데 서로 어떻게 알아보게 된 걸까?
단아 : (보고, 미소 지으며) 그렇게 생각해요?
강석 : .....
단아 : 우리 둘 다 서로가 가진 운명과 싸우고 있는 거,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가 서로를 가여워하기 시작한 거, 그래서 서로를 알아봤을 거예요.
강석 : (단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10 씬. 종가 마루.(밤)
석호, 영인, 수영, 태영 들어오는.
삼월, 기다리고 서있고.
석호 : 평촌 어르신 오셨다면서요?
삼월 : 하실장 좀 보겠다고 하셔서 퇴근하고 바로 들어오라고 전화 했었던 거야.
수영 : 저를요?
#.11 씬. 만기의 방.(밤)
평촌 어른 앉아있고, 그 옆에 만기, 동동 앉아있는.
석호, 영인, 수영, 태영 인사하고 앉는.
석호 : 편찮으시다는 말씀 듣고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평촌 : 하회장이 매일처럼 들렀는데 바쁜 자네들까지 올 게 뭐있나.
이번에 호되게 앓고 나니 내 명이 이젠 거의 다 왔다 싶구만.
만기 : 무슨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평촌 : 멸문했던 우리 종가가 하회장 덕에 이렇게 일어선 걸 봤으니
내일 당장 세상 뜬다고 해도 아쉬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이리 왔네. 수영아?
수영 : 네, 할아버님.
평촌 : 하사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종가의 앞날은 너에게 달려 있는 거 아니겠냐?
수영 : .....
평촌 : 앓으면서도 네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구나.
수영 : 죄송합니다. 종손으로써 종가 어른들께 마음의 짐만 더해드리고 있는 거 같습니다.
평촌 : 그래서 말인데, 수영아?
수영 : 네.
평촌 : 상중이라고는 하지만, 증조할아버님 상중인 게고,
또 아버지인 하사장이 상중에 혼인을 하기도 했으니 난 네 혼인을 좀 서둘렀으면 싶구나.
내 명이 어디까지인지 모르니 네가 당장 혼인을 한다 해도
이 가문의 종손이 태어나는 걸 보고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네가 혼인 하는 걸 보고 가야 마음이 덜 무거울 거 같다.
수영 : ......
평촌 : 하회장 생각은 어떠신가?
만기 : 저 역시, 저 아이에게 자식이 없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합니다만
사람 인연이라는 게 인력으로 되는 게 아니라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 었습니다.
평촌 : 인연이라는 게 사람이 만드는 거 아니겠는가? 박씨 문중에 아직 미혼인 큰 손녀가 하나 있다는 구만.
약산데, 수영이보다 나이는 네 살 어리고, 아주 참하다고 해.
내가 사람을 중간에 세워 인연을 맺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쪽에서도 마음에 있어 하는 거 같구. 수영아?
수영 : 네.
평촌 : 적은 나이도 아니고, 이 참에 서둘러 만나보고 인연을 맺어보는 게 어떻겠느냐?
가족 모두 수영을 바라보는.
수영 : 할아버님?
평촌 : 그래?
수영 : 아직 어른들께 말씀을 올리진 못했지만,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기 : (놀라서 수영을 바라보고)
석호, 영인, 태영, 동동까지 멍한 표정으로 수영을 바라보는.
수영 : 이미 그 사람에겐 제 마음을 전했지만, 회사 일로 집안이 편치 못한 상태라
할아버님이나 부모님께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평촌 : 그래?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구?
수영 : 네.
평촌 : 그럼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만. 어쨌든 다행이다. 하회장?
만기 : 네.
평촌 : 수영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시간을 끌 거 없지 않겠는가?
하회장하고 하사장 내외가 빨리 사람을 만나보고
크게 문제 있는 처자가 아니면 혼인을 좀 서두르도록 하세나.
#.12 씬. 마루.(밤)
조만, 방 문 앞에서 듣고 있는.
주정, 병도 들어오는.
주정 : 집에 가라니까 왜 따라 들어오는데?
병도 : 밥 좀 얻어먹고 가려고 그런다 왜?
조만 : 할머니? 할머니?
주정 : 얘가 왜 또 이렇게 호들갑이야?
조만 : 큰 오빠 결혼할 여자 있으시대요.
주정 : 얘 또 헛소리 하는 병 도졌나보네.
#.13 씬. 마루.(밤)
평촌 어른, 배웅하는 가족들. 병도, 삼월, 조만까지.
만기 : 태영아. 할아버님 좀 모셔다 드리고 오거라.
태영 : 네.
평촌 : 그럴 거 없네, 택시 타고 가면 돼.
태영 : 모시겠습니다, 할아버님.
평촌 : 거 참 사람들도.
주정 : (수영에게) 야, 너 사람 지대로 놀래킨다.
병도 : 선배, 잘하면 진짜 대박이겠다. 명문 종가의 종손이 지대로 결혼하는 모습 카메라에 담을 수 있잖아.
주정 : 근데 어떤 아가씨니? 너 같은 애가 연애했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만기 : 에비하고 에미, 수영이는 들어 오거라.
#.14 씬. 만기의 방.(밤)
만기, 석호, 영인, 수영 앉아있는.
만기 : 사실인 게냐? 평촌 할아버님께서 주선한 자리를 피하기 위한 핑계가 아니고?
수영 : 사실입니다.
만기 : (끄덕이면서) 수영아?
수영 : 네. 할아버님.
만기 : 집안 어른들끼리 맺어줬던 네 첫 혼인이 그렇게 정리 된 후로 나도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어느 집안사람이냐고 하는 건 묻지 않으마.
네가 마음을 준 사람이라면, 할애비는 믿어볼 생각이니 데려와 보거라.
수영 : 알겠습니다, 할아버님.
#.15 씬. 마루.(밤)
석호, 영인, 수영, 만기의 방에서 나오는.
석호 : 네가 결혼 생각이 전혀 없는 게 아닐까 염려가 됐는데, 그래도 마음을 준 사람이 있다니 다행이구나.
(수영 어깨를 잡았다 놓고 방으로 가는)
영인 :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수영을 보면서) 우리 얘기 좀 해요, 하실장?
#.16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영인 들어오는.
영인 : 어쩌려구 그래요? 하실장? 하실장한테서 자손을 보고 싶으셔서
상중인데도 결혼을 서두르려고 하시는 어른들 뜻 모르지도 않으면서?
수영 : 할아버님께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영인 : 할아버님께서 그런 결혼을 용납하실 거 같아요? 하실장 대를 이어야 하는 종손이잖아요?
수영 : 종손이라는 것 때문에 진아씨를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영인 : 하실장 마음은 그렇겠지만, 용납이 되지 않는 결혼이라는 게 문제잖아요?
수영 :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영인 :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실장?
#.17 씬. 길.(밤)
태영, 운전하는데, 울리는 핸드폰.
태영 : (이어폰 꼿는) 응.
말순E : 지금 나 좀 볼 수 있어?
#.18 씬. 커피숍.(밤)
말순, 앉아있으면, 태영 들어와서 앉는.
태영 : 우리 집 또 핵폭탄 떨어졌다.
말순 : (보면)
태영 : 우리 형, 오진아씨랑 결혼하겠다고 어른들께 선언했다, 오늘.
말순 : (조금은 쓸쓸한 느낌으로) 그래? 잘 됐네. 진아는 좋겠다. 네 형님 진짜 많이 좋아하는 거 같던데.
태영 : 근데 왜 보자고 한 거냐? (씩 웃으면서) 뭐 이유야 뻔하지만.
내가 그렇게 보고 싶디? 하루라도 안보면 눈에서 진물이 나고 그러냐?
말순 : 하태영?
태영 : 왜?
말순 : 너한테 빌린 돈, 한꺼번에 갚을 게.
태영 : 웬일이냐? 매일 일수 안 찍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던 애가?
말순 : 그러니까 우리 그만 만나자.
태영 : (멍하니 보는)
#.19 씬. 길.(밤)
말순, 걸어오면, 태영 화가 나서 말순의 팔을 낚아채는.
태영 : 너 뭐가 그렇게 다 네 마음대로야? 친구 하기 싫다고 난리치면서 뽀뽀까지 할 때는 언제고?
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나란 놈이 아니다 싶디? 아홉 살짜리 아들까지 있는 놈이라서?
아들놈한테까지 바람 피냐는 소리 듣는 놈이라, 저런 놈하고 잘못 엮여서 인생 덤태기 쓸까봐 겁나디?
말순 : 그래. 그렇다, 됐냐?
태영 : (멍하니 보는)
말순 : 나도 남들처럼 연애 한번 해보고 싶어서 너 같은 놈한테까지 들이대 봤는데, 안되겠다.
발정 난 개로 살았던 너, 앞으로 또 그 짓 안하란 보장도 없구.
태영 : 너 나쁜 기집애구나.
말순 : 그래, 나 그런 기집애야. 됐지?
태영 : 이럴 거면서.....왜 사람 마음은 들쑤셔 놨냐? 지금에 와서 이러면.....
말순 : (마음이 아프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꿔준 돈만 받으면 너도 손해 볼 거 없잖아?
태영 : (외면한 채) 가라.
말순 : 네 인생에서 나같이 이상한 기집애 하나 아무 상관없는 거잖아?
네가 후리고 다녔던 기집애 중에 하나라구 생각해버리면 그만이잖아.
태영 : (톤 높여서) 가라니까.
말순 : 내 년쯤에 돈 갚을 수 있을 거야. 그때 문자로 계좌 찍어줘, 넣어줄게.
너 나 다시 얼굴 보면서 돈 받고 싶지는 않을 거 아냐?
태영 : (톤 더 높여서) 제발 좀 가라니까.
말순 : (울먹한 심정으로 보다가 돌아서서 걸어가는)
태영 : (눈물을 참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20 씬. 말순의 집.(밤)
진아, 핸드폰 중.
진아 : 저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면 어떡해요?
수영E :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말순, 들어오는.
진아 : 부모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저 같은 애가 마음에 드실 리 없을 텐데.
수영E : 그렇게 약한 소리 하면 나 화낼 거예요.
말순, 그런 진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진아 : 저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해도, 아저씨랑 헤어지진 않을 거예요.
결혼 못해도 아저씨 옆에 있을 거예요. 저 마음 약하지 않죠?
#.21 씬. 수영의 방.(밤)
수영 : (핸드폰 중) 네. 아주 마음에 드는 마음가짐이에요. 내일 토요일이니까 퇴근하고 만나요.
#.22 씬. 말순의 집 (밤)
진아 : 네. 쉬세요. (전화 끊는)
말순 : 너 청혼 받았구나?
진아 : (부끄럽게 미소 지으며) 네.
말순 : 축하한다. 진아야?
진아 : 언니도 곧 받으실 거잖아요?
말순 : (쓰게 웃으며) 우린 쫑 났다.
진아 : 네?
#.23 씬. 태영의 방.(밤)
태영, 들어와서 힘없이 주저앉는.
태영 : (벽에 기대는데, 눈물이 흘러내리는) 잘 된 거야, 하태영. 동동이 놈만 보고 살자 그랬잖냐?
그렇게 살면 되는 거야. 너같이 지저분하게 산 놈 인생에 다시 여자 끌어들이는 짓,
안하게 된 게 잘 된 거라구.
#.24 씬. 남교수 사무실.(밤)
단아, 자판 두드리면서 일하고 있고. 강석, 커피를 타다 앞에 놓아주는.
강석 : 해졌는데도 안 들어가고 같이 있어주는 상으로 타주는 겁니다.
단아 : 그래서 열심히 논문 쓰고 있는 거예요.
해졌는데도 집에 안 들어가고 애인이랑 있는 거 스스로 발이 저려서.
강석 : 집중이 되긴 합니까?
단아 : (보고)
강석 : 나같이 도발적인 애인이 옆에 있는데 옆 한번 안돌아보고 자판만 두드리는 거, 좀 심한 거 아닌가?
단아 : 세게 보이려구요. 옆에 있어도 난 할 일 한다, 근사해 보일 거 같아서요.
강석 : (미소 짓고) 얄미워 보이거든요.
단아 : 내 나름의 작전이에요. 선배 분도 그러셨잖아요?
저 놈은 만만해보이면 내 상대가 못 되는군 하는 놈이라구.
끊임없이 긴장 시키려고 내 나름으론 이 악물고 노력하는 거예요.
강석 : 내가 옆에 있다는 거 의식하지 않으려고 이 악물고 노력한다.
사랑 고백치곤 희한하지만, 마음엔 드네요.
단아 : 그게 그런 식으로 해석 되는 거예요? 그럼 작전 다시 세워야겠네.
강석 : 우리요.
단아 : (보면)
강석 : 그냥 둘이 사라져버릴래요?
단아 : ......
강석 : 한 1년쯤 어디로 도망가서 둘이 애 하나쯤 낳아가지고 오면 이런 과정 안 겪어도 되잖아요?
단아 : (보다가 일어서서 강석 앞에 서는) 많이 힘들군요?
강석 : 힘든 것보단 지루해서 그래요. 난 이 여자 얼른 내 옆에 데려다 놓고 싶은데 그걸 못하니까.
단아 : (강석손 잡고) 언젠가 지금 이 순간들이 그리워질 날이 올 거예요.
빨리 이 사람 옆에 있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애가 탔다구.
살면서 서로에게 많이 익숙해져서 조금은 나른해졌을 때, 우리 꺼내 봐요.
지금처럼 애가 타던 순간들을.
강석 : (단아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잡은 손을 내려다보며) 당신한테 아무리 익숙해져도
나른한 순간은 오지 않을 거야. 당신 때문에 애가 탄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당신 증조할아버님 장례 때, 당신 약 올려서 뺨을 맞던 그 순간도 실은 나 애가 탔던 건지도 몰라.
마음에 드는 여자애 고무줄 끊고 도망가는 어린 남자아이처럼 자꾸 당신 앞을 가로막고 싶었거든.
단아 : (다정한 눈길로 보는)
#.25 씬. 커피숍. (밤)
친구들 앉아서 종이에 그림 그리면서 얘기하고 있는.
성민 : 우선은 성 옆을 포위하는 거야. 그 다음에 공병들 보내고.
강하 : 저번엔 우리가 너무 한꺼번에 밀고 들어갔지? 뒤에서 공격해올 거에 대비 했어야 하는데.
카운터 안에 앉아서 책 보며 친구들을 보는 현규.
현규 : 게임에 임하는 자세들 진짜 눈물겹게 진지하다.
성민 : 넌 이 게임의 맛을 몰라서 그래. (하다가 옆에 놓인 컵을 밀쳐 떨어뜨리는)
컵이 깨지고.
혜주, 테이블 닦고 있다가 놀라서 얼른 주저앉으며, 깨진 컵을 주우려고 하는데.
현규 : (벌떡 일어나며) 뭐하는 거예요?
혜주 : (놀라서 돌아보는데)
현규 : (혜주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혜주 밀쳐내고 손으로 컵을 주우면서 친구들에게 화를 내는)
니들 조심 좀 못해? (하면서 컵 줍다가 손을 베는, 손가락에서 피가 베어 나오고)
혜주 : (놀라서 현규의 손을 잡는) 내가 한다니까 왜 그래요?
현규 : 괜찮아요, 많이 벤 거 아니에요?
혜주 : (울먹한 느낌으로) 피 많이 나잖아요? (두 손으로 현규의 피나는 손가락을 꼭 쥐고 있는)
성민 : 얘, 얘들 뭐냐?
강하 : 새로운 버전의 에로물 같기도 하고.
그 말에 무안해서 서로를 바라보는 현규와 혜주.
시간 경과.
현규, 테이블 정리하고 있는데, 혜주, 약봉지 들고 들어오는.
혜주 : (현규 앞에 다가서서) 손 내놔 봐요. 밴드 사왔어요.
현규 : 이젠 피 안나요.
혜주 : (밴드 꺼내는) 어서요.
현규 : (하는 수 없이 손 내밀고)
혜주 : (밴드 붙여주면서) 손 다 나을 때까지 설거진 내가 할 게요.
현규 : 손 살짝 긁히고 호강하겠네.
혜주 : 그리고, 이거 먹어요. (약을 건네는)
현규 : 이건 또 뭔데요?
혜주 : 빈혈약이요, 피 많이 흘렸잖아요.
현규 : (보다가 웃는) 새로운 버전의 개그예요?
혜주 : (보다가 미소 짓는) 내가 웃겨준 거예요?
현규 : .....
혜주 : 우리 오빠가 요즘 점점 마음에 드는 짓 많이 한다고 했는데.
그쪽 웃겨줄 수 있는 내가 나도 마음에 들어요.
현규 : (조금은 깊은 시선으로 그런 혜주를 바라보는)
#.26 씬. 부엌.(밤)
삼월, 조만 찻상을 차리고 있는.
조만 : 단아는 또 데이트 하나보네.
삼월 : 학교에서 논문 쓴다고 했잖아?
조만 : 연애 하는데, 논문 쓸 정신이 어디 있어요? 핑계지. 단아는 좋겠다.
삼월 : 그렇게 부러우면 너도 연애 좀 하려무나.
조만 : 집 밖에 나갈 일이 있어야 연애를 하죠.
제 인생은 왜 이렇게 비극적인지 모르겠어요. 큰 오빠도 연애해서 결혼한다고 하는 마당에.
영인, 들어오는.
삼월 : 뭐 줄까요?
영인 : 아니에요, 물 좀 마시려구요. (물을 따르는데) 아버님 차 드신대요?
삼월 : 하실장하고 증조할아버님 방에 들어가셨어요.
#.27 씬. 하옹의 방.(밤)
만기, 수영 앉아있는.
만기 : 해야 할 말이 있다면서? 해 보거라.
수영 : 할아버님?
만기 : 그래.
수영 :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만기 : (보고)
수영 : 이혼 하면서, 할아버님께서 생산에 문제가 있냐고 물으셨을 때.
만기 : .....
수영 : 다시는 결혼할 일 없을 거 같아서, 문제없다고 거짓 말씀을 올렸습니다.
만기 : (굳어지는)
수영 : 저 실은.....
만기 : (눈을 감는)
수영 : 자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만기 : 그, 그래서 니들이 그렇게 됐던 거냐?
수영 : 죄송합니다, 할아버님.
만기 : (눈을 뜨고) 그 처자는 알고 있냐? 네가 그런 몸이라는 거?
수영 : 아직 말하지 못했습니다.
만기 : 그런 일을 덮고 갈 수는 없는 거 아니냐?
수영 : 솔직하게 말하고, 그런데도 저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결혼하고 싶습니다.
만기 : .....
수영 : 만약 그 사람이 결혼하겠다고 하면,
가엾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니 귀히 여겨 주세요, 할아버님.
#.28 씬. 하옹의 방 앞 마루.(밤)
영인, 찻상을 들고 멍해져서 서있는.
#.29 씬. 만기의 방.(밤)
동동,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만기 들어와서 앉으려다가 비틀하는.
동동 : (놀라서 일어서며) 할아버지? (만기를 잡는)
만기 : 괜찮다. (힘없이 앉는)
동동 : 편찮으세요? 할아버지?
만기 : 아니다.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어두운 표정이 되는)
#.30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영인 서있는.
영인 :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하실장?
수영 : 그만큼 그 사람이 소중합니다.
영인 : (보다가) 조용한 사람이 결심을 하니, 참 무섭네요.
수영 : 어머니?
영인 : (보고)
수영 : 이 일, 어머님과 저만 아는 비밀로 평생 묻어둬 주세요.
영인 : .....
#.31 씬. 마루.(밤)
영인, 수영의 방에서 나오는.
단아, 들어오는.
단아 : 다녀왔습니다.
영인 : 지금 와?
단아 : 네.
영인 : 단아야?
단아 : 네.
영인 : 큰 오빠 결혼하게 될 거 같다.
단아 : .....
#.32 씬 수영의 방.(밤)
수영, 생각에 잠겨 앉아있으면,
단아E : 큰 오빠?
수영 : 그래.
단아, 문 열고 들어와 앉는.
단아 : 어머님께 말씀 들었어요, 큰 오빠 결혼하실 거 같다구.
수영 : 미안하구나.
단아 : 왜요?
수영 : 이실장 부모님들께서 반대하고 계신다는 거 안다.
단아 : 어떻게 아셨어요?
수영 : 이천갑 회장님이 이실장 찾아와서 심하게 하시는 거 태영이가 봤다.
단아 : .....
수영 : 넌 그러고 있는데, 큰 오라비라는 사람이 결혼하겠다고나 하고. 미안하다, 단아야.
단아 : 마음 무거웠는데, 큰 오빠 결혼하실 거란 말 듣고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몰라요.
축하해요, 큰 오빠.
수영 : 고맙구나.
단아 : 새언니 되실 분 어떤 분인지 빨리 뵙고 싶어요.
수영 : 그 사람 보면, 너 속으로 우리 큰 오빠 도둑놈이구나 그럴 걸.
단아 : (의아하게 보는)
수영 : 나보다 많이 어린 사람이거든.
#.33 씬. 석호의 방.(밤)
석호, 영인 앉아서 얘기하고 있는.
석호 : 우리 회사에서 청소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영인 : 나이도 하실장보다는 열 몇 살 어릴 거야.
석호 : (기가 막히고) 아니, 수영이 쟤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어린 아가씨를.
영인 : 그리고....
석호 : 그리고 또 뭐가 더 있는 거야?
영인 : 고아야, 그 아가씨.
석호 : (암담하고)
영인 : 그치만 곱고 착한 아가씨야.
석호 : 하지만 우리 집안 종부 감으론....
영인 : (자르며) 하실장이 선택한 사람이야. 그 아가씨가 어떤 조건을 가졌든, 우리 큰 아들이 선택한 사람이라구.
그러니까 우리가 해줄 일은 딱 하난 거야. 무조건 환영해 주는 거.
석호 : .....
#.34 씬. 강석의 집 거실.(밤)
강석, 들어오는, 영자 화가 나서 서있는.
영자 : 아버진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괴로워하시는데, 넌 네 볼일만 보고 다니는 거니?
강석 : .....
#.35 씬. 천갑의 방.(밤)
천갑,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고, 강석, 영자 들어오는. 화장대 유리가 없고.
영자 : 네 아버지가 저렇게 하셨다. 생전 아무리 화가 나도 뭐 하나 던지는 법 없는 양반이
오죽 화가 나셨으면 저러셨겠냐구.
강석 : 술 드시고 주무시는 거예요?
영자 : 술을 아무리 드셔도 잠이 안 오시는지,
김기사 시켜서 최박사님한테 수면제 받아오라고 하셔서 드시고 주무시는 거야.
강석 : .....
영자 : 정말 어디까지 아버지 몰아붙일 거니? 회사 일도 엉망으로 만들었다면서?
강석 : ......
영자 : 너 하나만 믿고 살아오신 네 아버지, 얼마나 더 비참하게 만들어야 네 속이 시원하겠어?
강석 : (천갑 이불을 여며주는)
영자 : (그런 강석을 보면서 조금 누그러지는) 강석아?
강석 : 네.
영자 : 아버지한테는 나도 소용없고, 혜주도 소용없어. 너 없으면 네 아버지 인생 아무 것도 아니라구.
네가 자꾸 이러면 네 아버지, 정말 잘못 되실수도 있어.
(울먹이며) 아까도 수면제 한 움큼 드시려고 하는 거 억지로 말렸어.
잠이 안와서 그런다고 달라고 하시는 거, 억지로 말렸단 말이야.
강석 : ......
영자 : 엄마, 정말 겁나 죽겠어, 강석아.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그냥 예전처럼 네 아버지 마음에 드는 아들로 좀 살아줘. 응? 강석아?
강석 : ......
#.36 씬. 강석의 2층 거실.(밤)
강석, 올라오는, 서있는 혜주.
강석 : 오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데. 자라. (방으로 들어가는)
#.37 씬. 강석의 방.(밤)
강석, 들어오는. 혜주, 들어오는.
강석 : 오빠 좀 쉬게 해주라.
혜주 : 오빠?
강석 : (보고)
혜주 : 떠나면 안돼?
강석 : .....
혜주 : 언니랑 같이.
강석 : .....
혜주 : 나 불안해. 아버지, 어머니, 계속 저러시면 오빠 결국 지고 말 거잖아?
그럼 언니 또 아프게 만들 거구.
강석 : .....
혜주 : 그냥 떠나, 오빠.
강석 : (쓸쓸하게 미소지으며) 오빠도 그러고 싶은데, 그 사람은 그렇게 못해.
끝까지 견디면 견뎠지, 도망 갈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혜주 : 오빠가 설득해봐. 오빠가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해. 그러니까 그냥 같이 떠나자구.
강석 : 그 말도 오빠 못해. 나 힘들어서 못하겠으니, 같이 떠나자고 하면
그 사람, 우리 여기까지만 해요. 그럴까봐서.
혜주 : (안타깝게 보는)
강석 : 가서 자라. 오빠도 쉬어야겠다.
혜주 : ......(나가는)
강석 : (의자에 앉는)
#.38 씬. 학교 전경.(낮)
#.39 씬. 남교수 사무실.(낮)
단아, 혜주 서있는.
혜주 : 언니가 포기할까봐 오빠 차마 그 말도 못한대요.
단아 : (암담하고)
혜주 : 부모님이 오빠 너무 많이 힘들게 하세요.
단아 : .....
혜주 : 언니? 오빠랑 떠나세요.
단아 : 혜주야?
혜주 : (단아손 잡으면서) 오빠도 떠나고 싶어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남교수, 들어오는.
단아 : 미안하다, 혜주야. 나 그렇게 못해.
혜주 : 언니, 제발요.
단아 : .....
혜주 : (울면서 나가는)
남교수 : 혜주 쟤 왜 저러니?
단아 : ......
시간 경과.
남교수, 단아 앉아있는.
남교수 : (암담한 느낌으로) 난 진하가 네 인생에 이렇게 문제가 될 거라곤 생각 못했다.
단아 : 진하 오빠, 절위해 목숨까지 버려준 사람이에요.
목숨을 걸어준 사람을 잊고 다른 사람에게 가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죽을 만큼 괴로워하면서 가주고 싶어요.
남교수 : 그거 자학이야, 너.
단아 : 그게 뭐든 강석씨가 힘들어하는 것만큼 저도 그러고 싶어요.
아무리 제가 힘들어해도, 강석씨 만큼은 아닐 거라는 게 미안하지만요.
남교수 : 단아야?
단아 : 네.
남교수 : 혜주 말대로 해보는 건 어떻겠니?
단아 : ......
남교수 : 피해 갈 수 있는 길이 있으면 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니들이 그렇게 떠나면 이강석씨 부모님도 낙담은 하시겠지만 포기가 되실 거구.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와서 사죄드리고.
단아 : 강석씨가 제게 소중한 것만큼 그 사람을 낳아준 그 어른들도 제겐 소중해요.
그 분들 가슴에 못 박고 우선 저희 마음 편하자고 그러고 싶지 않아요.
몇 달이 됐든, 몇 년이 됐든, 어른들 노염 풀리실 때까지 기다려드려야 하는 게
저희가 할 일인 거 같아요.
남교수 : 그러다 너희 둘이 먼저 지치면?
단아 : .....
남교수 : 그런 걱정은 안 되니?
단아 : 믿어요, 그 사람. 아무리 지쳐도 그만 두자곤 하지 않을 거란 거요.
#.40 씬. 커피숍.(낮)
수영, 진아 앉아있는.
수영 : 결혼하자고 하기 전에 말했어야 하는데,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요.
나와 결혼하겠다는 진아씨 대답을 먼저 듣고 싶었거든요.
진아 : 저 많이 반대하세요? 저 같은 애 싫다고들 하세요?
수영 : 진아씨?
진아 : (보면)
수영 : 진아씨 꿈이 엄마가 되는 거란 거 알아요.
진아 : .....
수영 : 그 꿈 얼마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아왔을지 아니까 내가 더 나쁜 놈인 거 같구.
진아 :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아저씨?
수영 : 그런데 진아씨 나와 결혼하면, 엄마.....될 수 없어요.
진아 : (멍하니 보는)
수영 : 나.....아이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에요. 나한테 문제가 있어요.
진아 : 아저씨?
수영 : 그런데도 난 진아씨 잡고 싶어요. 이런 날 좀 불쌍하게 생각해달라고 매달리고 싶어요.
진아 : ......
수영 : 진아씨가 안되겠다고 해도, 나 진아씨한테 염치없지만 매달릴 거예요.
진아 : .....
수영 : 진아씨한테 내가 부모고 형제고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나한테도 진아씨는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두 사람 그냥 한평생 서로한테만 의지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이런 나 너무 이기적이죠?
진아 : .....
수영 : 너무 이기적이란 거 잘 알아서 많이 망설일 줄 알았는데. 망설여지지가 않더라구요.
그냥 다 말하면 진아씨가 받아줄 거 같아서..... 많이 놀라고 기막히고 그렇죠?
진아 : 아저씨?
수영 : (보면)
진아 : 저 언제 인사가면 되요? 아저씨 댁에?
수영 : .....
#.41 씬. 한정식 집.(낮)
영자, 영인 마주 서있는.
영자 : 앉죠.
영인 : (앉고)
영자 : 제가 왜 보자고 했는진 짐작이 가실 거예요.
영인 : 결혼 문제 의논하자고 보자고 하시는 줄 알았는데.
왠지 표정을 뵈니 제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싶네요.
영자 : 새어머니라곤 하지만, 어쨌든 어머닌 어머니시니
이 문제는 우리가 매듭을 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만나자고 한 거예요.
영인 : 말씀 하세요.
영자 : 저는요. 명문 종가라고 해서, 경우는 아시는 분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신 거 같네요.
영인 : 무슨 말씀이시죠?
영자 : 어떻게 그런 기구한 팔자를 가진 딸을 멀쩡한 우리 애와 결혼 시키겠다는 욕심을 가졌는지
정말 기가 차네요.
영인 : (굳어지고)
영자 : 팔자 기구한 것도 기가 막힌데, 그런 딸 내세워서 집안 사업 지키자고 하는 것도 참 대단하다 싶구요.
아무리 무 경우, 무 경우 해도 이건 정도가 과한 거 아닌가요?
영인 :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영자 : 이 정도가요? 저 지금 참고 참으면서 말 하고 있는 거예요.
정말 속에 있는 말 다하자고 들었으면 이렇게 말 골라 못해요.
영인 : 뭘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닌가요?
영자 : 잘못 알고 있다뇨?
영인 : 이 결혼 얘기 어떻게 시작 된 건지나 제대로 아시나 싶어서요?
영자 : 어떻게 시작 되다뇨?
영인 : 우리 아이한테 그 댁 아드님이 애원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란 거 혹시 모르시는 거 같은데.
영자 : 왜 그렇다죠? 도화살 있는 여자들이 남자 홀리자고 작정하면
안 넘어갈 남자 없다고들 하잖아요?
영인 : 말씀 너무 막 하시는 거 아닌가요?
영자 : 신혼여행 길에서 사내 잡아먹은 팔자를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요?
영인 : 어떻게 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런 험한 일 겪은 아이가 가엾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그 댁에도 딸이 있는 걸로 아는데, 입장을 좀 바꿔놓고 생각해보시죠.
영자 : 정말 경우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지만, 해도 해도 너무 하네.
그런 기구한 팔자를 어떻게 우리 딸한테...정말 말이 안 나와서.
영인 : 그건 그냥 불행한 사고였을 뿐이에요. 그런 걸 가지고 팔자니, 뭐니 운운하시는 게
너무 심한 거 아니냔 뜻으로 한 말이에요.
영자 : 의붓자식들이라 내 심정 죽었다 깨나도 모를 거예요.
영인 : 저 제가 낳지는 않았지만, 제 아이들 의붓자식이라 다르게 생각한 적 없어요.
영자 : 자기 속으로 낳은 자식이면 내 심정 이해 못한다고는 절대 못할 거예요.
내 속으로 낳은 내 귀한 자식이 생과부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는데 어떤 에미가 가만있겠어요?
영인 : 얘기 더 길게 할 거 없겠군요. 댁 아드님이 찾아와서 하도 간곡하게 우리 아이를 달라고 사정을 해서,
저희도 사윗감으론 마뜩찮은 구석이 많은데도 두 아이 마음이 진실한 거 같아서
허락을 하려고 했던 건데 안되겠네요.
제 귀한 딸, 팔자 운운하면서 홀대하는 분 며느리로는 못 보내겠으니.
더 이상 얘기 하지 말고 일어서죠. (일어서는)
영자 : (올려다보면서) 저렇게 세상 이치를 모르니,
감히 우리 아들하고 결혼을 시키겠다는 욕심을 가진 거겠지.
영인 : 이보세요. 댁이 이러시는 게, 댁 아드님 인생을 얼마나 기구하게 만드는 건지나 아세요?
영자 : 남의 집 아들 걱정을 왜 댁이 해?
영인 : 그래요. 남의 집 아들 인생이 얼마나 불행해지는지 내가 왜 걱정을 하겠어요.
그런데도 왠지 측은한 생각이 드네요. 댁 같은 어머니한테 치여서
인생 살고 싶은 대로 못살 게 뻔한 댁 아드님 생각을 하니. (나가는)
영자 : 느네 집 딸하고 끝내기만 하면 우리 강석이 인생 순탄대로야, 이거 왜 이래?
#.42 씬. 남교수 사무실.(낮)
강석, 들어서는. 단아 일어서는.
강석 : 논문 많이 썼어요?
단아 : 네. 옆에 없으니까 집중이 잘 되서 꽤 많이 진도 나갔어요.
강석 : 토요일인데, 오늘은 그만 하고 바람 쐬러 야외로 나갑시다.
단아 : 인형 따줄까요?
강석 : 또 또 자존심 긁는다.
단아 : (미소 지으며) 잘 견디고 있는 게 대견해서 상이나 주려고 했던 건데.
강석 : (보면)
단아 : 혜주 왔다 갔어요.
강석 : 그 자식. 우리 잘못 될까봐 안절부절 해요.
하는데, 울리는 단아 핸드폰.
단아 : 네. 어머니?
영인E : 나 지금 집에 들어가는 길인데, 들어와서 얘기 좀 하자.
단아 : 지금이요?
영인E : 이실장하고 같이 있니?
단아 : 네.
영인E : 들어와라.
단아 : 알겠어요. (전화 끊는)
강석 : 뭐라세요?
단아 : 지금 들어오라구.
강석 : 나하고 어디 가야 한다고 하지 그랬어요.
단아 :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아요.
하는데 강석의 핸드폰 울리고.
강석 : 네.
영자E : 너 어디야?
강석 : 왜요?
영자E : 하교수 어머니 만나서 얘기 다 끝냈으니까 빨리 들어와서 아버지께 정리하겠다고 말씀드려.
강석 : (굳어지고)
#.43 씬. 종가 앞.(낮)
강석의 차에서 내리는 단아, 강석.
단아 : 그냥 가요. 두 분이 만나셨으면 좋은 소리 못 들어요.
강석 : 그러니까 죽여 주십쇼 하러 온 거잖아요.
태영의 차 와서 멈추는. 태영, 차에서 내리는.
강석 : (인사하는)
태영 : 단아 데려다 주러 온 건가?
강석 : 아닙니다. 빌러 왔습니다.
#.44 씬. 부엌.(낮)
영인, 물을 벌컥 벌컥 마시는.
삼월 : 천천히 마시지 않구요. 물에 체하면 고생하는데.
영인 : 속이 타서요.
조만E : 어머. 오셨어요?
영인 : (고개 돌리는)
#.45 씬. 마루.(낮)
강석, 단아, 태영 서있고.
조만 : 토요일인데 데이트 안하고 왜 집으로 와?
영인, 부엌에서 나오는.
영인 : 이실장은 왜 왔어요?
강석 : .....
#.46 씬. 만기의 방.(낮)
만기, 석호, 영인, 강석, 단아, 태영 앉아있는.
영인 : 저하고 단아만 알 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 아버님.
만기 : 무슨 일이냐?
영인 : 오늘 이강석씨 어머님 만났습니다.
강석 : .....
단아 : .....
영인 : 그 댁에선 우리 단아 절대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네요. 아버님.
만기 : (눈 감고)
영인 : 심한 말이 많이 오갔습니다. 결국엔 저도 그런 댁으론 제 아이 보낼 수 없다고
매듭을 짓고 들어왔습니다. 이강석씨?
강석 : 네.
영인 : 자기 부모님이 어떤 분들이라는 건, 누구보다 이강석씨 자신이 잘 알 거 아니에요?
그럼, 애초부터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죠.
어쩌자구 우리 단아가 결혼까지 결심하게 만들어요? 안될 일이라는 거 뻔히 알면서.
강석 : 죄송합니다. 어른들 뵐 낯이 없습니다.
영인 :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요. 아버님?
만기 : ......
영인 : 아버님께선 저 사람 집에서 허락을 받아오면 우리도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하셨지만,
될 일이 아닌 거 같습니다. 죽었다 깨나도 그런 며느리는 못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분을 어머니로 둔
저 사람한테 어떻게 우리 단아를 보낼 수 있겠어요?
만기 : 단아야?
단아 : 네, 할아버님.
만기 : 네 어머니 말이 그른 거 같지 않구나.
강석 : 할아버님. 시간을 좀 주십쇼. 어떻게든 저희 부모님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영인 : 설득 당할 분인 거 같아요? 자기 부모님을 자기가 그렇게 모르겠냐구요?
강석 : 하겠습니다. 어떻게든 저희 결혼허락 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만기 : 이보게.
강석 : 네, 할아버님.
만기 : 그럼 가서 해보게.
영인 : 아버님.
만기 : 해보겠다고 하지 않느냐? 그럼 기회는 줘봐야지.
#.47 씬. 종가 앞.(낮)
강석, 태영 나오는.
태영 : 맨정신으로 가서 싸울 수 있겠냐?
강석 : .....
#.48 씬. 술집.(밤)
강석, 태영 술 마시고 있는.
태영 : 성질 같아선 다 때려 치라고 하고 싶다. 정말 성질 같아선,
우리 단아 그런 수모 겪게 하는 너 반쯤 죽여 놓고 싶어. 아니 그냥 죽여 놓고 싶다.
강석 : 때리셔도 됩니다.
태영 : 근데 왜 안하는 줄 아냐?
강석 : .....
태영 : 저를 네 부모가 어떻게 생각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만 두겠습니다, 하지 않는 우리 단아 때문이다.
어른들 말씀이면, 화약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 들어가라고 해도 뭔가 이유가 있으시겠지 하고
의심 없이 뛰어들 놈이거든. 우리 단아. 그런데도 가만 있드라.
강석 : ......
태영 : 그 자식, 너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는 거 보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거 같았다.
지 놈이 지금 무슨 꼴을 겪고 있는데, 저 놈을 저렇게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나, 미치겠드라 정말.
강석 : 죄송합니다.
태영 : 그 놈 독한 구석이 있는 놈이야. 한번 이거다 싶으면, 죽어도 그것만 보는 놈이다.
그런 놈이 널 보고 있는 거야.
강석 : 압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태영 : 뭐든 해봐라. 단식 투쟁을 하든 뭘 하든. 할 수 있는 거 뭐든 해. 그래서 데려가라, 우리 단아.
강석 : 고맙습니다, 형님.
태영 : (술 따라 주면서)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이지만, 나도 단아한테 약속을 했으니 지켜볼 거다.
너 이쁘게 보겠다고 약속 했으니까.
강석 : .....
#.49 씬. 단아의 방.(밤)
단아, 영인 앉아있는.
영인 : 안돼, 단아야. 나 그런 집으로 너 절대 못 보내.
단아 : .....
영인 : 그 사람 사랑하는 네 마음은 알아, 하지만 그것만 가지곤 안되는 일인 거 같아. 그만두자, 단아야.
단아 : 죄송해요, 어머니.
영인 : (안타까운 심정으로) 단아야.
단아 : 그 사람이 포기하지 않으면 저 못해요.
영인 : .....
단아 : 저 때문에 자기 천성까지 버린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을 어떻게 외면해요.
#.50 씬. 부엌.(밤)
삼월, 조만, 주정 얘기하고 있는.
조만 : 단아 인생은 왜 저렇게 꼬이는지 모르겠어요. 결혼 날짜 잡는 일만 남은 줄 알았더니.
주정 : 오빤 기다려보겠다고 하신 거야?
삼월 : 그러시겠다고는 하셨는데. 왠지 나도 이쯤에서 그만 뒀으면 싶어.
주정 : 할멈까지 왜 그래? 단아, 겨우 진하 잊고 마음 붙인 사람인데.
삼월 : 만약 허락이 떨어진다 해도
그런 집안에 들어가서 우리 단아 마음고생하고 사는 거 차마 못 볼 거 같아.
#.51 씬. 마루.(밤)
단아의 방에서 나오는 영인. 주정 부엌에서 나오는.
주정 : 조카댁?
영인 : 네.
주정 : 그냥 둬요.
영인 : 어떻게 그냥 둬요. 고모님은 안 만나보셔서 그래요.
우리 단아한테 도화살 어쩌구 하면서 사내 잡아먹는 팔자라고 막말까지 한 사람이에요.
주정 : 도화살?
영인 : 계속 질질 끌면 우리 단아 더 심한 모욕도 당해야 할 거라구요. 저는 그건 못 보겠어요.
#.52 씬. 길.(밤)
태영, 강석 술집에서 나오는. 강석의 차 옆에 대리기사 기다리고 있고.
강석 : 타세요, 형님.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갈게요.
태영 : 난 걸어가면 되니까 가.
강석 : 타세요.
태영 : 그냥 난 좀 걷고 싶어서 그래. 야, 이강석?
강석 : 네. 형님.
태영 : (강석 어깨 잡고) 기운 잃지 마라.
강석 : 네.
태영 : (끄덕이고 돌아서서 걸어가는)
#.53 씬. 길.(밤)
태영, 술에 취해 걸어오는데,
말순, 길에서 구역질하고 앉아있는. 등을 쳐주는 장기.
장기 : 아니,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요?
태영 : (멍하니 말순을 보는)
장기 : 어. (태영 보고) 안녕하세요?
태영 : .....
장기 : 선배, 선배 애인 저기 계신데요.
말순 : (고개 들고 태영을 보는)
태영 : .....
말순 :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장기 : 선배? 선배? (태영 옆으로 다가오며) 좀 따라가 보세요. 오늘 미친 듯이 술을 마시더라구요.
두 분 싸우신 거예요?
태영 :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장기 : 아니, 왜들 그러세요?
#.54 씬. 말순의 집.(밤)
말순, 술에 취해 들어오는, 뜨개질 하던 진아 놀라서 일어서서 말순을 잡는.
진아 : 언니.
말순 : (들어와서 널부러지는)
진아 : 무슨 술을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드셨어요.
말순 : (울음을 토해내는)
진아 : 언니?
말순 : 진아야. 진아야.
진아 : 네.
말순 : 나 그 자식, 하태영 그 자식 진짜 많이 사랑했다. 아니, 아직도 많이 사랑한다.
진아 : .....
말순 : 그런데 그래서 안 되겠는 거야. 너무 많이 사랑하니까.
그 자식한테 내가 진 짐 같이 지자고 할 수가 없다.
진아 : .....
말순 : (더욱 서럽게 울면서) 나도 징글징글한 내 식구들, 같이 짊어져달라고 하는 건 사랑이 아니잖냐?
그렇지 않아도 지고 있는 짐 많은 놈한테 그것까지 해달라고 하는 건 진짜 사랑하는 게 아니잖아?
진아 : (애처롭게 보다가 말순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55 씬. 태영의 방.(밤)
태영, 괴로운 심정으로 앉는.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말순의 모습이 떠오르고. 고개 흔들며 애써 떨쳐내려고 하는.
#.56 씬. 단아의 방.(밤)
단아,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데.
석호E : 단아야?
단아 : (일어서서 문 열며) 네, 아버지.
석호 : 들어가도 되겠니?
단아 : 네. 들어오세요.
석호, 들어와 앉고, 단아 앉는.
석호 : 단아야?
단아 : 네.
석호 : 네 어머닌 도저히 널 그 사람한테 못 보내겠다고 하는구나.
보내주고 싶어도, 그 집안에서 받아들이지 않을테니 어쩌겠냐구.
단아 : ......
석호 : 그런데도 그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니?
단아 : .....
석호 : 진하를 잊고 그 친구한테 마음을 준 것처럼, 또 그렇게 잊혀지지 않을까?
단아 : 안될 거 같아요, 아버지.
석호 : ......
단아 : 진하 오빠완 같이 쌓아온 시간들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10년을 매달려 살았어요.
하지만 그 사람하고 저.....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걸 떨쳐버리기 위해선 제 나머지 인생이 다 필요할 거예요.
석호 : (단아의 손을 잡는) 알겠다, 네 마음. 그렇다면 안 되는 거겠지.
단아 : 죄송해요, 아버지. 늘 마음 아프게 해드려서.....
석호 : (가슴 아프게 보는)
#.57 씬. 강석의 집 거실.(밤)
천갑, 술을 마시고 있는. 영자 그 옆에서.
영자 : 내가 다 끝내고 왔다는데 왜 이래? 당신? 하교수 새엄마랑 담판을 짓고 왔다니까.
들어오는 강석.
영자 : 일찍 들어오라니까 왜 지금 와?
강석 : (다가오는)
영자 : 빨리 말씀 드려, 아버지한테. 다 끝났다구.
이젠 예전처럼 아버지 마음에 드는 아들로 살아드리겠습니다, 그래, 어서.
강석 : (무릎을 꿇는)
영자 : 그래. 여보. 강석이 잘못했다고 저러잖아. 그러니까 당신도 이젠....
천갑 : (강석을 보고) 다 끝난 거냐?
강석 : 아버지.
천갑 : .....
강석 : 저 좀 살게 해주세요, 아버지.
천갑 : ......
영자 : 강석아?
강석 : 그 사람 아니면, 저 살아질 거 같지 않아요.
그런 세 사람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