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으로 이끌어 가는 감사
(2024.11.17. 주일 낮 예배)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7:11-19
주 제 : 감사하는 마음은 구원을 받았다는 외적인 증거가 된다.
1. 감사하는 나병환자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예수님 앞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서 제자들에게 구원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냥 교실에 앉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시면서 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이겠지요. 제자들은 큰 일을 하려면 큰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에게 더 큰 믿음을 주십시오. 이렇게 구했습니다. 그에 대해서 예수님은 ‘큰 믿음 작은 믿음 이런 것은 없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믿음이 있으면 뽕나무도 뽑을 수 있고 산도 들어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까 큰 믿음, 작은 믿음 이런 말은 하지 말라.’는 취지로 대답하셨습니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멀리서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렇게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구했습니다. 나병 환자들은 사람들 가까이 올 수가 없었습니다. 나병의 전염성 때문에 그들은 사람들과 같이 살아갈 수 없고 떨어져서 살아야 했고, 항상 사람들 가까이 올 수는 없고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다른 말씀은 없으시고, 다만 ‘제사장에게 가서 너희의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 당시에 나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은 병이 나았다고 곧 바로 동네로 들어올 수는 없고, 반드시 먼저 제사장에게 가서 자기의 몸을 보이고 제사장이 검사를 한 후, 제사장이 나병이 나았다고 선언을 해주어야 그 사람은 다시 다른 사람처럼 동네로 들어와서 다른 사람과 같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에게로 가서 몸을 보이라는 말씀은 이미 병이 나았다는 뜻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병이 나으려면 예수님께서 그들과 가까이 계셔서 그들의 몸에 손을 대든지 아니면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어야만 병이 낫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과 예수님 사이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병이 나았다고 전제하고 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니 그들은 예수님의 그 말을 듣고 그 길로 의심없이 제사장에게로 가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들이 출발할 때는 그들의 몸이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제사장에게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가는 도중에 그 몸이 고쳐졌어요. 이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믿음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나병환자들은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은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가 왜 여기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지 이유를 알겠습니까? 작은 믿음 큰 믿음이라는 것 없다. 믿기만 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런데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보니 자기들의 몸이 깨끗해진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들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마 그 기쁨은 상상도 못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모두들 기뻐하며 제사장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은 그 길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몸이 깨끗해졌으니까 예수님 가까이 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소리높여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기의 기쁨에 대해서 어떻게 감사할지 몰랐던 그는 그렇게 자기의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열 사람이 낫지 않았느냐?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이 이 이방인 외에는 아무도 없느냐?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고 너를 구원했다.’
3. 감사 : 믿음의 외적인 표현
우리는 이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은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 그 한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나머지 아홉 사람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사람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왜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을까요? 그들에게 일어난 기적은 그냥 말 그대로 기적일 뿐이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났고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들도 분명히 믿었어요. 믿었기에 몸이 낫지도 않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사장에게 가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그들도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 믿음은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믿음은 대체 무슨 믿음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열매로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다. 사과가 열리면 그 나무는 사과나무이고 감이 열리면 그 나무는 감나무입니다. 그가 가진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기적을 맛보고도 하나님께 감사도 드리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는 사람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의 삶을 보면 그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믿음의 외적인 표현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고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인생의 총 결산 ; 죽음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를 보려면 그 사람의 말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참!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 차례도 곁길로 나가지 않고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드라마였어요. 주인공 자이젠 고로는 암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외과의사입니다. 그는 자기의 출세와 야망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스승을 배반하기도 하고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 환자를 이용하기도 하다가보니 그 환자가 결국 죽게 되었지만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아요. 그런데 암전문의사인 그가 암에 걸려서 결국 죽게 되는데 그때가 자기의 목적을 거의 이루기 직전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이런 말을 합니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다만 원통할 뿐이다.’ 이런 말을 하고 죽어요.
아주 단호해보입니다. 그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 조금도 뉘우치지 않습니다. 그가 배반한 스승에 대해서도 그가 죽게 만든 환자에 대해서도 전혀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드라마에서는 그가 죽어서 그의 시신이 병동을 떠날 때, 그 병원의 모든 의사가 도열을 하고 그의 장엄한 죽음에 경의를 표하는 것 같이 하지만 우리가 볼 때 그의 죽음은 자기의 목적만을 위해서 살다가 간 아무 가치없는 삶을 그대로 나타내 준 결과였을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이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5. 루포의 어머니
이에 반해서 로마서 16:13을 보시면,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루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셨을 때,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그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었는데 그때 억지로 로마 군병에 의해서 예수님 대신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간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그때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지만 그 덕분에 예수님의 마지막 가신 장면을 끝까지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와 그의 가족은 전부 믿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나타나지 않는데 로마서에 와서 사도 바울이 그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을 남겼어요.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니라.’ 이 말이 그들이 그후 어떻게 살았는지를 완전히 나타내줍니다. 이 말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들은 그후 언제나 주님을 따르며 언제나 주를 경배하며 예배하며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이 바로 그들이 믿는 사람이었으며 그들은 구원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산을 뽑아 바다에 빠지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아니면 그런 기적을 보았을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께 경배하고 주를 예배하고 주께 감사하는 그런 삶으로 변하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를 드리고 우리를 위해서 돌아가신 주께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가는 줄 믿습니다. 다같이 믿음의 사람이 되고 예배하고 감사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어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