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비공개 입니다
하루는 괜찮고 하루는 안 괜찮고 살아질 것 같고 살아지지 않고
-팽팽한 공포, 황혜경
나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다.
-비정성시, 김경주
언니, 가을이 깊네요. 밖을 보니 은행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후드득 머리채를 털고 있어요.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근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에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선 자리가 위태롭고 아찔해도, 징검다리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도, 한 발 한 발 제가 발 디딜 자리가 미사일처럼 커다랗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젠가 이 시절을 바르게 건너간 뒤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나, 좀 늦었어도 잘했지. 사실 나는 이걸 잘한다니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당장 제 앞을 가르는 물의 세기는 가파르고, 돌다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어 눈에 보이지조차 않네요. 그래서 이렇게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오래된 물음표 하나만 응시하고 있어요. 정말 중요한 '돈'과 역시 중요한 '시간'을 헤아리며, 초조해질 때마다, 한 손으로 짚어왔고, 지금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그것.
'어찌해야 하나.' 그러면 저항하듯 제 속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려요.
'내가, 무얼, 더.'
-서른, 김애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가급적 아주 먼 길을 돌아가본적 있는지 그렇게 도착한 집 앞을 내 집이 아닌듯 그냥 지나쳐본적 있는지
마음을 다 놓쳐버린 길 위에서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날 숨쉬는것 조차 성가신 날
-그런 날 있었는지, 김명기.
울지 말게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 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 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 나서지
바람이 차다고 고단한 잠에서 아직 깨지 않았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있을까
산다는 건 참 만만치 않은 거라네 아차 하는 사이에 화투판 끗발처럼 어쩌다 좋은 날도 있긴 하겠지만 그거야 그떄 뿐이지
어느 날 큰 비가 올지 그 비에 뭐가 무너지고 뭐가 떠내려갈지 누가 알겠나
그래도 세상은 꿈꾸는 이들의 것이지 개똥 같은 희망이라도 하나 품고 사는 건 행복한 거야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사는 삶은 얼마나 불쌍한가
자, 한잔 들게나 되는 게 없다고 이놈의 세상 되는 게 좆도 없다고 술에 코 박고 우는 친구야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 이외수.
가끔은 생각이 나서 가끔 그 말이 듣고도 싶다 어려서 아프거나 어려서 담장 바깥의 일들로 데이기라도 한 날이면 들었던 말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더 잠들 수 없는 밤 조금 울기 위해 잠시만 전깃불을 끄기도 한다
-새날, 이병률
모든 것은 결국 어느 정도는 '그러면 좀 어때'라는 것을. 오늘 할 일을 다 못했어, 그럼 어때. 차가 잘 안 나가, 그럼 어때. 돈이 별로 없어, 그럼 어때. 부모님은 날 별로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아, 그럼 어때...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해방되는 기분이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내 방식이 될거야.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당신 가고 나서 뒤돌아서니 어디 발 디딜 땅 한 곳 없습니다
-땅, 김용택.
있던 건 지나가고 없던 건 돌아온다. 곧 지나갈 순간들, 너무 두려워하며 마음쓰지 마라.
-메리대구 공방전
함께 공유하면 상처가 치유될까.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때로부터 마음이 멀어지길. 바래진 상처를 딛고 다른 시간 속으로 한 발짝 나아가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먼 항구에 배를 대듯이 나 이제 아무데서나 쉬어야겠다. 동백꽃 없어도 좋으리, 해당화 없어도 좋으리,
-먼 후일, 오세영.
누가 떠나든죽든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기형도.
햇살이라도 받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만 계세요.
흘러갈 거에요, 모든 힘든 순간들. 바로 저 강물처럼.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