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기념관 와룡매
남산 기슭의 안중근의사 기념관 부근에서 자라고 있는 홍매 한 그루, 백매 한 그루는 모두 ‘와룡매’라고 불리는 매화나무이다.
크게 성장하면 ‘엎드린 용’의 모습을 하기 때문에 ‘와룡매’라고 부른다. 수령은 두 나무 모두 16년, 나무 높이는 각각 3.0m이다.
나무에 얽힌 사연
창덕궁 선정전(宣政殿)1) 앞에 있던 와룡매(臥龍梅)는 홍색과 백색의 수려한 자태로 궁궐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일본군 장수에 의해 뿌리째 뽑혀 일본으로 건너갔다. 1592년 정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 침략을 위해 출병(出兵) 명령을 내렸고, 센다이(仙臺)2) 지역의 성주였던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1567~1636)도 침략군대의 대열에 참가하였다. 다테 마사무네는 1593년 4월 13일에 부산에 상륙한 다음 곧바로 서울로 진격하여 창덕궁 궐내에 있던 매화나무를 뽑아 전리품의 하나로 일본으로 가져갔다. 다테가 뽑아간 매화나무가 몇 그루인지 알려진 바는 없지만 네 그루 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3) 다테 마사무네가 1593년 일본으로 가져간 와룡매는 모두 네 그루인데, 미야기형무소 안에 한 그루, 센다이 시민공원 안에 한 그루, 그리고 미야기현 마쓰시마(松島)의 즈이간지(瑞巖寺)4)에 두 그루(홍매·백매 각 한 그루)가 있다.5) 즈이간지의 와룡매는 1942년 9월 12일 일본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바 있다. 미야기현의 사찰 다이린지(大林寺)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기 전에 감옥에서 알게 된 일본인 교도관의 위패가 안치된 절이며, 해마다 이곳 주민들이 모여 안중근 의사 추도법회를 여는 절이기도 하다. 그 교도관은 여순(旅順)감옥에서 안 의사가 형을 집행 당하기 직전에 받은 안 의사의 붓글씨를 평생 보관해 오면서 안 의사의 명복을 빌어 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그의 부인에게 붓글씨를 건네주며 죽을 때까지 안 의사의 명복을 빌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들 부부에게는 자손이 없어 부인은 자신의 임종이 가까워서는 안 의사의 붓글씨와 남편의 위패를 다이린지에 보냈다고 한다.
와룡매의 귀환
1998년 9월 5일 일본 미야기현에 소재하는 다이린지(大林寺)에서 개최된 안중근 의사 추도 법회에 참석한 즈이간지 주지가 행사 후 가진 ‘한일친선 간담회’에서 와룡매를 한일친선의 상징으로 남산 기슭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식재할 수 있도록 한국에 보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1999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추도식에 맞춰 환국하게 되었다. 즈이간지 측이 400여 년 만에 사죄의 뜻을 담아 와룡매의 자목을 한국에 보냄으로써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 식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약 400여 년간 일본 땅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와룡매는 가지를 떼어 접목이 된 채 그 분신인 묘목으로 1999년 3월 10일 고국으로 돌아와 남산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 뜰에 심어졌다. 참고로 다이린지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기 전에 쓴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당시 여순 감옥의 교도관이었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 씨의 위패도 이곳에 있다.
와룡매의 상태
안중근의사 기념관 최명수 과장의 안내로 매화나무를 돌아볼 수 있었는데, 백매는 그동안 꽃은 피었지만 매실이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방의 어느 수목원에서 백매 가지를 꺾어다가 페트병에 흙과 함께 담아 나무줄기에 달아 두어 꽃이 피도록 유도하였고, 그렇게 하자 2007년에 백매에서 매실이 여러 개 달린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부근에 심어져 있는 백매와 홍매 두 그루의 발육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2010년 현재 와룡매의 발육상태는 좋아 보였고, 백매와 홍매 두 그루 모두에서 많은 꽃이 피었으며, 가지와 줄기가 잘 자라고 있어 앞으로도 더욱 많은 꽃이 필 것이다. 남산 기슭에 있는 이 두 그루의 와룡매가 더욱 성장하여 와룡매의 맥을 잇고, 건강하고 발전적인 한일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20세기 초 일본의 침략으로 국운이 백천간두에 처했을 때 국권(國權) 회복과 동양평화의 구현을 위하여 활약하다가 1910년 3월 26일 중국 여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생애, 사상, 위업 등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역사의 교육장이다. 1970년 10월 개관하였으며 2001년 현대화 보수공사로 시설과 전시내용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보수공사를 하였지만 그래도 공간이 협소하여 2010년 7월 현재 기념관 바로 옆에 새롭게 기념관 건물을 신축하고 있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 년 동안 해외에서 풍찬 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도달치 못하고 이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독립을 회복하면 죽는 자 유한이 없겠노라.
대한제국 의군 참모총장 안중근
▲옛 안중근의사 기념관
▲서울타워 아래 두 그루 와룡매
▲(사진 왼쪽은 백매, 오른쪽은 홍매) 와룡매 백매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5가 471(남산도서관 뒤)
출처:(매화나무)
2026-04-19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