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1. 오전 9시 주일예배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주 예수를 아는 이들
기도 김복순 권사
성경 말씀 베드로전서 2:18~25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본이 되는 자
찬송 193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헌금 기도 3010178504011(농협, 연세소망교회)
가족 방문 정구섭 장로 큰아들, 김복순 권사 대전 딸, 임배근 성도 사위,
이정석 집사 아들 가족
찬송 167 주 예수의 강림이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섬 집 아이
밤 8시 즈음, 우리 박영숙 집사께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 새 소리 좀 나지 않게 해 주세요.
새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어요.
그래서 귀뚜라미 소리니 기도하고 주무세요.
가을입니다.
18절입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 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절,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절,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절,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절,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절,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매일 아침 일찍 밥을 먹으려 하면
어항 속, 금붕어가 뻑끔뻑끔 소리를 합니다.
목사님, 나도 아침밥 먹어야죠.
그러면 숟가락을 들다 말고 금붕어에게 갑니다.
금붕어님, 아침진지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목사님도 조반을 먹습니다.
목사님은 소식을 합니다.
그러니 항상 배가 고픕니다.
그럴 때마다 뭐 맛있는 것 없을까?
생각하다가 목사님이 좋아하는 팥죽 생각에
전주까지 팥죽 사러 갑니다.
그러면 식사를 못 드셔 숨넘어가는 우리 최연희 권사님 생각이 나고
입이 짧은 이재열 집사님 생각도 나고
우리 석 권사님 생각도 나고
그러면 1인분 더 사다 드리면 콩 한 조각씩 나누어 드십니다.
18절입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 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가을 하면 생각나는 것,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홍시입니다.
그래서 요양원 앞뜰에도 감나무를 심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니
베드로가 홍시가 되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홍시처럼
나그네새들에게까지 새참거리가 되지 않습니까?
당시, 베드로 나이가 지금 목사님 나이일 텐데
홍시처럼 익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모습을 보면서
뼈저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보다도 더 가혹하게 죽을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에 거꾸로 죽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30년이 흘러
죽을 때에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18절입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 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살다 보면
까다로운 사람들이 왜 없겠습니까?
때론, 목사님 자신도 까다롭게 살았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까다롭게 살지 않았습니까?
마음이 삐뚤어진 사람
괴팍한 사람
사나운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바로 내 모습인 것처럼
섬뜩하기도 합니다.
목사님도 목사 되기 전에는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피눈물 흘리면서 뼈저리도록 후회했습니다.
이제, 목사님도 베드로만큼 60을 넘기었으니
홍시가 되어가지 않았겠습니까?
19절입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절,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오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살다 보면
애매히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고 나면 괜한 오해였습니다.
이렇듯이 우리도 애매한 오해를 받을 때면 얼마나 괴롭습니까?
마태복음 26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수께서 죽기 전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정말 잔인합니다.
어쩜 이렇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베드로 눈동자를 보면서
심장에 가시 박히도록 말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아니라고 펄쩍펄쩍 부인했지만
숙명인 것처럼
예수님의 예언이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죽을 때까지
베드로의 심장 골수를 후벼 파듯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치, 호손의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해스터처럼,
목사님과 간통한 헤스터 연인의 가슴에 붙여진 주홍글씨 A가
간통 adultery의 머리글자입니다.
이 여인은
이 글자를 평생 가슴에 붙이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조롱 거리였겠습니까?
목사님도 이런 수모를 겪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보다 훨씬 더 가혹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이 가혹함을 참고 견디며 살아온
베드로의 처절한 울림입니다.
21절입니다.
이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목사님은 이 말씀을 대하면서 숨이 턱 막혔습니다.
그래서 잠시 성경을 묵상하다 말고 산책 나갔습니다.
밖은 오전 한나절 땡볕이 뜨거웠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목사님 가슴도 눈시울도 뜨거워졌습니다.
목사님이 어릴 적에 교회학교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깔깔깔 배꼽 잡고 놀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날 따라 해 봐요..
요렇게
날따라 해봐요
이렇게.
이 세상 어느 아빠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들아!
넌 아빠처럼 살아다오.
너무나 섬뜩하지 않습니까?
우리 아들도
아빠처럼
산다고 가정을 해 본다면~
그런데 예수께서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무릎을 꿇어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었습니다.
병든 자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사랑했던 제자들에게 배반당해
은 30량에 팔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끙끙 골고다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 쿵쿵쿵 세 개의 녹슨 대못에 박혀 죽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얼마나 처절한 인생이었습니까?
그것도 33세.
너무나 젊었고
너무나 짧았던 인생이잖습니까?
이럴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김민기
새벽마다 산책하려고 문을 열고 나가면
잔디밭 위에 아침 이슬이 하얗게 맺혀 있습니다.
얼마나 경의롭고 아름다운지.
아침이슬은
그렇게 짧았던 예수님의 인생 같기도 합니다.
시대의 영웅은 인생이 짧습니다.
윤동주 시인도 29의 나이에 일본 놈들에게 옥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윤동주의 서시는 경전입니다.
이때 나이가 25세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2절입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절,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 지구상에서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어느 누가 이렇게 살았겠습니까?
목사님도 얼마 남지 않은 늙은 인생일지라도
최소한 목사님 입술에서
궤사詭詐가 없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궤사는
간사스러운 거짓으로 남을 교묘하게 속이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베드로는
친히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착하심을
예수님과 3년을 함께 살면서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비겁했을지라도 베드로가 어디 가겠습니까?
돌이켜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지금 돌이켜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착하게 사는 자 되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묵상, 인애하신 주님,
입추가 지났어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할지라도 짜증 내지 않고 감사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어제가 칠월칠석입니다.
그렇게 그리웠던 견우와 직녀가 만났으니
우리도 견우와 직녀처럼 사랑하게 하옵소서.
세상은 요지경 속입니다.
전쟁이 생활화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사람 죽이는 일이 파리 목숨입니다.
러시아 푸틴도 북한의 김정은도 중국의 시진핑도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도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주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신 주님
우리는 이렇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하루하루 얼마나 애쓰고 있습니까?
밥 한 수저 드리기 위해 무한 애를 쓰는
우리 선생님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찬송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주님 우리가 본이 되게 살았습니까?
그래서 내 아들딸들이 아빠처럼 엄마처럼 살기를 원하십니까?
본이 되어주신 주님,
예수님처럼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 참 좋으신 주님, 옷깃을 여미어 주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드립니다.
주일, 주정, 감사, 십일조를 드립니다.
드린 손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교통 하심이
예수님을 본받기를 원하는
우리 성도님들 머리 위에 그 가정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