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어린 시절 우리 가정은 경제적으로 넉넉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 까닭에 우리 가족은, 내가 열 살무렵 이른바 ‘내집마련’을 할 때까지 월셋방을 옮겨다니는 생활을 했었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무렵, 우리 가족은 당시만 하더라도 군 지역이었던 경상북도 상주 읍내에 있던 단독주택 2층에서 김천시의 어느 단독주택 곁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부친의 직장 문제로 이사를 간 김천시의 집은 여전히 월셋방이었고, 제법 큰 방 두 개에다 거실 역할을 하던 마루까지 있던 먼저 집과 달리 새로 이사온 집은 작은 방 두 개에다 좁다란 재래식 부엌 하나 뿐이었으니, 어른들 입장에서라면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이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였던 나에게는 이제 드디어 군 지역이 아닌 시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는 철모르는 자부심에다, 이사하면서 새로 장만한 전화기와 가스레인지, 컬러 텔레비전이 그저 뿌듯하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도 재래식 화장실 가기를 유난히 싫어하고 무서워했던 나에게, 양변기가 아닌 화변기이기는 했지만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안겨준 것이었다.
새 집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부엌에서 뭔가 신기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본 적 없던, 튼튼한 뒷다리와 가늘고 길다란 더듬이, 그리고 둥글둥글한 황갈색 몸통을 가진 신기한 곤충, 나와 동생은 분명 그 곤충이 책에서나 보던 귀뚜라미라며 탄성을 올렸다. 세상에, 새로 이사온 집에는 귀뚜라미까지 볼 수 있다니, 어린 마음에 우리집 부엌을 한번씩 드나들던 그 곤충은 TV에서 광고하던 값비싼 변신합체로봇 장난감보다 더 재미있고 신기한 것이었다. 밤이 드리우면 그 귀뚜라미가 왔나 안 왔나를 살피러 일부러 부엌에 드나들기도 했고, 멋모르고 뒷다리를 잡았다가는 잡힌 다리만 떼고 도망가는 녀석에게 다리 붙여 준다고 본드를 한 손에 들고 외다리가 된 녀석을 찾아다니던 기억도 새록새록 살아난다. 그렇게 만들어간 ‘귀뚜라미’와의 추억은,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이듬해 가을날 우리 가족이 인근에 있던 지은지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어준 그 귀뚜라미가 사실은 귀뚜라미가 아닌 ‘곱등이’라는 이름을 가진 곤충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것도, 새로 이사를 하면서 부모님께서 사주신 책을 통해서였다.
곱등이의 추억이 서린 그 집을 떠난지 20년도 더 지난 올 여름, 신문지상에는 한동안 잊고 있던, 그리고 예전에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자주 접하기도 어려웠던 곤충의 이름이 심심찮게 보인다. 아니, 심심찮게 보이는 정도가 아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를 살펴보니 아주 1위에 올라 있다. 바로 내가 어린시절을 보낸 김천시의 한 월셋집 부엌에서 만나곤 했던 그 곱등이다. ‘곱등이’도 아닌 ‘꼽등이’로 보도되는 내용은, 유난히 습하고 무더웠던 올 여름 날씨 때문에 곱등이들이 아파트 단지에 난데없이 떼로 출몰한 탓에, 사람들이 적지않은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된 기사를 읽어 보니 이 곤충은 원래 습한 곳을 매우 좋아하며 주로 쓰레기나 죽은 동물, 곤충 등을 먹고 사는데, 올 여름의 유달리 습한 날씨 탓에 주택에 출몰하게 된 것이란다. 살충제를 뿌려도 잘 죽지 않는데다 생활습성 탓에 비위생적이며, 더구나 곤충 치고는 큰 몸집에다 흉측한 생김새 탓에 사람들을 몹시도 놀래킨단다. 이름하여 ‘괴물 귀뚜라미’라나…….
어린시절 귀뚜라미라 부르며 어린 나를 부엌에 들락거리게 만들었던 곱등이, 그 곱등이가 사실은 습하고 지저분한 곳에 서식하는데다 요즘 들어서는 사람들을 놀래키고 피해를 주는 해충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라고 불러야 할 일이 아닐까? 가을밤의 정취를 더해주는 고운 노래 불러주는 귀뚜라미인줄로만 알았더니, 알고보니 무더위와 습기라는 피하고만 싶은 이상 기후를 알려주는 곤충이라니! 어쩌면 내가 어린 시절 한 때를 곱등이와 함께 보낸 것도, 사실은 어린 마음으로는 눈치채기 어려웠던 우리 집안의 넉넉지 못했던 살림살이를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까지는 백과사전이나 곤충도감 같은 책이 아니면 접하기도 어려운 곱등이, 아니 꼽등이 이야기가 신문에 기사 차례로 나오더니, 요근래에는 아예 꼽등이송, 꼽등이 살리기 게임까지 나오고 있단다. 해충 범주에 속하지만 바퀴벌레, 파리 같은 것들과는 다르게 노래에다 게임까지 나오는 것을 보니, 그런 벌레를 귀뚜라미라고 부르며 반기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도 그다지 이상했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월셋방을 전전했던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생활, 조금 연세든 분들이라면 공유할 보리고개이라든가 1950년대 전시 생활의 기억은 그다지 되돌리고 싶은 것도 아닐 것이고, 그런 생활로 되돌아가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월셋방을 전전하던 생활을 한 것이 나에게는 고통이 아닌 추억으로 남듯이, 보리고개와 같이 못 살던 시절의 이야기도 오늘날에 와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승화되는 경우역시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귀엽지도 귀여워할 만한 대상도 아닌 곱등이를 귀뚜라미라 부르며 좋아했던 기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환경문제에 관한 화두를 심각하게 들먹이지 않더라도, 곱등이가 아파트와 가정집에 출몰하는 습하고 무더운 날씨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처럼 이상하게 습하고 무더운 날씨, 이른바 ‘기후변화’라는 것 역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고, 또 노력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곱등이 자체도 곱등이가 날뛰게 되는 습기와 무더위도 전혀 반길 일이 못 된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그런 곱등이를 귀뚜라미라 부르며 반기던 어린 시절의 추억만큼은 간직해 나가고 싶다.
출처: 『현대문예』, 2011년 1∙2월호, pp.100-103.
첫댓글 오랫만에 카페에 방문하셨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