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힙해요” 경복궁, 전세계 BTS 아미들 성지 되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이 모여 수문장 교대식을 보고 있다. 한복을 입으면 내·외국인 관계없이 경복궁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이태경 기자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곧 수문장 교대 의식이 진행됩니다.”
깃발을 든 가이드의 호령에 따라 한복을 입은 캄보디아 단체 관광객 20여 명이 줄지어 이동했다. 17일 오후 2시 경복궁 흥례문 앞에 다양한 국적의 인파가 모여들었다. 북소리가 울리고 수문군이 도열을 시작하자, 홍해 갈라지듯 늘어선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갓 쓰고 두루마기 차림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던 독일인 아메 하인즈(31)씨는 “병사들의 절도 있는 동작에 반했다”며 “코로나가 끝나기만 기다려 서울을 찾았는데 높은 빌딩과 옛 궁궐이 도심 한복판에 함께 있어 매력적”이라고 했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서울 경복궁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다양한 국적의 관람객들이 경복궁을 관람하는 모습. /연합뉴스
◇핫플레이스로 돌아온 경복궁
봄이 만개한 궁궐에 관광객이 돌아왔다. 코로나19로 막혔던 하늘길이 다시 열리자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화려한 봄날의 궁궐을 즐기려는 국내 관람객 발길도 부쩍 늘었다. 별빛 아래 경복궁 전각의 속살을 걸어보는 ‘경복궁 별빛 야행’도 15일 문을 열었다. 예매 경쟁이 치열해 ‘궁케팅(궁과 티케팅을 합친 말)’이란 신조어까지 나온 대표 궁궐 프로그램이다. 올해도 예매 시작 1분 만에 매진됐다.
경복궁 관람객이 정점을 찍은 건 2019년. 창덕궁·창경궁 등 4대 궁과 종묘를 합해 1061만명을 기록해 처음으로 연간 궁궐 관람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이듬해 봄 코로나가 터지면서 급격히 꺾였다가 올해 본격적으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관람객은 지난해 1분기 4834명에서 올해 13만4499명으로 28배로 증가했다. 정성조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장은 “예전엔 중국인 관광객이 압도적이었다면, 유럽·남미·동남아 등 국적이 다양해진 것도 새로운 변화”라고 했다.
한류 팬들에게 경복궁 근정전은 ‘방탄소년단(BTS)의 무대’다. 조선 시대 왕의 즉위식을 거행했던 근정전 앞에서 BTS가 한복을 입고 펼친 공연 실황이 2020년 9월 미국 NBC ‘지미 팰런 쇼’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됐다. 이날 만난 20대 브라질 여성은 “유튜브 공연 영상만 돌려 보다가 드디어 경복궁에 왔다”며 “BTS는 한국의 국보”라고 외쳤다.
지난 2020년 방탄소년단이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한복을 입고 펼친 무대가 미국 NBC '지미 팰런 쇼'를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됐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에서 열리고 있는 수문장 교대식을 지켜보는 외국인 관람객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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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은 한국 대표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미국 일간지 LA타임스가 2019년 ‘초심자를 위한 서울 관광’ 특집을 내면서 “K팝을 뒤로하고, 고궁부터 가보라”며 “경복궁에 들어서기 앞서 광화문 수문장 교대 행사에 20분을 투자해 보라”고 제안할 정도다. 신문은 “한국에는 지켜야 할 왕족이 없어 수염을 기른 병사들은 ‘연기자’이지만, 60㎞ 북쪽 DMZ(비무장지대)에는 더 바쁜 진짜 군인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수문장 교대식은 27년 전 한 서울시청 공무원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당시 이노근 서울시 문화과장이 “우리도 영국 버킹엄궁처럼 궁궐에서 수문장 교대 의식을 하면 어떨까” 제안해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작됐다. 조선 시대 수문장 교대 의식에 대한 자료는 남아있지 않아 처음엔 반대에 부딪혔지만, 2002년 5월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경복궁까지 확대됐다.
지난 2020년 한복을 입고 ‘경복궁 별빛야행’에 참가한 관람객들이 경회루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조명을 받은 2층 누각과 나무가 연못에 그대로 비치는 이곳은 별빛야행의 ‘베스트 뷰’로 꼽힌다. /박상훈 기자
경복궁 별빛야행에서 맛볼 수 있는 소주방 '도슭수라상'. /연합뉴스
◇“경복궁 힙하다”고 열광하는 MZ
MZ세대는 ‘별빛 야행’ ‘경복궁 생과방’ 등 궁궐 체험 프로그램에 열광한다. 생과방은 조선 시대 임금과 왕비의 후식과 별식을 준비하던 곳. 인터넷에는 “생과방 결제 중 매진” “수강 신청보다 예매하기 힘들다”는 눈물겨운 궁케팅 후기들이 올라와 있다. 수차례 예매 실패 끝에 지난해 ‘별빛 야행’을 다녀왔다는 최정이(26)씨는 “궁궐의 전각들을 걷고 옛 궁중 음식을 먹으며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판타지를 체험했다”고 했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젊은 세대는 전통문화를 고루한 게 아니라 낯설고 힙한 것으로 즐긴다”며 “서울공예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갤러리 등 주변에 즐길 수 있는 문화 시설이 많은 것도 경복궁의 장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