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 - K 선생
나도 여기에 설 날이 있구나. 막다른 골목. 평생 내 길 위엔 없다고 믿었는데 나이 마흔넷 한창 내달릴 이 길 위에 앞길 막막한 막다른 골목이 사자 아가리 마냥 따악 벌리고 있구나.
가진 것 없이 이름 하나로 살아가건만 내 이름 이젠 땅바닥에 내던져지고 이 사람 저 사람 발길에 차이며 바람에 날려 이 막다른 골목 언저리 처량히 맴도는구나 출구도 없이...
나에게 돌아가는 길도 잃어버린채 멀리, 멀리, 참으로 멀리도 나왔구나. 퉁퉁 불은 얼굴 보기도 싫고 삶에 대한 무성의로 가득한 내 똥배도 역겹다.
그래, 얼을 돌아보지 않고 그저 몸만을 전부로 믿는 얼이 썩은 이 괴물에게 어울리는 것은 막다른 골목에 서서 어쩔줄 몰라 찔찔 짜는 초라한 모습이다.
너는 여기에 더 내버려져 있어야 한다. 더 울어야 하고 더 외로워야 하고 더 죽을 맛이어야 한다.
더러워진 얼을 그대로 갖고서 여길 떠나서는 안 된다. 너에게 절망하지 않고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 양 하지 마라. 더 이상 위선은 깨끗이 단념하라.
아... 이런 몰골을 하고서 사람들 앞에서 서서 길에 관해 말해야 하다니 비참한 운명이다. 막다른 골목에 서서 길에 관해 말해야 하다니...
-----------------------------------------------------
1월 9일, 통전학림 기초과정 4기를 위해 목포에 내려 가는 기차에서 쓴 글이다. 날카롭고 가혹한 채찍을 연신 두들겨 맞고 있는 나는 결국 나 자신조차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아 갔다. 폭력은 폭력을 끌어내는지 이제는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되나보다...
이런 처지에 있는 내가 무슨 낯으로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더구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단 말인가.... 끝없는 자괴감이 밀려들고 뻔뻔스런 위선자가 아닌 다음에야 일주일 동안 어떻게 속마음 다르게 웃을 수 있겠는가.... 다스릴 수 없는 혼돈이 번져갔다.
나는 속 다르고 겉 다른 짓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뒤에서는 비난하면서 앞에선 예예 하는 이들을 지난 해 내내 하도 많이 봐서 이곳으로 옮겨와 한 동안은 미친듯이 솔직해지고 싶은 적이 있었다. 너무 그러다보니 스스로가 천박하고 무례해보여서 차차 자제가 되었지만 안과 밖이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목포에 내려가보니 다행히 뒤에 산이 있었다. 산은 언제나 나에게 새 숨을 쉬게 해주고 한적한 걸음걸이 속에서 고요를 가져다 준다. 그 산에는 디아코니아 자매회에서 예수 고난 14처를 마련해 두었는데 내 심정에 어찌 그리 한결같이 들어오는지 발길을 뗄 수가 없었다.
그 한 구절...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시각까지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일하면서, 고된 노동을 합니다. 우리는 욕을 얻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이제까지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고전4:11-13
고난의 감람산을 거닐며 어느새 나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매우 특이하게 생긴 예배당은 신 앞에 숨김없이 하지만 따뜻한 응시 속에서 나의 어둡고 수치스런 옷들을 다 벗기는 듯 했다. 차츰 차츰 내 마음의 먼지들도 가라앉고 나를 향해 내리치던 채찍도 이젠 놓게 되었다. 나같은 미천한 이는 주님의 십자가를 운운할 처지도 못되지만 그 산 어귀에 놓인 십자가를 어루만지며 내게도 고난의 십자가가 하나쯤은 있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머무는 동안 함께한 이들도 내 아픔을 아는지 따뜻한 눈길로 나의 모든 말들을 귀담아 들어주었다. 상처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애써 감추려고도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로 하루하루를 임했다.
마치는 즈음 다시금 얼몬새의 통전이란 삶의 과제가 나에게 진지하게 들어서게 되고 막다른 골목이라 믿었던 이 길 담장 너머로 아름답고 밝은 꽃들이 활짝 핀 너른 들이 펼쳐져 있음을 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목포 모임을 끝내고 청주로 가서 대전 하남의 학부모 교사가 다 모이는 모임에서 우리는 학교의 새 이름으로 '꽃피는 학교'를 하늘로부터 받게 되었고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참되고 살고 싶은 희망이 다시 솟고 우리는 행복하게 돌아왔다.
삶은 고난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가보다.
|
첫댓글 선생님의 손을 거칠게 뿌리친 그 손들을 마음에 두시기보단 선생님의 손을 지금도, 앞으로도 잡고 함께할 손들을 생각하시길 ..
선생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어떤 미사여구로 선생님께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통전교육을 따르고 아이들을 그 안에서 키우고 같이 성장하고자 하는 저희들의 존재가 바로 위안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며칠 후에 있을 부모교육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장미 아버님과 희수어머님의 따뜻한마음이 느껴져 좋네요.
삶의 길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 그 단면을 보는 것 만으로도 제 영혼이 맑아짐을 느낍니다. 짓밟혀져야 오히려 잘 자라는 보리들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련이 곧 성장임을 다시한번 새깁니다.
함께 가는 길이 거칠지만 마주 잡은 손과 바라보는 서로의 따뜻한 시선속에서 새롭게 힘 얻으시길 원합니다. 힘내세요~
선생님의 힘든 고난이 우리들에겐 커다란 부활의 기쁨으로 다가오게되는 신비를 느낌니다.... 그렇게 막다른 골목의 담장 너머로 작게 피어난 희망의 꽃을 보듬고 보듬어 사랑으로 활짝 피어날 그날은 곧 옵니다... 아니 이미 와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