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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여러 풍경 사진들 중에 가을이면 유독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전북 임실의 옥정호와 국사봉이다. 산꾼이나 풍경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이 몇 번이고 짙은 안개를 기다리며 찾아가는 곳이다. 나 또한 국사봉에서 바라보는 운해와 섬진강 상류의 안개가 차오르는 옥정호를 보기 위해 올 가을 세 번이나 가봤다. 가도 가도 또 가보고 싶은 곳이다.
국사봉에서 바라보는 구름바다 그 너머 진안 마이산(馬耳山)이 일출의 때를 맞춰 두 귀를 쫑긋 세우는 모습은 가히 선경이 아닐 수 없다. 짙은 안개치마를 두른 옥정호의 붕어섬(붕어등, 외앗날)이 웬만해선 속곳을 잘 보여 주지 않는다고 해서 ‘옥정댁’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이처럼 “오늘은 때가 잘 맞지 않으니 꼭 다시 오라”는 ‘옥정댁’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겨울이 올 때까지 오래 그리워할 곳이 한 군데 더 생긴 것이다. 단풍 들고 백설이 난분분할 때까지 몇 번이고 도저히 아니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올 가을 처음 갔을 때는 조금 아쉽게도 구름이 짙게 깔리는 바람에 제대로 된 일출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옥정댁의 푸르디푸른 속살을 보았으니 일단 신고식을 하고 인증샷을 찍었다. 그리고 두 번 가고 세 번째 갔을 때 마침내 구름바다 저 너머 두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을 만날 수 있었다. 여명의 안개능선 위로 암마이봉(686.0m)과 수마이봉(679.9m)이 두 귀를 쫑긋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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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면도의 꽃지 일몰. 붉은빛 선연한 서해바다가 더욱 슬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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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는 동자꽃이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 가을은 안개로부터 오는 듯… 곳곳에 짙게 깔려
마치 아무리 멀어도 다 들린다는 듯이, 제 아무리 낮게 속삭여도 다 알아듣겠다는 듯이, 그러나 마이산은 아무 말이 없었다. 겨우 내가 아는 고사성어는 마이동풍과 우이독경 정도다. 사실 말의 귀나 소의 귀가 그리 다르지 않을 터인데, 그 뜻을 보면 ‘말귀’와 ‘소귀’는 근본부터 다르다. 잘 알다시피 마이동풍(馬耳東風)은 ‘말의 귀에 동풍이 불어도 말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뜻. ‘남의 삿된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냥 지나쳐 흘려버림’을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우이독경(牛耳讀經)은 ‘쇠귀에 경 읽기’라는 뜻으로,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마이동풍의 귀엔 대인다운 풍모가 서려 있고, 우이독경의 귀엔 그야말로 무지하고 우매한 소인배의 꼬락서니가 엿보인다. 누구나 자기 자신은 마이동풍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보아도 영락없는 우이독경인 경우가 허다하다. 나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으니 새벽 마이산을 보며 나의 두 귀를 귓구멍 속으로, 달팽이관 속으로 자꾸 말아 넣고 싶었다.
어쩌면 가을은 안개로부터 오는지도 모른다. 낮밤의 기온 차이가 클수록 이른 새벽이면 강이나 호수 등 골골마다 안개가 짙게 피어오른다. 바로 이 무렵부터 음지의 숲속에는 꽃무릇이 절정을 이룬다. 꽃이 피어나는 모습이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만 같다. 꽃무릇이 무더기로 절정의 폭죽을 터뜨리는 곳은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와 용천사, 함양 상림숲 등이 유명하다. 하지만 자세히 둘러보면 남도의 어느 절집이나 온 동네 나무 그늘 속에는 꽃무릇이 저의 꽃말처럼 ‘슬픈 추억’으로 붉디붉게 피어난다.
나도 마음만 바빠져 어디로 가볼까 한동안 궁리했다. 그러다가 문득 먼 데 갈 것 없이 우리 집 가까이에서 섬진강 물안개를 기다리기로 했다. 사흘 정도 깊이 마음을 주다 보니 이른 아침 마침내 그때가 왔다. 안개 속에 얼굴을 내밀고 막 불꽃놀이를 시작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요즘 나의 주관심사인 또 하나의 ‘몽유운무화’(夢遊雲霧花)를 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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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상주의 어느 솔숲 아래 맥문동 꽃이 보랏빛 융단을 깔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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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무 속에 빛을 받은 물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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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의 꽃말은 ‘슬픈 추억’과 ‘참사랑’, ‘이룰 수 없는 사랑’ 등이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르지만 속뜻을 보면 사실 다 같은 말이 아닌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니 그게 가슴 아픈 참사랑이고, 마침내 슬픈 추억이 되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상사화로 잘못 부르기도 하지만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상사초라 불리기도 하며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 꽃이 진 뒤 10월에 잎이 나와 겨울을 나고, 다음해 5월부터 시들어 8월이면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그러고 나서야 꽃대가 올라와 붉은 폭죽을 터뜨리는 것이다.
꽃무릇은 비늘줄기의 한약명으로 석산(石蒜)이라 부르는데, 굳이 한자로 부른다면 피안화(彼岸花)라는 말이 더 좋아 보인다. 석산은 해독 작용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둥근 뿌리에는 유독한 알칼로이드가 들어 있어 지방에 따라서는 사인화(死人花), 장례화(葬禮花), 유령화(幽靈花)라고도 한다.
이 중에서 피안화, 삶과 죽음이 있는 차안(此岸)이 아니라 해탈과 열반의 강 건너 기슭에 피는 피안의 꽃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물안개에 가려진 섬진강을 애타게 바라보는 피안화를 보며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 개차반 같은 차안에 살아도 아주, 아주 잠깐만이라도 피안처럼 살자’고.
안개가 걷히고 모처럼 집 근처인 지리산 남부능선의 형제봉 활공장에 올랐다. 요즘 이곳은 활공장으로서만이 아니라 야영객들이 자주 찾는 명소가 되었다. 밤마다 몇 동의 텐트가 불을 밝히고 있다. 해발 1,100m 정도니 한여름 밤에도 모기가 없으며, 밤하늘의 별밭을 보기에도 좋은데다 섬진강과 남해바다, 그리고 백운산과 지리산 천왕봉까지 한눈에 보인다. 그리고 이른 아침 일출까지 볼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가을이면 전국의 패러글라이더와 행글라이더들이 몰려온다. 가을 창공을 날아오르는 ‘인간새들’이 능선과 악양면 평사리들녘을 마음껏 날아다니다 섬진강 백사장에 내려앉는 것이다. 그들을 보며 내심 부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사진만 찍었다. 훨훨 날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하겠냐마는 아직은 이 땅에서 한 치도 발을 떼고 싶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하자는 유혹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과유불급이라 현생에서는 모터사이클 하나로 끝내리라 속다짐을 했다.
끝끝내 한반도 종단열차가 연결되지 않으니 바이크 세계일주도 일단 포기했다. 그러다보니 섬이 된 한반도 남쪽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3만 리를 걷고, 100만 km 이상을 달렸다. 그래도 못 가본 곳이 더 많고, 다시 가봐야 할 곳들 또한 일생의 숙제처럼 남았으니 외국 여행의 유혹도 단칼에 포기했다. 그동안 여러 나라들을 다녀봤지만 사실 내게는 그리 감동적이지 않았다. 물론 거의 다 공짜 여행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조선 촌놈의 기질을 어찌 할 수 없었다. 때로는 훨훨 날고도 싶지만 발바닥에 실핏줄 같은 뿌리를 살짝 내리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가두는 텃새가 아니라 한반도 예저기를 기웃기웃 서식하는 무정처의 철새가 되고 싶을 뿐이다.- ‘꽃지 일몰’ 찍으려 출사객들 노심초사 기다려
지난 추석 연휴에는 잠시 지리산을 벗어나 서울을 거쳐 돌아오는 길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 들렀다. 해안사구를 따라 붉은 해당화가 많이 피어 꽃지(花地)란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꽃지해수욕장은 연휴를 맞아 사람들로 붐볐다. 그 유명한 ‘꽃지 일몰’을 찍으러 먼 길을 달려온 ‘진사들’도 삼각대를 놓고 노심초사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운이 좋았는지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를 에워싼 노을빛이 선연하게 하늘과 바다를 물들였다.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문득 ‘어쩌다 서해가 이렇게 슬픈 바다가 되었을까’ 하는 마음에 울컥해졌다.
꽃지 일몰이 끝나자 동쪽 하늘에서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한가위 보름달보더 더 큰 음력 16일의 진짜 슈퍼문이 아닌가. 슈퍼문 환한 빛을 등대삼아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리산으로 내달렸다. 나는 이미 추석 사흘 전부터 한밤중에 산정에 올라 달맞이를 했다. 지난해부터 달맞이꽃을 제대로 찍고 싶었기 때문이다. 달밤을 기다리는 달맞이꽃이야 어쩌면 상투적일지도 모르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다 마침내 때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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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무 속에 얼굴을 내민 모시대 꽃. 이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비가 오면 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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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맞이꽃이 산안개 속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다.
- 산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의 달맞이꽃과 달을 다중촬영으로 두 번 초점을 맞춰 찍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미학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말없는 사랑’이다. 생약명은 월하향(月下香)이니 그 이름도 멋지다. 어디선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객 고 김정호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했다.
‘얼마나 기다리다 꽃이 됐나/ 달 밝은 밤이 오면 홀로 피어/ 쓸쓸히 쓸쓸히 미소를 띠는/ 그 이름 달맞이꽃/ 아-아-아-아/ 서산에 달님도 기울어/ 새파란 달빛 아래 고개 숙인/ 네 모습 애처롭구나.’
아주 오래 전에 피를 토하던 그의 마지막 공연을 대구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슬프지만 듣고 또 듣다 보면 두고두고 슬픈 것만도 아니다. 아랫배 어딘가에서 슬픔의 체온이 뭉클하게 오른다. 때로는 ‘무언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세상에 살아도 마치 꿈만 같으니 요즘 나의 관심사는 이름하여 몽유운무화를 찍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전국의 희귀 야생화는 거의 다 찾아내 기록했으니, 이제는 조금 다른 관점의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이다. 그 하나의 주제로 설정한 것이 바로 운무 속에 얼굴을 내미는 야생화들이었다. 숱한 시행착오와 끈질긴 집중력으로 달맞이꽃의 몽유운무화와 더불어 모시대와 물봉선도 찍었다.
흰 물봉선·물봉선 군락 이룬 ‘몽유운무화’ 담아
모시대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고산준령의 모시대가 운무에 휩싸인 이 한 장의 사진을 얻기 위해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오면 날마다 산에 올랐다. 우비를 입은 몸이 질퍽하게 다 젖도록 오르고 또 오르고, 초롱꽃과의 모시대 꽃이 다 지기 전에 운무 속에 얼굴을 내미는 보랏빛 종소리를 찍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물봉선을 찍기 위해 산속 깊은 골짜기 습한 곳에서 물봉숭아를 찾아오는 짙은 안개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흰물봉선과 한 살림을 차린 물봉선 일가의 ‘몽유운무화’를 담았다. 노랑 물봉선도 함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난해 강원도 만항재 가는 길에서 분홍, 노랑, 흰 물봉선 일가를 한 프레임 안에 찍은 적이 있었다. 아마 최초였을 것이다. 내년에는 강원도 그곳에서 야영하며 ‘안개의 시간’을 기다리기는 힘들지만 즐거운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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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멸종위기식물 금강초롱. 강원도 고산지대의 숲속에 보랏빛 초롱을 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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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뻐꾹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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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여름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인 그 산에 금강초롱꽃을 찍으러 다녀온 적이 있다. 어딘지 밝힐 수 없는 그 산에서 허공에 닻을 내린 닻꽃을 만났다. 바다도 아니고 세상 그 어디에도 닻을 내릴 만한 곳이 없었는지 여러 송이의 닻꽃 또한 능선 구름 위 허공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때마침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할 무렵이었다.
문득 3년 전 가보았던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떠올랐다. 공지영의 산문집 <지리산행복학교> 출간 직후 소설가 공지영 등과 함께였다. 그때 처음으로 성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전 세계의 불치병 환자 등이 신비주의, 기적을 바라며 순례자가 되어 구름처럼 찾아오는 곳이었다. 공교롭게도 나 또한 10년 동안 순례길 3만 리의 후유증으로 결핵성늑막염을 앓으며 870ml의 흉수를 빼고, 한 주먹의 독한 알약들을 먹고는 남몰래 붉은 오줌을 눌 때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의 부호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온갖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참전과 중병을 앓으며 회개해 수도회를 만들고 청빈의 삶을 살았다.
“나는 가난이라는 여인과 결혼할 것이다.”
그의 단 한마디가 무신론자인 내 가슴을 쳤다. 실제로 그는 평생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았으며, 심지어 동물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늑대와 새들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 그리고 꽃들에게도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의 신비주의는 십자가의 신비주의, 자연의 신비주의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의 이름을 딴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기고 간 여러 말 중에 “이 시대의 순교는 가난한 자를 돌아보고 평화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 이 한 문장이 내게는 천둥 벼락 같은 참된 복음으로 다가온다. 갈수록 비루하고 후안무치한 우리나라의 종교-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곳에 일침을 가한다. 종교를 넘어 바로 이런 진리의 말씀이 아니고선 도대체 세상 도처 어디에도 닻을 내리고 정박할 곳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리하여 세상 어디에나 꽃들은 피고 또 피어난다.
- ‘꽃지 일몰’ 찍으려 출사객들 노심초사 기다려
첫댓글 제 핸드폰에 이 시인님이 찍은
금강초롱과 뻐꾹나리 사진을
허락도 받지 않고 옮겨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전라도 어느 산장에서
이번 책읽었어요
그래도 카페에서 다시보니 더좋습니다
옥정호에 다녀가셨네요..
몇걸음만 더 걸으면 우리집인데..
따뜻한 물이라도 한잔 하고 가셨으면 좋았을텐데요^^
사진이 참 멋집니다
첫사랑 보듯 설레이게 만드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