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대 토피카 재판
" 피부 색깔에 상관없이 학교에서 공부할 권리 보장했어요 "
지난달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통합'을 강조하면서 노예 해방으로 하나가 된 미국을 만들었던 링컨 대통령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문제가 되는 인종 갈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어요.
▲ 재판의 주인공인 린다(왼쪽에서 셋째)와 친구들. /게티이미지
인종 갈등은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였어요. 1865년 미국 남북전쟁이 끝나고 공식적으로 노예해방이 이뤄졌지만, 당시 미국 사회 곳곳에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제도들이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기차를 탈 때도 백인이 타는 객실과 흑인이 타는 객실을 분리했지요. 1892년 흑인 호머 플레시가 백인 객실에 탔다가 체포돼 재판을 받았는데, 법원은 "흑백 분리가 헌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판결했습니다. 객실을 분리하더라도 객실 모양이 같다면 차별이 아니라는 논리였습니다. 이 판결 이후 미국 내에서는 기차뿐 아니라 화장실, 물을 마시는 수도꼭지까지 백인 전용과 흑인 전용으로 구분했어요.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죠.
1951년 캔자스주 토피카시에 살던 초등학교 3학년 흑인 소녀 린다는 집 앞에 학교가 있었지만, 버스를 타고 한참 먼 곳에 있는 학교로 통학했어요. 집 앞의 학교가 백인 전용이었기 때문이죠. 린다의 아빠 올리버 브라운은 이런 불공평한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같은 처지의 학부모 12명과 함께 토피카 시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어요. 그래서 이 사건을 '브라운 대(對) 토피카 교육위원회 재판'이라고 불러요.
캔자스주 법원은 백인 학교와 흑인 학교가 분리돼 있더라도 시설, 교육과정, 교사 수준 등이 비슷하기 때문에 차별이 아니라며 교육위원회의 손을 들어주었어요.'분리되었으나 평등한 대우를 하니 괜찮다'는 거죠. 학부모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항소해 1954년 연방대법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게 됐답니다.
당시 얼 워런 연방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은 흑백 분리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백인 학교와 흑인 학교의 객관적인 교육 시설의 차이뿐 아니라 학생들을 분리해 교육하는 것이 왜 해로운지에 대한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증언을 들었어요. 결국 연방대법원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학생들을 분리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열등감을 불러일으켜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 "흑인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줄여 교육적, 정서적으로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또 백인 학생들도 다양한 인종과 함께 교육을 받아야 사회에 나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인종을 나눠 교육하는 것은 모든 학생에게 큰 문제가 된다고 봤어요.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격리된 교육 시설은 근본적으로 동등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어요.
그러나 이 판결 이후에도 흑백 통합 학교들은 백인 학급만을 따로 만들거나 졸업식을 따로 하는 꼼수를 부렸어요. 하지만 이 판결을 시작으로 흑인 민권운동이 시작됐고, 1965년 민권법 제정으로 시민권, 참정권 등 제도적 차별도 없어졌습니다.
곽한영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