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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0월 1일 목요일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소화 데레사’로 알려진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873년 프랑스 알랑송에서 태어났다. 1888년 열다섯 살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결핵을 앓다가 1897년 스물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비록 수도 생활은 짧았지만 그는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고 고행하였으며,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였다. 그는 죄인들의 회개와, 사제들, 특히 먼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발표된 병상 저서들은 세계 곳곳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그를 시성하고, 1929년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였으며,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욥은 그의 구원자가 살아 계심을 알고 있다며, 기어이 뵙고자 하는 그분을 보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게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 욥기의 말씀입니다. 19,21-27
욥이 말하였다.
21 “여보게, 나의 벗들이여,
날 불쌍히 여기게나, 불쌍히 여기게나. 하느님의 손이 나를 치셨다네.
22 자네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처럼 나를 몰아붙이는가?
내 살덩이만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단 말인가?
23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주었으면!
25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26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27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속에서 내 간장이 녹아내리는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12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말하여라.
11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에는 소돔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이사 66,10-14ㄷ)와 복음(마태 18,1-5)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여러분은 보통 언제 기도하나요? 『매일 미사』 책과 늘 함께하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이런 물음이 무색할 만큼 성실히, 마음을 다하여 기도를 바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 자신을 돌아보면 아무래도 무엇인가가 부족하거나, 아쉬울 때 더 간절함을 담아 기도를 바치는 것 같습니다. 내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을 나보다 더 크신 분께서 잘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깊고 간절하게 기도하도록 이끌어 주는 듯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욥의 간절함을 봅니다.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욥 19,23),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19,25-26). 말도 안 되는 갖은 재난을 맞닥뜨린 욥은 비록 처음에는 자신의 생일까지 저주할 만큼 깊은 시련에 빠졌지만(3장 참조), 그럼에도 자신의 간절함을 절절하게 고백하며 하느님의 섭리를 기다립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기어이 하느님을 뵘으로써 하느님과 대화를 이어 가려는 것이지요.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필요할 때 내가 할 말만 하고 쏙 빠지는 것은 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신 구원 역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온전히 자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주님과 참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야 주님께서 고통 속에서도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를 잘 듣고 오늘 복음 속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명을 우리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기꺼이 이어 나갈 수 있겠지요.
우리는 오늘 작고 단순한 일에서도 기쁘게 하느님을 찾으며, 그분의 정원에 핀 작은 꽃으로 살아간 ‘소화 데레사’ 성인을 기념합니다. 성인처럼 우리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하느님을 찾고, 그분 안에 머무르면 좋겠습니다.(김영송 알베르토 신부)
지극한 겸손, 복음적 단순함,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앙!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덕(聖德)으로 올라가는 길, 다시 말해서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우선 드는 생각이 하느님과 교회를 위한 괄목할만한 업적, 세상과 인류를 위한 두드러진 기여, 그를 위해 어느 정도의 경험과 연륜, 세상 사람들의 평가...
그러나 이런 우리의 보편적인 시각, 어느 정도 ‘고리타분한’ 생각을 단칼에 깨트려 버린, 작지만 위대한 성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입니다. 그녀의 짧은 삶이 마치 산속 깊은 곳 외딴 곳에 홀로 피어난 한 송이 작은 꽃 같다고 해서 ‘소화(小花) 데레사라고도 불립니다.
언뜻 보기에 그녀의 생애는 성인(聖人)이 되기에 많이 부족해보였습니다. 1873년에 태어나셨다가 1897년에 돌아가셨으니 불과 24년간의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성덕을 쌓기에 충분한 시간과 나이가 아니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요즘 그 나이의 다른 젊은이들 바라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24살의 나이에 덕을 쌓았으면 얼마나 쌓았겠는가? 그것도 봉쇄수녀원 안에서, 그마저도 지병인 결핵으로 골골하면서...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웬걸, 데레사는 자신의 온 생애를 통해 나이와 연륜이 성덕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었습니다. 젊은 나이에도 제대로 마음만 먹으면, 죽기 살기로 추구한다면 성화의 길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똑똑히 보여주었습니다. 데레사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슬슬 나이를 먹어가는 제 모습, 성덕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는 제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짧디 짧은 수도생활의 연륜, 그것도 높고 깊은 담 속에서의 봉헌생활, 거기다 병약한 몸...도무지 대단한 뭔가를 해낼 조건이 아닌 데레사의 짧은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그녀를 그 어떤 성인보다 크게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빛나는 성덕은 온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녀는 교회로부터 선교의 수호자 성인으로 정했습니다.
이토록 특별한 데레사의 비결이 대체 무엇일까요? 대체로 그녀의 삶은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극한 겸손, 복음적 단순함, 하느님을 향한 깊은 신앙, 이 세 가지 요소는 결국 사랑으로 통합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을 마치 사랑하는 연인(戀人) 대하듯 대했습니다. 그녀가 하느님과 주고받은 대화 곧 기도는 마치도 너무 사랑해서 죽고 못하는 연인들끼리 주고받은 연서(戀書)같았습니다. 그녀는 하느님 앞에 언제나 한 송이 작은 숨은 꽃이길 원했습니다. 그녀 성덕의 길을 빛나는 작은 길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있어 보이려고, 드러내 보이려고, 과시하고 부풀려 보이려고 기를 쓰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데레사는 어떻게 하면 하느님과 이웃들 앞에 작아지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무도 보지 않은 구석으로 숨어보려고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이렇게 빛나는 작음의 오솔길을 꾸준히 선택했던 데레사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따뜻한 사랑의 품에 꼭 안아주셨습니다. 숨은 것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녀 특유의 빛나는 작은 길을 온 세상 사람들 앞에 낱낱이 드러내셨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최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보았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래된 서사시를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갑니다.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와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시련과 유혹을 겪습니다.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고, 낯선 땅에 머물기도 하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면서도 한 가지를 잊지 않습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오디세이’는 결국 인간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 가운데 ‘십계’가 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아가는 장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여행과 모세의 여행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긴 여행이고, 시련이 있으며, 목적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자기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모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 갑니다.
그래서 성경의 ‘오디세이’는 조금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갔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갔으며, 누구의 말씀을 따라갔느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때로는 배고팠고, 목말랐고, 모세에게 불평했습니다.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하셨습니다. 광야는 길을 잃은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을 배우는 학교였습니다. 약속의 땅은 단순히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욥도 길고 깊은 광야를 걷습니다.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친구들은 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욥은 자신의 인생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말합니다.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인지 모릅니다. 욥에게도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재산을 다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을 되찾는 것만도 아닙니다.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이것이 욥의 목적지였습니다.
신앙인은 결국 하느님을 향해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도 긴 ‘오디세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의 여행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고향에서 점점 멀어지는 여행이었습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하여 소아시아로 갔고, 그리스로 건너갔으며, 필리피와 테살로니키와 코린토를 거쳤고, 마침내 로마까지 갔습니다. 배가 난파되기도 했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왜 그렇게 먼 길을 갔을까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그리고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그곳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에게 오라.”고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에는 언제나 움직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광야로 나갔습니다. 바오로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습니다. 제자들은 둘씩 짝지어 마을로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는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를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먼 나라로 선교 여행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처럼 배를 타지도 않았고, 모세처럼 광야를 걷지도 않았습니다. 프랑스 리지외의 가르멜 수도원 안에서 살다가 스물네 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데레사 성녀를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합니다. 성녀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작은 희생을 봉헌하며 자기의 삶 전체를 복음 선포를 위해 내어놓았습니다.
여기에 오늘 복음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선교는 반드시 멀리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아픈 사람의 손을 잡아 주는 것도 선교이고, 외로운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도 선교입니다.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선교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광야를 건넜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지중해를 건넜습니다. 데레사 성녀는 수도원을 떠나지 않았지만, 사랑과 기도로 세상 끝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각자의 오디세이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질병이라는 광야를 걷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외로움의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폭풍이 있고 광야가 있으며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욥의 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우리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성공도, 재산도, 명예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해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은 복음을 들고 이웃에게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끝나는 날 하느님께서 “얼마나 멀리 여행했느냐?”고 묻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고도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가는 길에 누구에게 나의 사랑을 전해 주었느냐?”
<나는 가리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주님께서는 …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루카 10,1)
나는 가리라
주님이 가라시니
주저하지 않고 나는 가리라
주님 뜻 새기고
주님 향기 머금고
주님 한발 뒤 제자로서
주님 옆의 벗으로서
주님 한발 앞서 사도로서
몸소 오실 주님
희미하게나마 드러내고픈
희망으로 나는 가리라
주님이 가라시기에
가야만 할 가고픈 길에
짝지어주신 고운 벗
누구든지 어디에서든지
섬김과 나눔으로 하나 되어
우리 품은 하느님나라
벗들에게 아낌없이 나누고자
기쁘게 나는 가리라
주님을 만나고픈
가난하고 작은 벗들
혹여 나로 말미암아
오히려 주님께로부터 멀어질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 정갈하게 가다듬어
오직 주님만을 품고
겸손하게 나는 가리라
아픈 벗들 보듬어주고
갈라진 벗들 이어주고
빗나간 벗들 제자리 찾아주고
만나는 모든 벗들에게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건네며
머물 때에 모든 것이 되어주되
떠날 때는 아쉬움 없이
자유로이 나는 가리라
한걸음 한걸음에
나는 작아지고 없어져
마침내 주님만이 남으시고
그렇게 주님만이 계심으로써
나 영원히 살게 되는 그 날을 향해
기쁨과 고통 보람과 허무
순간순간 연연하지 않으며
더디더라도 쉼 없이 나는 가리라
오늘의 성인
성녀 리지외의 소화 테레사(Teresia)
신분 : 수녀, 교회학자
활동지역 : 리지외(Lisieux)
활동연도: 1873-1897년
같은이름 : 소화 데레사, 소화데레사, 테레사, 테레시아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의 알랑송에서 시계 제조업을 하던 루이 마르탱과 젤리 게랭의 아홉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성녀 테레사의 원래 이름은 마리 프랑스와즈 테레즈 마르탱이며, '소화(小花) 테레사'라고도 부른다.
그녀는 4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와 함께 오빠가 사는 리지외로 이사를 하였다.
성녀는 어릴 적부터 특히 성모 마리아 신심에 출중했다.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고, 10살 때인 1883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석 달 동안 심하게 알았는데, 때로는 경련과 환각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의식을 잃기도 하였다.
그녀는 ‘미소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성모님께서 미소 지으면서 이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한다. 테레사는 1884년에는 첫영성체를 하고 그 얼마 후에는 견진성사를 받았다.
1886년 성탄 전야 미사 직후 ‘완전한 회심’을 체험한 그녀는 자신의 영혼 안에 애덕이 넘쳐 드는 것을 체험하였고,
또한 이웃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잊어야 할 필요를 깨달았다고 한다.
며칠 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그린 상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는 열망, 즉 다른 영혼들을 돕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머무르며 필요한 영혼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혈을 전해 주기로 결심하였다.
성탄절에 회심의 은총을 체험한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삶을 자신의 소명으로 깨달았다.
하느님을 위해 고통당하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헌신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테레사는 14세에 리지외의 맨발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를 청하였다.
이 카르멜 수녀원에는 이미 테레사의 두 언니, 마리와 폴린느가 입회해 있었다.
그러나 그 수녀원에서는 테레사에게 21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통보하였다.
테레사와 그녀의 아버지는 교구의 주교에게 입회를 청하기도 하였고, 또 아버지와 언니 셀린느와 함께 로마를 순례하면서 교황 레오 13세에게 개인적으로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하기도 하였다.
이때 교황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입회하겠지” 하고 대답하였는데, 그녀가 1888년 4월 9일 리지외의 카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것은 나이 15세 때였다.
그 후 2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9년 반 동안 테레사의 수도원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였다.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성격이 까다롭고 질투심 많은 곤자가의 마리아원장수녀에 의해서 생긴 공동체의 내부 분열로 고통을 당하였다.
테레사는 수도원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갈등들을 멀리하고, 자신의 기도생활에 열중하였다. 수도원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부여된 작은 직무들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그녀가 이룬 하느님과의 친밀감과 충실성은 그녀의 자서전이 출판되기 전에는 그 어느 수녀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
1893년 테레사는 수련장 서리로 임명되어 4년 간 직무를 수행하였다.
이 시기에 그녀는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을 갖고 살았다.
그녀의 ‘작은 길’에는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상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 걸어야 하는 길인 것이다.
그것은 어떤 삶의 방법이 아니라 영혼이 하느님 앞에 서서 지니는 가장 순수한 태도를 의미한다.
죽기 18개월 전에 처음으로 결핵의 증세가 나타났지만, 죽기 얼마 전 병상에 눕기까지 테레사는 수녀원의 기본 의무들을 충실히 지켰다.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의 시련을 겪었으며, 1897년 9월 30일
“나의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의 소명, 마침내 저는 그것을 찾았습니다.
제 소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회의 품 안에서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저의 어머니이신 교회의 심장 안에서 저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죽은 일 년 후 카르멜 수녀회의 통상 관습대로 그녀의 자서전이 비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여러 카르멜 수녀원에서 읽혀졌고, 이 자서전을 요구하는 부수가 점차 늘어나자 공식적으로 이를 출판하였다.
그 후 15년 동안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고, 세계 여러 나라에 수백만 권이 넘게 보급되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난 테레사에 대한 반응은 놀라운 것이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이 반응을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 불렀다.
그래서 시성을 위해서는 적어도 사후 50년을 기다려야 하는 교회 관례를 무릅쓰고, 교황 비오 11세는 테레사가 죽은 지 28년이 지난 1925년 5월 17일 ‘아기 예수의 성녀 테레사’로 선포하였다.
테레사는 로마를 순례한 것 외에는 고향인 알랑송을 떠난 적이 없다.
그러나 일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보속하는 삶을 살았기에,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를 성 프란치스코 사베리우스와 더불어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하였고, 1944년 5월 3일에는 성녀 잔 다르크에 이어 프랑스의 제2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7년 6월 10일 성녀 테레사를 보편교회의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녀가 남긴 저서로는 “성녀 소화 테레사 자서전”,“성녀 소화 테레사의 마지막 남긴 말씀”이 있다.
성 로마노 (Romanus)
활동년도 : +6세기경
신분 : 부제, 음악가
지역 :
같은 이름 : 로마누스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비잔틴 찬미가 저자로서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는 유대인 출신인 듯하며 힘스(Hims)에서 이주해온 시리아 사람이다. 그는 베이루트(Beirut)에서 부제로 지냈고 그 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왔다.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고, 다만 수천 곡의 찬미가 가운데 80여 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그 찬미가는 매우 극적이고 생기발랄하며 전례에 꼭 맞는 아름다운 시들인데, 현대인의 취향에는 다소 긴듯하고 또 산만한듯하게 느껴진다고도 평을 하지만, 뛰어난 영성과 신앙을 묘사하는 가사들이다. 성 로마누스는 소위 콘타키온(Kontakion)이라 부르는 찬미가 형태에 전통적인 형태를 부여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첫 번째 시는 성탄을 노래한 것이다.
성 바보 (Bavo)
활동년도 : +653년경
신분 : 수도승, 은수자
지역 : 겐트(Gent)
같은 이름 : 바본, 알로윈
성 바보는 부유한 지주로서 훌륭한 부인을 맞이하였으나, 그의 생활은 아주 무질서하였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갑작스럽게 죽은 지 얼마 뒤부터 그는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성 아만두스(Amandus)의 지도하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리하여 그는 성인을 따라 프랑스와 플랑드르(Flandre) 지방의 전교여행에 수행하면서 자신의 지난 생활을 크게 속죄하였다. 우연한 어느 기회에 바보는 전에 농노로 팔았던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그 사람을 다시 풀어주고 겐트의 원장 성 플로베르투스(Floribertus)의 수도원 근방 숲에서 은수자로 살게 만들어 주었다. 그 후 성 바보 자신도 베네딕토회 수도승으로서 은둔하며 여생을 살다가 성 바보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운명하였다. 그는 바본(Bavon) 또는 알로윈(Allowin)으로도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