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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제17장
================================17:1
신 광야에서 떠나 - 백성들이 더이상 신 광야에 머물지 않고 그곳을 떠난 이유는
그곳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 군사적으로 영원한 안식처가 되기에는 미흡한 탓도 있었
겠으나 근본적으로는 그곳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들의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창
13:14,15)을 향해 행진하여야 했다. 한편 이스라엘의 이와같은 계속적인 광야 여행은
신약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천국을 향한 끊임없는 나그네 생활을 예표한다.
그 노정대로 행하여 - 여기에서 노정(路程)이란 신 광야로부터 돕가와 알루스를 거
쳐 르비딤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민 33:12-14).
르비딤 - '원기 회복'이란 뜻이다. 시내 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던 것만
은 분명하나(6절)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혹자는 시내산 서북쪽 20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와디 페이란'지역은 여러 개의 샘과 개울이 있어 물이 넉넉한 곳이었으나,
이 때에는 분명 가뭄등으로 샘과 개울이 말라 물이 고갈된 듯하다(L. Wood, Stanley).
==================================17: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 이스라엘 백성들의 파렴치한 행동을 다시 한번 보여 준다.
이들은 모세를 단지 원망만 하던 과거의 정도(14:12,13;15:24;16:2,3)를 넘어 이제는
모세와 다투기까지 했으며, 모세에게 직접 물을 달라고 항의하였다. 백성들의 이와 같
은 행위는 사실 배은 망덕한 행위로서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려 그로 하여금 곤경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전혀 자주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들의 정당
한 행동으로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지라도 공동의 노력
을 기울여 난관을 극복하려 최선을 다해 본 후 그래도 안 될 경우 하나님께 호소하여
야 도리인데,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마다 무턱대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
한 것은 미성숙하고 이기주의적인 인격을 드러낸 것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모세를 원망하
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과거
에도 알았었다(16:7,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모세와 다툼으로 하나님을 시
험하게 되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임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신적 권위
를 업신여겼으며, 따라서 항상 그들을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의심하고 불신하였던 것이다(Keil).
=========================================17:3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 근성과 역사
의식의 결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말이다. 동시에 본절은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 존재
와 구원 행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진정 이들은 신 광야에서 만나
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통하여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
이심을 분명히 목도했다(16: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목이 마르
고 물을 마실 수 없게 되자 현실의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려 그를 모든 불행의 원흉
인 양 원망하고 불평함으로써 자신들의 영적 무지와 마음의 완악함을 여지없이 드러내
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적으로 볼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 자유와 독립은
커녕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을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무한한 당신의 사랑으로 이처럼 부족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는바,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그보다 더 부족한 우리 역시
영원한 하늘 나라의 시민으로 삼아주신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늘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하여 일평생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할것이다.
목말라 죽게 하느냐 - 마라의 쓴 물 사건(15:22-26)에 이어 물로 인한 두번째 원망
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중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때
마다 항상 죽을 것으로 생각하여 모세를 원망하였다(14:11;16:3). 이러한 백성들의 두
려움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 , 엘 솨다이-창 17:1)으로
인식하지 못한 불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17: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 모세의 훌륭한 지도자적 성품중 하나이다. 즉
그는 백성들을 인도하던 중 난관에 직면할 때마다 인간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기에 앞서
항상 이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뢰하였었다(5:22,23;14:15;15:25). 이는 한
나님의 큰 역사를 위해 그분께로부터 부름받은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기본 자세이다.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더욱 완악해진 심리 상태
를 적나라하게 나타내 주는 구절이다. 그들은 출애굽 이후 하나님의 은혜와 큰 권능을
경험하였으나, 그들의 믿음이 성장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완악해졌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때마다 그만큼 더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순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헛되이 받아 경히 여김으로써 자신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
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돌을 들어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를 죽이려는 군중 폭행의
상태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17:5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베푸시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
들로 하여금 이후 일어나는 일이 오로지 하나님자신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일임을 분명
히 알게 하기 원하셨다. 그리하여 모세로 하여금 백성을 대표하는 장로들을 데리고 기
적이 일어날 현장으로 가도록 명하신 것이다.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 - 바로에게 내린 첫번째 재앙시, 모세가 나일 강물을 쳐서
피로 변하게 했던 그 지팡이를 가리킨다(7:15-21). 이외에도 그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모세와 함께 하고 계심을 나타내 보여 준 뚜렷한 가견적(可見的)증표물
이었으니(7:8-11) 여기서 그 지팡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은 또다시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날 것임을 시사해 준다. 즉 풍부한 나일 강물을 죽음의 피로 변하게 하신
여호와께서 이제는 사막의 반석을 깨뜨려 생명의 생수가 솟아나게 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17:6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 이
기적 사건은 만나 사건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구원 사역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즉 후일 바울은 물을 '신령한 음
료'로, 반석을'신령한 반석'으로 해석함
으로써(고전 10:4) 당시 사막의 갈증으로 인해
목말라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호렙
산 반석의 물이 생수가 되었듯이, 오늘날
사막과 같은 삶의 터전에서 영혼의 갈증을
느끼는 숱한 사람들의 영원한 생명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히 교훈했던 것이다(요 4:14;7:37;계 22:7;사 55:1).
특히 반석이 모세에 의해 때림을 당함으로 물을 낸 것은 예수께서 친히 저주를 받아 사람들
로부터 매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인간 구원 사역을 이루신 것을 예
표한다(사 53:4,5;요 19:1-3,17-9).같은 견지에서,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도 본
사건 속에서 영적인 의미를 발견했는데, 곧 그는 모세가 반석을 쳐 물을 낸 이 사건
은 장차 갈보리 산에서 그리스도께서 매를 맞아 피를 흘림으로써 그 보혈로써 만 백성
을 영적갈증에서 구원하신 사건을 상징한다고 보았다(A Survey of Israel's History).
특히 반석을 통해 흘러 나온 물의 양을 가리켜 시편 기자는 '강'(* , 나하르)이
라고 표현했는데(시 105:41), 이때 이 '강'과 같은 단어이다(창 2:10). 한편 반석을
쳐서 더 있는데, 곧 민 20:2-13에 나오는 사건이다.
=======================================17:7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 여기에서 '맛사'(* )란 히브리어의 '시험하다'라는
말에 그 어근을 두는 것으로서 '시험' 또는 '유혹'을 의미한다. 그리고 '므리바'
(* )란 '다투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다툼' 또는 '논쟁'을 뜻한다. 이스
라엘 백성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여 그를 대적하였기 때문에, 모세는 이곳의
이름들을 이처럼 명명(命名)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불신앙과 패역함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였다(Pulpit Commentary).
========================================17:8
아말렉이...이스라엘과...싸우니라 - 아말렉족속은 에돔 사람들로부터 갈라져 나와
시내 반도에서 그 세력을 뻗치며 유랑하던 유목민들이다(창 36:11,12).그런데 이스라
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게 되자. 그들은 자신들의 영토에 대
한 소유권 침해를 두려워한 나머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 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신 25:17,18은 "아말렉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너를 길에서 만나 너의 피곤
함을 타서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느니라"고 묘사했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아
말렉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습격한 이때의 사건으로 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
말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다(신 25:19).
=====================================17:9
여호수아 - 여기서 처음으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의 군사 지도자로 언급되고
있다. 그는 원래 에브라임 지파 눈(Nun)의 아들로서 본명은 호세아였는데(민 13:8),
훗날 모세에 의해 여호수아로 개명되었다(민 13:16). 아말렉과의 전투에 임하여 그가
모세로부터 군사선발권을 위임받은 점은 이미 그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과 굳센
용기를 지닌 지도자적 인물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그는 모세 사후
백성들로부터 아무런 반대도 받지 않은 채 모세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신 34:9).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 아말렉과 교전하고 있는 상태에서 모세는 전쟁에
나갈 만한 사람을 선발하여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애굽
에서의 종노릇으로 인하여 대부분 용기가 없고 원망과 불평만을 일삼는 나약한 자들이
었다. 때문에 이런 상태에서 강인한 아말렉 족속과 전쟁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
이었다. 따라서 모세는 특별히 백성 중에서 믿음이 강하며 용기와 강인함을 소유한 자
들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을 대표해 싸우도록 했다.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신정(神
政) 국가를 세울 수 있게 이끌어 나간 정치적 지도자라면, 여호수아는 전형적인 군인
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가나안 족속을 정벌하고 정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운 하나님의 종이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세상의 온갖 악한 마귀를 물
리치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지팡이...산꼭대기에 서리라 - 모세가 자신은 산에 올라 기도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즉 지도자 모세는 선택된 병사들을 전쟁터에 보낸 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려 한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었고 특별한 무기나
갑옷으로 무장하지도 않은 비정규군들이었다. 따라서 모세가 그들의 승리를 위해 하나
님의 능력을 구하지 않으면 그들의 패배는 누가 보아도 자명한 일이었다. 이에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의 상징인 지팡이를 손에 잡고 올라가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가 선택된 병사들에게 충분한 군사 물자를 보급하겠
다거나 전리품 분배 따위를 보장한 것이 아니라, 오직 지도자인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
하겠다는 것만을 말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실로 기도는 연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
님을 자신의 원군(援軍)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17:10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 기도의 동역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중
요한 공적(公的)문제는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할 때에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하신다(마 18:19). 예수께서도 최후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기도
하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가셔서 당신과 함께 기도하도록 하셨
다(마 26:37-40).
훌 - 이름의 뜻은 '존귀함' 또는 '고귀함'이다. 그는 유다 지파 갈렙의 후손이며
또한 유명한 성막 건축가였던 브살렐의 조부이다(31:2;대상 2:19). 그러나 정확히 훌
(Hur)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데 요세푸스(Josephus)같은 사학자는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의 남편이었던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Kurtz).
=====================================17:11
모세가 손을 들면...이기고 - 이것은 이스라엘의 승리가 모세의 손에 좌우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모세의 손 역시 다른 사람, 즉 여호수아나 아론, 훌 등과 똑같은 평범
한 손이었다. 그러나 모세의 손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지팡이가 들려져 있었
다. 그 지팡이는 일찍이 뱀이 되었던 지팡이요, 애굽에 10대 재앙을 내린 지팡이이며,
홍해를 가른 지팡이요, 반석을 쳐서 물을 냈던 기적의 지팡이였다. 따라서 모세는 그
지팡이를 잡은 손을 들어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구했던 것이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다시금 권능으로 역사해 주시도록 중보 기도를 드린 것이다. 이처럼 성경에는 기도의
표현으로 손을 들어 간구하는 것이 종종 언급되었다(대하 6:13,14,29:시 28:2;딤전
2:8). 그러므로 여기에서 모세가 손을 든다는 것은 간구하는 기도의 표현을 말하며,
손을 내린다는 것은 기도의 중지를 상징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눈에 직접 보이는 가
시적 현상이나 동작으로 영적 진리를 보여 주신 것은 구약 시대의 독특한 계시 방법이
기도 했다(Kalisch).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 아말렉을 물리친 승리의 원동력이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
의 능력 자체에 있지 않음을 암시한다. 사실 인간으로서 모세는 자신의 손 무게도 스
스로 감당할 수 없었던 연약한 인간이었다. 따라서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
은 모세 자신이 아니라, 모세의 기도를 듣고서 배후에서 역사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셨음을 알 수 있다.
아론과 훌이...붙들어 올렸더니 - 당시 모세는 80여 세의 노인이었으니 오랫동안
손을 들고 기도한다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신실한 동역자들인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도왔는데 이는 지도자와 아랫사람 간의 모범적인 관계의 일례이다. 사실
사단의 군대와 싸우는 영적 전투의 최일선에 서서 고군 분투하는 교회의 지도자는 그
누구보다도 힘을 잃기 쉬운데, 이런 때일수록 성도들은 아론과 훌처럼 기도와 격려로
써 그를 성원해야 할 것이다.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 모세가 기도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산
꼭대기에 올라 왔었음을 시사해 준다. 아마 그는 아말렉 족속이 기습 공격한(신
25:18) 그 다음날(9,10절) 여호수와 백성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자신은 아론, 훌과 함
께 아침 일찍부터 산 꼭대기에 올라와 기도했던 것같다. 한편 여기서 '내려오지 아니
한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에무나'(* )는 '확고 부동하다'란 뜻으로 아
론과 훌이 계속 확고하게 모세의 팔을 받쳐 세우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17:13
여호수아가...쳐서 파하니라 -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문장이 처음에 '와우'(* ),
즉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이것은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그의 백성
들을 파한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앞 구절의 결과, 즉 모세가 드린 기도
의 결과로서 된 것임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17:14
책에 기록하여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있을 가나안 정복 전쟁에 대해서
도 용기와 승리의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말렉과
대항하여 싸우기에는 극히 미약한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아말렉을 이기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후에 가나안 족속들과의 싸움
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만 있으면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셨
던 것이다.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 하나님께서 미리부터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후임
지도자로 삼으시려고 계획하셨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특별히 이
전쟁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장차
그는 가나안 정복 전쟁을 몸소 치러야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말렉을 도말하여...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 아말렉 족속이 이토록 하나님께 철저
하게 징벌을 당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같은 혈족<8절>임에도 불구하고 무자비하
고도 비겁하게 연약하고 지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배후를 기습 공격했기
때문이다(신 25:18). (2) 동시에 출애굽 후 이스라엘 첫 교전국이었던 아말렉은(민
24:20) 이후에도 반(反) 이스라엘 전쟁시 항상 앞장서 하나님의 백성을 진멸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 말씀은 사울과 다윗왕에 의해(삼상 15:7;27:8), 그리고 마침내는
히스기야 왕의 통치하에서 시므온 지파에 의해 최종 성취되었다(대상 4:41-43).
=================================17:15
모세가 단을 쌓고 - 과거에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찬양으로만 영광을 돌
렸는데, 이제 단을 쌓아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모세가 제사를 위해
쌓은 최초의 단으로서 후에 율법에 의해 쌓은 제단과는 다른 것이다(Kurtz).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 '여호와 닛시'(* )란 '여호와는 나
의 깃발'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는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항상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
라는 의미이다. 즉 여기서 '깃발'은 전쟁시 용기와 힘을 북돋워 주며, 동시에 소속 의
식을 고취시켜 주는 상징물이다. 따라서 여호와는 당신을 의지하고 따르는 자의 승리
의 깃발이 되신다는 의미이다(시 20:5). 한편 이것은 모세가 단에 붙여 준 이름으로서
야곱이 세겜에서 단을 쌓고 그 단에 '엘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붙여 준 사실
(창 33:20)과 비슷한 행위였다. 모세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들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였다.
===================================17:16
대대로 싸우리라 -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의 성민(聖民)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대대 후
손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었다. 특별히 여기서 대대로 싸우신다는 뜻은 하
나님께서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당대의 싸움을 후손에까지 미루어 싸우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말렉 족속의 후손들을 남겨 두셨다가 그들을 통해 당신
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성, 훈련시키시고, 후에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마침내 아말렉 족속들을 멸하시겠다는 뜻이다. 이러한 예언은 사울과 다윗 시대에 부
분적으로 성취되었으며(삼상 15:7;27:8), 훗날 히스기야시대에 시므온 지파에 의해 완
전히 성취되었다(대상 4:41-43).
[출처] 출애굽기 17장-로고스 주석|작성자 인내로 결실하는 자
<참자유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