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계 선생 2026년 시제 축문
오늘은 4359년 전 단군왕검이 홍익인간이란 이념을 펴 나라를 처음으로 건국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 개천절입니다. 또한 오늘은 반계 선생님의 시제를 지내는 날로 경향 각지에서 반계 선생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곳 산소 아래 제당에서 후손이 준비한 제물을 차려놓고 선생의 영전에 제사를 올립니다.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404년 전에 태어나셨습니다. 당시 선비로서 당연히 거치던 관직의 길을 버리고 전라도 부안군 우반동에 가셔 살면서 당시의 국가와 백성들의 당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철저하게 연구하셨습니다. 52세에 우반동에서 세상을 마치셨습니다. 선생의 영원한 안식처는 유언에 따라 두 살 때에 여윈 아버지와 28세 때에 여윈 어머니가 모셔진 묘소 아래를 택하셨습니다. 부안에서 이장하는 날에 흰 기운의 서광이 하늘에서 묘소까지 내려 비취었고, 사슴 100여 마리가 와서 인덕을 베푼 고마움을 표했답니다.
선생을 지칭하는 유일한 호 반계는 부안군 우반동 마을의 가운데를 흘러 서해로 들어가는 시냇물의 이름 반계에서 취하신 것입니다. 선생의 학문적 공로는 지금까지 실학이란 이름으로 깊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20년에 걸쳐 집필한 반계수록이 담고 있는 내용은 단군 이래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경천동지할 정신과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국가 개혁안은 당시에 큰 파문을 일으킨 업적이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선생을 추모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그 내용이 아니라 선생이 살아온 정신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선생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던 점입니다. 부모님 조부모님에 대한 효성은 생전에도 지극했고 돌아가신 후에도 일생 동안 행해졌으니 맛있는 과일이나 생선이 생기면 부모님을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둘째 새벽에 일찍 일어나 가묘에 올라가 선조님에게 문안을 드린 후 밤늦게까지 독서를 했다는 부지런한 생활태도는 우리들이 존경할 점입니다.
셋째 선생이 일생의 노력을 바친 일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와 온 백성을 위한 공익을 위했다는 정신입니다. 이런 역사정신은 오늘의 우리들에게 천둥처럼 큰 메아리로 울립니다. 이 내용은 선생이 쓰신 반계수록의 발문에 오롯이 담겨져 있습니다. 멸사봉공의 정신을 우리가 기림은 다음의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선생의 묘소에 세운 비석을 당시 죽산 부사가 비용을 내어 세웠고, 용인시 백암면의 농부들이 성금을 모으며 조직한 반계숭모회가 조직되어 매년 추모행사를 하고 있으며, 전라도 부안군과 전라도에서 매년 열리는 추모 학술행사 등이 열리는 점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선생의 이런 멸사봉공의 정신은 단군왕검의 홍익인간의 이념과 맞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지내는 선생의 제향의 뜻이 100만 명의 전 용인 시민에게 전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선생에 대한 자상한 연보는 우리나라에서 전문역사학자임을 최초로 선언한 순암 안정복 선생이 작성하였고, 영조의 어명으로 지어진 홍계희가 지은 선생의 전기, 오광운의 행장 등이 있습니다만 이를 계속 이어가는 후속 작업을 우리가 해야할 것임을 선생의 영전에 고하는 바입니다.
내년 시제에는 더 많은 시민에게 알리고 부안군의 유지에게도 알려 사모와 존경의 횃불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이 영원히 발전하여 세계평화와 인류의 공영에 기여하기를 모든 제원의 마음을 담아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2026년 단기 4359년 10월 3일
반계숭모회 고문 정구복 올림
시향에. 참석한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