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0-2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
21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
22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23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24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25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26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27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정말 떳떳하고 당당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한문책에 미쳐서 살았습니다. 천자문도 한문(漢文)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생각하고 천자문을 공부하면 세상의 모든 지혜가 다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수박 겉핥기로 닥치는 대로 한문을 읽어갔습니다. 그 의미를 생각하고 새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큰 혼란을 겪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때 그렇게 읽기만 한 것이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정말 엉터리로 공부한 것을 가지고 큰소리를 치면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앞으로 닥쳐올 것들에 대하여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미래를 확실히 꿰뚫어 보는 사람도 또한 없습니다. 점을 치는 사람들이나 점쟁이들도 앞일에 대하여 자신 있게 말하지만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들의 말을 확신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에 대하여 누군가 정확하게 예언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많은 돈을 주고 그들에게 의지합니다. 그래서 입시철이 되거나,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선거철이 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사업을 하기 전에 그들의 말에 의지하고, 생각 밖으로 그들에게 매달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또한 재미로 점을 치기도 합니다. 모든 신문에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예언들은 전혀 신빙성이 없지만 재미로 게재되기도 합니다. 또한 유명한 역술인이라고 광고하는 것을 보면 정말 황당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점치는 일을 역술(易術)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원은 주역(周易)에서 왔다고 주장합니다. 나는 한문 공부를 하면서도 주역을 공부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술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주역에 통달한 사람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나는 주역을 보다가 신앙과 전혀 어울리지 않고, 또 주역에 빠지면 죄가 되는 줄 알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가끔 그 책을 보려고 하지만 너무 어려워서 주역을 전문으로 공부한 사람들의 강의를 들어가면서 조금씩 그 설명을 이해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지금 공부하는데도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의미를 잘 깨닫지도 못하고, 그 내용을 기억하기도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매 번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사서삼경을 공부하였는데 사서(四書)는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을 말하며, 삼경(三經)은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을 말하였습니다. 주역(周易)을 역경(易經)이라고 하기도 하고, 단순히 역(易)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주역은 점복(占卜)을 위한 원전(原典)과도 같은 것이며, 동시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흉운(凶運)을 물리치고 길운(吉運)을 잡느냐 하는 처세상의 지혜이며 우주론적 철학이기도 합니다. 주역(周易)이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의 역(易)이란 말입니다. 역이란 말은 변역(變易), 즉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역은 자연현상의 원리를 통하여 인생의 리듬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징표를 보고 우리의 리듬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세상의 운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역은 단지 자연현상을 가지고 설명할 뿐입니다. 주역은 예언이 아닙니다. 또한 완전한 예언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요즘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예언가인듯 그렇게 뻥뻥거리며 호언장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주역을 통달하였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몇 분도 안 되어서 그 거짓이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부족한 내 상식에도 그런 사람들이 미혹한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그렇게 잘 속이는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전지전능하심으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십니다. 그리고 또한 세상의 마침과 새로운 세상의 도래에 대하여 정확하게 표징을 제시하십니다. 그 누구도 세상을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 모든 것을 예언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표징을 정확하게 알아듣고 깨달아야 한답니다. 주님께서 예언하신 것처럼 예루살렘은 완전히 초토화(焦土化)되었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에게 완전히 짓밟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라고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에 까무러쳐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죽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 죽음 뒤에 오는 내 신세를 생각하면 정말 두렵습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워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 뒤에 오는 내 신세를 생각하면 정말 죽을 수도 없습니다. 천국에 갈 보장이 있다면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고생했으니 천국에서 호강하면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게 오신 주님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내게 찾아오신 하느님과 하느님나라를 외면한 내가 어찌 세상 마칠 때에 하느님나라에 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라도 내가 지옥에 떨어진다면 나는 정말 어떻게 그 무섭고 두렵고, 험악한 지옥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떳떳하고 당당하게 주님을 맞이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나는 성령으로 축복을 받고, 인도하심을 받았으니 정말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속량(贖良)됨을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속량(贖良)이란 돈이나 곡식을 내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거나, 국가 또는 주인에게 공을 세워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良人)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시면서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속량시켜 주시어 방량(放良)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시는 죄인이 아니며, 노예가 아니며, 그 모든 죄 값은 예수님께서 치르셨기 때문에 나는 가볍게 하느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는 ‘정말 떳떳하고 당당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가?’생각해 보면 아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