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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에 높이 555m인 123층 건물 롯데월드타워가 있습니다. 이 건물 100층에 위치한 시그니엘호텔 스위트룸은 대리석 깔려 있고 화장실 공간이 웬만한 호텔 스위트룸만 크기이고 유리가 두께 10㎝ 방탄 통유리로 되어져 있으며 서울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유명한 방입니다. 이 방의 하루 숙박비는 무려 2450만원입니다. 그리고 인천공항 바로 근처 Y자 형태의 모양을 가진 호텔 파라다이스시티가 있는데 이 호텔 풀빌라패키지 1박 가격은 무려 2200만원입니다. 어느 연예인이 서울 용산에 위치한 ‘드래곤시티 그랜드 머큐어 앰배서더 용산’이라는 호텔의 펜트하우스에서 생활하는 내용을 방송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이 방의 하루 숙박료가 696만 9000원으로 한 달이면 약 2억원이라는 숙박비를 내어야 합니다. 그런 공간을 그 연예인이 몇 달 임대해서 썼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풍경도 좋고 내부시설도 그렇게 좋기는 하지만 ‘과연 그 정도의 금액을 지불해서 사는 것이 합당한가’라는 생각을 해보면서도 “참 부럽다, 하루라도 이런 공간을 경험해보고 싶긴하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 저도 인간인 듯 합니다.
여행작가 여러 명이 편집한『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서울부터 제주까지 우리나라 방방곡곡 국내의 매력적인 여행지 1001곳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저자들이 1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찾아낸 명소들을 친절하게 소개해 주는 이 책을 보면서 일생에 한 번 가보고 싶은 장소가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성경의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한다면 내가 이 세상에서 삶을 마치기 전에 경험해야 할 분명한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천국에 들어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이 땅에서 꼭 경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하나님 백성으로서 말씀을 통해 필수적인 체험을 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인이 경험할 세계, 첫째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입니다.
마태복음 17장 1, 2절입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신 것을 기록하신 내용입니다. 이 산이 어떤 산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 본문이 기록된 이후 기독교인들은 이 산을 ‘변화산’이라고 명칭하고 있습니다. 여러 정황을 근거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가면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지역에 있는 ‘다볼산’ 현재 명칭으로 ‘타보르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이 ‘변화산’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모습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바뀌는 것과 예수님께서 엘리야, 모세로 보이는 영적인 어느 대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변화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에 대한 실재적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졌을 때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과 생명의 역사가 온전히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예수님께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주시고 악하고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며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고 영혼과 육신이 모두 구원받기 합당한 상태로 만드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현실속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이 땅에 실재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줬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의 영적인 싸움이 끝나고 죽음 이후에 가게 될 나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완성되는 영원한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라는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이뤄놓으셨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즉 영어로 “already but not yet”가 하나님 나라인 것을 사역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도 없고 군대도 없으나 그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임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0, 21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가능한 모든 이 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에서 영토, 백성은 성도 한 명 한 명이죠. 그리고 그 백성들의 모임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통제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통치를 느끼며 하나님의 다스림과 주권에 굴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천국가는 하나님 백성이 맞으십니까?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오늘 본문에서는 천국백성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해 천국백성이 이 땅에서 경험하고 누려야 할 은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바로 하나님의 통치를 느끼며 내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다스리시는 것을 인정하며 우리 삶을 하나님께 맡기는 하나님 나라 백성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앙인이 경험할 세계, 둘째는 예수님의 본성 발견입니다.
마가복음 9장 2, 3절입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그 곳에서 예수님께서 변형되시는 광경을 보여주셨습니다. 옷에서 광채가 나며 예수님 주위가 온통 밝아지며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세상에서 함께 하실 때 제자들과 세상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을 단지 인간으로 인식했을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뭔가 특별한 능력을 소유하신 분으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성만 가지시고 이 땅에서 지내신 분이 아니라 인성과 아울러 신성까지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인성뿐 아니라 신성까지 체험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인성인 예수님만 보면 절대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간이신 동시에 신이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변화산에서 “변형되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변형되다’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메타몰포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래의 본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미 그런 분이셨지만 이 땅에서 그렇게 완전히 빛나고 하얀 모습을 보여주시지 않다가 이 산에서 그렇게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진정한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제 곧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이지만 다시 영광을 회복하실 것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천국에 계실 예수님의 모습과 장차 재림하실 때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동등됨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처음 오실 때부터 특별한 능력을 소유하시고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십니다. 앞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으로 가능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은 이미 그 이전에도 하나님이셨고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변화산에서 굳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본성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존재를 바로 깨닫고 예수님의 본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영혼이 깨어 있는 자가 고백할 내용이 무엇일까요? 바로 그것이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이 베드로의 고백을 알게 하신 이는 우리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조건이 간절한 기도와 아울러 하나님의 임재, 즉 성령의 충만이 우리속에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본 모습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은혜로 가득차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러분은 천국가는 하나님 백성이라는 확신이 있으십니까? 우리가 확신을 가지기 위해 이 땅에서 경험해야 할 일, 그것은 바로 인간이신 예수님을 뛰어넘어 신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놀라운 지혜를 가지고 귀한 말씀을 가르치며 예언을 베푸시며 병든 자를 고치시며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신으로 오셨고 신이신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변화되어 완전한 신의 모습으로 서계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천국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냥 인간으로서 특별하신 분이 아닌 정말 신이신 예수님, 거룩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속에서 예수님에 대해 깨달아야 할 것, 예수님에 대해 어떤 지혜자나 뛰어난 스승이나 인생의 처세술을 배울 수 있는 분으로만 느낄 것이 아니라 참 하나님이시고 인생의 구원자이시고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인간 예수로만 느끼며 역사적인 인물로만 느껴서는 천국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신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항상 고백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진정 신앙인으로서 경험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인생에 변화산을 발견하고 그 변화산에서 변화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해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이신 예수님, 참 능력의 예수님, 변화되어 세상 어떤 존재보다 영광의 빛가운데 서신 예수님을 확신하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앙인이 경험할 세계, 마지막 셋째 하나님의 나타나심 체험입니다.
마태복음 17장 5절입니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예수님께서 변화되신 광경속에서 하늘에서 성부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성경의 내용을 보며 예수님께서 거룩한 몸으로 변화되시고 하나님으로서의 능력이 나타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성부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시고 확증해 주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치가 있다는 것은 그 가치가 인정받을 때 그 값어치를 하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4C’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투명도(Clarity)라고 합니다. 보석과 사람은 맑음의 정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무게(Carat)입니다. 가벼울수록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생각과 행동이 가벼운 사람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셋째는 색깔(Color)입니다. 가치있는 보석일수록 신비한 빛을 내는데 인간의 삶에도 나름대로 각자의 독특한 빛과 향기가 있고 그것이 그 가치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모양과 결(Cut)이라고 합니다. 보석은 깎이는 각도와 모양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가치있는 사람은 비춰지는 면에 따라 그 서로 다른 영향력을 끼치고 그 영향력으로 인해 주위에 찬란한 빛을 발해서 가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와 인간의 가치구분을 하면서 인간에게는 그 가치를 더 높게 만드는 한 가지 C가 더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Christ)입니다. 인간은 그분의 피로 씻음을 받고 그 분의 손길로 빚어질 때 비로소 ‘걸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35, 36절입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오늘 본문을 보니 변화산의 영적체험 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제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음성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분명히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의 중심은 예수님이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에 생길 번거로운 일들, 세상살이가운데 우리가 집착하게 되는 것들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생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생계의 도구를 다 내려놓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이 그것을 자리잡게 될 때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신앙인은 다른 어떤 것은 눈에 안 들어오고 오로지 예수님만 눈에 들어와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생활속에서 예수님만 보이고 예수님만 따라가고 예수님 주변에, 내 주변에 다른 것은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고 예수님만 환하게 눈에 띄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것들을 우리가 짊어지면 그 무거운 짐으로 인해 좌절하고 낙담하며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생계에 대한 걱정, 건강에 대한 걱정, 명예에 대한 걱정, 가족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살아가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며 주님의 은혜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산에서 놀라운 능력으로 변화되신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이런 예수님앞에서 자기 이익만 생각합니다. 자기가 누리고 싶은 것들만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7장 4절입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변화산 위에서 예수님의 신비한 빛과 놀라운 광경을 경험하고 황홀한 모습속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신기한 광경이고 도무지 현실세계라고는 믿겨지지 힘든 광경을 보면서 정말 황홀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서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다른 자연환경이나 어마어마한 건축물과 역사적 기념이 될 만한 공간을 만나게 되었을 때 벅찬 감격을 느낍니다. 그러면 비록 일주일 이 주일정도의 여행을 하지만 그 관광지를 가서는 정말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황홀해하며 돌아가고 싶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는 영적인 체험을 하며 이 황홀한 상황에 빠져 예수님에게 ‘이 곳이 좋다며 이 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주신 은혜를 경험하고 영적인 황홀경을 느낀 사람들은 그 황홀경에 빠져 있으면 안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고 영적 체험을 허락하시고 놀라운 기적을 허락하신 이유는 다른 데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 20절입니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명은 우리가 이웃들과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사랑을 알리며 참된 신앙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주고 지켜서 살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살아가는 목적은 전도와 양육, 교육을 포함하여 신앙공동체의 삶을 살도록 신앙인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면 우리는 권능을 받고 능력을 받아 우리 주변과 이 도시와 이 나라, 더 나아가 열방에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신앙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기쁨이 충만하여 지면서 “여기가 좋사오니” “나를 교회에 머물게 하소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죄악입니다. 규모가 있는 교회들이 처음에는 전도하고 구제하고 선교하지만 어느 정도 큰 규모가 되고서는 교회안에서 자기 교회만 챙기고 전도훈련과 전도행사를 하면서도 작은 교회의 교인들까지 끌어당겨서 교회옮기기 전도, 교회옮기기 이벤트를 한다면 그 또한 죄악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에 잘 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데려와 교회규모를 키우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책망을 크게 받을 짓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신앙인의 정체성, 신앙인의 자존감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아시기를 바랍니다. 참 신앙인은 은혜받을 때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 교회가 좋으니 다른 곳에 나가 전도하고 선교하고 구제하고 봉사하는 것은 딴 사람에게 맡기십시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짜 신앙인이 아닙니다. 참 신앙인은 은혜받았을 때 영적인 체험을 했을 때 오히려 아직 믿지 않는 사람, 아직 변화받지 않은 사람, 아직 전도하기 힘든 지역을 찾아가서 그들과 함께 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확증을 받고 인치시는 은혜를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가 천국백성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확증받고 참 인격적 변화를 이루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고 내가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깨달아 아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구원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가 천국백성으로 확증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증이 필요합니다. 우리 예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 성령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백성으로 인치시는 역사를 우리 삶속에 분명히 보여주셔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천국백성으로 성부, 성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인치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믿음의 확신이 분명해야 합니다. 천국가는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참된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참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교회 잘 나오는 것, 교회에서 훈련하는 여러 신앙프로그램에서 전문가가 되는 것, 여러 재미있는 교회프로그램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디를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떤 어려운 일, 힘든 환경이 닥쳐와도 상황과 환경을 보며 좌절하고 낙담하는 것이 아닌 주변에 잡다한 어려움과 방해에도 오로지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승리하는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