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ㅡ참된 부와 번영에 이르는 길 여호와께서는 솔론몬이 무엇보다 지혜를 구하였는데 그에게 재물을 더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이다. 이것은 부와 지혜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 칼럼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파수대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위의 칼럼에서 간단히 요약한 것처럼 잠언 9장의 내용을 인용하여 성적 부도덕을 멀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잠언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본질적인 내용은 아니며 단지 지엽적 사항에 불과하다. 더욱이 하나의 어떤 금기사항을 지키기 위해서 관련된 것들의 종합적인 측면에서 다루지 못하고 성적 부도덕만을 뚝 떼어내어 강조하는 것은 실천적이 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잠언 9장이 말하려는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잠언은 특정한 부류의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류의 사람에게 적용되는 진리이다. 그것은 지혜와 이해력을 추구하는 것이 당장의 이익[금과 은을 구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어서 참된 부와 번영을 이루게 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깨닫게 하려는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혜가 무엇인지를 이해시키기 위해 직접 설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지혜가 아닌 것들이 무엇인지 제시함으로써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려는 것이며 왜 지혜가 참된 부와 번영, 나아가 생명의 길에 이르게 하는지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잠언은 모두 31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잠언 1-9장까지의 내용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잠언이며 나머지 10장에서 31장은 특별한 주제와 관련이 없이 독립적으로 주어지는 개별 잠언들이다. 이 중 1-8장은 사실 서론과 본론 부분에 해당이 되며 결론에 해당되는 부분이 9장이다. 따라서 먼저 1-8장의 내용을 하나의 주제를 두고 내용을 먼저 살펴 보겠다. 주제: 지혜는 참된 부와 번영의 길이다.
1장 (박)지혜는 공공 장소에서 어리석은 자들과 거만한 자들에게 지혜를 배우라고 강권한다(1:20-23) - 지혜는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원한다면 찾을 수 있도록 어디서나 개방되어 있다. 어리석은 자, 거만한 자, 미련한 자는 사실 지혜가 부족한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2장 지혜는 어떤 유익을 제공하는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2:9)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2:12)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2:16) 선한 길을 깨닫는 것, 색에 빠지지 않는 것이 지혜가 제공하는 유익이자 동시에 지혜가 무엇인지를 역으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3장 젊은이에게 주는 토라(가르침)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3:5)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3:9)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3:14)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3:16) 지혜는 자신을 과신하지 않는 것이며 이익이 발생할 때는 가장 먼저 그 근원인 여호와께 감사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고, 지혜는 약간의 재물(일시적인 부)보다 훨씬 큰 것이며, 생명과 진정한 부귀를 준다는 점을 가르친다. 4장 3장에 이어 지혜와 명철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권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물 그 자체를 얻는 데 온 힘을 쏟지만 재물의 근원이 지혜를 터득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지혜와 이해력을 얻을 때, 재물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점이다. 여기서 잠언에서 구하라고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지혜, 지식, 명철(이해력)이 무엇인지 정리하여 보자. 지혜: 하나님의 선한 속성을 반영하는 것 지식: 사물이 이루어지는 이치를 깨닫는 것 이해력(명철): 사물이 이루어지는 이치를 깨닫게 하는 능력 예: 우리가 인터넷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할 때, 인터넷의 과정이 인공위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식이다. 그런데 인공 위성이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를 이해하는 능력을 이해력이라 한다. 이러한 지식과 이해력을 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어 스올로 내려가면 지식은 쓸모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다시 부활 될 때는 이미 상당한 세월이 경과 되어 과거의 지식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와 이해력은 여전히 그에게 도움이 된다. 그것은 시대나 장소와 관계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와 명철(이해력)이 있으면 지식과 재물은 종속적인 것이 된다. 또한 4장에서는 지혜 있는 자는 의인이므로 그의 앞날은 돋는 햇살과 같아 점점 밝아져 완전한 상태에 이른다(4:18)고 하며 자신의 마음을 순수하게 지키는 것이 곧 지혜가 된다는 점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생명이 마음을 순수하게 유지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4:23). 5장 지혜로운자는 색을 좇지 아니한다. 즉 색을 추구하는 것은 지혜를 무너뜨리고 사람을 어리석게 만든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참된 부와 번영의 길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요인은 색을 좇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성서의 인물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잠언의 주 필자인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처음에 하느님께 지혜를 구하였고 그 기도에 따라 부지런히 노력하였기에 잠언 3,000개 이상을 암기하는 등의 놀라운 지혜자가 되어 의로운 통치를 베풀고 그 지혜의 덕택으로 재물도 얻어 번영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색에 빠져 우상숭배라는 우매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므로 그의 삶을 돌아보건데 색이 얼마나 지혜와 대조되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 한 사람은 사사 삼손이다. 그는 용사였으나 음녀 들릴리에 빠져 자신의 눈을 잃고 맷돌을 돌리는 노예로 전락한다. 이처럼 사람이 색에 빠질 때, 그의 앞 길은 막히고 죽음의 수렁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잠언은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잠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색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근본이 인간의 참된 부와 번영과 행복을 막는데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따라서 결론 부분인 9장에서 어리석음을 의인화한 [최]미연(=련)은 그녀의 어리석음을 음녀의 색으로 표현하게 된다. 6장 부와 번영에 꼭 필요한 요소 1 보증을 신중히 하라(6:1-3) 2 근면하라(6:6-11) 3 지혜를 방해하는 6-7가지 교만, 부정직, 폭력, 중상모략, 악한 짓, 무고, 이간 4 부모에게 순종 5 음행과 간음을 피하라. 얼핏 생각할 때는 지혜와 보증 서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반문할 지 모른다. 하지만 지혜가 곧 번영에 이르는 길이라고 이해하면 의문은 금방 풀린다. 보증을 잘못 써서 패가망신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보증을 써서 그 사람이 어떤 규정이라도 어기게 되면 그 부담은 보증자에게 돌아오게 되고 그로 인하여 그와 사이가 나빠지게 된다. 따라서 보증을 쓰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차라리 그냥 도와주는 게 낫다. 7장 음녀의 유혹을 경계하라 특히 젊은 청년 시절에는 성적 욕망이 강하게 분출되기 때문에 호기심이나 또는 성욕을 참지 못하여 매춘굴에 들어가는 수가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혜가 아니라고 잠언 필자는 강하게 경고한다. 8장 정금보다 지식이 낫고 (8:10) 지혜가 진주보다 낫다고 또 한번 강조한다.(8:11) 또 다시 교만, 거만, 악한 행실, 패역한 입은 지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8:13). 모든 부귀 영화는 지혜에 달려 있다(8:18). 지혜의 찬가(8:22:31) 지혜는 만물이 있기 전 태초에 존재했다. 모든 창조의 도구이다. 잠언 필자가 지혜를 극구 찬양하는 노래다. 왜 이토록 지혜를 찬양하는가? 지혜가 정말로 태초 이전에 인격을 가지고 존재했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 잠언의 의도에 너무도 무지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잠언의 목적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를 구하라는 조언을 베푸는 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읽거나 듣는 청자가 지혜를 소유하면 여호와 하느님 같은 창조자에 버금가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지혜가 창조의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지혜를 사용하면 모든 행복과 부귀와 번영을 창조하고 나아가 참 생명에 이르게 한다. 그러므로 지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지혜를 추구하라는 찬가인 것이다. 이제 결론인 9장에 이른다. 잠언 9장의 내용을 세 개의 구조로 나누어 생각해 본다면, 첫번째 구조는 9:1-6 이고 두 번째 구조는 9: 7-12이며, 세 번째 구조는 9:13-18이다. 9장에서 두 번째 구조는 생략해도 내용의 차질이 전혀 없기 때문에 상당수의 성서학자들은 후대에 편집하여 삽입된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다. 잠언 9 장(신세계역) 첫째 단락 1 참지혜가 일곱 기둥을 깎아 집을 지었다. 2 그것이 고기를 잔뜩 마련하고 포도주를 섞고, 상도 차려 놓았다. 3 그것이 여종들을 보내, 도시 높은 곳들에서 이렇게 외치게 하는구나. 4 “누구든지 경험 없는 자는 이리로 오너라.” 참지혜가 지각없는 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5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포도주도 마셔라. 6 철없는 짓을 버려라. 그러면 살 것이다. 이해력의 길로 걸어가라.” 둘째 단락 7 비웃는 자를 시정하는 이는 불명예를 자초하고, 악한 자를 책망하는 이는 해를 입게 된다. 8 비웃는 자를 책망하지 마라. 그가 너를 미워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을 책망하여라. 그가 너를 사랑할 것이다. 9 지혜로운 사람에게 주어라. 그가 더욱 지혜롭게 될 것이다. 의로운 이를 가르쳐라. 그의 학식이 증가할 것이다. 10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고, 가장 거룩한 분에 대한 지식이 곧 이해이다. 11 나로 인해 네가 많은 날을 살고 장수할 것이다. 12 네가 지혜로워진다면 그 지혜가 너에게 이익이 되고, 네가 비웃는다면 너 혼자 그 결과를 감당할 것이다. 셋째 단락 13 미련한 여자는 시끄럽고, 무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14 그 여자는 자기 집 입구에, 도시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아, 15 지나가는 자들, 자기 길을 똑바로 가고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16 “누구든지 경험 없는 자는 이리로 오너라.” 그리고 지각없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17 “훔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음식이 맛있다.” 18 그러나 지각없는 자는 알지 못하는구나, 죽어서 힘없는 자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그 여자의 손님들이 무덤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일단 첫째 단락과 셋째 단락을 비교해 보면, 지혜와 어리석음을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다. 그 목적은 이 잠언을 읽거나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 여인을 취할 것인가라는 자명한 선택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편의상 첫 번째 여인을 [박]지혜라 부르고 두 번째 여인을 [최]미연(=련)이라 부르겠다. 누구나 박지혜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인데, 왜 그러한가에 대한 근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혜는 일곱 기둥을 깎아 집을 만드는데 비해 미연은 그냥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 일곱 기둥이란 말로 볼 때, 이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궁궐 같은 집이다. 부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미연이도 자신의 집을 소유하였으며, 높은 곳에서 소리치는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의 부를 소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독자 또는 청자가 누구를 선택해여 더 큰 부를 잡을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또한 박지혜는 여종도 부리지만 최미연은 자신이 직접 소리친다. 이것만 보더라도 지혜가 미연이보다 더 큰 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지혜는 훌륭한 음식을 초대한 자에게 만들어 제공할 수 있다. 그것은 고기와 향료가 섞인 고급 포도주다. 미연이는 초대한 행인에게 실질적으로 제공할 음식이 전혀 없다. 그래서 제공하기 위해 물과 음식을 훔쳐 온다. 이 두 비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지혜가 제공하는 것은 떳떳하게 마련한 부이다. 그러나 미연이가 제공하는 것은 불투명한 부이다. 즉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고 맛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매력을 나름대로 끄는 점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 여러분은 두 여자의 선택에서 당연히 지혜를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가 떳떳하고 더 많은 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연이를 선택하는 사람은 제 눈에 안경이라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즉 지혜와 지식을 좇아 투명한 부를 추구하는 사람이, 그것을 마다하고 노력하는 것이 귀찮고 힘들어서 불투명한 부를 추구하려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영광을 소유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제 두 여인은 같은 곳에서 서로 다른 초대 광고를 한다. 지혜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포도주도 마셔라. 철없는 짓을 버려라. 그러면 살 것이다. 이해력의 길로 걸어가라.”는 투명한 부를 추구하라는 광고이지만, 미연이는 “훔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음식이 맛있다.”는 불투명한 부를 추구하라는 광고이다. 지혜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광고하여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 하지만, 미연이는 자기 길을 똑바로 가고 있는 자들에게 광고할 뿐이다. 즉 불투명한 방법을 사용하라고 유혹한다는 의미다. 투명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미연이가 제공하는 것은 우선 달고 맛있는 음식이다. 그것이 훔친 것이라는 의미는 정도로 걷는 사람들에게 훔칠 것을 권유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똑바른 길을 걷다가도 당장의 달고 맛있는 부를 인하여 그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박지혜의 집은 만든 것이며 제공하는 음식도 만든 것이다. 경제 용어로 표현하면 "플러스 섬 게임"이다. 즉 창조된 것이며 원래의 가치에 부가 가치가 더해진 것이다. 그런데 최미연의 집은 원래 있는 그대로이며 제공하는 음식은 훔친 것이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없는 "제로 섬 게임"인 것이다. 따라서 사기도박이나 또는 부정직한 방법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얻게 되는 것이며 창조된 것이 아니라 불로 소득이다. 그것은 결코 부가가치가 창출된 것이 아니며, 단지 소유권만 이동되는 것에 불과하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지혜의 초대에 응한 사람은 부귀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이지만 미연의 초대에 응한 사람은 죽음에 이르런다. 결국 투명한 방법으로 지혜와 지식을 통하여 창출하는 경제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번영하게 하지만, 불투명하고 부정직한 방법으로 경제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하지만 일부의 사람들은 당장의 이익 때문에 미연의 초대에 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 교훈은 단순히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체 인류라는 집합적 의미로 다가서는 교훈이다. 세계는 이 두 여인의 구조로 진행되고 있다. 시대가 흐를수록 미연의 광고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세계의 경제는 불투명한 구조가 투명한 구조를 압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것은 이기주의에 기초하므로 훔친 것이 달고 맛있다는 생각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세계와 인류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잠언, 특히 9장은 단순히 음욕을 경계시키고자 교훈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9:1-12까지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미연을 통해 음욕의 표현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앞 장들에서 설명 했듯이 색을 추구하는 것은 지혜를 방해하는 것이고 인간의 번영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읽혀져야 한다. 인간은 경제를 추구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라는 칭호도 가지고 있다(호모 이코노믹스). 그것이 인류의 물질적 번영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부를 추구하는 과정이 지혜와 지식을 통하여 얻게 되는 투명한 방법이 훨씬 더 큰 부를 가져다 준다는 가르침을 잠언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명한 참 지혜와 지식을 가지기 위해서 선행되는 조건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또한 사랑하는 것이다(둘째 딘락의 9:10,11).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고 자신이 노력한 결과 응답을 받아 잠언 3천개를 자유 자재로 사용할 만한 지혜를 터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왕상 4:32). 그가 지혜를 얻었다면 9장의 해설에 따라 그는 부와 번영을 누렸음에 틀림없다. 부와 지혜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지혜에서 발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지혜를 여호와께 구하여 얻었기 때문에 재물이 따라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부가하자면 지혜는 빵과 포도주를 제공한다. 여기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떠올리게 한다. 참 지혜와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취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지혜와 지식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