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42/0915] 농촌이라고 ‘먹방’이 없으랴
먹는다는 ‘먹’자와 방송의 ‘방’자를 합한 신조어(이젠 신조어도 아니다) ‘먹방’을 아시리라. 아는 것뿐만 아니라, 텔레비전만 틀면 먹방이 넘치고 넘쳐 짜증까지 날 정도의 문화의 한 컨텐츠로 정착된 먹방, 오죽했으면 정부에서 ‘폭식을 유발해 국민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먹방’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나섰을까. 가만히 있을 누리꾼들이 아니다. 청와대 게시판에 규제를 반대하는 청원이 줄을 이었다. 우리나라는 여러모로 재밌는 나라이다. ‘대장금’ 등 ‘드라마 한류’가 있었는가 하면, ‘BTS방탄소년단’ 등 ‘음악한류’에 이어 ‘먹방’이 ‘신한류新韓流’로 세계시민들이 눈길과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지 오래이니 하는 말이다. 't삼시 세끼' 프로를 한두 번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동남아, 스페인 등에 식당을 차리고 외국인들을 모시는 프로도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문화수출이다. 중국에서도 시진핑이 나설 정도로 국가·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되고 있지 않은가. 소리나는 그대로 ‘MUKBANG먹방’이 영어사전에도, 아줌마AJUMMA처럼 실렸다던가.
어제 오후 우리집‘사랑방 손님’들이 그랬다. 전주로 이사한 ‘속세자연인’ 친구가 가을을 앞당기는 전어를 한소쿠리 사왔다. 집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온다는 전어, 좋은 일, 고마운 일이다. 마침내 처남이 선물한 고가의 그릴을 써먹을 찰라(실은 가족파티는 두어 번 했지만). 그릴은 자갈마당에는 언제나 어울리는 생활필수품. 졸지에 복숭아농장주인 이장, 오수서 일 보던 동네형님, 양어장 깨복쟁이친구, 용달운전 10년에 무사고를 자랑하는 팁선생 친구 등 6명이 달려왔다.
말하자면 또 한번 ‘판’을 벌인 것이다. 마침맞게 퇴근하시는 아버지께도 접시에 구운 전어를 막걸리 한잔과 함께 담아드렸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한입에 우적우적 씹어먹는 전어 덕분에 가을이 성큼 발을 내디뎠다. 하늘은 오랜 장마와 태풍 끝자락에 이미 흰구름을 몽땅몽땅 그려내며 가을을 알리고 있다. 이제 나락들이 누렇게 황금벌판의 수채화만 그려내면 올 한 해도 다 가고 말 것이다. 언제 그랬느냐시피 청명한 날씨, 월요일(농촌에서 요일이 무슨 상관인가) 오후 오고가는 술잔에 싹트는 우정이 샘솟는다.
순식간에 사라진 전어 20여마리. 모처럼 피운 숯불이 아까운 주인은 남은 삼겹살 한 토막과 냉동실에 감춰둔 메추리 한 봉지를 꺼내놓았다. 메추리구이는 좀처럼 맛 보기 어려운 겨울철 제철안주인 것을. 겨우내 처음으로 눈이 몽땅 내리던 2월이던가, 폭설을 뚫고 베스트 드라이버 친구의 도움으로 전주에서 사온 것이다. 참새구이는 저리 가라이다. 배가 불러 못먹을 지경.
포식한 후, 사랑방에 착석, 여느 때처럼 국민오락을 즐기다. 며칠 선전善戰한 선배가 신사임당 한 장을 내민다. 옳다구나, 중국집 별미인 양장피를 주문했다. 언제부터인가 농촌에 배달문화가 없어졌기에 가지러 가야한다. 팔보채, 탕수육도 시켜봤지만, 소스로 머리를 아뜩하게 만드는 양장피가 양도 푸짐하고 우리 입맛에 딱이었다. 술이 취할 사이가 없다. ‘먹방’이 문제다. 흐흐.
그 와중에도 정보 교류가 한창이다. 태풍으로 쓰러진 벼는 왜 세우는 거냐? 친구 새집 공사는 잘 돼가냐? 메기매운탕은 언제 먹는 거냐? 벌초는 했냐? 안했으면 상부상조相扶相助 같이 하자. 너는 대문 언제 고칠레? 컨테이너 지붕 위에 태양광을 설치한다고? 이왕이면 6m짜리니까 10m쯤 넓이로 기둥을 튼튼하게 세워야 한다는 등 거의 날마다 만나는데도 할 이야기가 많다. 참 배울 것도 많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학생學生’이어야 하고, 그래서 마지막‘학생부군신위學生府君神位’로 남는 걸까. 습한 곳에 사는 귀뚜라미가 여기저기서 울고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초가을 초저녁이 깊어갔다.
첫댓글 혼자서 간직하며 누르고 비비고
쓸어가며 즐기는 휴대본보다 재미난 생활을 하는 모습이 오늘도 그림저럼 이어진다
불과 한시간도 못되는 오수에서의 이야기가 아주 먼 농촌의 이야기처럼 들려온다.아직은 따뜻한 정이 살아있는곳에서 지내는 친구의 생활
답답한 서울에서의 생활보다
제자리 찾아서 잘 내려왔네.
이것이 사람사는 인간미 넘치는
진실아니던가
그래서 흙냄새 친구냄새 사랑방의 방구냄새가 좋은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