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할 때면
손 원
우리 식탁에는 반드시 김치가 놓인다. 다만 제사상은 예외일 뿐 일상적인 모습이다. 밥상에 김치가 없으면 어쩐지 불완전해 보이고 아쉽다. 진수성찬일지라도 김치가 없으면 빛이 바랜다. 식사때마다 밥상의 김치가 있는지 확인하고 식사하지만, 밥그릇을 다 비울 때까지 김치에 손이 안 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볼 때 밥상의 김치는 밑반찬일뿐더러 구색을 갖추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식사가 끝날 때쯤 손이 한 번도 안 간 김치 그릇을 보고 김치 한 조각 뜨고 식사를 끝내기도 한다. 소중한 김치에 대한 예우임과 동시에 김치로 식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식습관인듯하다.
12월은 국민적 김장철로 연중행사다. 김장을 하려면 미리 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요즘은 시장을 한 바퀴 돌면 필요한 김장재료를 거의 구입할 수가 있다. 어릴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김장재료를 자급자족했다. 봄에 마늘을 수확하고, 여름에 고추를 따서 말리고, 가을에 배추를 수확했다. 고추, 마늘, 배추가 주재료로 거의 모든 농가가 자급자족했다. 여기에 생강, 젓갈 등 부재료를 첨가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선조들은 김치 담그는데 거의 일 년을 준비한 듯하다. 요즘은 형편에 따라 재료 준비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주재료만 해도 고추, 마늘, 배추를 직접 재배하는 집도 있고, 어떤 집은 선택적으로 재배하고 나머지는 구입하기도 한다. 옆집은 모든 재료를 구입하되, 절임 배추를 구입한다며 보다 수월하게 김장한다고 했다. 또 다른 집은 연중 마트에서 김치를 구입해서 먹는다고 했다.
가정마다 재료도 다양하게 사용하기에 그 맛도 모두가 다를 것이지만 맛 차이를 알기란 쉽지 않다. 매일 접하는 흔한 음식이지만 일반인이 김치맛을 평가하기란 쉽지않다. 김장은 집안 마다의 노하우가 있어 맛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어릴 때 맛 들인 어머니표 김치가 으뜸이다. 패스트푸드 시대지만 김치만큼은 예외인듯하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힘자랄 때까지 김치를 담가 자식들에게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더욱 풍요로운 요즘은 재료를 쓰는 것부터 예전과 다르다. 어머니표 김치와 아내표 김치는 차이가 난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가뭄이 심할 때면 배추가 작고 질겼다. 게다가 고추 농사도 흉년이면 질이 안 좋은 고춧가루를 적게넣어 그해 김치는 인기가 적었다. 밥반찬이라곤 김치뿐이어서 어쩔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곰삭은 김치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반찬이었다. 요즘은 어떤가? 좋은 재료를 사용한 아내표 김치는 메이크 김치 이상이다. 가정마다 직접 담기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웃집이 김장하는 날이면 맛보라고 조금 주기도 한다. 우리집 김치와는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굳이 평가해 달라면 극찬한다. 가정마다 고유한 맛과 정성이 담긴 김치이기 때문이다.
군대 시절에도 김치 담그기는 연례행사였다. 수 십 명이 차출되어 사역했다. 대부분 장병은 부엌칼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서툰 솜씨기에 무·배추를 다듬고 썰어 양념하는데 며칠이 걸렸다. 수백 명분의 김치는 지하에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김치통에 채워졌다. 지하 방을 연상케 하는 콘크리트 김치통은 바닥부터 천정까지 높이가 2m는 되었다. 버무린 무·배추를 차곡차곡 가득 채우는 일에 두세 명이 장화를 신고 양동이로 내려주는 김치를 채우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그렇게 가득 채워진 김치는 봄까지 배식이 되었다. 우리 부대는 100여 명의 단위부대여서 매주 두세 번은 김장독이 있는 부대로 김치를 가지러 갔다. 김치 수령은 신병의 몫이었다. 하루는 김치 수령하러 간 신병이 사고를 당했다. 김칫독이 바닥날 즈음에 김치통 위에서 양동이를 받다가 발디딤용 나무가 부러져 두 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은 허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후송되어 원대복귀 없이 바로 제대했다고 한다. 그는 대학 제작 중에 입대해서 군 생활 몇 개월 만에 사고를 당했기에 무척 안타까웠다. 군대는 예기치 않은 불의의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그것도 김치통에 빠져 크게 다칠 줄이야? 그후 김치 한 조각 집을 때마다 김치용사가 생각났다.
오늘 김장을 했다. 포기김치를 쭉 찢어 삶은 돼지고기와 같이 먹으면 제격이다. 갓 담은 뻣뻣한 김치도 나름대로 맛있다. 며칠간은 김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이다. 푹 익은 김치는 유산균 덩어리로 조금은 시큼하면서 부드럽다. 묵은김치를 국 끓일 때 넣으면 우리네 밥상에 걸맞은 최고의 맛을 낸다. 맛집에서도 묵은김치가 음식의 풍미와 유명세를 더함은 물론이다. 어떤이는 땅속에 묻어 둔 몇 년 묵은김치를 자랑스럽게 꺼내기도 한다. 갓 담은 김치와 곰삭은 김치 둘 다 나름의 풍미가 있기에 좋다. 김장철이면 김치에 더 관심이 가고 김치 담그는 이의 사랑이 느껴진다. (2022. 12. 8.)
첫댓글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우리 집에 김장은 평생 3~4번 밖에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저께 김장을 했습니다.
혼자 사는 처남이 김장을 부탁했거든요. 작가님 말씀처럼 한 달간은 매일 김치를 먹기로 했습니다.
글을 읽고 나니 김치를 곁들인 밥이 더 맛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