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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테바의 개념들 정리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에게 〈여성〉이란 괄호 속에서 존재한다. 이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라캉의 도식에 의거한 것으로, 완벽히 통일된 주체로서의 여성은 허구라는 뜻이다. 예컨대 가부장제 하에서 구성된 여성이란 정체성이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여성 그 자체와 완벽히 대응하던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괄호 바깥의 여성이란 무엇인가? 모른다. 적어도 크리스테바에게 여성이란 비결정적이고 다층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식습관, 언어, 패션스타일, 성향, 취미 등 온갖 주체성들을 보유하고 있는 복수화된 존재인 것이다. 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종의 주체-다발인 셈이다.
그렇다면 존재는 어떻게 주체가 되는가? 크리스테바에겐 〈코라chora〉라는 모든 정체성 혹은 기호성에 에너지를 투여해주는 토대가 상정된다. 코라는 플라톤의 우주론인 『티마이오스』에서 빌려온 용어인데, 형상을 부여하는 신적 제작자인 데미우르고스가 질료로 사용하는 무정형의 통일되지 않는 덩어리를 가리키며 썼던 표현이다. 크리스테바에 따르자면, 코라 속의 〈욕동pulsion〉이 들끓으며 여러 기호/의미들에게로 에너지가 투자되고 회수되며 주체성을 구성한다. “의미 생성이란 한계가 없고 결코 닫히지 않은 생성과정”이자 “욕동의 끊임없는 기능작용”으로서 규정되는 것이다.1
또한 이런 맥락에서 〈상징계le symbolique〉는 그 배후의 〈기호계le sémiotique〉에 의해 성공적으로 상징화된 것들로 구성된 세계이자, 동시에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는 불안정한 공간으로 밝혀진다. 크리스테바에게 기호계에서의 운동은 변칙적이고 우발적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 자신이 산출해낸 상징계에서 이반되는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그로테스크한 공간으로서 규정되기 때문이다. 물론 크리스테바는 구분선 바깥으로 밀려난 무질서하고 불결한 것들로부터 혁명적 가능성을 읽어낸다.2
한 가지 확실히 하자면, 아브젝트 자체가 곧 주체인 것은 아니다(되레 이건 정신병에 가깝다). 아브젝트는 상징계로부터 배제된 것들의 목록이고, 기호계 속에 저장된 채로 보존된다. 그리고 주체의 위치는 아브젝트가 아닌 상징계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주체는 상징계가 배제한 경계선과 그걸 넘어오려는 아브젝트의 유령들을 인식하는 중간자적 존재이다. 이로부터 어떤 아브젝트를 의미작용화 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게 된다. 물론 크리스테바의 의미생성엔 정치적 가능성의 뉘앙스가 농후하다.3
크리스테바의 아이러니는 아브젝트를 추방하는 행위, 즉 〈아브젝시옹abjection〉의 모순적인 성격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아브젝시옹의 근원적 과정은 상징계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인데, 크리스테바가 주목하는 건 최초의 분리인 어머니(모성)이다. 유아, 즉 주체는 어머니로부터 분리됨으로써 주체의 지위를 부여받게 된다(크리스테바는 이 과정을 프로이트의 거세나 라캉의 거울단계보다 선행하는 과정으로 조명한다). 그렇다면 이 과정은 자율인가 타율인가? 타율이다. 이 충격은 주체에게 여러 가지 모순적인 지향을 남기게 되는데, 편의상 두 가지로만 분류하자면, 하나는 합일됐던 상태에 대한 그리움이고, 다른 하나는 낯선 것(어머니)을 밀어냄으로써 얻어낸 주체의 자유이다. 이 두 지향은 모성적 코라에게로 돌아가고픈 열망이나, 혹은 그 과정에서 주체성을 상실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안감이란 여러 모순된 감정으로써 발현된다. 그리고 이 감정들의 처리 과정이 곧 인간의 일생이다.
※사족(蛇足). 여기저기 기웃거리다보니까 우연찮게 크리스테바 발제를 듣게 됐다. 거기 나온 설명과 각주들을 일단 정리해둔다. 여름쯤에 여유가 생기면 크리스테바 저작들을 직접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운이 따라준다면 준비하고 있는 소설의 주제의식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 줄리아 크리스테바, 김인환 역, 『시적 언어의 혁명』(동문선, 2000), 17쪽.
2. 줄리아 크리스테바, 서민원 역, 『공포의 권력』(동문선, 2001), 39-42쪽 참고 바람.
3. 줄리아 크리스테바·카트린 클레망, 임미경 역, 『여성과 성스러움』(문학동네, 2002), 16쪽. 「텍스트는 정치혁명에 실천에 비할 수 있을 하나의 실천이다. 왜냐하면 텍스트의 실천은 정치혁명의 실천이 사회 내에 도입하는 것을 주체 내에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역사와 정치경험이 주체의 변화에는 사회가, 사회의 변화에는 주체가 결여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의 전복 이래로, 그리고 더욱 프로이트의 혁명 이래로 거기에 대해 의문을 품을 여지가 있었던가?—우리가 문학 실천에 대해 제기할 질문들은 문학 실천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지평을 겨냥하게 할 것이다. [……] 우리는 이러한 이질적인 과정을 의미생성(signifiance)이라고 부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