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히어르 판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400년경-1464), ‘젊은 여성의 초상’, 1435년경.
크고 파란 눈, 오뚝한 코, 붉은 입술, 맑고 흰 피부. 한눈에 봐도 이목구비가 선명한 미인이다. 짙은 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핀으로 고정한 희고 커다란 두건을 쓰고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그녀는 대체 누구이고 왜 저리 큰 머리 장식을 했을까?
‘젊은 여성의 초상’(1435년경·사진)은 15세기 벨기에 화가 로히어르 판데르 베이던의 초기 대표작이다. 이렇게 모델이 화면 밖 관객을 바라보는 초상화는 당시 아주 새로운 것이었다. 이전의 화가들은 인물이 허공을 응시하거나 성모나 예수를 바라보게 그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베이던은 달랐다. 그림 속 인물이 감상자를 응시하며 소통하는 것처럼 그렸다. 화가는 눈빛과 표정을 통해 모델의 심리까지 표현하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그는 이 새로운 초상화의 길을 개척한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이었다.
그림의 모델은 화가의 아내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여자가 쓴 머리 장식은 15세기에 유행하던 ‘헤닌’이란 모자다. 당시 궁중 여인들이 선호하던 모자로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정숙함을 상징했다. 여자는 깍지 낀 두 손에 반지를 여러 개 꼈다. 날개형 헤닌, 손에 낀 반지, 양모 드레스 등으로 볼 때 모델은 베이던의 아내처럼 브뤼셀에 살았던 중산층 기혼 여성임을 알 수 있다.
화가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의외로 가로세로 선이다. 헤닌의 가로 주름은 여성의 입술 선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세로선은 어깨 및 가슴 선과 일치한다. 그가 모델에게 과하게 크고 높은 헤닌을 쓰게 한 이유일 테다.
화가는 가로세로 선의 조화를 통해 이상적이고 정숙한 여성상을 표현하고 싶었겠지만 그 선들로 인해 여자는 틀 안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만다. 비록 입술을 꼭 다물었지만, 입 가리개를 내린 여자는 눈빛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틀을 벗어나고 싶다고.
로히어르 판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400년경-1464)은 15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절제된 감성과 섬세하고 정밀한 표현력으로 전통적인 종교화 및 초상화에 새로운 사실성을 부여했으며, 얀 반 에이크와 함께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평가된다.
주요 작품에는 《독서하는 막달레나 The Magdalen Reading》(c. 1435), 《성모를 그리는 성 누가 St. Luke Drawing a Portrait of the Madonna》(c. 1435~1440),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Woman》(c. 1460) 등이 있다. 가장 뛰어난 작품은 ‘예수의 수난’을 주제로 다룬 제단화들이다. 그중에서도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The Descent from the Cross》(c. 1435~1440)가 가장 유명하다. 이 작품은 십자가에서 예수의 시신을 내리는 감정적으로 격앙된 장면으로, 애도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침통함으로 일그러져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상자처럼 둘러싸인 좁은 공간에 열 명의 인물을 마치 조각상처럼 배치했는데, 이러한 공간의 압축은 종교적인 슬픔과 비애의 감정을 한층 고조시켰다.
로히어르 판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400년경-1464),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The Descent from the Cross)’, 1435~1440년, 목판에 유채, 220x262cm, 프라도미술관 마드리드 르네상스.
로히어르 판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400년경-1464), ‘십자가형 세폭 제단화
(Triptych: The Crucifixion), 1443-45년, 유화 (27+69+27)x96cm, 미술사박물관 비엔나 르네상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동아일보 2024년 09월 059일(목) 「이은화의 미술시간(이은화 미술평론가)」/ Daum∙Naver 지식백과/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