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7:1-4 아히도벨의 계략
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2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3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4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이 좋은 전략을 제안합니다.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1-3) 아히도벨의 계략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과 같다고 합니다. 그 만큼 그의 판단력이 탁월하고 신묘막측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아히도벨에게는 정말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계략을 선하게 완성 시켜줄 믿음의 선한 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지혜는 멸망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하여 예루살렘에서 급히 도망하였고, 무주공산이 된 예루살렘에 압살롬이 입성한 날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좋은 계획을 말합니다. 그것은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을 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윗에게 쉴 틈을 주지 말고 곧바로 다윗을 뒤따라가서 모든 것을 종결짓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계략으로 당시 다윗은 요단 강을 건너가지 못하였고, 추격하는 군대가 쫓아가면 막다른 길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 단락의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는 손들이 무력해질 때라는 뜻으로, 여기에서의 손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힘이라는 말로 쓰였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다윗은 거의 무장해제 수준이었기에 정예 군대가 공격한다면 다윗을 쉽게 죽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4) 아히도벨의 계략을 모두가 옳게 여기었습니다. 여기서 “옳게 여기더라”라는 말은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모두 아히도벨의 말을 기뻐하면서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탐욕에 눈이 먼 인간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압살롬에게 다윗은 친아버지였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을 잘 다스린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라는 계획을,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자 지금까지 자신들이 섬겨오던 왕을 죽이자는 계략을 좋게 여기며 동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인간들의 진면목을 분명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불효이자 불충이며 불신앙이었습니다.
적용: 당신이 어떠한 일을 결정할 때 그 중심에는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인가요? 아니면 당신인가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말을 중심에 두고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영역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는 공간이다.”(강은도) 과거를 만나서 오늘이라고 하는 순간을 또 한 번 인식하는 것입니다. 불안한 미래를 믿음으로 만나는 순간이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한 가지 시대만 산다. 영원한 현재다. 과거는 기억하는 현재이며, 현실은 살아가는 현재이고, 미래는 살아갈 믿음의 현재다.” 그게 믿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