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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의 향과 시 ?___김승희
황홀하게 시들다
김승희
구기동 계곡을 들어 설 때마다 펼쳐지는 산색은 매일 화려하게 시들어 가고 있다. 빽빽한 인터넷망과 숨가쁜 교육열로 인해 우린 이제 아폴로 11호와 함께 토끼와 두꺼비가 지워진 달처럼 누구나 속속들이 공유되고 있다. 내내 시퍼렇던 엽록소는 어느덧 숨을 내려놓았고 잊혀졌던 당분과 안토시안이 저마다의 색과 소리가 되어 우리 마음에 싸르르한 소름을 돋게 한다. 새벽 침대에서 내려서는 현기증을 지켜보며 이리 흔들리는 이유가 소름 때문인가 싶어 소매를 자꾸 늘이고 짐짓 목을 두툼하게 포장해 덮으려 애써 보기도 한다. 그러나 저 시드는 잎은 또 하나의 거역할 수 없는 그것으로 기어코 우리의 입술을 내밀게 한다.
사람은 눈을 감고도 살 수 있다. 듣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숨쉬지 못하는 그 찰나 우리는 이미 삶도 사랑도 사람도 아닌 그 무엇이 된다. 살아있는 한 계속되는 그 숨길을 따라 가슴을 데우고 한숨처럼 세상을 흐르는 시든 잎의 유혹!
■홍차紅茶의 시간
Early tea(Bed tea), Breakfast Tea, Eleven Tea, Mid day Tea, Afternoon Tea, High Tea, After Dinner Tea, Night Tea.
위에 열거한 것은 영국인들이 차를 즐기는 ‘Tea Time’의 종류다. 그 중에서도 티타임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에프터눈 티에 대해 쓰인 글을 보자 “시계가 오후 4시를 치면 6시까지 영국 내 모든 가정의 주전자가 한꺼번에 펄펄 즐겁게 소리를 내고 도자기 찻잔을 테이블에 나란히 놓고 설탕을 넣어 짤그랑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에프터눈 티라는 의식에 바치는 시간만큼 즐거운 시간은 인생에서 그다지 많지 않다”까지 영국인들은 홍차에 심취해 있다. 애프터눈 티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영국의 베드포드 7대 공작부인 안나 마리아로서 점심과 저녁식사와의 간격이 너무 길자 하녀에게 다기세트와 빵을 쟁반에 담아 가져오라 하여 4~5시 무렵 간식과 함께 티타임을 즐긴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 이는 곧 상류사회 부인들 사이에 큰 유행이 되어, 화려한 테이블 세팅과 푸짐한 과자로 가득한 지금의 에프터눈 티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테이블 세팅을 보면 자수로 장식된 티 테이블보 위에 티포트, 찻잔, 밀크저그, 슈가볼, 티 푸드 접시 등이 올려져 있고 향기로운 홍차를 기본으로, 3단 트레이에 가득 쌓아 올린 스콘, 머핀, 비스킷 등 과자까지 어찌보면 차 보다는 먹거리 위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외에도 Early tea(Bed tea)는 아침에 침대에서 마시는 차로 주로 남편이 부인에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신데렐라를 꿈꾸는 소녀시절 한번 쯤 떠올렸던 영화의 한 장면이 이것이었나 보다. Breakfast Tea는 아침식사와 함께 마시는 홍차, Eleven Tea는 오전 11시 경 일에 한숨 돌리며, Mid day Tea는 점심 식사 이후의 기분전환, High Tea는 저녁식사 직전의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직장인과 노동자들이 가장 즐기는 티타임이라 할 수 있다. After Dinner Tea 이름처럼 저녁식사 후 여유 있게 마시는 차로 위스키나 브랜디를 타서 마시기도 하며, Night Tea는 잠자리에 들기 전 마시는 차이다. 이렇듯 차를 마시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영국인들의 홍차 사랑은 유별나다. 2차세계대전 중 갑자기 공격이 멈춰 수상히 여긴 상대측 전령이 통신을 요구하자 ‘티타임’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기도 했다. 괴테도 “영국 사람들은 여행할 때 4대륙 구석구석까지 티팟을 갖고 다닌다.”고 썼다.
동양처럼 서양의 문인 역시 차를 사랑했다. 영국 속담에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동서를 가리지 않고 차를 좋아한다.”라고 한 것처럼 특히 디포, 스위프트, 포스, 스틸, 서턴 드라이든, 골드스미스, 보스웰, 존슨… 등 18세기 문인들은 모두 차 애호가였다. 이 중 자타가 공인하는 열렬한 차 마니아는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이다. 그는 “나는 완고하고 염치없는 차 탐닉가로서 20년 동안 이 멋스러운 식물의 탕즙만으로 먹거리를 삼켜왔다. 나의 티팟─찻주전자─은 식을 사이가 없었으며 저녁에는 홍차를 즐기고 밤중에는 홍차로 위안을 받고 홍차로 아침을 맞이한다.”고 했다. 또 “티테이블은 인간 행복의 옥좌”라고 말할만큼 차생활에 탐닉하여 그의 집에는 항상 많은 문인들이 몰려들어 “차를 마십시다(Teas up)”라고 서로 소리내어 차를 권하며 담론을 즐겼다고 한다. 스위프트 역시 한 여인에게 쓴 편지글에서 “차는 우리를 진지하고 매력있고 철학적으로 해줍니다. 나는 당신이 교양인, 좋은 어머니, 완벽한 주부, 그리고 훌륭한 티 매니아가 되길 바랍니다. 좋은 인생이란 재산과 건강 그리고 차를 마시는 일입니다.”라고 쓸 정도로 차를 사랑했다고 한다.
■홍차의 대중화
차를 유럽에 처음 전한 것은 17세기 초 네델란드인들이었다. 네델란드는 1630년대부터 이미 차를 마시는 유행이 번지고 있었는데 이는 곧 프랑스, 독일, 미국의 네델란드 식민지, 영국으로 확산되어 갔다. 영국에서의 본격적인 차마시기 유행은 1662년 영국의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의 왕녀 캐더린에 의해서다. 그녀가 영국의 찰스 2세와 결혼하면서 가져온 어마어마한 지참금에는 인도의 식민지 영토와 함께 차茶와 대량의 설탕이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두 부부 사이는 썩 좋지 못했나 보다. 찰스 2세는 동시대 유럽 왕 중 가장 호색한으로 유명했고 외로웠던 캐더린 왕비는 자연스럽게 귀족부인들을 불러 차를 마시는 시간이 잦았다. 이 모임은 영국 상류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차는 물론이거니와 설탕 역시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비싼 귀한 먹거리였다.
그때의 차는 아직 홍차가 전해지지 않은 상태였기에 녹차나 청차류가 대부분이었다. 다기 역시 동양에서 가져온 도자기들로 조그마한 잔의 뜨거운 차는 마시기 힘들었는지 잔받침에 차를 부어 식혀서 마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스꽝스러운 이 차마시기 형태는 유럽인들에게 알맞은 손잡이 달린 도자기가 생산되면서 사라지게 된다. 고가의 외제 사치품과 수입된 희귀 먹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혹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자기 과시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듯하다. 귀족들은 차를 마시기 위해 찻상(tea table)을 별도로 제작했고, 도자기를 진열하기 위해 별도의 장식장(tea cabinet)을 주문하기도 했으며, 화가를 고용해 찻상을 둘러싸고 차를 마시는 가족의 화목한 모습을 담은 그림(Conversation Piece)을 그리게 하여 저택에 걸어놓곤 했다.
이에 비해 대중들에게 초기의 차는 남성들이 다니던 커피하우스에서나 마셔볼 수 있는 음료였다. 당시에 여성들은 커피하우스에 드나들지 못했는데 그곳은 남자들이 커피 외에 술과 담배를 즐기면서 놀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여자들은 집에서 아름다운 도자기에 차를 마시게 되었고 이로 인해 차는 가정적 공간을 대변하게 되었다. 커피와 담배가 남성적 공간과 담론을 상징한 반면 차는 여성적 담론과 사교의 장을 제공한 것이다. “가정에서 차를 달이는 것은 신성하다고 할 어머니의 권리로 이 관습례의 역할을 할 어머니가 없을 때에는 차를 달이기 전에 ‘누가 어머니가 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는 『영국인의 생활』 속 구절은 이러한 당시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사교를 위한 차마시기에서 ‘전쟁’으로
차가 여성끼리의 사교를 매개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되면서 여성들은 서로를 방문하기 위해 집을 비우기 시작하였고 차문화의 유행은 사치를 부추겼다. 18세기 영문학에는 이러한 부인들의 찻잔수집에 열광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점은 대체로 회의적이고 냉소적이었다. 그러나 차를 통해 형성된 사교문화는 여성의 전유물에서 확산되어 시민사회로 번지며 교양을 상징하는 사회적 덕목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러한 차문화의 확산은 ‘티가든’ ‘티벨’ ‘에티켓’ 등 오늘날의 많은 서양문화를 형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거대한 영향을 미쳤으니 대표적인 예로 ‘미국독립전쟁’과 ‘아편전쟁’을 들 수 있겠다. 신대륙 사람들은 영국인과 마찬가지로 차를 무척 좋아했다. 영국이 어려운 자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신대륙으로 가는 차에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 신대륙 사람들이 차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이 발생한다. 사태는 나날이 악화되어 결국 차 상자를 바다에 집어 던지는 일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양국 간에 전쟁이 발발 하는데 이것이 바로 1773년에 일어난 ‘보스톤차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아무튼 이 사건 이후로 미국인은 차 대신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영국은 중국과 차 무역을 하는데 있어 언어가 큰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영국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정작 다른데 있었으니 차 대금으로 해마다 엄청난 돈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재정적자가 심각해지자 생각 끝에 인도에서 아편을 싸게 재배해 중국에 몰래 팔아 차 무역으로 인해 빚어진 재정 적자를 메웠다. 당연히 중국 정부는 아편을 금지했고 영국은 이를 돌파하고자 ‘아편전쟁(1840)’을 일으키고 전쟁에서 승리한다. 이후 영국은 1870년경까지 차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였다.
한편 차를 실어 나르는 고속범선(tea clipper)을 처음 만들어 차 무역에 혁명을 일으킨 것은 미국인이었다. 그 때부터 미국인들은 이윤을 추구하는 데에는 상당한 수완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인다. 양도 엄청났지만 이 무역으로 생기는 이윤도 엄청나 차를 한 번 실어 나르면서 생기는 무역의 대가로 다른 배 한 척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엄청난 금전적 이윤이 개입하는 순간, 차 무역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도 쉽게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마시는 차 한 잔이 그냥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기야 프랑스 혁명 역시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의기투합 혁명의 횃불이 처음 타올랐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렇듯 마치 경국지색의 미녀처럼 세계를 들었다 놓았다 한 홍차이니 루머나 잘못 알려진 속설이 없을 수 없겠다. 대표적인 것이 홍차가 어떤 경위로 만들어졌나 하는 것인데 흔히 알려져 있기를 중국의 녹차를 옮기는 중 인도양의 고온 다습한 지대를 지나면서 변해서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것이다. 그러나 홍차의 발효는 열과 습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폴리페놀과 그 산화요소에 의한 발효이므로 녹차가 인도양의 고온 다습한 기후로 인해 발효되었다면 그것은 후발효 즉 곰팡이와 박테리아에 의한 균사발효가 되기에 흑차가 되었으면 되었지 홍차가 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오해의 한 가지는 홍차에 대한 영어이름이다. 얼핏 생각하면 홍차이므로 rea tea라고 할 것 같으나 black tea(검은 차)라고 표기한다. 홍차는 우려 낸 차의 탕색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black tea라 쓴 것은 제품으로써의 찻잎의 색깔을 나타낸 것이다. 오늘날 서양에서 red tea라고 하면 주로 찻잎이 아닌 남아프리카의 루이보스로 만들어진 마실거리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러나 홍차는 어디까지나 차의 원산지인 중국에서 만들진 것으로 아직도 세계 3대 홍차 하면 첫 번째로 꼽는 것이‘기문홍차’이다.
■홍차를 즐기는 방법, 향
그렇다면 이런 홍차는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현재 홍차는 대부분 녹차 같은 온잎형, 잘게 부순 파쇄형, 그리고 티백 타잎 3가지 형태로 제품화 되어 있다. 이 중 온잎형이나 파쇄형은 주로 고급차라고 볼 수 있으며 티팟과 잔, 스트레이너 등 여러 복잡한 다구들이 필요하다. 대중적으로는 파쇄형 홍차를 부직포 봉지에 넣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티백타잎이 많이 쓰인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것이 단순한 음료의 섭취가 아니라 분위기와 문화를 함께 즐기는 것이기에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홍차 다구를 포기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요즈음은 티백도 점점 고급화되는 추세여서 함부로 저급차라 부르기는 애매하다.
홍차는 우리는 탕수로 오래 끓은 물은 좋지 않다. 바그르르 하고 끓기 시작하여 1분 이내에 불을 끄는 것이 물 속의 공기를 보존시켜 차의 맛을 더 좋게 하는 역할을 한다. 어느 타잎의 차든 단 한 번만 우리는 것이 원칙이므로 물을 넉넉히 부어 충분히 우리는 것이 좋다. 여기서 매우 주의할 점! 특히 영국차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제품 안내에 써 있는 대로 그 분량과 시간을 똑같이 하면 낭패를 보기 쉽다. 영국의 물은 경수이므로 타닌이 잘 녹아나지 않으며 차가 우러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물은 훨씬 빨리 우러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 홍차는 금기도 많다.
1. 잔 혹은 머그컵을 미리 데워놓지 말 것
2. 너무 연한 차
3. 많은 우유
4. 티백 재사용
5. 차보다 우유 설탕을 먼저 넣을 것
6. 검은색 잔이나 머그컵
7. 티백 쥐어짜기
8. 잔이나 컵에 반만 담을 것
9. 젖은 티스푼으로 설탕을 뜨지 말 것
일일이 그 이유를 설명하기란 지면이 모자라니 그저 최상의 차를 즐기기 위한 팁이라 생각하면 될 듯하다. 영국 외에도 아일랜드나 러시아에서도 홍차를 즐기는 데 아이리쉬 티는 홍차에 위스키 등을 한 두 방울 첨가하여 마시며 러시안 티는 사모바르의 뜨거운 물을 진한 홍차에 부어 희석시켜 마시는 방법으로 설탕 대신 다양한 잼을 이용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여러 번잡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차가 우리를 매혹시키는 첫째 요인은 누가 뭐라 해도 ‘향기’ 일 것이다. 녹차의 은은한 향기도 좋으나 커피 못지않은 강렬한 홍차의 향기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선사한다. 이 향기는 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시듦’이다. 불발효차인 녹차는 잎을 따는 즉시 열처리를 하여야 하지만 청차에서 황차 홍차로 강해지는 발효차는 모두 그만큼 긴 위조(시들림)시간을 거친다. 그 외에도 여러 공정이 있기는 하나 최상의 발향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열처리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제조비법인 것이다.
오래전 대만의 복수산다원을 방문하고 나오며 차 몇 잎을 따서 버스 안에 놓아 둔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찻잎이 몇 시간 후 향기를 내뿜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변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닌가. 급기야는 내 옆의 지인이 고향말로 외쳤다. “오메 환장하것네~.” 새침한 아가씨에서 점잖은 교수님까지 우리 일행은 모두 그 황홀하게 시들어 가는 찻잎에 넋을 빼앗긴 채 숙소에 다다랐었다. 모든 생명이 각자가 맞이하는 그 가을의 순간 주위를 황홀하게 하는 향기를 내뿜으며 아름답게 시들어 삶을 완성하기를 기도하며 지금 여리 여리한 홍찻잔의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어본다.
김승희 / 1959년 여수에서 태어났으며 2012년 『시와산문』으로 등단했다. 다도생활 3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