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헌보다는 대선이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해. 개헌이 불필요하다는 말은 아니야. 87년체제를 한 단계 발전시킨 새로운 공화국체제를 갖춰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해. 다만 시기상으로 너무 촉박하니 우선 대선을 치루자 이거지. 대선 후보들이 각자의 개헌 방향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당선되면 공약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게 좋겠다는 거야. 그러니 대선 과정에서 여러 개헌안을 논의할 필요는 있겠지. 아마 내각책임제로 할 건지 이원집정제로 갈 건지 아니면 대통령중심제를 놔두고 임기만을 변경할 건지가 논의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을 거야. 근데 난 좀 사소하고 별로 회자되지는 않지만 우리 국가의 이념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문제를 하나 제기하고 싶어. 개헌을 한다면 헌법 1조에 3항을 더할 필요가 있다는 거야.
잘 알다시피 우리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잖아? 이 한마디로 우리 헌법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추구한다는 걸 천명하는 게 아니겠어. 그렇다면 민주주의라는 건 무엇일까? 당연히 이 질문에 답하는 항이 필요하겠지. 그래서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여 민주주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거야. 이로부터 우리는 국민주권과 법치주의 원칙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거야.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정치적 원칙들이지.
그런데 공화주의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항이 없는 거야. 이런 연유로 공화주의 이념을 명시하는 항이 하나 필요하다는 게 내 주장의 요지야. 공화주의 혹은 공화정을 무엇을 의미할까? 민주주의라는 말이 희랍어에 뿌리를 두고 있듯 공화정 혹은 공화국이라는 말은 라틴어에 근원을 두고 있어. 이는 민주주의가 희랍에서 발생했듯이 공화주의는 로마에서 발전했다는 걸 시사하는 거지. 공화정은 라틴어 res publika가 어원이야. res는 영어의 thing에 해당하고 publika는 public을 말해. public은 '사사롭지 않고 공공을 위한'이라는 뜻이잖아. 그러니 res publika는 '공공을 위한 것' 혹은 '모두의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 말이 되지 않겠어? 말 그대로 풀이하면 res publika는 특정한 개인이나 특정한 신분, 계급 계층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나라라는 정도의 뜻일 거야.
근대시민사회의 등장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잖아? 주권자가 국민 전체로 확장하면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지시하는 대상이 동일하게 돼. 말하자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외연 상 동의어가 된다는 거야. 민주주의가 나라의 주인이 국민(people)인 정치체제를 지칭하고 공화주의가 국민(people) 모두의 것인 나라를 지칭한다면 그 둘은 같은 말이라는 거지. 근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많이 달라. 민주주의는 지배의 주체, 권력의 주인이 누구냐, 권력이 누구로부터 나오느냐의 문제잖아? 공화주의는 권력의 주체가 누구냐가 아니라 그 권력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가 문제가 돼. 말하자면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누구를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것이 공화주의라는 말이지. 특정한 개인의 사익을 위해 혹은 특정한 계급계층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자는 게 공화정의 이념이라는 거야. 두 개념은 내포 상으로 보면 이렇게 엄연히 구분돼.
그래서 나는 3항을 신설해서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공화주의의 내용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거야. 왜 그러냐고?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오직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이 정도로 규정하자는 거지.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권력은 박근혜나 최순실의 사익을 위해서 혹은 삼성이나 특정한 재벌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이번에 국회가 박근혜를 탄핵 소추했는데, 그 안을 보면 좀 복잡하더라고. 특히 헌법 위반 부분을 보면 주권재민과 법치주의 원칙을 어겨서 1조 2항을 위반했다는 거야. 내가 주장하는 것은 만일 3항이 있었다면 그 3항을 위반한 것이 너무도 명료하므로 이 항만으로도 여러 말 할 것도 없이 바로 탄핵심판에서 인용된다는 거야. 우리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특정한 신분과 계급의 배제도 이 항을 근거로 삼을 수 있을 테지.
그래서 나는 나중에 개헌을 논의할 때 이 문제도 한번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