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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시를 다시 읽는다. 스물여섯 젊은이가 이런 시를 짓다니, 놀라운 일이다. 과연 전통은 무섭다. 온종일 엄정 집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잠자다가 텔레비전 보다가 뒹굴뒹굴 지내고 저녁은 아이들이 사주는 오리고기를 배불리 먹다. (2017. 12. 16)
⎈ 신풍교회 예배 참석. 김 목사가 철저히 복음적이고 그래서 기성교회의 인습적인 해석과 많이 다른 내용으로 용감하게 설교한다. 나이 많은 교인들이 얼마나 소화시킬 수 있을지 괜히 걱정된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래도 차츰 자기의 낯선 설교에 적응되는 것 같다고… 프란체스코가 한 것으로 알려진 이 한 마디를 건네주었다. “밤낮없이 설교하라. 부득이하면 말로 해도 좋다.” 목사가 강단에서 하는 설교보다 그의 일상생활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자기-고백이고 실천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명심하겠단다. (2017. 12. 17)
⎈ 어머니 아버지 유골을 수습하여 이장(移葬)하는 날. 막내 덕주가 수고 많았다. 서울 올라가는 고속도로에 사고가 크게 나서 차들이 꼬리를 물고 거의 한 시간 남짓 정차되어 있었다. 사고를 낸 기사는 길을 떠나면서 자기한테 오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을까? 틀림없이 아닐 것이다. 이런 무지(無知)야말로 얼마나 사람들을 평소에 안심시켜주는가?
이장(移葬) 마치고 강남 터미널에서 순천행 버스에 오른다. 고단하다! (2017. 12. 18)
⎈ 거의 종일, 반(半)혼수상태로 멍하니 지낸다. 외식(外食)을 하지 않으니 몸이 고맙다고 한다. 저녁나절에 보리밥, 두더지, 신난다, 인사차 다녀감. (2017. 12. 19)
⎈ 7, 8학년 마음공부 마지막 수업. 다시 한 번 아이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터무니없는 증오와 의미 없는 분쟁으로 헛되이 낭비하는 인생이 되지 말라고, 내가 시도해보니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더라고, 너희가 결심하고 그렇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수업 도중에 갑자기 열이 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타이레놀 한 알로 진정시킨다. (2017. 12. 20)
⎈ 삶은 밤 먹으며 노리치의 줄리안, 리처드 로어 조금씩 옮김.
“내가 살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반동(react)한다, 행동하지(act) 않는다. 평생토록 상황에 반응하면서 살고, 언제 어디서나 자기를 상황의 희생자로 여긴다. ‘이것이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이다, 이것이 우리 집 십년 계획이다.’ 라고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새 예루살렘 공동체’의 몇몇 젊은 가정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나로서는 큰 감동이었다. 그들은 1975년도 봉급 액수에 맞추어 소비생활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안락하게 살 수 있으므로 봉급이 오르면 그것을 소비생활에 보태지 않고 동결시켰다가 사회에 돌려주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결의하였다. 그렇게 그들은 방향과 목적이 있는 사람, 참된 복음의 가치를 삶으로 실현하는 사람, 반동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사람으로 살았다.”(리처드 로어).
효선이 광주 프랑스문화관에서 하는 프랑스어 강좌를 수업하겠다며 기대에 부풀어 광주로 가는데, 아직도 뭐 배우고 싶은 게 있어 좋겠다고 하니 당신은 더 배울 게 없는 것 같아서 좋겠단다. 웃고 만다. 혼자 종일 방바닥을 뒹군다. 괜히 춥다. 그래도 재생 불가 에너지로 소모되는 가스가 미안해서 실내온도를 17도에 고정시킨다. 두문불출. (2017. 12. 21)
⎈ 강연하러 순천에 온 철학자 최진식 교수 일행이 집에서 효선이 마련한 밥으로 함께 저녁 식사. 두더지와 신난다 합석. 도서관에서 강연 듣다. 청중의 태도와 분위기가 진지하고 차분하다. ‘이건 아니다’와 ‘아직 모르다’ 사이, 침묵의 소리가 들리는 그 공간에 서자는 얘기인 것 같다. 모차르트가 음표와 음표 사이에 음악이 있다고 말했다는 얘기 처음 듣는다. 됐다, 오늘은 이 한 마디로 충분하다. (2017. 12. 22)
⎈ 사랑어린학교 매듭짓고 떠나는(졸업하는) 날. 오전 10시에 시작하여 오후 4시에 마친다. 귀가 어두워 잘 들리지 않지만 아이, 부모, 교사, 축하하러 온 손님들이 한 방 가득 앉아 웃고 울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에 흐뭇하다. 축사 한 마디 하라고 해서 한 마디 하다. 요즘은 두 시간쯤 무엇에 집중하면 순식간에 얼굴이 벌겋도록 열이 오른다. 그것도 고맙다. 요컨대 지나치지 말라는 신호 아닌가? 내가 넘어지면 나도 아프지만 주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거니까 아무쪼록 몸조심할 필요가 있겠다. (2017. 12. 23)
⎈ 오랜만에 중앙교회 예배 참석. 전교인 출석하는 날이라, 이층까지 빈자리가 없다. 성탄절을 맞아 세례를 베푸는데 영세자 아홉 가운데 남자는 어른 하나고 나머지는 모두 젊은 처녀 들이다. 다가오는 모성적 교회를 상징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다.
저녁에는 성공회 광주교회 김경일 신부 집전하는 성탄저녁 미사에 참석. (2017. 12. 24)
⎈ 오전 9시 출발, 신풍교회 도착하니 2시 반이다. 방금 마을 사람들이 거의 모두 교회에서 떡국잔치를 마치고 돌아갔단다. 아민이 온몸으로 웃는 모습 보면서 따라 웃다가 저녁 먹고 김 목사가 예약해둔 호텔에 든다. 바닥이 온돌이라 몸이 좋아한다.
제천 무슨 헬스장에서 화재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단다. 또 여러 사람 살아서 ‘죽일 놈’이 되겠구나. 마음이 아프다. (2017. 12. 25)
⎈ 늦게 일어나 호텔 노천탕에서 홀로 아침 햇살 받으며 겨울 하늘을 바라본다. 저 멀리 문경새재가 길게 누워있는데 낯선 남의 나라에 와서 저곳을 넘던 왜나라 병사들 모습이 그려진다. 인간이란 참 얼마나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인가! 효선과 함께 차로 미륵사지와 송계 계곡을 돌아봄. 미륵사지는 대대적인 보존공사로 미륵불을 철망에 가두어둔 상태다. 아마도 비바람에 마모되는 것을 막아보려는 것 같은데 왜 저런 괜한 일에 자원과 수고를 들이는 건지 모르겠다. 석불보다 철근과 유리로 만든 보호대가 먼저 세월의 비바람에 부식될 텐데. 효선이 장을 봐서 기림이 먹을 것들 몇 가지 장만해놓고 호텔로 돌아옴. (2017. 12. 26)
⎈ 삼박사일 만에 귀가. 집에 오니 목포 창해 목사가 보낸 귤 상자가 기다리고 있다. 도시가스공사에서 가스관 연결. 내일이면 도시가스를 땔 수 있단다. 좀 더 따뜻한 겨울을 나게 되나보다. 이 얼마나 감지덕지인가! 늦은 점심 먹고 효선은 난방도 안 된 방에서 트라베르소 연습을 하는 모양. 텔레비전 조금 보다가 이불 덮고 잠들다. (2017. 12. 27)
⎈ 드디어 도시가스가 공급되었다. 실내온도를 1도 높인다. 완전 봄 날씨다. 그래서 미안하다. 그래도 괜찮다. 모든 것이 꿈이니까. 적어도 꿈처럼 허망하니까. 그러니 순간순간을 좀 더 꽉 차게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선하게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내 숙제다.
보성에서 인문학 강좌를 한다는 두 노인이, 한 사람은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은퇴한 대학교수, 내년 2월부터 노자를 함께 읽자며 찾아왔다. (2017. 12. 28)
⎈ 서해와 몽돌이 만나서 산책도 하고 맛있는 먹을거리도 줘야 한다고 해서, 오랜만에 학교로 가니 마침 풍경소리 1월호 발송 중이다. 서해와 몽돌이 산책시키고 발송 작업을 거드는데 봉투에서 아는 사람 이름이 보이면 괜히 반갑고 안부가 궁금해진다. (2017. 12. 29)
⎈ 일부(一夫) 향아(向我) 범강(凡江), 세 동무가 환갑이라고 잔치를 열었다. 여러 학부모들과 친지들이 공동으로 음식도 장만하고 순서도 맡아서 흥겹고 재미있게 진행한다. 화천 임 목사를 비롯하여 그야말로 경향각지에서 많은 벗들이 모였다. (2017. 12. 30)
⎈ 점심은 집에서 어제의 주인공 셋이 함께. 오후 3시, 용화사 예배. 밤에는 안식년을 보낸 신난다가 정리하는 시간을 여러 길벗들과 함께 가짐. 화기만당이라더니… (2017. 12. 31)
⎈ 새해 새날이 밝았다. 새해? 새날? 괜히 하는 말이지. 아무렇지도 않은 그냥 그런 날이다. 어쩌면 마지막 날일 수도 있는…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시 한 구절을 오늘의 기도로 빌려온다.
나는 이 세상에 난 당신의 발자국,
그리고 모든 것이 문과 같지요.
우리 모두 당신의 발자국을 밟고서,
만유를 관통하여 당신께로 가게 하소서.
학교 교사들과 몇 부모가 아이들 데리고 세배하러 왔다. 꼬마들에겐 마련해둔 세뱃돈을 주고, 함께 떡국 먹고, 즐겁게 이야기하다가 돌아간다. (2018. 1. 1)
⎈ 경기도 광주 지금여기교회 성서산책.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경기도 광주까지 가지 않고 바로 옆집에서 하게 되었으니. 중앙교회가 장소와 숙소를 마련해준 덕분에 이번 성서순례는 중앙교회 교육관에서 하게 되었다. 제주도에 사는 일가족 다섯 식구가 참석했다. 급한 마음에 해열제를 사서 먹는다. (2018. 1. 2)
⎈ 감기증세가 갈수록 심해진다. 이게 아무래도 그냥 감기가 아니라 그 뭐 요즘 유행한다는 독감인 모양이다. A형인지 B형인지 복합형인지 그건 모르겠으나 해열제를 괜히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오는 건 그게 무엇이든 하느님이 주시는 거니 취사선택 없이 받아들이자고 사람들에게 말은 하면서 정작 자기는 감기 떨쳐버리겠다고 누가 주지도 않은 약을 돈 주고 사서 먹다니 이런 한심한 코미디가 어디 있는가? 오전 성서산책은 그럭저럭 넘기고 오후 개인면담은 안방에서 자리에 누운 상태로 한 가정과 몇 개인을 만남. 중앙교회 수요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는데 스크린에 비치는 내 모습이 자꾸 눈에 거슬린다. 밤 열시 넘어 구례 혜미원 류 원장이 와서 진맥하고 침도 놔주고 돌아간다. 고마운 사람. (2018. 1. 3)
⎈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오전 시간을 중앙교회 홍 목사에게 부탁한다. 홍 목사가 흔쾌히 들어주었고 효선 말로는 매우 활기차고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단다. 온종일 거의 침대에 누워 보낸다. 누워 있으면서 정생이 형처럼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 아파야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 생각에 가슴이 짠하다. 그러니까 내 정도 가지고는 누구한테 아프다고 말할 것도 없는 거다. 살아간다는 게 도무지 미안하고 슬프다. 광주 사람들은 와온 해변에서 차도 마시고 잘 돌아갔단다. 효선이 내 몫의 일까지 하느라 수고가 많다. (2018. 1. 4)
⎈ 증세가 많이 달라졌다. 기침할 때 결리던 가슴 통증도 사라지고 가래에 섞여있던 혈흔도 거의 사라졌다. 오후에는 목도리 단단히 두르고 시내를 십여 분쯤 산책. 밤 열시 혜미원 류 원장이 퇴근길에 들러 진맥하더니 많이 좋아졌단다. 오늘은 침 맞지 않아도 되겠다며 약만 주고 간다. 심장과 폐의 기운을 보해주는 약이란다. 헤셸의 시 한편 번역. 효선은 광주 프랑스문화원 수업하러 다녀오는데 차를 가지고 갔다가 졸음운전을 많이 했단다. 그동안 여러 번에 걸쳐 신호를 주셨는데 저 차를 어떻게 해야겠다. 본인도 동의한다. (2018. 1. 5)
⎈ 효선이 병원에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보자고 한다. 사진을 왜 찍느냐니까, 만일의 사태에 대한 예방차원에서란다. 단호하게 거절했다. 거절하는 태도가 좀 심하다 싶었지만 그냥 밀고 나갔다. 앞으로 올 무엇을 미리 막는 것은 지금 와있는 무엇을 배척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그건 모든 것을 주인님께 맡기고 순간을 사는 신앙인의 태도가 아니라고, 지금까지 오랜 세월 그렇게 살아왔지만 남은 생은 그런 식으로 미지근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효선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면 죽는 거지! 언제고 죽을 몸 아닌가? 대화랄 것도 없는 말씨름은 여기서 끝났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지만 더 이상 내 존재의 어느 한 부분을 보류하고서 그분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다. 있지 않은 내일을 대비하지 말고 그러니 걱정도 하지 말고 오직 지금여기에 성실하라는 그분의 가르침을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시늉이나마 내봐야 할 것 아닌가? 이제 더는 내 삶의 라디칼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이번 감기로 내가 나에게서 받은 메시지인지 모르겠다.
토요명상에 갈까 했지만 무리하지 말라는 몸의 신호를 존중해서 그만둔다. 아민이 옹알이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받아 본다. 눈을 흘기고 입을 비틀며 뭐라고 소리 내어 자기 속을 드러내는 모양이 내 눈에는 영락없이 삼십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이다. (2018. 1. 6)
⎈ 새벽꿈에 일아(一雅) 변선환 선생이 오셨다. 학교로 출근하는 길에 널 만나러 왔다며 어디 가서 뜨거운 커피 한 잔 하자고 하신다. 그러고는 초록색 만 원 권 지폐 한 장을 주신다. 그것을 받아서 마치 기계로 썬 것처럼 얇게 조각내어 돈 받는 사람에게 주었다. 거기 사람들이 많았다. 지나가는 후배 하나에게 가까운 커피하우스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단다. 내가 선생에게 말했다. 선생님 댁으로 가실까요? 금방 거기서 왔는데 거기로 돌아간다고? 그럼 학교로 가실까요? 거긴 어차피 갈 곳인데 뭐 하러 서둘러 가나? 갈 시간 되면 저절로 가게 되는 걸. 일단 거리로 나섰다. 이른 새벽이라 한산하다. 내가 말했다. 좋은 수가 있습니다, 선생님. 요즘은 하루 스물네 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라는 세 생겼으니 거기 가서 고급은 아니라도 뜨거운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해서 마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선생이 뭉툭한 평안도 말씨로 대꾸하신다, 거 참 좋다야, 신선한 새벽 공기 쬐며 젊은 선생 늙은 제자 둘이 길바닥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 우아 하하하… 호탕한 선생 웃음소리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선생을 뵙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왜 그분은 우리 사이를 두고 늙은 선생 젊은 제자라 하지 않고 젊은 선생 늙은 제자라 하셨을까? 그분 계신 곳에서는 아무도 나이 먹을 수 없어서?
오는 수요일 밤으로 약속된 대구 무위당학교 강연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조심히 꺼내는 효선에게, 어조는 부드럽지만 속은 단단하게 대답한다. 그럴 수 없다고, 내일모레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미리 염려하여 대비하자는 얘긴데 그만큼 한님에 대한 불신이 속에 숨어있는 거라고, 정말이지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님을 백 퍼센트 믿고 사는 게 어떤 건지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서 실험해보고 싶다고, 내일모레 가봐서 그날 못가겠으면 그날 못 간다고 연락하면 되는 거라고… 고맙게도 고개를 끄덕여준다. (2018. 1. 7)
⎈ 새벽, 비몽사몽간에 한 말씀 듣는다. ―며칠 전 네가 소리샘한테 말했지? 너한테 일어나는 일은, 그게 무엇이든, 네가 달라고 해서 한님이 주신 것 아니면 누가 너에게 주겠다는 걸 한님이 승낙하신 거라고, 그러니 안심하고 받아들이라고, 왜냐하면 어느 경우에도 그 일의 목적이 오직 하나 어린 영혼인 너를 성숙시키려는 데 있기 때문이라고… 말 잘했다, 이제 그 말을 네 몸으로, 네 삶으로, 솔선하여라. 너부터 네 말에 책임을 져라. 그럴 때가 되었다. 평소에 네 입으로 한 말의 내용을 스스로 증명할 때가 되었단 말이다. 그러다가 가까운 이들의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정신이상자로 몰릴 수도 있고 세상이 말하는 비명횡사를 당할 수도 있다. 괜찮겠느냐? 나보다 더 단호하게 누가 대답한다, 예! 물론입니다. 하지만 설마 네가 네 힘으로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예! 물론이지요, 아멘, 아멘.
한 어머니가 울고 있는 딸에게 말한다. “남자친구와 사랑을 한다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란다. 그저 그러면서 자기를 좀 더 알아가는 거지.” 딸이 울다말고 웃으며 말한다, “고마워요, 엄마.” 어제 저녁 스치듯이 본 영화의 한 장면이다. 오늘 아침 효선이 바다 건너 딸과 통화하는데, 마치 녹음기라도 튼 것처럼, 거의 완벽하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순간 영화에서 들은 말을 표절해서 옮기는 줄로 알고 빙그레 웃다가 아니지, 어제 그 영화 나 혼자 보다 말았는데, 하면서 드는 생각. ―음, 여자들이란 동서양 할 것 없이 생각이 비슷한가? 어쨌거나 참 근사한 생각이다. 훌륭하다. 비단 총각처녀 연애에서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렇다, 사람이 땅에서 무얼 하든지 결국은 그러면서 자기를 좀 더 알아가는 데 유일한 목적과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자(天子)로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수신(修身)을 본(本)으로 삼는다 하였지. 수신이란 결국 자기를 알아가는 방편 아닌가?
감기가 꽤 질기다. 좀처럼 떠나려 하지 않는다. 괜찮다. 그냥두자. (2018. 1. 8)
⎈ 아침식사로,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들을 모두 모아서 믹서로 갈아 만들었다는 옛날 ‘꿀꿀이죽’처럼 생긴 것을 먹는다. 맛이 묘하다. 새우젓으로 간을 해서 찬찬히 씹는다. 죽을 쑤면서 속으로 다짐했단다, 더 이상 지금 없는 무엇을 구하지 않겠다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전에는 구하면 주셨는데 지금은 안 주신단다. 그래도, 지금 없는 건 없어도 되니까 없는 것이고, 따라서 구할 필요가 없는 것임을 이제 알겠단다. 나도 이 길이 나 혼자 내 힘으로 가는 길이 아님을 더 분명히 알겠다. 그렇다, 누가 뭐래도 ‘오직 예수’다.
― ‘처음’과 ‘끝’은 우리 앞이나 뒤에 있지 않고 우리 위에, 영원에, 있다. 인생과 역사의 모든 순간마다, 이 지구별과 그것이 속해 있는 우주의 모든 순간마다, 영원에서 모든 것이 오고 그리로 모든 것이 간다. 창조는 과거면서 현재다. 완성은 미래면서 현재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서 만난다. 그것들 모두가 영원에서 오고 영원으로 가기 때문이다(폴 틸리히).
무심(無心) 함박 내외가 효선 부탁으로 뒷골목 독거노파에게 침을 놔준다. 세상에 와서 이토록 선한 사람들을 알게 된 것 자체가 큰 기쁨이요 고마움이다. (2018. 1. 9)
⎈ 오랜만에 동네 목욕탕 방문. 목욕하는 동안 기침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대구에서 무위당학교를 개설하는데 와서 한 시간 이야기하란다. 버스가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였다. 미혼모들을 위해서 일한다는 김 아무 선생이 오른손을 붕대로 감은 채 차를 운전하여 강의실 부근 식당으로 데려간다. 초면인 사람들이 많이 와서 강의실이 북적거린다. 7시쯤 시작하여 9시에 마침. 이른바 뒤풀이까지 마치고 숙소로 안내하는데 대구 약전골목 부근 구암서당(龜巖書堂)을 개조하여 만든 한옥 방이다. 옛날 집답게 외풍으로 코끝이 서늘하여 벽을 만져보니 반(半)얼음장. 기분 좋게 하룻밤 잘 수 있겠다. 원주에서 오신 서예가 심 선생과 그 일행 한 분도 같은 숙소 어느 한 방에 묵는단다. (2018. 1. 10)
⎈ 늦잠에서 일어나 책을 읽고 있자니 김 선생이 오셨다. 아침 먹으러 가잔다. 심 선생 일행과 함께 넷이 아귀수육이라는 걸 먹는데 고기보다 시원한 국물이 좋다. 12시 버스시간을 놓쳤다며 김 선생이 승용차로 순천까지 데려다준다. 오는 길에 이정표를 보지 못하여 순창까지 괜히 갔다가 돌아오는데 마음이 미안하다. 김 선생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며 차 한 잔 마시지 않고 곧장 돌아간다. 그를 배웅하는 문간으로 곡성 김종원 목사 내외가 들어온다. 몇 번 순천에 왔다가 그때마다 길이 어긋나 만날 수 없었는데 오늘은 서로 약속한 날이라 보게 되는 모양이다. 반가웠다. 쑥차와 쌀을 놓고 간다. 올봄에 둘이서 살 집을 한 채 짓는다고 한다. 그 아내에게, 본인의 부탁으로, 선형(嬋馨)이라는 이름을 전해준다. 이름에서 남성의 맛이 풍겨 좋단다. 두 사람 보내고 안방에 들어와 곤히 잠들다. (2018. 1. 11)
⎈ 곡성 김 목사가 준 쌀로 밥을 지었다. 쌀눈이 살아있어 오랜만에 제대로 된 밥을 먹는 기분이다. 하루 종일 빈둥빈둥, 헤셸의 시 한편과 리처드 신부의 짧은 글 한 쪽 옮기고 낮잠과 텔레비전으로 보낸다. 고립된 성(城)에서 침략군에 저항하여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의 한 장면이다. 병사가 장교에게 묻는다, “켄트의 지원군이 제때에 올까요?” 장교가 답한다, “그들이 와서 우리가 살아남으면 지원군이 제때에 온 것이다.” 맞다. ‘때’를 결정하는 것은 시계가 아니라 인간의 상황이다. 아직 가래가 목구멍에 남아있다. (2018. 1. 12)
⎈ 예온, 주미, 재희, 준서 네 녀석이 효선 할머니와 부엌에서 간식거리를 만들며 논다. 설탕으로 버무린 꽈배기 같은 과자를 얻어먹는데 맛이 달콤하고 부드럽다. 목우당이 부탁한 글씨 몇 자 쓰고, 오늘은 번역도 좀 한다. 헤셸의 시가 감미롭다.
당신 얼굴은 나의 궁전,
당신 눈,
푸르고 친절한 당신 눈은 내 영혼의 베개.
보드랍고 조용한 당신 입술 요람에
내 이름이 누워있을 때,
나의 손발은 빛으로 바뀌어 환해지지요.
한 번의 미소, 한 잔의 포도주와 함께,
당신이 내 꿈을 향해서 안녕하냐고 물을 때,
나의 잿빛 신앙은 젊어집니다.
한 번의 미소, 달콤한 도장으로
당신이 내 운명을 당신한테 찍을 때,
나의 가슴은 하늘에 닿는 사다리가 되어요.
당신 얼굴은 나의 궁전,
당신 눈,
푸르고 친절한 당신 눈은 내 영혼의 베개.
중앙교회 부목사 부인이 놀러 왔기에 마더 테레사의 “나는 하나님 손에 잡힌 몽당연필입니다”를 작게 붓으로 써서 선물하다. 좋아한다. (2018. 1. 13)
⎈ 목포 온누리교회가 “주님이 문을 여신 지” 20년 되었는데 와서 설교해달라기에 다녀옴. 오가는 길에 바람빛이 운전하느라 수고가 많았다. 여러 곳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준다. 교인들이 즐거운 얼굴로 잔치를 준비하는 모습도 보기 좋다. 예수교에 예수 없으면 짠 맛 잃은 소금과 다를 게 뭐냐고, 그분에 대한 ‘말’이 무성한 교회가 아니라 그분이 당신들 몸으로 살아서 일하시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덕담 한 마디… 예배 마치고 향아, 범강이 창원 김유철 선생과 함께 집으로 와서 차 한 잔 나누고 돌아간다. (2018. 1. 14)
⎈ 효선이 부암동 집 지붕 수리 때문에 새벽같이 구례로 간다. 거기 사는 목수와 동행하여 서울로 간단다. 콜록거리면서 길 떠나는 모습이 보기에 안쓰럽다. 어수선한 마음 달래려고 아브라함 헤셸의 시를 읽는다.
경사진 기둥들은 홀 안에
오만하고 건방지게 버텨 서 있고,
안달하는 벽지(壁紙)의 꽃들은
섬뜩-차가운 몸짓으로 움직이는데,
천장에서 돋아난 열대식물처럼
샹들리에가 늘어져 있네요.
하지만, 당신이 나타나서
눈부시게 빛나면
나는 거지반,
당황(唐慌)의 바다에 익사하지요.
보이는 전구(電球)에서 보이지 않는 전기(電氣)로 환하게 나타나는 빛을 보는 순간, 젊은 시인은 숨 막힐 듯 당황한다. 그래서 거룩함을 두려움이라 했던가? 일상에서 그런 두려움을 만나고 싶다. 자주는 아니라도, 어쩌다가 그런대도, 좋다. 찰나의 황홀에 질식하고 싶다.
1월 15일, 육십 년 전에 아버지가 서른여섯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신 날이다. 그날 아침에 아이고, 너희 아버지 가신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고 나는 가래 때문에 늘 앉아만 계시다가 오랜만에 두 다리 길게 벋고 누워있는 아버지를 형과 함께 보았다. 손톱들마다 검게 멍들어 있었고 이불 밖으로 나온 맨발 또한 시퍼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형은 조 장로에게, 나는 이 장로에게 달려가서 “아버지 운명하셨어요.”라는 말을, ‘운명’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전했다. 폐병쟁이가 죽으면 결핵균들이 벌레처럼 기어 나온다면서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는 아버지 시신을 조 장로님 부자가 맨손으로 염해주셨다. 아, 조종성 장로님, 쪼글쪼글 주름진 얼굴로 아이처럼 해맑게 웃어주시던 할아버지 장로님! 그 작은 얼굴이 눈에 선하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나는 아버지보다 두 배도 넘게 살고 있거니와 그분 앞에서는 영원한 철부지 둘째일 뿐. 그해 그날은 사나운 진눈개비로 몹시도 추웠는데 오늘은 지구 온난화 때문인가? 봄 날씨처럼 포근하구나. (2018.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