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설명]
태국 정부가 최남단 지방의 여러 무슬림 반군단체들 중 '민족혁명전선'(BRN)과 평화협상을 시작한 이후, 오히려 이 지방의 폭력사태는 더욱 악화일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반군 분파들이 각자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나서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태국 최남단 지방에서의 각종 테러 사건들은 '크메르의 세계'가 일일이 번역해 공개하지 못할 정도로 빈번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유혈사태가 거의 매일 같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에 관한 보다 상세한 정보는 <방콕포스트> 온라인 판의 '안보'(Security) 면을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바로가기) "<방콕포스트>의 '안보' 분야 게시판 초기화면" |
(보도) Bangkok Post 2013-5-3 (번역) 크메르의 세계
태국 남부 무차별 총격사건 미망인 :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Destitute mum mourns murdered child, hus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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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FP) 무슬림 반군들의 무차별 공격사건으로 남편과 두살 난 아들을 잃어 충격에 빠진 와차린 누원사이(34세) 씨가 친척들의 부축을 받고 있다. |
(Isra News Centre) ---- 그녀는 말을 더듬거렸고, 충혈된 두 눈에서는 끝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어린 아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살아남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더 나았을 것라고 말했다.
와차린 누원사이(Watcharin Nuansai, 34세) 씨는 2살 난 걸음마 동이 짜까린 '띳레' 히앙마(Jakarin "Title" Hiangma) 군의 어머니이다. '띳레' 군은 수요일(5.1) 밤 빳따니(Pattani) 도의 한 잡화점에서 발생한 무슬림 반군들의 '무차별 총격사건'으로 사망한 6명의 희생자 가운데 한명이다. 와차린 씨의 남편이자 띳레 군의 아버지인 사만 히앙마(Saman Hiangma, 38세) 씨도 이번 사건으로 사망했다.
부부는 도청소재지인 얄라 시내의 루사멜래(Rusamelae) 면(동)에서 사건이 발생한 잡화점을 6년 동안이나 운영해오고 있었다.
와차린 씨는 총격사건 당시 목욕을 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가 화를 면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총소리를 듣고 밖으로 뒤어나왔다. 연기가 자욱해서, 나는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얼마 안 있어 보안군이 도착했고,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의 시신들을 보았다." |
와차린 씨는 가게 앞에 있던 석조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 6명이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어린 띳레 군은 아빠에게 안겨 있었다. 남편인 사만 씨는 팍팍한 생계를 보충하고자 어선을 타고 나가 일한 후 막 귀가했던 참이다. 와차린 씨는 여전히 눈물을 억누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들언 언제 어느곳에서나 아빠와 함께 했다. 뗏레는 뭐든 빨리 배우는 아이였다. 그는 가게 안의 물건들 명칭을 모두 외웠다. 손님들이 물건을 찾으면 띳레가 재빨리 가져오곤 했다. 띳레는 태국 문자도 모두 깨우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보낼만한 학교를 찾으려 하던 중이었다."
"내가 이 집안에 홀로 앉아 있는 것보다, 그들과 함께 죽었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쓰던 물건들을 보고 있고, 두 사람을 너무도 자주 생각하게 된다." |
목격자들은 범인들이 총격을 가한 후 가게 안으로 걸어들어가 희생자 한사람 한사람의 머리에 확인 사살을 가했다고 전했다. 거기에는 와차린 씨의 어린 아기도 포함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 두살 난 아기를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녀는 남편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했다고 말했다. 두 부부는 가게 월세를 내고 아기의 이유식 마련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와차린 씨에게는 이제 부모님만이 남아있는 유일한 혈육이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떠나고 난 지금,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와차린 씨의 모친인 삼릿 누원사이(Samrit Nuansai) 씨는 자신의 가족들이 '남부지방 폭력사태'의 희생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게를 시내에 얻었고, 정부군의 검문소에서도 불과 200미터 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삼릿 씨는 원래 태국 북동부지방인 부리람(Buri Ram) 도가 고향이다. 그녀는 자신이 딸과 함께 빳따니 도를 떠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와차린 씨는 어려서부터 빳따니에서 살았다. 그녀는 남편과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는대로 가능한한 빨리 부리람 도로 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두 사람의 장례식을 월요일(5.6)에 치를 것으로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편은 부리람으로 이사하길 갈망했었다. 우리는 언제나 그 가능성에 관해 대화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저축한 돈이 없었다. 우리는 그저 하루벌어 하루를 먹고 살았다. 나는 만일 이사를 할 경우 먹고 살지 못하면 어떻하나 항상 걱정을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남편과 아들 모두를 잃었다. 내가 더 이상 여기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죽느니 이사를 할 것이다." |
(보도) Bangkok Post 2013-5-3 (번역) 크메르의 세계
사망한 아기의 어머니 : "비극을 멈춰달라" 애원
Widow implores militants to s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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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arez Lohasan) 반군들의 총격으로 남편과 두살 난 아들을 잃은 와차린 누원사이 씨가 금요일(5.3) 빳따니 시내 '왓 놉파웡사람'(Wat Noppawongsaram) 사원에서 있었던 장례식에서 오열하고 있다. |
기사작성 : Parez Lohasan
(빳따니) --- 수요일(5.1) 밤 빳따니에서 발생한 무차별 총격사건으로 남편 및 2세 된 아들을 잃은 와차린 누원사이(Watcharin Nuansai) 씨가 무슬림 반군들에게 최남단 지방의 폭력사태를 끝내라고 재차 애원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반군들에게 그들의 잔인한 행동을 중단하라고 애원하고자 합니다. 내 아들과 남편이 최남단 지방 소요사태의 마지막 희생자들이 되게 해주세요. 더 이상 사람들의 생명이 희생되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끝내주세요." |
그녀의 남편인 사망 히앙마 씨 및 아들인 짜까린의 장례식은 금요일(5.3) 시내에 있는 ''왓 놉파웡사람'(Wat Noppawongsaram) 사원에서 진행됐다.
와차린 씨는 부모님과 함께 고향인 부리람으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이곳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그 사건은 너무도 잔혹했고, 우리 가족에게 고통을 주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간다." |
수사관들은 장례식이 끝난 후 목격자들을 불러 진술을 들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사진은 목격자들에게 용의선상에 올라온 인물들의 사진도 보여줄 예정이다. 만일 기존의 사진들 중에 인상착의가 비슷한 인물들이 없다면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쥬를 만들 계획이다.
초등 수사에서는 이번 사건이 마소래 드라마(Masorae Duerama)가 이끄는 반군 분파의 소행일 가능성이 추론됐다.
노동절에 발생한 이번 사건에서는, 오토바이 2대에 분승한 괴한 4명이 와차린 씨와 남편이 운영하던 잡화점에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이 공격으로 와차린 씨의 남편과 아들을 포함한 민간인 6명이 사망했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가해자들은 도망치기 전에 근처의 주차장에도 총격을 가해 차량 여러 대가 파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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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