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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석 '자연의 모든 것' 대표의 오징어"
한강서 만난 오징어 장수에게 "제자로 써달라" 맨몸으로 시작
매출 10배 올리고
홀로 독립…
바나나·야채 行商 1~2년만에 서울 강남에 가게 내고 승승장구
1992년 여름의 어느 저녁.
나는 서울 한강 뚝섬 둔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회사에 다녀오겠다"며 출근하는 척 집을 나왔지만, 막상 갈 데가 없었다.
대학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하고 이벤트 회사에 취업했지만,
6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변변한 학연(學緣)과 지연(地緣)이 없는 탓인지
회사에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강변에 앉아 한숨만 내쉬던 그때, 멀리서
장사하는 트럭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 서른 정도 돼 보이는 한 남성이 마른오징어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는 영업할 의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손님이 다가와 "얼마예요"라고 물으면
그제야 성의없는 목소리로 "3마리, 1000원"이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갑자기 "저 일을 내가 하면 참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인맥이 없어도 발로 뛰면 장사는 할 수 있지 않은가.
다가가서 부탁했다. "아저씨, 저 오징어 좀 팔아보게 해 주세요.
제가 앞으로 참 크게 될 사람인데 용기가 없어서요.
용기 낼 수 있게 원가에 오징어 2만원어치만 주시면 제가 한번 팔아보겠습니다."
얼떨결에
오징어 여섯 축을 건네받은 나는 한강변을 돌며 오징어를 팔았다.
"쫄깃쫄깃하게 잘 구워진 오징어가 3마리 1000원이요.
이웃집 뚱순이가 먹고 반한 오징어가 3마리 1000원이요." 이렇게 외치며 돌아다녔다.
무리에서 마음씨가 가장 착해 보이는 사람이나
곳곳에 손잡고 앉아 있는 연인들을 타깃으로 했다.
오징어는 1시간도 안 돼 다 팔았다.
트럭으로 돌아와 오징어 4만원어치를 더 받았다.
그 역시 한 시간 만에 팔았다.
오징어 장수, 이것이야말로 내 천직(天職)이었다.
그날 저녁 한강에서 만난 오징어 장수에게
"스승으로 모실 테니 부디 제자로 받아달라"고 졸랐다.
밤늦도록 트럭 곁에 붙어 매달리자 그는 "내일 새벽 물건 떼러 가야 하니
오전 3시까지 서울 중구의 중부시장으로 나오라"며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때부터 나의 오징어
장사가 시작됐다.
'스승'은 새벽 3시까지 시장에 나오라고 했지만,
나는 자정에 미리 도착해 거래처를 돌아다녔다.
어느 매장이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물건을 가져다 놓았는지 돌아보고
스승이 도착하자 즉시 보고했다.
스승도 처음에 미덥지 못했는지 늘 물건 떼는 일에 훈수를 놓다가,
6개월이 지나니 내 실력과 성실성을 인정해 나에게 돈 가방을 맡겼다.
그날부터 내 하루는 늘 자정에 시작됐다.
물건을 떼고 트럭에 싣고 난 뒤 오전에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점심부터 장사가 시작됐다.
평일에는 도심을 돌아다니고, 주말에는 유원지로 향했다.
낮에는 은행 앞으로 향했다. 점심때 잡무를 보러 들른 직장인들이
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오면서 바로 오징어를 사먹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오후에는 시장 입구에 서 있었다.
장 보러 오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오징어를 팔았다.
월요일은 성수시장, 화요일은 자양시장 등등 시장도 매일 달리했다.
저녁에는 지하철역 앞을 지켰다.
퇴근길 직장인들을 노린 것이다.
매출은 10배가 올랐다.
스승이 혼자 판매할 땐 하루 20만~30만원어치를 팔았는데,
내가 합류한 이후엔 하루 매출이 200만원이 넘었다.
그렇게 1년 반을 따라다닌 뒤에야, 나도 종잣돈 300만원으로 창업을 했다.
250만원으로 중고 트럭 한 대 사고, 나머지 50만원은 전부 오징어를 샀다.
스승은 주로
강북 지역에서 장사했기 때문에, 나는 강남 지역을 선택했다.
나는 낮에는 지하철역 인근과 시장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밤에는 강남의 술집·유흥가 인근을 다녔다.
처음엔 말없이 질 좋은 국내산 쥐포를 몇 장씩 돌렸다.
오징어를 팔아달란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쥐포를 가져다주니 술집 사장들이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인데 쥐포를 가져다주느냐"며 물어왔다.
그제야 내가 오징어를 팔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니 선뜻 오징어를 사줬다.
오징어를 판매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1년 뒤엔 바나나를 팔기 시작했다.
오징어를 팔던 때와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새벽같이 서울 가락시장에 가서 바나나를 떼왔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더 냈다.
서울 황학동 시장에서 조련된 원숭이를 300만원에 샀다.
그리고 원숭이와 바나나를 실은 트럭을 몰고 여러 초등학교 인근을 돌았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으며 재롱을 부리는 모습에 어린이들이 몰려들었고,
결국 엄마들은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다.
바나나 장사는 오징어를 팔며 벌었던 것보다 매출이 2~3배 많았다.
바나나 장사를 시작한
지 1~2년 뒤인 1998년 서울 강남의 은마아파트 후문에
첫 야채가게를 낸 이후 나는 점점 사업을 키워갔다.
대형 농수산물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지금도
나는 새벽 3시쯤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20여년 동안 매일 반복해온 일이지만 지금도 새벽에 눈을 뜨긴 어렵다.
성공으로 가는 길에 우연이란 없다.
기회와 계기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영석, 그는 누구인가]
"과일도 AS 가능"…
서울서 '이영석의 총각네' 50개 운영
농수산물 유통업체 자연의 모든 것 이영석 대표는
장사꾼다운 열정과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오징어·바나나·야채를 트럭에 싣고 다니는 행상(行商)으로 장사를 시작해
현재는 서울 전역에서 농수산물 전문 매장 '이영석의 총각네'를 50개 운영한다.
야채가게에 활기찬 '꽃미남 청년'들을 직원으로 고용하는가 하면
'오늘 들여온 생선은 내일 팔지 않는다'
'과일도 AS가 가능하다'
'눈과 귀로 단골의 취향을 기억하라' 등
고객지향적 운영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 대표의 장사 경험을 담은 책 '총각네 야채가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판단은 행복의 적, 세상 만사 있는 그대로~~"
별다른 일 없이 비슷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중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쏟아지듯 밀어닥쳤다.
처리하고 대처해야 할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엇을 먼저 처리해야 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고
지혜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의 홍수 속에서
새삼 2가지를 느꼈다.
첫째, 비슷비슷한 하루하루의 일상이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것,
어떤 일이나 사건이 아무리 감당 못할 만큼 어마어마해 보여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다.
일이 부정적으로 끝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최선을 다한 뒤에 나온 결과라면 좋고 나쁘고
관계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베스트셀러 소설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100세 노인 알란이 엄마에게 배운 인생 철학은 귀 담아 들을 만하다.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다.'
좋고 나쁨을 가리지 말고 세상만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의미다.
100세 노인
알란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가난해서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다니지 못했으며
억울하게 정신병원에 끌려가 거세당하고
어찌어찌 옛 소련에 갔다가 수용소에 갇혀
강제노역에 동원되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으며 세상을 유랑하는 인생을 살았다.
이렇게 요약된 알란의 인생은 무척 불행해
보이지만
알란은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에 대해 좋고 나쁨의 판단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상황이 닥치든 깊이 생각하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으며
낙천적으로 그 상황 속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알란의 삶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상황에 대한 가치 판단이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기든 본능적으로 이 일이
나에게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먼저 따진다.
그 일이 좋은 일이라는 판단이 들면 기뻐하고
나쁜 일이라는 판단이 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람인 이상 살아가면서 이 일이 내게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일어난 일 하나하나에 개별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인생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이 만들어내는 긴 흐름을 보는
장기적인 시각을 갖는다면 일상사의 일희일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불행한
둘째 이유는 오늘을 살지 않고
어제, 혹은 내일을 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난 일을 일어난 그대로 흘러 보내지 못하고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후회하고 상심한다.
과거가 좋았더라도 문제다. 좋았던 과거와
과거보다 못한 현재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불행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뿐만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의 일에 대해서도 미리 지레짐작으로 걱정하며 불행해한다.
바꿀 수 없는 과거는 흘러
보내고
오늘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미래는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오늘 최선을 다한다면
인생이 그리 불행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과거에 대한 미련,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삶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진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세번째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 그 자체는 좋다.
배려하고 격려해주려는 관심이야 사회를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주는 윤활유다.
문제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비교를 위한 관심일 때가 많다는 점이다.
나는 이게 없는데
쟤는 있네?
나는 어디 사는데 쟤는 강남 사네?
나는 이류 대학 다니는데 쟤는 명문대 다니네?
나는 이 일을 하고도 별로 평가도 못 받았는데
쟤는 그깟 일하고 부장 칭찬까지 들었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관찰이 자신에게 비수로 돌아와
시기와 질투를 낳는다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면
아예 관심을 끊고 차라리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쏟는 것이 좋다.
고백하자면 한 때 아이
친구들은 무얼 배우고 어떤 학원에 다니고
어떻게 팀을 꾸려 무슨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시험을 내 아이보다 잘 봤는지 못 봤는지,
방학 때는 뭘 하는지 무지무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아이 친구들에 대한 불 같은 관심은 그러나 순수한 사랑이라기보다
나의 아이와 비교하기 위한 그릇된 목적의 관심이었다.
이 궁금증은 때로 비죽비죽 입
밖으로 흘러나와
노골적인 질문으로 터져버릴 듯했지만
그러기엔 자존심이 너무 셌던 덕분에 간신히 꾹꾹 눌러 참을 수 있었다.
궁금증을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르다가 결국엔
아예 아이 친구들에겐 관심을 끊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이 친구들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자
그 때 비로소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다.
그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내 아이는 내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원하는 것을 하자.
내 아이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배우고 놀고 경험하도록 하자.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의
성공에 필수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게 돼 있고 세상만사 그 자체일 뿐이다.
수많은 일들과 사건사고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은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하고 성실하게 해나가는 것뿐이다
--권성희--
막대한 돈을 들인 상품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단 하나 '고객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고객을 위해'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생각때문이라고 한다.
언뜻 들으면 비슷한 이 말은 전혀 비슷하지 않다고
세븐 앤드 아이 홀딩스의 CEO 스즈키 도시후미는 말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고참계층·중고참계층·신참계층 등 세 번의 고점으로 인구분포가 집중되어 있다.
인구분포 때문에라도 현재의 고참인력에 대한 처우가 단지 1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전의식을 바탕으로 현상의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
고참의 생존력을 저하하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무사안일과 과거를 답습하려는 사고다.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별도의 전문직제 및 호칭을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전반적인 조직 내 전문가 우대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회를
수행하는 업무 역할의 크기가 높아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Why 1만보 일까? 2만도 있고 3만도 있는데...."
쉽게 지치므로 고개는 세운 채 5~6km전방을 주시하고 걷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곧게 펴고 걷는 자세에만 신경쓰느라
면역력 강화와 신진대사 촉진 등 수 많은 효능을 지니고 있다.
김상완 교수는 "특히 걷기는 당뇨병에 좋은데, 이는 걷기가
인슐린의 저항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력을 척추에 싣기 때문에 허리와 허벅지근육을 강화하고
"자기 키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보폭으로 걸으면 근육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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