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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 01
1. 도성 전경 (낮)
파란 하늘 아래 드넓게 펼쳐진 한양 전경.
고졸한 기와지붕과 경복궁이며 창덕궁의 너른 터를 지나
단아한 전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성균관으로 쭈욱 빨려 들어가는 화면.
2. 성균관 (낮)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명륜당 앞 은행나무 그 아래 앉아 책을 읽는 청금단령의 유생들.
명륜당을 가득 메운 유생들 반듯하게 앉아 책을 읽는 모습.
성균관 곳곳에서 유생들, 박사들에게 나붓이 인사하는 모습.
빠르게 지나쳐 가는 유생들.
성균관 내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 수업이 끝난 풍경들.
유생들 저마다 빠른 걸음으로 문 쪽으로 향한다.
3. 반촌 (낮)
반촌으로 향하면 눈앞에 펼쳐지는 거리, 청춘이 넘실대는 대학가 풍경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대며 떡꼬치를 입에 물고 가는 유생들.
권커니 잣커니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는 학사 주점들.
기녀들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유생들에게 흥정하는 상인들,
야외 테라스 같은 입식 끽다점에선 쓰개치마를 쓴 여인네와 유생들.
붓, 벼루들을 파는 문방점.
길거리 좌판에는 청국에서 들어온 혼천의며 만국지도, 나침반과 시계 등을 파는 상인들과 관심을 보이는 유생들.
그 뒤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대학가다운 벽보들. “방구함. 과거급제 족집게 과외. 최신 패설 다량 확보.”
이 청춘의 거리를 질주하는 짚신 발의 한 사내.
소박한 도포 자락 속 호리호리한 몸매의 선비가 눈에 들어온다.
갓 끈 위로 유달리 선이 고운 얼굴이 돋보이는 선비, 윤희다.
E 쾅- 서탁을 치는 소리.
4. 세책방 (낮)
서탁을 치는 임병춘. 성균관 유생복색이다.
임병춘 : 아직이라니.. 아직이라니!!
서가마다 책이 꽉 들어찬 세책방.
책쾌 황가가 다이에서 부녀자들에게 책을 세놓고 있다. 놋그릇 바늘 쌈지를 저울에 달곤 책과 바꿔준다.
흥분한 병춘과 달리 느긋한 황가.
임병춘 : (저울 확 내리며)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 논어 주해본 필사를 아직도 안 끝내다니 대체 어쩌자는 게야?
황가 : (느긋한) 끝냈을껄요?
임병춘 : (황가에게 거칠게 들이대며) 헌데, 왜 없어!!
황가 : (익숙한 일인 듯) 오고 있을 겝니다. 막 미곡상을 지났을까나?
5. 장터/미곡상 (낮)
닭들이 푸드덕 날아오르는 장터. 각종 곡식 가마니와 수레가 복잡하게 지나가는 미곡 상 앞.
막 쌀을 지고 나오는 상인과 쿵 부딪히는 윤희, 행담을 놓친다.
급하게 행담을 들고 일어나 그대로 달려 나가는 윤희. 그 자리에 떨어진 얇은 서책. 논어 주해본 세권이다.
6. 세책방 (낮)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물며 서가 앞을 맴도는 임병춘.
임병춘 : 감점 10점이야. 10점.. 시간 내 주해본을 대지 못하면 난 다음 대과도 공치는거라구!! (용하 보며) 자넨 괜찮나?
병춘 돌아보면 세책방 창가,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그 곳, 책을 읽고 있는 한 사내.
대꾸 없이 책만 읽는데 지적이고 기품 있는 옆모습, 여유롭게 책장만 넘긴다.
햇살이 눈 부셔 아직 그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임병춘 : 뭐라 말 좀 해보라구!!
용하 : (책장을 넘기며) 괜찮을 리가 있나. (천천히 돌아보며) 이보게, 황가.
황가 : (보면)
용하 짐짓 성난 듯 황가 앞으로 성큼 성큼 다가선다.
용하 : 이런 법은 없네!! (씨익 웃으며) 옷고름을 풀었으면 치맛단도 내려야지 여기서 끝내다니.. (황가 얼굴 톡 치며) 몹쓸 사람.
옥단춘전 하권은 아직인가?
책을 뒤집어 드는 용하. 한글 패설에 남녀 삽화가 야릇하다.
황가 : 것두... 오고 있습지요.
임병춘 : (손을 꺾으며 입술을 깨문다) 오기만 해봐라!! 이 망할 놈!!
E 드르륵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윤희. 가쁜 숨을 몰아쉰다.
황가 : (윤희 보며) 오셨네. 흥할 양반.
임병춘 : (너무 어린 윤희) 필사꾼--?
윤희 : (숨을 헐떡이면서도 야무지게) 두냥 더 주셔야겠소.
임병춘 : (급히 행담을 잡아끌며) 주해본이나 빨리 내놓게.
윤희 : (행담 내려놓으며) 갑자기 시간을 당기는 법이 어딨소?
임병춘, 들은 척도 않고 행담을 피려 하면, 그 손목을 잡는 윤희.
윤희 : (단호히) 두냥!! 더 주시는 겁니다.
임병춘 : (손 떼려 하며) 어린 녀석이 돈독이 올랐나.
윤희 : (지지 않고 버티며) 거래가 신용이란 걸 알 만큼은 어른이오.
임병춘 : 알았으니 내놓기나 해!!
윤희 빙긋이 웃으며 행담을 편다. 그러자 맨 위 옥단춘전을 가져가는 용하.
용하 : 어디 치맛끈부터 풀어 볼까나...
책을 꺼내던 윤희 서서히 표정이 어두워진다. 빈 행담 안을 뒤적여 봐도 논어 주해본은 보이지 않는다.
윤희 사색이 되는데
임병춘 : (행담을 빼앗아 탈탈 털며) 뭐야? 없쟎아? 내 주해본 어쨌어. (와락 윤희 멱살 잡는) 이 사기꾼!!. 물어내라!! 물어내.
내 장원급제 물어내라구!!
윤희 : (난감하다)
황가 : (멱살을 떼어내며) 자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해결 방법을 찾아 봅시다요.
용하 : (병춘에게) 하는 수 없지 않나. 갑자기 연통을 넣은 우리 잘못이지.
윤희 : (흐트러진 옷을 바로 잡으며, 담담하게) 2각만 더 주시겠소?
임병춘 : 미친 놈.. 끝까지 헛소릴세. 2각안에 무슨 수로... 강의도 안 들은 네놈이? 주해본도 없이?
윤희 들은 척도 않고 행담에서 세필과 빈 서책을 꺼내 앉는다.
논어의 원문을 큰 글씨로 주해는 작은 글씨로 막힘없이 유려하게 써 내려 간다.
놀라는 임병춘, 용하 흥미로운데 황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는다.
7. 세책방 거리 (낮)
사람들이 오가는 장터거리에 놓인 커다란 앙부일구. 해 그림자가 일각을 지나 이각으로 넘어간다.
8. 세책방 (낮) - 시간경과
마지막 장의 글을 써내려가는 윤희. 붓을 내려놓는다.
황가 : (싱긋이 웃으며) 끝났수.
그 앞에 놓인 얇은 주해본 세권. 와락 책을 뺏어가는 임병춘.
임병춘 : (믿기지 않는) 이..이걸 외워서 썼다구? 네깟 녀석이? 아무 말이나 대충 쓴 거 아냐?
용하 : (역시 놀라운 듯 펴본다)
윤희 : (세필 등을 정리하며 시선 주지 않고) 못 읽겠으면.. 언문 해석도 달아 드리구.. 그건 닷푼..
용하 : 수고했네. 오탈자 없이 완벽해.
임병춘 : (헉!! 믿기지 않는다)
용하 : 헌데 (윤희를 살피며) 영락없는 계집일세.
윤희 : (뜨끔!! 갓을 당겨 쓴다- 얼굴을 가리기 위한 오랜 습관이다. 짐짓) 사내 장부에게 그 무슨 결례란 말이오!!
용하 : (싱긋 웃음) 필체 말일세...
윤희 : (휴.. 안심하지만, 표정수습하며 책을 뺏는다) 돈이나들 주시오.
임병춘 : 자. 내 인심 한번 쓰지!! 네놈 말대로 닷푼 더 쳐서 두냥!!
윤희 : 석냥 더 주셔야겠소.
용하/병춘 : (??, 뜨악하다)
윤희 : 성균관 유생들이라 하지 않았소?
용하/병춘 : --
윤희 : 댁네들 수업료랑 밥값이랑 다 내 주머니에서 나간 세금인데--
숙제나 세책방에 맡기는 댁들 보아하니 아무래도 돌려 받아얄 것 같아서..
턱 손을 내미는 윤희. 곱상한 얼굴이나 만만치 않은 총기와 배포다.
9. 중부학당/누각 위 (낮)
누각 난간 위로 현수막. “목표!! 소과 전원합격” “소과 장원의 산실, 중부학당” 등이 붙어 있는 누각 안.
일렬로 놓인 서안. 엎어져 자고 의관도 흐트러진 채 중얼중얼 암기하며 책을 찢어 먹는 유생들, 난잡한 분위긴데..
선준, 말쑥하고 단정한 차림새로 미동도 없이 글을 읽는다.
어디선가 날라 온 계란, 퍽! 선준의 갓 위에서 깨져 버린다.
놀란 듯 미간을 찡그리는 선준, 웅성거리는 유생들.
얼굴에 큰 점이 있는 유생 박달재.. 기다렸다는 듯 선준에게 다가앉는다.
박달재 : (과장된 걱정) 이보게 친구. 괜찮은가. 이런.. 갓이 상했군. 끌러보게나... 내 말끔히 닦아 주겠네.
갓끈을 푸는 선준.
박달재, 선준 살피며.. 무릎 아래로 수신호.. 기둥 뒤 해원과 유생 역시 잘해보라는 듯 수신호 보낸다.
박달재 : (선준의 머리께로 손이 가면서) 머리카락에도 다 묻었구만. (부러 성을 내며) 이런 괘씸한 놈들을 봤나!! 누구야 대체.
선준 : (그 손을 턱 잡는다, 박달재 똑바로 보며) 궁금한가?
박달재 : (보면)
선준 : 머리카락으로 붓을 만들어 쓰면 과시에 입격한다 믿는-- (싸늘하게 웃으며) 어리석은 자들의 소행 아니겠나?
박달재 : (헉!!)
10. 중부학당/대문 앞 (낮)
막 문을 나서려는 선준과 그를 막아서는 박달재, 해원. 유생.
박달재 : 도와주게 친구.. 그래도 우리가 한 스승 밑에서 동문수학한 벗이 아닌가--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을 생각해보게.
선준 : 더불어 벗할 수 없는 치들과 보낸-- 끔찍한 시간낭비였지.
박달재 : (머리카락 붓털 들이대며) 자.. 보게. 이제 다 됐네.. 조선 팔도 학당에서 내노라하는 수재들 머린 다 모았네.
자네 머리카락 열 가닥... 아니 세 가닥만 있으면 내 이번엔 무조건 합격이네.
선준 : (머리카락 들고 본다)
박달재 : 자네에겐 한낱 머리카락일 뿐이지만 내겐 생명과도 같은 동앗줄일세.. 한줄기 희망일세.. (간절한 눈)
선준, 머리카락 쥔 손을 천천히 편다. 바람에 공중으로 흩날려 가는 머리카락..
사색이 된 박달재와 해원 유생 잡아 보려 허둥거리지만 잡힐 턱이 없다.
박달재 : 내가 이걸 어떻게 구한건데....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선준 : (매서운 눈) 그런 건 노력이 아니라 요행이라 하는 걸세.
해원 : 야!! 이선준. 과거 앞두고 불안하고 초조한건 당연하지. 그런 마음 하나 이해 못하냐?
선준 : 그딴 싸구려 위안이나 동정으로 뭐가 해결되지?
박달재 : 이런. 재수 없는 자식!!
선준 : 날 싫어하는 건, 상관없네.. (단호해지며) 허나, 날 틀렸다 하는 건... 용납할 수 없네.
선준 차갑게 돌아서 간다.
11. 세책방 (낮)
산가지로 책값을 계산하는 황가와 윤희.
황가 : (이해할 수 없는) 아, 대체 과거는 왜 안 보시겠다는 겝니까?
윤희 : (대꾸 없이 산가지만 만지는데)
황가 : 선비님 실력이면 장원은 따 놓은 당상이구만.. 시권에 이름만 써도 성균관은 그냥 무난하게--
윤희 : (탁- 산가지 놓는--) 그러니... 싫단 말일세.
황가 : (멀뚱, 의아한 듯 보면)
윤희 : (황가 시선 느끼며 짐짓 너스레) 숙제도 제 손으로 안하는 놈들과 상대해서 뭘 하겠나. 그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버는 게 낫지.
황가 : (은근슬쩍) 한 푼 가지고 되시겠소? 열배벌이 장사가 있는데.
윤희에게 손짓하는 황가.
윤희 못이기는 척 주위를 살피다 황가에게 다가간다.
후미진 구석 책들이 쌓여있는 책장. 황가 책장을 열자 드러나는 밀실.
놀란 윤희 눈이 휘둥그레진다.
12. 세책방/밀실 (낮)
색색의 접을 알리는 깃발들이 벽면을 가득 메웠다.
서탁 앞에 앉아서 각종 컨닝 도구들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손바닥만 한 책을 묶는 사람들, 부채에 글씨를 써 넣는 사람들, 면포에 글씨를 쓰는 사람들 등 다양하다.
황가 : (결연하게) 글공부 잘하는 놈들만 출세하는 이 더러운 세상, 이제는 갈아 엎어야하지 않겠소?
윤희 : (그 중 책 하나 손바닥에 넣으면 쏙 들어간다. 신기하다) 그래서 돈푼깨나 있는 놈들만 출세하는 세상을 만들테니
나보고 미리 답안지를 만들어 달라 이거요?
황가 : (빙긋이 웃는다)
윤희 : (단호한) 됐소!!
13. 세책방 (낮)
행담을 챙기는 윤희, 그런 윤희를 잡는 황가.
황가 : 일만 성사되면 두당 족히 삼십 냥은 받을테니 그날 하루 벌이가 백 냥이오 백 냥! 삼년 벌이를 붓질 한번에!!
윤희 : 거벽은 불법이오! 나더러 과거 대리시험을 치란-- (웁)
황가 : (윤희 입을 막고 주위를 살핀다) 사내 맞소?
윤희 : (입 막힌 채 웁...버둥거린다)
황가 : 장부가 그만 배포가 없으니 매일 잔전푼에 목숨을 거는게요!!
윤희 : (손 떼내며) 잔전푼에 목숨을 거는 내가 절대로 안 하시는 일이 딱 두 가지가 있는데 말이오.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
황가 : (귀 들이댄다)
윤희 : 하나는 남의 밥그릇 훔치는거구.. 나머지 하난 벼슬아치들 비위 맞추느라 거짓문장을 쓰는 거요.
황가 : --
윤희 : 내가 과장에서 대리시험을 보면.. 그럼 둘 다 하는 거 아닌가? 그것도 한 날 한시에!! 사내 할 짓 아니지.
윤희, 황가에게 찡긋 하고 나간다.
14. 세책방 앞거리 (낮)
화사한 비단 옷에 머리꽂이가 그득한 가체, 전모까지 쓴 기녀 섬섬이와 앵앵이,
자기들끼리 눈짓신호를 하며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
그때 막 문을 열고 세책방을 나서는 윤희.
섬섬이 부채를 윤희 앞에 보란 듯이 떨어뜨리곤 유혹적인 자태로 지나쳐 간다.
부채를 펴 보는 윤희.
섬섬이 됐다!! 싶어 앵앵이를 바라본다. 앵앵이 이런!! 낙심하는 표정이다.
섬섬이와 앵앵이는 윤희를 두고 누가 마음을 얻는지 내기중이다.
섬섬 : (혼잣말처럼) 하나, 둘, 셋.
윤희 : 이보시오.
섬섬이, 앗싸!! 걸려들었다는 듯 앵앵이에게 손을 내민다.
앵앵, 울상이 돼 마지못해 섬섬에게 머리꽂이 건네다.
섬섬 : (꽃같이 웃으며) 부르셨습니까? 선비님.
윤희 : (덤덤하게) 한 냥 .. 어떻소?
섬섬 : (화들짝 놀라며) 운우지정을 쌓기도 전에 전두 흥정부터 하십니까?
윤희 : (보면)
섬섬 : (윤희에게 입김을 확 불어 넣으며) 기루 모란각, 섬섬입니다. 기나긴 말씀은.. 원앙금침 아래서---.
윤희 : (자르며) 이 부채 말입니다. (부채를 펴면 시문이 적혀 있다) 시문이 다 틀렸소. 내 바로 잡아 주리다.. (싱긋 웃으며) 한 냥.
섬섬 : 예에?
앵앵 : (웃으며 머리꽂이 다시 내놓으라는 듯 손을 내민다)
윤희 : 생각 있으면 세책방에 맡겨 두시오..
총총히 사라져 가는 윤희.
섬섬 : (머리꽂이.. 앵앵이 손에 올려주며) 아무래도 우린 안 되겠다. 초선이 형님이 나선다면 모를까.
초선E : 내가 어딜 나선단 말이냐.
두 사람 돌아보면 포목점에서 나오는 여인, 초선이다.
전모 아래 드러난 고운 얼굴은 앵앵이와 섬섬이와는 수준이 다른 한양 제일 일패기생의 도도한 풍모다.
섬섬 : 오늘로 저희 내기는 모두 실패했지 뭐예요. 얼굴은 봄 햇살 같은 양반이 속내는 동짓달 칼바람입니다.
초선 : (윤희의 가는 모습을 본다)
앵앵 : 우리도 좀 압시다. 사내들이 성님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비결이 대체 뭐유?
초선에게 따라 붙는 섬섬이와 앵앵이.
뭇 사내들 초선을 흠모의 눈길로 바라보지만 초선은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초선 : (앞만 보며 걸어가며) 주지 마.
앵앵/섬섬 : (의아한 듯 보면)
초선 : 원하는 게 사내 마음이라면... 절대 주지마. 눈길도 마음도 손길도.. (앵앵과 섬섬 보며) 절대로-- 내주지 마.
서늘한 눈빛에 알 수 없는 기품이 서린 초선이다.
15. 물레방앗간 (낮)
물에 어리는 갓 도포 차림의 윤희 얼굴.
갓끈을 끌러 한 켠에 내려놓는 윤희. 툭 상투 머릴 풀고. 도포자락 옷고름을 풀고 물레방아로 질러진 나무 위에 걸어 놓는다.
그 옆엔 곱게 걸린 치마저고리도 보인다.
척척 바지저고리가 하나씩 나무 위에 걸리고 벽면에 비치는 그림자는
가는 다리 위엔 부드러운 곡선이 흘러 여인의 몸임을 암시해 주는 듯 보인다.
봉긋 솟아난 가슴 위로 치마끈을 동여매는 윤희.
저고리 고름을 매는 윤희. 짧은 머릴 새앙머리로 동여매는 윤희가 짧게 짧게 보여진다.
물에 어리는 윤희 얼굴. 이제는 또래의 곱고 예쁜 여인의 모습이다.
쓰개치마와 한 켠에 놓여진 약첩을 들고 나서는 윤희.
E 챙그랑!! 항아리 깨지는 소리.
16. 윤희 집/마당 (낮)
박살이 나는 쌀독, 그 안에는 한줌도 안 되는 쌀과 좁쌀이 보인다.
그 뒤로 왈짜패들 반닫이며 이불채며 살림살이들을 내 던지고 있다.
윤희 모, 조씨는 쌀독의 쌀 한 톨이 아까운 듯 흙바닥에서 그 쌀들을 헤집고 있다.
집으로 들어서던 윤희, 그런 조씨 모습에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때 왈짜 패, 방문으로 들어서려 하자 그 앞을 막는 조씨.
조씨 : (사내들 말리며) 병자가 있는 집입니다. 내 무슨 일을 해서든 빚을 갚을 터이니.. 말미를--
왈짜패 휙 조씨를 밀쳐낸다.
윤희 달려가 조씨를 부축한다.
윤희 : 힘없는 여인에게.. 이 무슨 법돕니까?
집사 : 약조한 기한이 다 되도록 돈을 안 갚는 건 대체 어느 나라 법도요? 잊었소.. 오늘이 돈을 갚기로한.. 바로 그 날이오!!
윤희 : (쏘아보며) 늘 이런 식으로 없는 사람들, 초라한 세간마저 빼앗아 갔소?
집사 : (비열한 웃음) 걱정 말게. 세간은 다 두고 갈 테니.
윤희 : (의외다)
집사 : (윤희의 턱을 잡으며) 이제야 값나가는 물건을 찾았거든.
윤희 : (집사 손 뿌리치며 쏘아본다)
조씨 : (그 사이로 나서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리. 철없는 어린 계집일 뿐이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나리.
행여 딸이 다칠까 허리 숙여 사정하는 조씨.
집사 : 노여울 게 뭔가. 원금 백 냥. 이자 열 냥만 갚으면 그만이지. 돈으로 갚든.. 딸년을 팔아 갚든..
윤희 : (입술을 깨문다)
집사 : 미리 말해두지. 만일 야반도주라도 하는 날엔 관군을 풀든 사병을 풀든 땅끝까지 쫓아 갈테니...
윤희 : --
집사 : 허튼 수작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윤희 : 갚아주면 될게 아니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갚을 터이니 더는 무례히 굴지 마시오.
결심한 듯 입술을 꼭 깨무는 윤희.
17. 윤희 집/안방 (밤)
오래된 병석인 듯 이부자리에 앉아 있는 파리한 얼굴의 윤식.
그 앞에 수저 두벌과 멀건 시래기죽이 올려진 상을 내려놓는 윤희,
한 켠에선 침침한 듯 눈을 누르며 바느질에 여념이 없는 조씨가 보인다.
윤희 : (윤식 앞에 수저 놔 주며) 천천히 다 먹는거다. (조씨 앞에 가지런히 놔주며) 식기 전에 드세요 어머니.
윤식 : 누인..
윤희 : (부러 밝은 얼굴로) 난 저자에서 주전부릴 하도 했더니... 밥은 보기만 해도 물린다.
조씨 : (윤희 맘을 다 알기에 가슴 아픈데) 윤희야.
윤희 : (애써 웃으며) 어머니 저요. 아주 일복이 터진 모양이예요.
조씨 : (본다)
윤희 : 세책방에서 필사 일을 잔뜩 받아놨어요.. 글쎄 일 년치를.. 선불로 주겠다네요. 윤식이 약값은 공자선생이 다 대신다니까요.
윤식 : ..정말이야.. 누이?
조씨 : (걱정스러운 듯 윤희 본다)
윤희 : (조씨 손에 수저 쥐어주며) 그러니. 돈 때문이라면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해결해 볼께요.
조씨, 윤희를 안타까이 보고 윤희는 애써 밝은 얼굴이다.
18. 세책방 (낮)
사다리에 올라가 책을 정리하던 황가, 놀란 듯 본다.
그 앞에 서 있는 갓 도포 차림의 윤희.
윤희 : 해 봅시다!!
황가 : (의아한데)
윤희 : 거벽이란거.. 과장 대리시험.
황가 : (반색하며) 선비님.
윤희 : 열배 벌이든.. 백배 벌이든!! .. 한번 ..해 봅시다.
다부진 결심을 한 듯 보이는 윤희.
E 제례악
19. 성균관/대성전 (낮)
제례악에 맞춰 팔일무를 추는 장악원 악생들.
그 앞에 반듯하게 정렬해 서 있는 성균관 유생들.
제례악이 끝나자 유생들 사이를 가르며 등장하는 하인수.
임병춘과 설고봉의 시중을 받으며 제대로 앞으로 가 서는 하인수. 그 기세와 위용이 개선장군처럼 보무도 당당하다.
그 뒤로는 호위무사처럼 서 있는 무관 분위기의 유생 강무.
유생들 가운데는 빛나는 외모의 구용하와 샌님분위기의 남명식. 그 뒤로 임병춘과 설고봉도 보인다.
챠라락 제문 두루마리를 펴는 하인수.
하인수 : 선현께 아룁니다. 이 나라의 국학 성균관이 이제 새로운 유생들을 맞이합니다.
부디 어질고 현명한 후학들을 보내주시어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살펴 주십시오..
백패를 쥔 하인수, 허리 숙이면 모두 일제히 허리 숙이는 유생들.
고개 드는 하인수, 형형한 눈빛 장의의 기세, 성균관의 군왕이다.
한켠에 서 있는 박사 유창익과 대사성 최신묵의 모습도 보인다.
20. 성균관 입구 (낮)
“경술년 소과 초시” 현수막이 걸려 있는 문 앞.
청홍황 등 색색의 깃발을 흔들며 북을 치는 사부학당의 유생들.
동부학당 서부학당.. 연호하며 응원하는 유생들.
마치 지금의 수능날 아침 고사장 분위기가 흥성스럽게 펼쳐진다.
21. 성균관 입구 일각 (낮)
나무 아래 초조한 듯 서 있는 윤희에게 뒷걸음질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황가. 툭 윤희를 친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윤희, 황가 뭔가 말하라는 듯 눈짓하면.
윤희 : 재주는.. 곰이 넘는 법이지요.
황가 : (끄덕이며)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오.
윤희 : 정말 이렇게만 말하면 알아듣는단 말이오..?
황가 : 그렇다니까. 자리표랑 용모화는 챙겨 왔소?
윤희 : (끄덕끄덕)
황가 : 선비님이 유생을 찾아가 그 답안지에 맘껏 실력발휘만 하면 오늘 거사는 끝나는 겁니다. 일도 아니죠.
윤희 : (불안한 듯) 괜찮겠..소?
황가 : 뭐 염통 한구석에 걸려 있는 양심이라든가 뭐 그런 거?
윤희 : (끄덕끄덕)
황가 : 누가 요새 과거를 공부해서 보나.. 쇳복으로 보지. (가려는데)
윤희 : (소맷부리를 잡는) 정말. 괜찮겠...소?
황가 : (대수롭지 않게) 뭐 혹시라도 걸리면 벌 받는 거 아닌가..뭐 그거요?
윤희 : (더 세게 끄덕끄덕)
황가 : (슬쩍 눙치며) 걸리면 장이 백대.. 운수 좀 사나우면 태가 이백 대. (힐끗 윤희 본다)
윤희 : (헉!!)
황가 : (걱정말라는 듯) 그거 다 옛말 된지 오래요. 누가 잡어? 지들도 다 이렇게 올라간 놈들인데.. 가 보쇼!!
(귓가에 대고 은밀하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꺼욧.
22. 성균관/명륜당 일각 (낮)
윤희,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그 앞에 펼쳐진 과장 분위기.. 가히 가관이다.
일산을 펴고 여럿이 어울려 앉아 상의 하며 과거를 보는 유생들.
종노미가 부채를 부치는 유생, 먹을 갈아 주는 유생 등 가지가지다.
그때 윤희를 퍽 치고 가는 수레. 놀래서 돌아보는 윤희.
“장원급제 호박엿이 섯푼, 합격기원 찹쌀떡이 닷푼이요.”
한켠에선 그를 불러 엿을 사먹는 유생들.
윤희 마음을 다잡듯 행담을 조여 매며 심호흡을 한다.
도포 안자락을 힐끗 보는 윤희. 도포 한쪽엔 자리 배치도와 홍점.
과장에서 그 배치도 홍점의 위치를 찾아가는 윤희 시선. 뚜뚜뚜..
포착된 자리엔 먹을 가는 단정한 선비의 뒷모습.
윤희 보면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답안지가 날리는 듯 고개를 돌리는 선비 (슬로우 모션) 선준이다.
그런 선준에게 시선이 머무는 윤희, 도포 왼편 용모화 본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윤희다.
23. 성균관/정록청 (낮)
수첩과 세필을 마치 권총처럼 허리춤에 찬 유창익. 깐깐한 표정에 꼿꼿한 걸음으로 빠르게 서탁들 사이를 오가고 있다.
그 옆에 서리 함춘호 받아 적으며 뒤따르고 있다.
유창익 : 답안지를 바꾸는 자 태 이백 대, 책을 보고 쓰는 자, 장이 백 대. 대리시험을 치는 잔.. 일평생!! 과거금지.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만일 한 놈이라도 놓칠시엔!!
함춘호 : (보면)
유창익 : 네놈이 태 이백 대.
함춘호 : (적다가 사색이 되는데)
정약용E : 살살 좀 봐주지..
유창익, 휙 직각으로 뒤돌아서면 그 앞에 쌍륙판을 놓고 앉아 있는 정약용과 서리 고장복.
정약용 : 아주 목숨을 거는구만 목숨을 걸어. (콧노래마저 부르며) 때리기만 해서 말이 잡히시나~~
말을 놓는 찰나, 그 판을 휙 뒤집어엎는 유창익. 고장복 달아난다.
유창익 : 신성한.. 과장에서 노름판이라니.. 대체 뭐하는 잔가.
정약용 : (머쓱해져 일어나며) 오늘 성균관으로 부임을 명받은 박사.. 정약용이란 잡니다.
유창익 : (못마땅한) 과연 부정부패와 뇌물수수로 좌천당한 인사답구만.
정약용 : (여유롭게 듣고)
유창익 : 부임첫날에.. 그것도 성균관 유생을 뽑는 과거장에서 노름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인게야!!
정약용 : (빙긋이 웃으며) 저 너른 과장에서 유생이며 관원들이 짜고 치는 노름판이 한창이길래 (긁적이며) 저도 모르게 그만.. 허허.
유창익 : (이를 앙다물며) 여긴.. 성균관이다. 성.균.관!! 나가!! 지금 당장 나가서 부정한 작태를 벌이는 놈들을
모조리 끌어내란 말이다.. 어서!!
녹사E : 시제요!!
24. 성균관/명륜당 마당 (낮)
차르르 현제판에서 내려오는 시제.
일제히 붓을 들고 써 내려가기 시작하는 유생들.
붓을 들던 선준, 그 시선에 유생들의 한심한 작태가 보인다.
유생1 코에서 종이를 꺼내 시권을 적어 내려간다.
고개를 가로 젓는 선준 그 시선에 들어오는 유생2. 붓대롱에서 종이를 꺼내려는데 그 앞에 손을 내미는 관원.
유생2 그 손 위에 금가락지를 얹어 준다.
선준 한심한 듯 고개를 돌리는데 이번엔 물을 마시는 유생3. 입가를 면포로 닦아내며 여유 있게 손을 내리는데
그 면포에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글씨들.
선준 차라리 신경을 끄자 붓을 들고 시권에 적어 가려는데 시권을 뺏는 손, 보면 그 앞에 윤희다.
윤희 : (시권만 보며 나즈막히) 재주는 곰이 넘는 법이지요!
선준 : (이건 뭐야 싶다)
윤희 : (못 알아들었나? 선준 보며) 재주는...곰이 넘는다 했소.
선준 : (의아하지만) 돈이야... 호인이 받겠지요.
윤희 : 호인--? (피식 웃으며) 제법 문자를 아시오.
선준 : (시권을 내놓으라는 듯 당기면)
윤희 : (시권을 주지 않은 채 손 내밀며) 삼십 냥이오.
선준 : (여전히 의아한데)
윤희 : (그런 선준을 보다가) 혹.. 처음이오?
선준 : (이건 뭐하는 물건인가 싶다)
윤희 : (반색) 나도 처음이라 이해하오.. 그래서 내 하는 말인데.
선준 : --
윤희 : 이 일은 선불이 법도라오. 삼.십.냥!!
갓을 들어 올리고 싱긋 웃는 윤희.
윤희, 선준에게 슬쩍 소매춤을 보여준다.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색색의 실끈으로 묶인 시권.
윤희 : 차하 차상 장원, 삼십냥부터 오십냥까지 마음껏 택하시오!! (하는데)
선준 : 오십냥!!
윤희 : (환해진다) 현명한 선택이오.
선준 손으로 까딱까딱 윤희를 부른다. 윤희, 선준에게 다가오면.
선준 : (윤희 귀에 대고) 거벽을 발고하는 자에게, 관에서 내리는 포상금 액수요. 오십 냥!!
윤희 : (뭐라고?)
25. 정록청 일각 계단 (낮)
빠르게 내려오는 매서운 표정의 유창익과 뒤 따르는 정약용.
그 뒤로는 육모 방망이를 찬 관원들, 고장복과 함춘호 등이 험상궂은 얼굴로 따른다.
26. 과장/명륜당 마당 (낮)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쏘아보고 있는 윤희와 선준.
저 앞에서 다가오는 관원들.
그러나 윤희 뜻밖에도 빙긋이 웃는다.
윤희 : 흥정은 제대로 배웠수-- 좋소, 그 배포는 마음에 드니 내 장원시권을 열 냥에 맞춰..
선준 : (더 매서워지는 눈매)
윤희 : (어라, 불안해지며) 덤으로 한석봉체까지 얹어주면.. 되겠소?
선준 : (관원을 향해 손을 번쩍 든다) 이보시오!!
윤희, 뭔가 이상하다. 혹시나 싶어 도포자락을 펴보면, 도포의 왼편 오른편이라 과장의 좌석배치 좌우가 바뀐 것.
이런!! 싶은 윤희, 그 시선에 들어오는 반대방향, 점이 큰 유생 박달재(중부학당 유생), 누군가 애달피 찾고 있다.
“재주 넘는 곰 어디 있소?...내가 왕서방이오.”
도포자락의 용모화. 아까는 접혀 보이지 않던 점이 보인다.
윤희 선준을 확 돌려세워 얼굴을 더듬는데 점이 보이지 않고.
윤희 : 자..잘못했소.. (하다가) 요.
선준 : (야멸차게 윤희의 손을 떼어내고 높이 드는 팔) 시관, 안 계시오?
27. 과장/본부석 (낮)
선준을 향해 관원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서는 유창익,
그 앞을 막아서는 사내. 초로의 대사성 최신묵이다.
대사성 : (없는 위엄을 애써 챙기며) 이 문젠, 정박사가 해결하는게 좋겠군요.
유창익/정약용 : (워낙 뜻밖이라 마주 보는 두 사람)
유창익 : (정약용 보며) 이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대사성 : 믿어주고 또 믿어주는 것이 우리 스승 된 자들의 도리랍니다.
유창익 : 하오나-- (하는데)
대사성 : 또한, (굳어지며) 항명은-, 관원의 도리가 아닙니다. 유박사.
유창익 : (억울하지만 하는 수 없다. 애꿎은 주먹만 움켜쥔다)
대사성 : (정약용에게 다가와) 난 시끄러운 건 딱 질색입니다. 정박사. 그러니까... 정박사가 조정에서 늘 해오던 대로 ...
(힘주어) 지조 있게 밀고 나가면 됩니다.
정약용 : (눙치며) 부정부패와 뇌물수수 뭐 그런 거 말씀입니까?
대사성 : (주위 살피며) 거 사람.. 허면 내 말-- 잘 알아 들었다 믿겠소...
인자한 얼굴로 돌아온 대사성, 정약용의 어깨를 툭툭 다독인다.
정약용 역시 웃음으로 답한다. 그 얼굴 위로.
윤희E : 믿어 주십시오.
28. 과장/명륜당 마당 (낮)
선준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한 윤희, 애원하는 눈빛 간절하다.
윤희 : 저.. 정말 처음입니다. 일삼아 하는 거벽이라면 선접꾼도 없고 일산도 없이 이렇게 혼자 다니겠습니까? 예.. 살려 주십시오.
선준 : (보지도 않고 관원들만 부른다) 이보시오!!
윤희 : (무릎 꿇고 엎드린 채) 살려 주세요. 가솔들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어려서 아비를 잃고.. 제 힘으로 밥벌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집엔 (눈물 맺힌) 오늘 내일 하는.. 병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선준 : (팔 내리며) 약 값도, 벌어야겠군... 그런 사연이 있었다니....
윤희 : (눈물까지 그렁한 눈으로 끄덕끄덕)
선준 : 부디-- 개과천선 하시고 (차가운) 꼭, 새사람 되시게.
(다시 번쩍 손을 들고) 여기, 부정한 방법으로 과장을 욕보이는 자가 있소이다.
배신감에 입술을 꼭 깨무는 윤희, 선준을 쏘아본다.
정약용E : 과장을 욕보이는 자라, 그게 누군가.
그 앞에 와 서는 정약용, 윤희 포기한 듯 눈을 감는다.
선준 : (일어서며) 저와 여기 과유들 그리고 영감이십니다.
정약용 : (흥미로운 듯 보면)
선준 : 글을 파는 일이 수치인지도 모른 채 돈 벌이에만 급급한 이들이 그 첫째요.
윤희 : (살금살금 무릎걸음으로 도망가다가 선준을 쏘아본다)
선준 : 오로지 제 답지를 작성하는 일에만 골몰해 부정을 보고도 개의치 않는 과유들이 그 둘째.
그 앞에 이 소란한 와중에도 붓만 놀리고 있는 유생들 보인다.
애체를 낀 똘똘한 유생, 김우탁 흥.. 하더니 계속 답지 작성한다.
선준 : 그리고 이를 그저 관행이다 여기는 모든 관원들-- 또한 이 모두를 주관하시는, 대사성 영감의 죄 또한--
결코 가볍다 할 순 없겠지요.
29. 과장/본부석 (낮)
차양아래 의자에서 주먹 쥐고 벌떡 일어서는 대사성.
대사성 : 저저런!! (고장복, 함춘호에게) 뭣들 하는가, 당장 저놈을 내치고 과장을 정리하지 않고서!!
서리와 관원들 우루루 달려 나간다.
30. 과장/ 명륜당 마당 (낮)
정약용 : (빙긋이) 허면 어찌 처결하면 되겠나?
선준 : 먼저 시권과 호패를 비교하여 거벽과 사수를 모조리 내 보내야 합니다.
정약용 : (흥미로운 듯 본다)
선준 : 하여 과장의 질서를 바로 잡은 다음-- 과거를 주관했던 관원들은 전하께 나아가, 모두 벌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일제히 야유소리.
흔들리지 않는 선준, 관원들도 괘씸한 듯 손가락질하자, 대사성, 고장복 함춘호와 함께 험상궂은 얼굴로 다가온다.
대사성 : (버럭) 정박사.. 내 말 못 알아들은 겝니까. (선준에게) 네 이노옴! 니놈의 이 방약 무도한 작태를 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명부첩을 뒤적이며) 이름을 대라, 대체 뉘집 자식이더냐.
선준 : 소생---, 이선준이라 합니다.
투룩 명부첩을 떨어뜨리는 대사성 입을 다물지 못한다.
대사성 : 이..이선준.. 허면 네놈이.. 아니 자네가 혹 좌상대감의 영식 그, 이선준이란 말인가.
선준 : --
헉!! 일순 과장에 흐르는 정적.
손가락질을 멈추는 관원. 유생들도 모두가 놀란 눈치.
도망가려던 윤희, 선준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흔들림 없는 선준과 그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정약용.
대사성 : (관원들에게 버럭, 태도 돌변하여) 뭣들 하는가, 어서 과장을 정리 하라질 않았어!!
관원들 : (대사성 눈치 보며 쭈뼛쭈뼛 선준에게 다가가면)
선준 : (대사성 본다)
대사성 : (사색이 돼 관원의 조인트를 차며) 번짓수가 틀렸네!! 지금 이 시각부터 이 과장에선 그 어떤 부정도 그 어떤 비리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네~~! (쿨럭)
31. 과장 몽타쥬 (낮)
-대사성의 진두지휘로 정리되는 과장.
-호패를 대조하는 관원, 도포를 벗고 옷을 수색하는 함춘호.
-유생의 속곳에서 죽편을 꺼내는 고장복.
유생 은근히 고장복에게 돈을 찔러 넣으려 한다. 고장복 슬며시 주위를 살피는데
감시하는 유창익 눈길에 뻥 그 유생을 문 밖으로 내친다.
-쫓겨나는 음식장사들.
-열과 횡을 맞춰 깨끗해지는 과장.
이 모든 과정이 빠른 그림으로 휙휙휙 지나간다.
말끔히 정리된 과장, 부정한 유생들 사이에서 같이 끌려 나가는 윤희, 휙 고개 돌려 선준을 찌릿 째려본다.
32. 과장/명륜당 마당 (낮)
딱- 붓을 놓는 선준.
시권을 내려다보는 선준, 침착한 표정이다. 당당하게 시권을 들고 본부석으로 나아간다.
그 걸음걸이마다 근방의 과유들, 도미노 말처럼 차례로 고개를 들어 선준을 바라본다. 경탄의 눈빛이다.
우탁과 해원은 선준을 놀랍지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런 모습이 꼭 싫지만은 않은 선준, 목에 힘이 들어가지만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는 듯 몸가짐을 다잡는다.
33. 과장/본부석 (낮)
시권을 내는 선준, 시권과 선준을 번갈아보는 정약용.
정약용 : 덕분에 오랜만에 과장다운 과장에 섰군.
선준 : (당당한 표정) 응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돌아서 간다)
정약용 : 다만 한 가지.
선준 : (멈칫 선다)..
정약용 : 멀리서 온 과유들은 이 예기치 못한 사태로 훌쩍 시간이 지체 됐으니 오늘밤 집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겠지...
허면 그들의 노자는 어찌하면 좋겠나.
선준 : (당혹, 그러나 흔들림 없이 돌아서) 오늘 일에 대한 책임은-- 과거를 주관하는 예조에 물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약용 :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구하고자 했을 뿐이네.. 헌데 그건 새로운 협서인가?
선준, 의아한 듯 정약용 돌아보면, 정약용 뒤로 돌아 보라, 손짓.
과장의 유생들 그제야 소리 내어 킥킥대며 웃기 시작하고 당혹해진 선준이 드디어 제 도포 뒷자락을 봤다.
단정한 붓글씨로 쓰인 한시다. 그 위로 들리는 윤희 목소리.
윤희E : 글 읽는 선비라 그 기개 드높으나 / 백성의 살림을 살피는데 어두워라.
INST> 선준이 답지를 작성하는 동안 그 뒤에서 선준의 도포자락에 시문을 적어 내려가는 윤희.
그 위로 윤희 목소리.
윤희E : 글을 팔아 쌀을 사는 이가 도적이면 / 글을 팔아 권력을 사는 이는 충신인가.
이런 자에게 칼을 쥐어주면 / 그가 바로 사람 잡는 선무당. 큰 도적이 될 자가 있다 하면 그가 곧 나다.
선준 당혹스러운 얼굴인데.
정약용 : 혹.. 그 사람 잡는 선무당은 자네를 이름인가?
주먹을 꾹 움켜쥐는 선준.
과장의 동서남북 쏘아보는 선준, 그러나 과장 어디에도 윤희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유생들의 웃음소리 더더욱 커져 가고..
화가 난 선준 발걸음이 빨라진다.. 휘적휘적 그러다 휘청하는데 이건 뭐야..
발밑을 보는 선준. 노끈으로 이어진 대통이 스스스스 움직이고 있다. 어느 유생의 방석 밑으로!!
그 유생은 다름 아닌 중부학당 박달재.
박달재 대통을 들고는 주위를 살핀 뒤 답지를 꺼내는데 그 답지를 뺏는 손, 선준이다.
박달재, 선준을 보고 헉!! 놀라는데
선준, 박달재를 휙 밀치고 답지를 펴본다. 윤희의 것과 똑같은 색실의 답지!! 정갈한 시문이 적혀있다.
답지를 와락 움켜쥐는 선준.
34. 담벼락 일각 (낮)
노끈을 잡아당기는 손, 윤희다. 갑자기 뚝 멈추는 끈, 있는 힘껏 줄을 당기던 윤희.
그 시선에 노끈을 밟고 있는 발.
윤희 뭔가 섬찟한 기분. 서서히 고개를 들면 그 앞에 서 있는 선준.
윤희 : 와.. 왕서방?
선준 : 자네의 시권을 받았으니 내 계산을 해야 하지 않겠나--
냅다 달려 나가기 시작하는 윤희, 선준도 그 뒤를 따라 달려간다.
35. 반촌 일각/반수교 앞 (낮)
유생과 선접꾼들. 반수교를 오가는 반인들 사이로 달려가는 윤희.
그 뒤를 힘껏 따라 가는 선준.
36. 반촌 일각/반수교 뒤 (낮)
인파가 붐비는 거리, 홍해가 갈리듯 나뉜다.
다른 유생들과는 때깔이 다른 비단 도포자락들.
하인수와 임병춘, 설고봉, 구용하, 강무. 조선시대 꽃남들의 등장이다.
싸늘한 얼굴에서 차마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하인수.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거들먹거리는 임병춘.
허허실실 설고봉 여인네에게 윙크하는 구용하.. 그리고 과묵한 강무.
37. 반수교 위 (낮)
반수교 위를 달려가는 선준과 윤희.
반대편에서 오고 있는 하인수, 용하 병춘 고봉.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피해 달아나는 윤희. 이제 막 선준에게 잡힐 것 같은 찰나.
임병춘 옷매무새를 매만지는데 그 앞을 휙 지나가는 윤희.
뭐야 저건, 싶은데 윤희 그만 유생들의 다리에 걸려 휘청한다.
가볍게 윤희를 받아 드는 손. 용하다.
긴장한 듯 침을 삼키는 윤희. 그 부드러운 목선을 놓치지 않는 용하.
윤희, 화들짝 놀라 달아나고 그런 윤희가 흥미롭다는 듯 돌아보는 용하.
선준, 역시 윤희를 잡으러 대열로 들어서는데 턱 가슴을 막아서는 팔. 임병춘이다.
임병춘 : (눈 내리깔고) 어이, 성균관 상유를 봤으면 응당 인사를 해야지.
선준 : (눈은 윤희만 찾는데)
임병춘 : (깐족) 아, 개선장군이라 이건가? 과장에서 활약이 대단했다지?
선준 : --
설고봉 : 그래서 선비체면은 냅다 던지구 뛰었구만.. 아이구 아부지. (엉덩이 실룩이며) 엉덩이 두드려 주세요. 하러?
와하하하 웃는 유생들과 사람들.
선준을 비웃듯 바라보는 하인수.
선준 : 무례를 범했습니다.
하인수 : (의외다)
선준 : 난장판이 된 과장을 보고 나니, 글 읽는 선비로써 수치심이 들어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용하 : (흥미로운듯 본다)
선준 : 저 같은 일개유생이 이럴진대 성균관 상유들께선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시는 듯 합니다.
하인수 : (본다, 요것봐라)
선준 : 성균관 유생임을 자랑하며 백주대로를 활보하시니 말입니다.
용하 : (쿡- 웃음이 터진다)
하인수 : (분하지만 여유롭게 다가와) 자네 말이 맞네.
선준 : (의외다 싶다)
하인수 : 글 읽는 선비의 바른 길이라.. 성균관에 들거든.. 자네가 한 수 가르쳐 주겠나? 내 기다리고 있겠네.
선준 : (만만치 않은 눈빛이다)
하인수 : (웃음기 가시며) 허나!! 시건방을 봐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선준 : 어울리지 않는 선배노릇을 봐주는 것 역시-- 이번이 마지막이오.
뒤돌아 가는 선준, 하인수 주먹을 꽉 움켜쥔다.
앞서 걷기 시작하는 선준. 와락 그런 선준의 멱살을 잡는 손. 임병춘이다.
임병춘 : (발끈 선준의 멱살을 잡는) 뭐야? 네 이노옴!! 내 오늘 네놈에게 선배를 대하는 바른 법도를 가르쳐주마!!
선준 : (잡힌 멱살을 단호히 뿌리치며) 길 위에선.. 갈 길을 막지 않는 것만이 법돕니다.
어어어..휘청이며 털썩 난간에 부딪힌 병춘, 균형을 잃고 풍덩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허우적대는 병춘.
용하 : (하인수에게) 누군가-
강무 : 좌상의 아들 .. 이선준.
설고봉 : (눈치 없이) 글 잘해, 인물 좋아 대를 이은 노론가의 영수!! (하는데)
하인수 : (싸늘한 시선으로 고봉 본다)
설고봉 : (찔끔)
용하 : (윤희가 닿았던 손을 그윽히 바라보며) 그 녀석, 묘하게 정이 가네.
하인수 : (본다, 못마땅)
용하 : (씨익 웃으며) 뒤엣 놈 말고..앞에-- (놈일까, 년일까. 손가락 돌리며) 놈!! (어깨 으쓱, 이 상황이 재밌다)
38. 운종가 (낮)
걸음아 날 살려라 달려가고 있는 윤희. 그 뒤를 쫓는 선준.
어물전, 유기전, 짚신들이 걸려 있는 시전.
푸드덕 닭이 날아오르고 호객꾼이 소맷부리를 잡는 복잡한 장터.
익숙한 듯 요리조리 피해 나가는 윤희, 선준은 익숙치 않고.
그때 뒤를 보지 않고 나오던 생선전의 수레, 와락 수레를 안고 넘어 지는 선준!!
물함지에 담겨 있던 퍼덕 거리는 생선이며 문어..조개류들 선준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옷이며 얼굴이며 엉망이 되는 선준.
힐끗 돌아보던 윤희, 유유히 사라져간다.
분한 듯 입술을 깨물며 벌떡 일어나는 선준.
이때 그 팔을 잡는 우왁스런 생선장수의 손.
선준 생선장수 손에 엽전을 올려준다.
어느 새 선준의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 선준의 도포자락을 보며 놀려대기 시작한다.
“뭐라고 써 있대?” “글을 팔아 권력을 사는 선무당이라는구만..”
선준 하는 수 없이 도포를 벗어 들고 윤희를 찾는다. 그러나 동쪽에도.. 서쪽에도.. 어디에도 없는 윤희.
그때 선준 눈에 들어오는 한 장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포목말이.
39. 포목점 (낮)
화려한 비단 말이들이 칸칸이 쌓여 있고 여기 저기 펼쳐져 있다.
형형색색의 휘장이 날리고 선준 하나하나 천들을 헤쳐 나간다.
이제 마지막 남은 포목휘장.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휙 장막을 걷는 선준,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 안엔 갓 도포의 유생이 아닌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인네!!
반듯한 이마와 고운 입매를 가진 여인 복색의 윤희다.
믿기지 않는 선준, 여기 저기 천들을 들춰 보는데 아무도 없다.
거칠게 천들을 들춰보던 선준, 뒤돌아선 여인의 쓰개치마를 들춘다.
돌아서는 여인, 철썩!!! 선준의 뺨을 후려친다.
그제야 정신이 든 선준 보면 쓰개치마에 얼굴을 꽁꽁 감춘 반가의 여인, 윤희지만
얼굴을 알아 볼 수 없도록 쓰개치마를 폭 쓰고 있다.
윤희 : (쓰개치마 속눈만 빼꼼 내밀고) 사대부가 반가의 아녀자를 희롱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짓이란 말입니까.
선준 : (어안이 벙벙하여) 미...미안하오 무례했다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쌩 찬바람을 일으키며 뒤돌아 가는 윤희.
이내 배시시 고소한 듯 미소가 번져간다.
남겨진 선준, 벗어든 도포자락을 펴 본다. 윤희의 조롱이 생생하다. 황망한 얼굴이다.
정조E : (호방한 웃음소리) 이선준이라.
40. 궁궐 사대 (황혼)
화살을 고르는 정조, 연신 유쾌한 듯 파안대소다.
그 앞에 정약용. 조금 떨어진 곳에 초로의 내관과 상궁 나인들도 보인다.
정조 : 제 아비의 잔치판을 뒤엎은 아들이라니.. 재밌군.. 재밌는 녀석이야.
정약용 : 하오나 전하. 그는 노론 영수의 아들이옵니다.
정조 : 노론의 아들이라-- 그대를 성균관으로 좌천시킨 자들의 아들이니.. (짐짓 떠보듯) 내 경계를 해야 한다-- 이런 말인가?
정약용 : (멋쩍은 듯) 송구합니다.
정조 : (속을 알 수 없는 미소) 과인은 그래서 더 마음에 듭니다.
탕- 날아가는 화살, 홍심을 뚫는다.
41. 궁궐 일각 (황혼)
이정무와 병판 그리고 대사성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십여 명의 청홍 관복을 입은 중신들.
이정무 : (인자한)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대사성 : (호들갑, 아부하는) 마음에 들다마다요. 아드님 같은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야 말로
(힘주어) 오직 성균관만을 지키며 살아온 외길 인생에 유일한 보람이지요.
이정무 : 아들애의 젊은 치기야 대사성께서 혜량해주시리라 믿습니다만.
대사성 : (굽실 거리고 아부하는 눈빛)
병판 : 오늘 일로 피해를 보는 우리 노론 명문가의 자제들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네. 어디 교육이 서책에만 있다던가??
교육이야.. 밥상머리 교육이 으뜸이지.
대사성 : (굽실 거리며) 이미 예조에 들러, 각별히 당부해뒀습니다.
병판 : (껄껄 너털웃음) 나.. 이런. 이렇게 학식과 덕망이 뛰어난 대사성 같은 인재가 궁을 너무 오래 비우지 않았소...
(이정무 보며) 이는 나라에 손실입니다, 손실!!
대사성 : (화색이 감돈다)
이정무 : (엷은 미소) 그러게나 말입니다. 전하의 곁이 너무 외롭질 않습니까.
이정무의 시선이 머무는 곳, 사대 앞 정약용과 정조와 내관 궁녀들.
병판과 대사성을 대동하고 뒤로도 십 수 명의 신료들을 거느린 이정무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현실의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듯.
42. 물레방앗간 (황혼)
툭 쓰개치마를 내려놓는 손. 그 옆에 앉는 여인, 짚신 발 위에 치맛자락.
올라가면 가슴 치맛끈 아래로는 남자 저고리를 그대로 입은 윤희다.
포목점에서 급하게 갈아입은 차림새, 머리도 상투는 그대로인 어설픈 차림새.
물 아래 비친 제 모습이 우습기도 씁쓸하기도 한 윤희, 멋쩍은 듯 이마 위를 만지작거린다.
치마끈을 풀고 저고리를 갈아입으려던 윤희, 소매춤에서 색색의 시권을 꺼낸다.
윤희 : (하나하나 내려놓으며, 돈을 세듯) 열냥, 스무냥, 이건 열닷냥. 그리고 또 이건.. 삼십냥.. (피식 웃으며) 부자네.. 나.
그러나 이내 서늘해지는 얼굴, 한숨 쉬는 윤희.
시권들, 한곳에 버리고 미련을 버리듯 툭툭 털고 일어나는 윤희..
43. 윤희 집/마당 (황혼)
터덜터덜 걸어오는 치마저고리 차림의 윤희. 집 앞엔 웅성이는 사람들.
의아한듯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서는 윤희. 놀란 듯 두 눈이 동그레진다.
초라한 집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비단 말이들과 쌀섬들. 그리고 고기 한 짝이 보인다.
천천히 들어서는 윤희. 그러자 동네 아낙들 윤희를 보며 수군대기 시작한다.
“병판댁에서 보낸 혼순가” “후처로 팔려간다지?” “아깝네 아까워..쯔쯔” 등
윤희 씁쓸해지는데 그때 문을 열고 나오는 조씨.
마을 아낙들 얼른 뒤돌아서고 조씨와 윤희, 안타까운 눈빛들.
44. 윤희 집/안방 (황혼)
서안 앞에 마주 앉은 윤희와 조씨, 그 옆에 놓여진 윤희 행담.
조씨 : (마음은 아프지만 단호하게) 차라리 잘된 일이다. 병판댁 사람이 되면 평생 배 곯을 일은 없겠지.
윤희 : (당혹해진다) 하지만 어머니.. 윤식인 한고비 넘겼고 빚은 .. 제 힘으로...어떻게든 제가.. 갚아 볼께요.
조씨 : (엄한 눈길로) 이렇게 말이냐?
조씨 서안의 서랍 안에서 윤희가 만든 시권을 꺼내 내놓는다.
윤희 놀라는데 조씨 그 위에 윤식의 호패를 탕 올려놓는다. 사색이 되는 윤희.
조씨 : 관원이 다녀갔다. 과장 난릿속에서 분실한 듯 하다며 가져왔다.
윤희 : (당혹해진다)
조씨 : 윤희 너 네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고는 있는게냐.
윤희 : (할 말이 없다)
조씨 : 다른 사람의 호패로.. 그것도 계집이 과장에 서다니 남녀가 유별하고 강상의 법도가 지엄하거늘..
죽음으로 죄를 묻는다 해도 넌 할 말이 없었어.
윤희 : (당혹해진다) 잘... 못했습니다. 어머니..
조씨 : 죄를 묻자면 모두가 이 에미 죄겠지. 어린 계집이 백 냥 빚을 갚겠다 호언장담을 할 때
아니 윤식이 행세로 저자에서 약값을 대기 시작했을 때 그때 널 다잡았어야 했다.
윤희 : (본다.. 알고 계셨구나.. 싶어서)
조씨 : 윤식일 살릴 욕심에 에미가 널 사지로 몰아넣을 뻔 했어..
윤희 : --
조씨 : 더는 안 된다. 이젠.. 계집으로 살거라. 사내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그렇게 계집으로 살어.
윤희 : 어머니 다신 .. 다시는 이런 일 없을꺼예요. 정말이예요.. 빚은 .. 필사일을 더 열심히 해서..
조씨 : 아직도 모르겠니? 조선 팔도에 글이 재주가 되고 밥이 되는 계집은 기생년들 뿐이다.
(모질게 오금 박듯) 윤희 네게.. 글 재준.. 독이다.
윤희, 눈물을 참으려는 듯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바느질감을 잡은 조씨의 뒷모습, 흐느낌이 가늘게 떨려온다.
45. 윤희 집/툇마루 (황혼)
툇마루에 올라와 있는 비단 말이와 쌀섬, 고깃짝.
초라한 윤희 집 형국에 어울리지 않는 물목들이 더욱 빈한한 가세를 도드라지게 한다.
그를 바라보는 윤희. 참담한 얼굴이다.
이때 건넌 방 열린 문으로 파리한 얼굴의 윤식.. 그런 누이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46. 선준 방 (황혼)
서안 위에 윤희의 용모파기를 올려놓는 선준.
그 용모파기를 신기한 듯 들어보는 순돌.
순돌 : 뭔 놈의 사내가 이리 곱다요? 반해 버리겄소.
선준 : 도성 안 세책방을 전부 다 뒤져서라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내 이 자에게 꼭.... 갚아줄 빚이 있다.
선준이 쏘아보는 용모파기 속 남장 윤희.
47. 병판 집/마당 (낮)
빗장을 열자 그 앞에 서 있는 윤희. 놀라는 집사.
윤희 : 빚을 갚으러 왔네.
가노들 웅성거리는데.
일꾼들 윤희네 집에 들어 왔던 쌀이며 비단이며 고깃짝들을 내려놓고 있다.
집사 : (보면) 정..말 인가.
윤희 : 뭣 하는가.. 어서 대감께 인도하지 않구서.. (그대로 들어선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집사, 윤희의 거침없는 행보에 위세가 눌린다.
윤희와 스쳐가는 하인수.
뒷채로 가려다 멈칫 서는 하인수, 묘한 느낌 윤희를 돌아본다.
효은E : 오라버니
하인수에게 다가오는 효은과 그 뒤에서 인사하는 버들이.
효은 : (제 눈 가리키며) 여기 좀 봐봐. 큰 일 났어.
하인수 : (걱정스러운 듯 보면)
효은 : (엄살) 짓무르지 않았어?
하인수 : (걱정스런) 아프면 의원에게 보여야지.
효은 : 보고 있쟎아. 오라버니 보고 싶어서 병 난건데? (샐쭉 웃는)
하인수 : (기막힌듯.. 싫지 않다) 녀석, 이번엔 또 뭐냐,
효은 : (하인수 팔짱 정답게 끼며) 애들이 이번 보름에.. 월출산으로 달맞이를 간다쟎아. 근데. 나만 안된대. (새초롬..)
오라버니가 해결해주면 안될까? 응? 응?
멀어져가는 효은과 하인수, 효은에게만은 언제나 부드러운 하인수.
48. 병판 집/대청마루+사랑 (낮)
대청마루로 올라선 윤희.
집사, 병판 사랑 앞에서 고하려 하면.
윤희 : 잠깐, 발을 내려 주시겠는가.
집사 : (본다)
윤희 : (전과 다른 위엄) 반가의 여인일세. 예를 다해주시게.
집사 : (윤희를 보면서 마지못해) 김서방.
행랑아범, 총총히 다가와 발을 내리고 집사가 문을 열면 병판 앞에 발을 내린 채 앉아 있는 윤희.
그리고 마당에선 윤희를 힐긋거리는 서너명의 가노들.
윤희 : 빚 보다 더한 은혜를 갚으러 왔습니다. 대감.
병판 : (요것 봐라) 은혜를.. 갚는다--?
윤희 : 대감께선 제 동생을 살려 주신 은인이십니다. 허나 이제 민심은 대감께서 고리채를 놓고 어린 계집은 돈으로 사
여흥거리로 삼는다 손가락질을 하겠지요.
병판 : (요것봐라 싶은데)
윤희 : 저로 인해 은인께서 공연한 추문에 오르시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돈 주머니를 앞에 내놓고)
부족한 돈이오나 말미를 주시면 은혜를 갚듯 정성을 다해 갚겠습니다.
병판 : (보다가) 내가 네년의 협박을 두려워할 것이라 여겼느냐.
윤희 : 육도에 이르길 싸우지 않고 화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요, 명장은 두려운 적 앞에서 싸움을 피한다 했습니다.
병판 : --
윤희 : 대감께서 두려워하실 이가 있다면 그는 오직 민심이요, 이 나라의 병판이시니 응당 화를 피하는 상책을 택하시리라-
믿었을 뿐입니다.
병판 :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다가와 윤희 앞에 앉는다)
윤희 : (긴장한다)
병판 : 계집이 병법을 다 아는구나. 제법이다 제법이야..
윤희 : (긴장되는 순간이다)
병판 : 그래, 네 말이 맞다. 내 생각이 짧았다.
윤희 : (본다, 어떤 기대감)
병판 : 해서-- 네년에게 빌려준 돈은 당장 갚는 것이 좋겠다. 저자의 민심이 그 사실을 알기 전에.. 당장 말이다.
윤희 : (굳어진다)..
병판 : 그리고 난 네 그 당찬 배포가 마음에 들었다. (발을 들어 윤희 얼굴을 끈적하게 바라본다)
윤희 : (당혹해진다)
병판 : 마음에 든 계집을 취하는 사내는 허물이 되지 않을 터. 내 너를 내 사람으로 삼아야겠다.
윤희 : (사색이 된다)
병판 : 사흘 뒤에 가마를 보내마.
윤희 : (불안감이 엄습하는데)
49. 병판 집/마당 (낮)
웅성거리는 가노들 사이로 꼿꼿한 걸음으로 나서는 윤희.
그 뒤에서 비열한 웃음으로 보고 있는 집사.
그 옆에 다가와 서는 하인수.
하인수 : (싸늘한 웃음) 자넬 아버님께서 너무 총애하시는 듯 싶군.
집사 : (싫지 않다) 도련님 그 무슨--
하인수 : 그렇지 않고서야 저딴 계집 따위가 아버님과 말을 섞는 해괴한 일이 어떻게!! 감히!! 내 집에서 일어날 수가 있나.
집사 : (위압감에 압도 된다)
하인수 : (쏘아보며) 난 아버님과는 달라.. 두 번짼 봐주질 않지.
하인수 집사를 쏘아보다 간다. 모멸감에 입술을 깨무는 집사.
50. 장터 거리 일각 (저녁)
장터 거리 일각을 걸어가고 있는 윤희. 막막하고 처연한 표정이다.
가벼운 돈주머니를 바라보는 윤희. 한숨이 나온다.
그때 돈 주머니를 채가는 손.
윤희 보면 한 사내가 돈 주머니를 채 옆 골목으로 쑥 들어간다.
윤희, 사색이 되어 그 뒤를 따른다.
51. 장터 거리 골목 일각 (저녁)
돈 주머니를 빙빙 돌리는 사내.
장터 옆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선 윤희, 지갑만 쫓아 들어온 길.
사내들 지갑으로 윤희를 희롱하기 시작한다.
윤희 : 내놔.. 내노라구. 이리 내란 말이야.
불현듯 돌아선 사내, 윤희를 보고 씨익 웃더니 돈 주머니를 휙 공중으로 던진다.
얼른 받으러 달려가는 윤희, 쿵 한 사내의 가슴에 부딪힌다.
돈 주머니를 받아든 사내.. 윤희 보면.. 서너 명의 사내가 골목길 안으로 좁혀 들어오고 있다.
비로소 함정에 빠진 것을 깨닫는 윤희.
그 앞에 팔짱 끼고 윤희를 기다리고 있는 병판 집 집사.
집사 : (비아냥거리며) 얘들아. 잘 뫼셔라 귀하신 몸이다.
사색이 되는 윤희.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사내들 점점 다가온다.
윤희 : (무릎 꿇으며) 부탁이오. 그 돈은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돈이오. 그러니 제발 그 돈만큼은 돌려주시오. 제발..
사내1, 윤희를 약 올리듯 빙빙 돈 주머니를 돌리는데
윤희 이때다 싶어 순간 돈 주머니를 채내려는데 놀리듯 돈 주머니를 위로 들어 올리는 사내1.
윤희 사내1의 팔을 깨문다. 비명을 지르는 사내1.
사내1 다른 손으로 윤희를 냅다 치려든다.
그때 어디선가 날라 온 사과 하나, 사내1의 이마팍을 명중시킨다. 쓰러지는 사내1.
놀라서 돌아보는 윤희.
담벼락 위에 누워 있던 사내가 끄응 나른하게 몸을 일으킨다. 재신이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며 조끼처럼 가리다시피한 상의. 사내들보다 더 위험한 부랑아로 보인다.
재신 : 잠 좀 자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사내들, 주위에 떨어진 각목을 들고 재신을 향해 달려든다.
재신 윤희를 일으켜 한쪽에 치워 놓더니 그대로 벽에서 지붕으로 담벼락으로 날라 다니며 사내들을 제압한다.
현란한 발차기와 맨주먹 신공이다.
재신 : 없는 놈들끼리--, 사이좋게 좀 지내자구!!
뛰어 내려온 재신, 땅에 떨어져 있는 사과 다시 쓱쓱 문질러 입에 베어 물고는
사내의 가슴팍에서 돈주머니를 꺼내 뒤로 휙 던진다. 얼결에 받아 안는 윤희.
사내1 몸을 끄응 일으켜 세워 비열하게도 윤희를 각목으로 내리치려는데
떨어져 있는 다른 각목을 발로 차올린 재신, 한손으론 윤희의 눈을 가리고 한손으론 각목으로 사내1의 얼굴을 힘껏 갈겨 버린다.
피투성이가 돼 쓰러지는 사내1.
윤희 이 끔찍한 광경을 재신의 손에 가려 보지 못한다.
재신 : (버럭) 아직도 억울한 놈. 지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놈 있어? 있으면 다 나와 어서!!
슬금슬금 뒷걸음질 쳐 도망가는 사내들.
집사, 분한듯 멀어져간다.
재신 : (싱긋 웃으며) 술이나 한잔씩 받아 줄까 했더니.. (엽전을 핑그르르 하늘 위로 던졌다 받으며) 돈 굳었군.
피식 웃는 재신.. 거친 행동거지와는 달리 해맑은 모습이다.
52. 장터 일각 (저녁)
골목길 앞, 윤희를 그저 지나쳐 가려는 재신.
윤희 : 고맙습니다. 덕분에.. 화를 면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재신 대꾸도 않고 가려는데 다시 막아서던 윤희, 보면 재신 팔에 흐르고 있는 핏자국.
놀라는 윤희 손수건을 내민다. 받지 않고 가려는 재신.
윤희 : (다시 막아서며) 보은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재신 : (수건은 받지만) 보은? 은혤 갚고 싶다면 다신 눈에 띄지마라!! 너 같이 아둔한 녀석,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까..
윤희 : (보면)
재신 : (윤희 보지도 않고) 함부로 고개 숙이지 마라!! 아무한테나 무릎 꿇지도 마!! 그거-- 습관 된다.
윤희 : --
재신 : 한번 버릇 들면, 영~~ 고치기 힘들어지거든!! (가려는데)
윤희 : (뭐라 말하려 하지만) 저어-
재신 : (다가오지도 쳐다보지도, 말라는 듯 강하게) 보은!!
휘적휘적 걷던 재신. 멀어져 가며 딸꾹~ 딸꾹질.
돈 주머니를 바라보는 윤희, 다행이다....
53. 선준 집/후원 (밤)
화난 듯 돌아서는 선준.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순돌.
선준 손에는 낙서한 도포자락이 들려 있다.
선준 : 찾을 수 없었단 말이냐.
순돌 : 되련님. 머리는 글 공부 할때만 쓴다요?
선준 : --
순돌 : 죄 짓고 나 잡아 가시오~~ 모가지 드밀 놈이 어디 있겄소.
선준 : (본다)
순돌 : 외나무 다리에서 배깔고 기둘리다 보믄 싫어도 만나는 게 웬수요.
선준 : --
순돌 : 며칠 뒤면 복시 아니어라- 그때 거벽 서는 그놈 덜미를 턱!!
선준 : 그러니 그 전에 .. 잡겠다는 말이다. 반드시!! 안되겠다. 내일부턴 내 직접 나서야지.
순돌 : 별스럽소.. 넘들이 요강단지로 밥주발을 삼든 칼자루로 이쑤시개를 삼든 신청도 않는 냥반이.. 이참엔 으째 근다요?
선준 : (도포 자락 보며) 이런 대접을 받고도 잊을 수 있다면.. 그는 선비가 아니다.
이정무E : 예 있었더냐.
당황하는 선준. 도포자락을 스윽 순돌에게 밀어주곤 저는 돌아서 언제 그랬냐는 듯 침착하게 인사를 올린다.
선준 : 이제 오십니까. 아버님.
순돌, 엉덩이춤으로 뭔가 마구 감추는 모습.
이정무, 그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
54. 선준 방 (밤)
서안 앞에 이정무. 그 앞에 단정히 앉은 선준.
이정무 : 과장에서의 일.. 들었다.
선준 : (본다)
이정무 : 선비의 기개를 제대로 지켰다-- 그리 여기느냐.
선준 : --
이정무 : (싸늘한) 부실한 녀석. --
선준 : (뜻밖이다)
이정무 : 이제 세상이 너를 주시하게 되었다. 모두가 너의 실수를 기다릴 것 이고 네 실수가 전부인양 떠들어댈 것이다.
이것이 출사다.
선준 : (본다)
이정무 : 명심하거라.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제 지혜를 자랑하는 자다.
학인의 길이 지혜를 닦는 길이라면 출사는 그 지혜를 감추는 것이 그 시작이다.
선준 : 감추고 싶지... 않습니다.
이정무 : (보면)
선준 : 장부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것이 출사라 하셨습니다. 헌데 지혜는 감추고-- 신념은 버려야 하는 것이 출사라면
그것이 그저 벼슬을 사냥하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이정무 : (보다가.. 미소) 권력도 갖고 명예도 지키겠다-- 나쁠 것 없지..
선준 : (뭔가 말하고 싶지만)
이정무 : 다만 너는 언양 이씨 문중의 장남이다. 매사 언행에 보다 각별히 주의토록 하거라.
선준 : (복잡하지만) 명심.. 하겠습니다.
하인수E : 이선준.
55. 성균관/존경각 (밤)
수천 권의 장서가 천장까지 빼곡히 쌓인 존경각.
사다리 위에서 책을 읽는 유생 등 면학분위기가 충만한 가운데.
서가를 오가며 이야기 중인 하인수, 임병춘, 설고봉, 강무.
장서와 장서 사이에 숨겨진 술병을 꺼내는 하인수, 임병춘, 다음 책장에선 술잔을 꺼내 드밀고 설고봉은 육포를 내민다.
강무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켠에 서 있다.
하인수 : 버릇 좀 들여놔야겠다. 우리 도련님. (술 마신다)
임병춘 : (다시 따르며) 검계들 알아 볼까요? 입만 산 녀석들은 매가 약이죠.
하인수 : (마뜩찮게 본다)
설고봉 : 미인계는 어떻습니까.
하인수 : 늬들은 머리 쓰지 마라. (설고봉 임병춘 보며) 쭈욱!!
설고봉 : (무사처럼 한 무릎으로 꿇어앉으며) 그럼 몸을 쓰겠습니다. 하명하시지요. !!
하인수 : (한심한 듯 반대쪽으로 고개 돌리며) 불러.. 방법!!
거칠게 드르륵 서가를 미는 강무.
이동식 서가처럼 열리는 문. 그 안엔 책 더미를 베고 누워 춘화집을 보던 용하다.
용하 : 이선준? -- 녀석한테 딱 어울리는 비기가 하나 있긴 하지.
56. 세책방 거리 (낮)
- 청계천 헌책방 골목풍의 세책가 거리.
- 상점의 책쾌1,2,3 앞에 윤희 용모화 펴는 선준 컷컷컷.
- 호객하는 황가, 책의 먼지를 터는 황가 앞에 윤희의 용모화를 보이는 선준. 그러나 황가마저 고개 젓는다.
그 뒤를 지루한 듯 하품이나 하며 따르는 순돌.
저 멀리서 쓰윽 그런 선준을 지켜보던 갓 도포 차림의 윤희 돌아선다. 분하고 괘씸한 표정.
57. 세책방 (낮)
황가 책 종이에 큰 붓으로 기름을 발라 빳빳하게 만들고 있다.
벌컥 문을 열고 달려드는 윤희.
깜짝 놀라는 황가, 윤희를 젖히고 문 밖을 살핀다. 휘유 안도한다.
윤희 : 날 좀 도와줘야겠소.
황가 : (부러 더 친절한척) 도와 드려얍죠. 무슨 책 보시게?
윤희 : 백 냥이면-- 내 지옥에라도 다녀오리다.
황가 : 어이쿠!! 돈도 벌구 구경도 허구.. 그런덴 저도 달고 가슈.
윤희 : 며칠 후면 복시 아닌가 선금을 좀 주게.
황가 : (말도 안된다는 듯) 서언금? 지난 번 초시때 선비님 덕분에 이 장사 접을 뻔 했소.
그때 선비님과 엮인 도령이 지금 선비님을 잡겠다고 난리요. 난리!!
윤희 : 왕서방.. 이 인간!! 나랑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다구!!
황가 : (드르륵 문 열어주며) 암튼 선비님과 이 일은 안 어울리오. 그만 가보슈!!
윤희 : (괘씸하지만.. 짐짓) 자네 말이 맞네..난 이 일과 어울리지 않아.
황가 : (의외다.. 본다)
윤희 : 해서..내 거벽으로 살던 지난 날을 관가에 가서 자백할까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이 책방과 황가 자네 이름을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짐짓 안타깝다는 듯 황가를 떠 보며)
황가 : (조금 켕기지만.. 뻗대 보는) 발고하면 선비님도 장이 백댄데 나 보고 그 협박에 속아 넘어가 달란 말이오? 지금?
윤희 : 굶어 죽으나 맞아 죽으나!! 내겐 마찬가지니 하는 말이지. (나가며) 허면 우리 관아에서 다시 만나세---
황가 : (마지못해 도포 자락을 잡으며) 얼마나 필요하신가.. 우리 선비님.
윤희 : (스윽 보며) 백 냥 맞춰주게.
황가 : 속곳을 베껴도 유분수지!! 닷 냥짜리 필사 꺼리는 얼마든지 줄테니
윤희 : (자르며) 허긴 장 이 백대면 죽기 밖에 더 하겠소? (황가 겁주듯) 황천길.. 내 길동무나 해드리리다.
황가 : (다급히 윤희 잡으며) 오십냥!! 금서를.. 배달하는 일이오. 괜찮겠소?
윤희 : (황가 툭 치며) 지옥이라도 간다하질 않았나.
58. 세책방 앞 일각 (낮)
환한 얼굴로 달려 나가는 윤희.
그러자 골목 어귀에서 스윽 모습을 드러내는 용하. 시작해볼까? 하는 표정이 되는.
59. 세책방 (낮)
황가 새 종이를 깔고 다시 붓을 쥐려 고개를 돌리면 종이에 기름 붓질 중인 용하.
황가 기함할 뻔 했다는 듯 가슴을 감싸 쥐고 숨을 몰아쉰다.
용하 : 어느 쪽이야?
황가 : (뭐지? 싶지만 짐짓 눙치느라) 밑도 끝두 없이.. 쪽은..
용하 : 좌상댁 도령이 찾는 그 녀석, 감춰 두고 있쟎아-
황가 : (헉!!)
용하 : 나.. 구용하야. 이 정도로 감동하다니 서운한데..
황가 : (믿기지 않는 듯)
용하 : 좌상댁 이목이 있으니 내 놓구 쓸 순 없는 인산데다, 거벽으로도 못쓰겠고 허면 그 보다 더 은밀한 금서..인가?
황가 : (이판사판이다. 용하 가슴팍에 머리 들이밀며) 얼마면 되겠소? 얼마면 그 입을 다물겠소? 예?
용하 : (서양식 파이프, 황가 입에 물려주며) 입은.. 그쪽이 다물어줘야겠는데. (눈 찡긋한다)
60. 세책방 거리 (낮)
선준과 순돌, 필동가에 즐비한 책방을 돌아 나오는데 그 앞에 서 있는 발. 용하다.
용하 : 찾고 있는 걸 내가 도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선준, 의아한 듯 보면 그 앞에 윤희의 용모화를 쫙 펴는 용하.
순돌 꿈벅꿈벅. 이게 어찌 되는 상황인가 살핀다.
61. 어느 객주 (낮)
기방이 아닌 편하게 드나들 법한 좌식 술집.
선준 잔에 막걸리를 따라 주는 용하.
선준 : 왜 날 돕겠다 하셨소?
용하 : 고마워 할 줄 알았는데 달갑지 않으면 일어서지. (짐짓 일어서는)
선준 : (잡긴 하지만 그래도) 날-- 도울 이유가 없어 보여 하는 말입니다.
용하 : 이유라.. (선준 바라보며) 진짜 궁금해?
선준 : (본다)
용하 : (진지한) 머잖아 함께 생활할 동료유생에 대한 우정. 첫 만남에도 벗을 알아본다는 사내들끼리의 뜨거운 신의.
누군가 간절히 염원하는 바를 이루길 바라는 선한 마음. 설마-- 이런 걸리는 없쟎아? (싱긋 웃으며 본다)
선준 : (뭐지 이 인간. 본다)
용하 : 재미!! 자네가 어디까지 갈 위인인지-- 지켜보는 재미.
선준 : (보면)
용하 : 그자를 찾고 싶다면 방법은 딱 한가지야. 아주 위험하고 큰 희생이 따르는 -- 그래도 할텐가.
선준 : 선비가 한번 품은 뜻이오. 더 말이 필요합니까?
용하 : (흥미로운 듯 지켜본다)
62. 밤길 (밤)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고 있는 윤희. 책 보퉁이를 앞섶에 낀 채 긴장한 채로 걷고 있다.
하늘에선 어느새 후두둑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런 하늘을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는 윤희.
황가E : 나라에서 법으로 금하고 있는 책이오. 관군에게 꼬릴 밟히지 않게 조심하시오. 참말 지옥 가는 수가 있으니까.
꼬옥 금서를 끌어안고 발길을 재촉하는 윤희.
63. 모란각 일실 (밤)
방바닥에 툭 던져지는 엽전 궤.
관군들 보면 그 앞에 앉아 있는 하인수. 용하, 임병춘, 설고봉, 강무.
하인수 : 이선준 그놈이 금서를 넘겨받으면.. 그 즉시 잡아 들여라.
"예!!" 부복하는 관군들.
하인수 싸늘한 웃음을 짓는다.
64. 관운장 사당 (밤)
조심스레 들어서는 윤희,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는.
쿵- 얼굴에 닿는 무언가. 겁에 질려 천천히 돌아보는 윤희. 무섭게 쏘아 보고 있는 관운장.
털썩 주저앉는 윤희.. 가슴을 부여잡고 다시 일어난다.
이때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선준의 목소리.
선준E : 낮말은 새가 듣소.
올게 왔다는, 귀를 쫑긋 세운 윤희 얼굴. 그 위로.
황가E : 사내가 그렇게 말허면.
관운장 동상을 두고 얼굴 마주 보지 않은 채 서 있는 두 사람.
윤희 : (긴장한) 밤말은 쥐도 못 듣습니다.
윤희 손만 내밀어 책을 쓰윽 건네는데 그 위로 들리는 소리.
황가E : 보안이 생명이니 서로 얼굴 팔리지 않도록 조심허고.
긴장한 윤희, 그 팔목을 잡는 손.
화들짝 놀라는 윤희 돌아보면 그 앞에 선준이다.
윤희 : (사색이 되는 윤희) 와..왕서방?
냅다 달려 나가기 시작하는 윤희.
선준도 그런 윤희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65. 사당 밖 (밤)
이제 제법 굵은 비가 내리는 비탈길도 주저 않고 달려가는 윤희.
그 뒤를 따라와 윤희를 잡는 선준.
선준 : 내 얼마나 찾았는지 아시오..
윤희 : 알지.. 내 자아알 알지!! 내가 너 때문에 (울컥 치밀어 오르는)
실랑이를 벌이는 선준과 윤희.
그때 달려오는 관군들. 일제히 횃불을 들어 올린다. 불야성처럼 환해지는 일대.
관군 : 잡아라!! 금서를 가진 자들이다!!
순간, 윤희 이 모든 것이 선준이 파 놓은 덫이라 생각한다.
윤희 : (기막히다) 허! 이젠 아주 관군들까지?
선준 억울한데 채 대답할 틈도 없이 퍽!! 주먹을 날리는 윤희. 훅 돌아가는 선준의 얼굴.
선준 : (당혹) 이게 무슨 짓이요!!
윤희 : 몰라서 물어??
그때 빠르게 두 사람에게 다가오는 관군들!!
윤희 이런.. 도망간다.
다시 윤희의 어깨를 잡아 휙 돌려 세우는 선준. 이번엔 선준이 반격할 기세다.
그러나 선준, 윤희 가슴팍에서 휙 금서를 빼앗는다.
선준 : 이 책은 내가 가져가지.
윤희 : (선준 잡으며) 책값은 주고 가야지.
그러나 벌써 이만큼 다가온 관군들. 선준을 잡으려 하면 날렵하게 그를 걷어내는 선준.
또 다른 관군, 윤희를 향해 육모 방망이를 날리려 하자 윤희를 품에 감싼 채 한 손으로 막아내는 선준. 그리곤 관군을 제압해간다.
윤희, 그런 선준의 모습이 새롭다.
그러나 선준 앞에 다가온 관군무리. 숫적인 열세다.
더는 안되겠다 싶은 선준, 당황한 윤희를 비탈길로 확 밀어 버린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윤희.
선준, 비탈 아래를 보며 비로소 안도하는 표정이 된다.
그때 선준을 향해 달려오는 십여 명의 관군들. 선준 굳어진다.
66. 모란각 일실 (밤)
하인수, 술을 마시고 있다.
섬섬이나 앵앵이를 끼고 앉은 하인수, 임병춘, 설고봉, 강무.
용하 : (술잔 돌리며) 실망이야 이선준, 싱겁게 잡혀 버리니-- 재미없군.
임병춘 : 이렇게 되면 이선준은 지금쯤 의금부로 잡혀 가는 건가요?
설고봉 : 이렇게 되면 이선준은 복시도 못 보게 되는건가요?
병춘/고봉 : (얼굴 마주 보고 키득키득)
여유로운 얼굴로 술잔을 드는 하인수.
66-1. 비탈길 다른 일각 (밤)
횃불을 든 관군들이 빠르게 산을 수색하고 있다.
67. 비탈길 일각 (밤)
어둠 속 몸을 일으키는 윤희, 도포자락을 털며 일어선다.
돈 주머니를 터는 윤희. 불끈 손에 힘을 준다.
윤희 : 책을 가져갔으면 돈도 주고 갔어야지. 왕서방!! 이 몹쓸 인간아!!
윤희 옷을 털며 앞으로 가는데 저 앞에서 횃불을 들고 오는 관군들.
윤희는 아직 관군들을 보지 못한 채 점점 가까워지는 일촉즉발의 아슬아슬한 상황.
그때!! 윤희의 입을 거칠게 낚아채는 손.
68. 비탈길 바위 아래 (밤)
비를 피할 수 있는 비탈길 바위 아래. 입이 막힌 채로 놀라 눈이 똥그레진 윤희.
그때 그 앞으로 다급하게 달려가는 관군들.
한 손으로 윤희의 입을 막은 채 주위를 살피는 선준.
윤희 이 상황이 당황스럽다.
횃불을 들고 빠르게 다가오는 관군들.
선준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윤희와 몸을 밀착시킨다. 거의 끌어안은 듯 몸과 몸이..
젖은 몸과 얼굴이 한없이 가까워진 선준과 윤희.
윤희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그런 윤희 얼굴에서
-1회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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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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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진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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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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