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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16장 5-10절
제가 라스베가스에서 어느 자매를 만났습니다. 우연히 만나서 전도하려고 조심히 물어보
니 사실 자신들은 술집에서 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얼마 동안 술집에서 일하셨어요?”
물었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한 10년은 일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 때 30대 초반으로 보였기
에 20대부터 그 일을 했던 그 자매가 참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그 자매가 하는 말이 “제 팔자지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자매가 저한테 역으로 질문을 하더라고요.
“아저씨는 뭐하는 분이세요?” 저는 지역 목사입니다.
그랬더니 “아이고 어쩌다가 그 일을 하시게 되었어요?” 합니다. 그래서 저도 “다 제 팔자이지요”
라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선택 이렇게 말을 하면 그 자매가 못
알아 들을까봐 그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습니다. 그래서 우린 불신자들이 하지 않는 고민을 합니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하는 고민입니다.
‘결혼하려고 하는데 이 결혼이 과연 하나
님의 뜻인가, 아닌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또,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이 사업은 하나님의 계획
인가, 아닌가? 저는 목사니까 당연히 이런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궁금해하지요.
저도 나름대로 어떻게? 어디서 사역을 할 것인가?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바울도 나름대로 어느 지역으로 가서 선교할 것인가?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가
어디에 있나? 하나님께 질문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그것
은 어디까지나 바울의 계획이었고, 하나님의 섭리는 달랐습니다.
이 바울의 결정에 대해서 “이 일은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신다.
”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고 했지만,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7절에 보면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
쓰되” 바울은 애썼지만 성령께서 허락치를 않으셨다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말씀은 바울이 전하지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 일지라도 그 주체는,
전도의 주체는 바울이 아니라 성령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위대하다고 하는 바울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일 뿐 역사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바울이 아시아에 가고자 한 것도 돈을 벌거나 자신의 육신의 평안을 찾기 위해서나, 어떤 세상 적
인 목적을 위해서 가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복음전파를 위해서 가려
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바울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달랐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과 하나님이 보기에 좋은 것이 다릅니다. 사55:9절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그리고 잠 16:9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
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를 열심히 하려고 나섰는데 성령이 그것을 도와주어야지 그것을 못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
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보면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다. 성령이 지금
못하게 하시는 것은 전도가 아니라 지역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혹은 비두니아에서 하지 못하
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아주 분명히 터득할 수 있는 진리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정을 가지고 하
려는 하나님을 위한 선한 목표도 하나님이 하지 못하게 막으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계획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해야 할 수 있
- 1 -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에 있어서 지금 내가 보는 단편적인 시야로써 어떤 것이 내게 더 유
익하다 덜 유익하다 판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자기가 본 것이 그게 전부입니다. 경험한 것이 그게 전부입니다. 그러니
까 기도를 해도 내 가정, 내 교회가 전부입니다. 우리 지경이 바로 거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우리 가족 우리 교회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온 인류, 온 민족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바울은 그동안 자신의 선교지에 관해 많은 연구와 준비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계획과
의지를 겸손하게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은 갑자기 바울에게 환상을 통해 그의 계획을 바꾸십니다.
9절에서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
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저 역시 뉴욕에서 신학교를 마쳤고, 그 당시 좋은 조건으로 사역을 할 수 있는 교회가 생겼습니
다. 제가 수요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 딸이 희귀병을 갔고 태어났기에 병원 시설이 좋은 뉴욕
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미국에도 제 딸에 병을 아는 의사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집에서 20분 거리에 제 딸을 치료할 수 있는 전문 병원과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집어든 기독교 신문 한 장 때문에 제 팔자가 바뀌었습니다. 라스베가스에서 청빙
광고를 본 것입니다. 처음엔 호기심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비행기 표와 호텔 3박 4
일 숙박권 그리고 제 아내 것까지 같이 보내 주셔서 방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여행한다고
생각하며 그곳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 곳에 3박 4일을 지내면서 희안한 경험을 했습니다. 어느 청년 자매가 갑자기 저를 만나자고
하면서 자기가 매일 귀신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다는 거예요. 밤마다 스페니쉬 귀신이 찾
아오는데 너무 무섭다고 하면서 제게 꼭 이곳에 와달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저는 건성으로 “알겠
다” 대답했지만, 속으론 “이곳은 잠깐 여행으로 왔지, 난 이미 사역지가 정해져 있고, 이곳은 제
딸 병원도 없기에 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몇 가지 사건이 더 있었습니다. 그런 후 뉴욕에 돌아왔는데 하나님께서 오늘 본
문 말씀에 등장하는 마게도니아 사람처럼 그 청년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거너와
서 우리를 도우라” 제가 바울도 아니고 무슨 능력으로 그곳에 가겠습니까? 의심했을 때 갑자기
제 눈에 누가 붙여놓은 거창고등학교 10계명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한 가운
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 없다. 의심
치 말고 가라.” 전부 저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10절에 보면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0절에서 우리가 두 가지 관
심을 가져봅니다. 하나는 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
니" 환상을 본 후에 곧, 바로 떠나려고 힘썼습니다. 곧 바로 순종했다는 말씀입니다. 환상 본 후
에, 하나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나서 준비하고 제 할 일 마칠 때까지 기다린 것이 아닙니다.
곧 바로 떠났습니다.
- 2 -저도 하나님의 부르심이란 확신이 드니 그 후로 고민하지 않고, 바로 짐을 쌓고 떠나기로 결심했
습니다. 가지고 있던 짐들은 팔거나 정리할 시간도 없이 다 버리고 라스베가스로 떠났습니다.
제 아내는 “미쳤다고 합니다. 병원을 어떻게 할 건데?” 그리고 자신도 앞으로 음악 활동을 하려면
뉴욕에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약속을 했습니다.
“남들은 아프리카로 선교를 가는
데, 그까짓 것 같은 미국으로 가는 건데? 그리고 딱 3년만 있을 거야” 약속하고 떠났습니다.
때때로 성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은퇴 후에, 이번 일을 마치고, 이런저런 교회 일 좀 하고
싶다'는 얘기 종종 듣습니다. 목사로서야 반가운 소리지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정말 주의 일 하
는 것은 은퇴까지 기다려야 하고 자신의 일을 마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 있을 때, 기회가 왔
을 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또 하나는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에 대하여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해석했습니다. 마게도냐는 생명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던
곳입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항상 우리 앞에 형통함만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일
은 비록 어려움이 있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함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삶
에 어려움이 없기를 소원하지만, 우리 삶이라는 것은 정확히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을 극복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후 얼마 있다가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딸 아이가 아픈데 같은 미국 땅
이지만 뉴욕과 라스베가스 병원의 질이 달랐습니다. 그 병원에서 제 딸을 치료할 수 없어서 제 딸
이 죽을뻔한 고비를 수차례 넘기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하지만 고난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 고쳐주셨
고, 배고픈 사람들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가슴 아픈 사람들 위로하셨고, 슬픈 사람들 눈물을 거두
어 주셨습니다. 귀신을 쫓아주셨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천국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받은 대가는 조롱과 침 뱉음과 모욕과 십자가에 못
박는 고통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와같이 어려운 일을 당하셨으면서도 그 일을 순
순히 받아들여 마침내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는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타
난 하나님의 뜻은 결코 시대가 바뀌어도 번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 않
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사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특히 이런 갈림길에서 종종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결정합니다.
만약 저에게 지금 큰 교회에서 청빙이 들어온다면? 여러분 제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인간적인 욕심에 이끌린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면서 제가 원하는 쪽으로 결정할 것입니
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다 큰 교회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의
뜻이 큰 교회에만 있나요?
우리가 교회에서 맞는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큰일을 해야지만 그것이 하나님
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아시기 바랍니다.
믿는 이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이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지혜로운 일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무슨 일이든 나
자신이 일을 벌여놓고 하나님께서 '와서도 우시라'고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 3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나 편견을 버려야 합니
다. 성령의 인도는 불건전한 신비주의의 체험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건전한 인격이십니
다. 우리와 건전한 교제를 통해 건전한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환상이나 환청 같은 특별
하고 비상적인 방법을 사용하시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구원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요긴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어서 파격적으로 인도하실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그렇게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대개는 우리가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인도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너무 잘
아는 분입니다. 우리 수준에 맞게 인도하십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 견해로 하나님의 뜻까지 판단합니다. 제가 뉴욕 라클랜드 카
운티에 살 땐 어떤 신학생이 이렇게 핑계를 대더라고요 “이 곳은 땅이 전부 바위로 되어 있기에
사역하기 힘든 곳이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제가 라스베가스로 간다고 하니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곳은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인데 어떻게 그곳에서 목회를 할 수 있느
냐”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땅 일본을 향해서도 이와 비슷하게 말할 것입니다.
“이 곳 일본
은 교회의 무덤이다” 사람들의 말이 맞습니다. 사람들은 보는 관점이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다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사람들의 보편적인 상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떠밀리듯 개척이 시
작되었습니다. 개척을 시작하려 할 때 어떤 안수집사님 부부가 찾아와 자신이 $50000을 헌금 할
테니 같이 개척을 시작하자 제안을 하셨지만 저는 제 목회를 그렇게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제안을 거절하고, 아무것도 없는 집 거실에서 의자 몇 개 갖다 놓고 시작했습니
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만 붙들고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꿈을 이루는 여정 속에서 기도하는 것
을 멈추지 않습니다. 20년 전엔 새벽기도 장소가 없어서 병원기도실에서 기도하다 쫓겨나기도 했
습니다. 그 기도는 지난 펜데믹 때도 계속되었고, 지금도 20년 동안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꿈은 다음 세대를 세우는 꿈입니다. 그래서 라스베가스 휄로쉽교회는 아이
들이 유독 많습니다. 요즘 한국에도 아이들이 없어 주일학교가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우리 교회
는 아이들이 매주 넘쳐납니다. 지난여름에도 6주 동안 여름성경학교를 했습니다. 한글학교는 매
학기마다 120명의 아이들이 한글과 한국의 문화 예절을 배웁니다.
이런 일도 처음 시작할 땐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을 가르칠 교육 장소가 없었습니다. 그
래서 교육할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성도님들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할 장소를 마련해 주자하니
그 당시 교인들 절반이 부담을 느끼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꿈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미국에서 건축
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12년 전에 30억 정도 되는 교육관 건물을 건축했습니다. 누군가 돈을
주어서, 돈이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 환경을 탓하며 변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꿈을 볼 수 없고, 누릴 수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실패자가 되거나 낙오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넘어지는 것
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좋아하시는 것이 있고 싫어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
은 우리가 고민할 것이 아닙니다. 고민한다고 달리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성령의 인도하
심은 결정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깨닫고 순종하여 따라갈 것인가 결단만 남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칼을 한번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잘라야지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
- 4 -하시는 것이 아니면 칼을 칼집에 꽂아야 합니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며
강한 결심을 표합니다. 올해는 절대로… 라면서 단호한 결심을 표합니다. 그러나 이 결심이 주님
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바꿔야 합니다.
다윗은 오랜 세월을 걸쳐 성전을 짓기 위한 모든 것을 완전히 준비해 놓았지만 하나님께서 "너는
안돼 네 아들 솔로몬이 지어야 한다. 왜냐하면 너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을
때 그는 자기의 결심을 바꿨습니다.
고전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것, 저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내게 유익해도 교회에 유익이 없다면 교회 유익을
위해 결심을 바꿔야 합니다. 이래야 내 식성이 풀릴 거라도 덕을 세우는데 유익이 없으면 내 결심
을 바꿔야 합니다. 내 결심이 인간적인 결심이었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성령이 기뻐하시는
대로 우리의 결심을 바꿔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결심을 바꾸면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주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아무
리 생소한 곳일지라도 길을 열어 주십니다. 물론 주님의 뜻대로 하는 일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 되게 하십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니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
어났고 이를 통해서 자살하려던 간수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게 됨으로 빌립보 교회를 설립하게 되
었습니다. 결심을 바꾸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에 이끌려 하는 일에는 역사가 일어나기 마련이
고 열매가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중에 우리는 예레미야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고 유다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기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였습니다. 이
위중한 때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택하신 것은 예레미야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었다 합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짓기도 전에 너를 선택하고, 네가 태어나기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해서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세웠다” (렘 1: 5).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능력을 보고 예레미야를 선택하
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도록 선택하셨는데, 그 시
점이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 그러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실
일을 계획하고 계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즉흥적인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과 뜻 안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
리가 신앙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선택해서 교회에 나온 것 같지만, 우리의 선택
이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도 예레미야와 동일하게 우리의
선택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
리의 인생을 즉흥적으로 계획하시고, 즉흥적으로 우리는 부르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우
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훨씬 이전부터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셨을 때 예레미야는 자신의 나이를 문제로 생각했습니다. 예
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름 앞에 자신이 나이가 어리다고 항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답을 합니다.
“아닙니다. 주 나의 하나님. 나는 아이라
- 5 -말할 줄 모릅니다.” (렘1:6). 나이가 어리다는 것에 대해 많은 주석가들은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
았을 때의 나이가 10대였을 거라고 추정을 합니다. 그러니, 예레미야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10
대의 나이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른들 앞에서, 대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
문입니다. 예레미야의 거부는 상식적인 거부로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리하게 너무 이른 나이에
예레미야를 부르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이렇게 무리하게 부르시는 것일까요? 우리 눈으로는 상식적으
로 보이지 않게, 왜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나이에 상관없이 그를 부르신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출
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고, 그가 그 일에 준비가 되어 있어서도 아닙니다. 이것은 온전
히 하나님의 결정이며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일, 즉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체가 예레
미야 자신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
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의 주체가 예레미야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자격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나에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나?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바울과 다르지만, 같은 원리 아래 있습니다.
저는 저를 목회자로 택해주셨기에 목사가 된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 자신
이 목회의 길을 선택하라 했다면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목회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 면에서 목회를 하기엔 기질적으로 맞지 않고, 능력
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MBTI로 하는 기질에서 저는 INTJ로 나왔는데 내향
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기에 타인에 대해 둔감하고 냉정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진입장벽이 높
은 유형이라 이런 기질론 목회하기 힘들다는 결론입니다. 솔직히 목회자의 기질은 외향적이고, 감
성적이며 진입장벽이 낮은 사람이 유리합니다.
그런 제가 목회를 하는 것만 보더라도, 하나님의 택하심이 진짜 있다는 것을 여러분도 믿으셔야
합니다.
바울은 엡2:10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
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아무런 목적이 없이 우리를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
리를 불러 구원하실 때에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야 할 선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에는 반드시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 보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
님의 비밀을 우리와 공유하신 이유는 우리 인생이 낭비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생애가
사용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어떤 이유를 가지고 선택합니다. 하물며 인생의 중대한 문제를 선택
할 때 대중 선택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얼마나 신중을 다합
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할 때도 그냥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독이 선수를 선택했을 때는 선수에게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선택해 준 감독을
생각해서라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
님의 아들로 나타날 우리들이 무책임하게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살
아가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 6 -축구를 보면 선수로 뽑혀도 선발이 있고, 후보가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후보는 경기에
나가지 않기에 부상당할 위험도 없고, 땀 흘려 수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실수에 대한 부담감
이 없습니다. 팀이 우승하면 메달도 같이 받습니다. 그러나 선수 중에 후보로 남고 싶어하는 사람
은 없습니다. 경기 중 상처를 입고, 실수할지라도 선발을 꿈꿉니다. 그라운드에서 뛰어야 자신의
정체성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선발로 뛰라고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주의 일을 하
다, 상처받고, 손해 볼지라도 우리는 선발로 뛰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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