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그림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 Plato, 서기전428~ 348)의 대화체 논저 《국가(공화국; 정치체; Politeia; De Reublica; Republic)》 제514a~520a절에 언급된 이른바 동굴 우화(Allegory of the Cave)를 묘사한 네덜란드 화가 코르넬리스 반 할렘(Cornelis van Haarlem, 1562~1638)의 원화(原畵)를 각판(刻板)한 네덜란드 화가·동판화가 얀 산레담(Jan Saenredam, 1565~1607)의 1604년작 동판화 〈플라톤의 동굴(Antrum Platonicum)〉이다.
윗그림의 최상단에 인용된 “빛이 세상으로 들어왔지만, 인간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Lux venit in mundun et dilexerunt homines magis tenebras quam lucem)”는 문장은 기독교 신약전서 《요한 복음서》 제3장 제19절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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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대다수의 제한된 유한한 인지력, 인식력, 지성을 ‘동굴에서 생장(生長)한 죄수들의 편협한 인식’에 비유한
이른바 동굴 우화의 판세는 여전히 처절한 딜레마로서 잔류하는데,
동굴로 흘러든 태양의 잔광을 맞은 동굴벽의 그림자들과
동굴의 바깥에서 작렬하는 태양의 직광을 맞은 동굴밖의 그림자들,
이들 그림자 두 종류 중에 어느 종류가 여전히 가쌍인가 실쌍인가?
(이 두 가지 그림자 중에 어느 것이 여전히 가상인가 실상인가?)
그런데 이 질문 한 낱은 부족하련지, 이른바 씨뮬라쑝(시뮬라시옹; simulation)이나 씨뮬라끄르(시뮬라크르; simulacre) 따위마저 감안하고파 안달하는 또 다른 질문들이 연달아 제기되어야 하련지, 하여간, 동굴의 안팎에서는
욕망이 가쌍인가 현씰인가?
(욕망이 가상인가 현실인가?)
욕망의 대상이 까상인가 현씰인가?
(욕망의 대상이 가상인가 현실인가?)
인간들이 손으로써 주물럭대고 온몸으로써 살부벼대는 대상이 가쌍인가 현씰인가?
인간들의 눈동자를 벗어난 바깥에서 눈동자로 날아드는 전자파들의 향연에 놀아나는 뇌세포와 뇌쇄포의 전율이 가쌍인가 현씰인가?
욕망의 대상을 품고도 아득히 먼곳으로 시선을 내뻗는 것은
가쌍의 욕망인가 현씰의 욕망인가?
가쌍이 현씰의 반영인가 현씰이 까상의 반영인가?
가쌍이 현씰의 결과인가 현씰이 까상의 결과인가?
가쌍으로 현씰을 피하려니 까상으로 현씰이 쇄도하고,
현씰로 가쌍을 피하려니 현씰로 까상이 쇄도하는데,
아, 갑자기, 부리나케 귀찮아져버리는 …… 요, 요, 쌍, 쌍쌍, 썅 …… 커허허 …… 씨물라끄르르륵
(2008.03.26.)
☞ 플라톤 니체 한나 아렌트 감각 경험 현실 초월 관념 니힐리즘(허무주의; nihilism) 가치 허구세계 과학
아랫그림은 네덜란드 연극배우·화가 코르넬리스 트루스트(Cornelis Troost, 1696~1750)의 1740년작 〈까막잡기(Het blindemanspel)〉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