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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Robins and Steven M. Aronson
야만스러운 우아함은 이제 우리에게 특별한 일들은 아니다.
상식이란 틀을 벗어난 고가의 보석이나 건축물들에서 또는 지나치게 피팅된 스포츠카에서
그리고 어떤때는 내 자신의 어떤 행동들에서도 야만적 우아함은 나타나곤한다.
우리가 인지 하지 못할뿐.
작가 나탈리 로빈(Natalie Robins)과 스티븐 아론손(Steven M.L. Aronson)이 공동 출판한것을
시나리오작가 하워드 로드맨(Howard Rodman)이 각색하고 톰 칼린(Tom Kalim) 이 감독을 한 영화이다.
이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실존 인물인 미국 출신으로 부유한 상속자의 부인이던
바바라 달(Barbara Daly Baekeland/1922-1972)과 가족들의 삶을 그린 영화 이며
1972년 11월11일 영국 런던의 베이클랜드 가에서 발생한 존속살해 사건이 소재이다.
합성수지를 최초로 개발한 조부를 둔 덕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풍요로운 삶을 할수있는 한 가족
그들에게 삶은 풍요롭고 그들이 원하는한 평화스러우며 원하는것은 대부분 이루어진다.
보통 사람들의 "일하는것"에 대한 의미를 아들에게 설명해 주어야 할 정도로.
줄리안 무어 ( Julianne Moore )
실존 인물인 미국 출신으로 부유한 상속자의 부인이던
바바라 달(Barbara Daly Baekeland/1922-1972)의 역을 열연한 줄리안 무어.
평범한 모델출신이던 그녀는 어머니로 부터 성공하는 삶을 사는 방법을 교육받았었고
그녀는 어머니의 소망보다 더 큰 성공을 이루어 낸다.
그녀는 평범한 인간들의 궁색한 삶이 찌든 공간에서 신들만이 살수있는 낙원으로 거처를 옮긴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신들은 평범한 인간이 저지를수 없는 야만적 욕정과 쾌락의 진창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위의 장면은 아들의 연인을 가로챈 남편을 찿아나선 그녀가 공항에서 두사람의 불륜을 확인 하고 돌아나오는 장면이다.
그길로 그녀는 공항에 대기중이던 어떤 택시기사와 모텔로 달려가 몸을 섞는다.
그녀와 아들이 영원히 남편과 아빠를 잃는 순간이다.
영화평에는 줄리안 무어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메인으로 소개 되지만 예상외로 아들역을 맡은 에디 레드마인느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소년기를 연기한 아역의 연기도 훌륭했고.
에디 레드마인느 ( Eddie Redmayne , Eddie Redmayne )
원하는것은 모두 가능하다.
돈, 여행, 음식, 여자, 술, 담배, 마약, 섹스까지
하지만 그가 원해서 한것들은 없다. 그는 어머니 바바라의 유일한 희망이자 친구이고 인생의 동반자이다.
그의 모든 삶은 바바라의것이었고 그는 바바라의 소유물이었다.
그럴수록 그와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결별한 아버지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그가 동성애에 집착하고 결국 게이친구와 바바라가 함께 세사람이 한 침대에 들어가는장면은
욕정적인 충격의 장면이 아닌 깨어진 가족에 대한 그의 열망이 느껴져 가슴이 아프다.
그도 역시 어머니와 같은 신의 세계에 살았지만 불행했다. 그녀의 어머니와 같이
어릴때 키우다가 죽은 강아지의 목걸이는 이영화의 핵심적인 중요한 소재 이다.
행복했던 시점으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마법의 지팡이. 그목걸이는 행복하지 못했던 그에게는 부적이었다.
결국 잃어버린 목걸이를 찿는과정에서 흥분한 그는 자신의 어머니 비너스를 살해하고 만다.
죽은 어머니의 머리를 무릎에 얹고 그는 비로서 평화가 찿아옴을 느낀다.
편안하다..라는 생각을 하며 급격히 찿아오는 공복감에 전화로 식사를 주문한다. large size로
어머니와 아들
마치 신화에서 볼수있는 비너스와 큐피트와의 관계처럼 몽환적이고 신비스러운 관계로 얽혀 있지만
결국 그들은 인간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아들은 교도소에서 자살한다.
반면에 아버지 베이클랜드역을 맡은 스태픈 딜런은 현실적인 케릭터를 잘 보여준다.
Stephen Dillane
여신이 되려는 부인을 가장 혐오하면서도 협조를 아끼지 않던 그도 결국 아들 애인과의 관계에서는 이성을 잃고 만다.
그 죄책감에 아들에게 되돌아갈수 없는 그에게 아들은 끊임없는 편지와 용서와 관용으로 그에게 되돌아와줄것을
호소하지만 그는 끝내 외면하고 만다, 아들의 옆에는 항상 그가 가장 증오하는 바바라가 있었으니까.
그는 되돌아 가지 못한다.
그의 외면은 결국 바바라의 아들에대한 의존증을 더욱 부채질했고 그 둘은 죽음으로 향한 섹스에 몰입하고 만다.
영화를 보고나와 이런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아버지가 그들에게 돌아갔다면 그들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거란..
아들이 많은 편지를 그에게 보내왔듯이 그도 많은 답장을 써내려 간다
하지만 아버지의 답장은 고스란히 그의 책상위에서 보내지지 않는다,
수많은 답장은 그렇게 아버지의 책상위에서 잠들고 있고 그러는 동안 그의 아내와 아들은 사랑에 빠지고 죽어갔다.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장례식에서 몇사람 뒷줄에는 그의 아버지와 애인이 같이 서있다,
아들은 아버지를 애타는 눈빛으로 찿고 바라보지만 그의 아버지는 몸을 숨기고 외면한다.
진정한 그리움과 사랑에 타는 목마름은 바로 이런 것일거다.
결국 그들은 금기의 벽을 넘어선다.
바바라는 정신분열상태인 아들에게 어머니로서의 위안으로 남편을 대신해 주는 남자로서의 보답으로
그리고 자신의 욕망의 분출대상으로 그를 유혹한다.
어리석은 행위는 그 둘을 더욱 힘들게 하고 결국 죽음의 잔치로 마무리를 짓는다.
임신을 하고 10개월을 자신의 몸안에서 키워내고 20여년을 같이하며 살아온 그들.
그 기나긴 시간동안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왔다.
부모로서의 사랑과 집착은 간혹 이러한 변종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흔한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사랑은 신의세계에서도 있어왔고 인류의 기원에서도 그 흔적을 찿을수 있으며 고대 이집트시대에서도
심지어 성서에도 그러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근친상간에 대한 기원은 생각보다 아득하다.
인류가 씨족사회를 벗어나고 어느정도의 moral에대한 관념과 규범이 세워지기 이전까지 이러한 비인륜적행위는
제어하질 못했던것도 사실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류의 이론들이 인정받는 이유
중의 하나에 이러한 금기시되는 행위와 그 기원에 뿌리를 두고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비지 그레이스가 인간세상에서 인간들이 저지른 일을 그린 이야기라면 우리는 이탈리아 매너리즘 작가인
브론치노의 그림 에서 신들의 우매함을 그린 알레고리를 만나볼수 있다.
알레고리(allegory, 우의[寓意])는 은유적으로 의미를 전하는 표현 양식으로, 주로 문학에서 사용된다.
알레고리는 일반적으로 수사학의 형식으로 간주되지만 항상 언어를 통해 표현되지는 않는다. 눈짓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고, 사실적인 회화나 조각, 의사적이거나 재현적인 예술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 단어의 어원은 단어의 일반적인 용례보다 더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록 다른 수사학적인 개념들과 유사하지만, 알레고리는 그 상세함에서 은유보다 길게 지속되고 더 충만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유추가 이성이나 논리에 호소하는 데 반해 알레고리는 상상에 호소한다. 우화는 하나의 명확한 교훈을 가진 짧은 알레고리로 들 수 있다.
많은 이야기는 저자가 표명한 의미와 관계없이 알레고리로 해석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반지의 제왕》을 세계 대전의 알레고리로 제시했지만, 사실 그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에 쓰였고 저자인 J.R.R. 톨킨은 미국판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며 말한 바 있다. “우의적이지도 시사적이지도 않다…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항상 진심으로 알레고리를 싫어해왔고, 그 존재를 찾아내고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Agnolo Bronzino
본명은 Agnolo(Agniolo)di Cosimo. 1503. 11. 17 밀라노 공국 몬티첼리~1572. 11. 23 피렌체.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대표하는 세련되고 우아한 초상화로 유명하다.
이 작품들은 16세기 중엽 메디치가의 후원 아래 궁정의 이상을 구현한 것이며 17세기 유럽 궁정 초상화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피렌체파 화가인 스승 자코포 다 폰토르모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다.
1539년부터 내내 피렌체의 공작 코시모 1세의 궁정화가로 활
동했다. 〈아들 조반니와 함께 있는 톨레도의 엘레아노르의 초
상 Portrait of Eleanor of Toledo with Her Son Giovanni〉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과 같은 초상화들은 무표정하고 무감
해 보이지만 매우 우아하고 화려하다는 점에서 마니에리스모
양식의 대표적인 초상화들이다.
그의 뛰어난 기교와 인체의 곡선적 표현 또한 유명하다.
〈사치의 우의화 The Allegory of Luxury〉·
〈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 시간 Venus, Cupid, Folly, and
Time〉(1546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과 같은 유명한 종교적·
우의적 작품들도 그렸는데 이 작품들에는 그가 복잡한 상징적
표현과 인위적인 자세 및 선명하고 화려한 색을 즐겨 사용했다
는 것이 잘 나타나 있다.
〈아들 조반니와 함께 있는 톨레도의 엘레아노르의 초상 Portrait of Eleanor of Toledo with Her Son Giovanni〉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1544-45
Venus, Cupid, Folly and Time
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과 세월 (1545)
BRONZINO, Agnolo Venus, Cupide and the Time (Allegory of Lust)
1540-45 Oil on wood, 147 x 117 cm
National Gallery, London
알레고리 (an allegory)라는 우의(寓意)적인 이 그림은 피렌체의 공작인 코시모 드 메디치(Cosimo de' Medici)가 프랑수와 1세에게 선물하기 위해 궁정화가 브론치노에게 의뢰해 그려진 매너리즘 미술의 대표작이다.
브론치노의 개성적인 인물표현인 S라인 형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는 인물표현시 과도한듯한 S라인 형태를 사용하여 화면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표현효과를 높이는데 자주 사용했다.
전체적인 구도는 L형을 취하여 여러명의 등장인물과 꽉차인 화면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비너스와 그 주변에 시선이
먼저 고정될수 있도록 안정적인 구도를 만들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또한 주인공이라 할수있는 비너스와 큐피트부분을 밝은 채색으로하여 채도중심의 강조를 하였고 매너리즘의 특징중
하나인 배경이 거의 없는 가득찬 화면과 강하고 진한 배경처리로 인물들을 강조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30대의 농염한 모습의 비너스와 10대로 보이는 큐피드가 서로 눈을 맟추며 입술을 대고있다.
큐피드의 손은 이미 비너스의 가슴을 애무하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에서 이둘의 관계가 모자간이라는것이
무리임을 알수 있다. 아들 큐피드의 화살응 손에쥐고 자신에게 찌르려는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비너스의
모습에서 그녀의 숨겨진 욕망을 읽어볼수 있다.
신화에서 비너스는 여러 남자신을 거치는 바람둥이 이기도 하지만 아들 큐피트의 사랑을 방해하는 얄미운
엄마의 모습으도 자주 나타난다. 아들의 사랑마저 독점하고싶은 어머니의 모습은 영화 세비지 그레이스에서
보여주는 바바라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장미는 아름다운 색과 향이 사람을 유혹하지만 감추어진 가시는 정신없이 쾌락에 취한사람들에게
아픈 상처를 주며 후회하게도 만든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어리석은 사랑에빠진 비너스와 큐피트에게 장미꽃송이를 뿌리려 하는 소년은
앞으로 두 모자에게 환희와 함께 적절치 못한 그들의 사랑에대한 보상으로 가시에 찔리는듯한 고통이
다가올것을 예고해주고 있다.
소년의 뒤로 음험한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소녀의 손에 쥐고있는것은 벌집이다. 벌집역시 장미와 같은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달콤한 꿀의 유혹은 벌침에 쏘이는 댓가를 원한다.
아름다운 얼굴의 소녀이지만 몸통은 파충류인듯 온몸이 비늘로 덮혀있고 발은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기만을 상징한다.
소년과 소녀를 통해 인간이 빠지기 쉬운 유혹과 어리석음 그리고 인간이 지니고있는 기만과 이중성을
읽어볼수 있다.
영화 세비지 그레이스에서도 이러한 등장인물은 등장한다.
장미꽃을 던지려는 소년은 영화에서 아들과 함께하는 게이친구로 볼수있을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아들의 게이친구로 나중에는 바바라와도 함께 잠자리를 같이하며 쾌락의 정점을 향해 달려간다.
음험한 얼굴을한 여자아이는 처음에는 아들의 애인이었던- 처음 잠자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잘생겼다고
아들을 응원하다가 결국 그의 아버지의 여자가 되는-소녀로 볼수 있다.
그 소녀로 인해 삐걱거리던 가족은 해체되고 결국 두 모자는 금기의 선을 넘게 된다.
오른편에 성난얼굴로 장막을 거두고 있는 남자는 시간의신인 그뤼피스이다.
어깨에 모래시계를 얹고 있고 뒤에 언듯 날개가 보인다. 시간의 신인 그뤼피스는 진실을 상징한다.
지금은 속일수 있고 가리워 질수 있지만 결국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며 시간이 흐르면 결국 모든것의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라는것을 상징한다고 할수 있다.
왼편에 약간 겁에 질린듯 장막을 쥐고 있는 이는 그뤼피스의 딸인 망각의신이다.
뒤쪽이 없이 절반의 얼굴만 하고 있는 망각의 신은 진실을 감추고 기억을 지우며 진실을 덮어두려 푸른색의
천으로 가리려 하지만 아버지 그뤼피스는 결국 시간이 모든것을 밝혀내리라며 장막을 거두려는 팔에 더욱 힘을 주고 있다.
비너스와 큐피트의 이루어질수 없는 해서는 안될 사랑의 행각은 언젠가는 그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그들의 사랑의 끝은 상처로 남을 것이다.
세비지 그레이스에서 바바라가 아들의 손에 의해 죽은것처럼
좌측의 비둘기는 천박함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다.
큐피트가 무릎을 굽힌아래 깔려있는 방석은 사치와 게으름을 상징한다.
비너스가 한손에 쥐고있는 황금사과는 달콤한 유혹과 그후에 나타날 후유중울 암시하고 있다.
사랑에 빠질때 그 쾌감과 아름다움에 눈멀지만 언젠가 그 댓가는 치루어야 하는법.
브론치노는 그의 그림에서 여러가지 장치와 상징을 통해 이러한것들을 암시하고 또한 경고하고 있다.
많은 남신들을 유혹했던 불성실한 비너스를 고발하듯
'그뤼피스'의 벌꿀과 송곳을 상징하는 두개의 가면이 비너스의 발치에널려 있다.
비너스의 왼발 끝에 있는 가면 2개는 그뤼피스의 것으로 쾌락과 고통을 상징하는 꿀과 송곳의 가면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가면을 쓰고 다니고 있을까.
때에따라 상황에 따라 여러가면을 사용하고있는 우리들은 쉽사리 그것들을 벗지 못한다.
질투의 신이다. 재미있는것은 질투의 신은 여신이라는것이다.
사랑에 빠진 큐피트와 비너스뒤에 숨어 질투에 고통스러워 하는 질투의 여신
사랑에 빠진 인간의 영혼을 오래도록 갉아 먹으며 늙어간 그녀는 비너스와 큐피드의 뒤에 숨어 그들의 사랑을
질투하고 있다.
그토록 많은 사랑에 빠진 영혼을 갉아먹으며 살아왔지만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지 못하다.
그녀 자신은 지금껏 스스로 사랑에 빠져보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여러번의 사랑에 빠지고 그 과정에 좌절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며 나이 들어가며 죽음을 기다린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랑은 그들이 바라는 사랑을 하고 싶어하며 인정받고 싶어하고 확인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결실을 바라며 어떤 결과에 행복해 하며 산다.
평범하지만 어려운 사랑은 그 과정 자체가 축복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평범치 못한 사랑에 빠져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도 있다.
만인의 지탄의 대상이되며 빠져드는 위험한 사랑은 물론 하면 '않되는'것이지만
당사자들은 충분한 이유와 의미가 있을수도 있다.
이러한 그들의 사랑이 평범한 이들에겐 단순한 호기심 또는 야유와 비난의 대상일 뿐이지만
그들에겐 현실이고 빠져나오기 힘든 아니 어쩌면 빠져 나오기 싫은 행복일수도 있을 것이다.
신들도 피하지 못하는 이런 사랑을 무슨 재주로 피할수 있을까
우리는 인간일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