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령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서 길손을 맞아 줍디다.
다만 길손만은 예전 그가 아니었습니다.
영주문화연구회의 차분한 준비로, 걸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 수고로움으로
동참한 600여 명 길손은 한참 동안 행복했습니다.
영주중학교, 제일고등학교, 동양대학교 난타 동아리 두들 회원, 안내 도우미, 주모님들
모두 고생 많으셨으니 한 말 땀흘린 보람도 찾을 것 같습니다.
무지하게 오랫만에 절친 한 사람 더불어 소백산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어서
옛날 희방사역(지금은 소백산역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바로 밑 민박집에서
감자부침개 한 접시와 막걸리 한 되를 시켜 먹고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행사 시작을 알리는 방송을 듣고 역 광장으로 올라 갔지요.
경기민요의 흥겨운 가락과 노랫소리도 좋았고, 한창 물오른 대학생들의 난타도 흥겨웠지요.
참가자 수는 대충 600여명, 세 팀으로 꾸려 2, 3분 간격으로 옛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소백산역이 뒤로 물러나자말자, 아카시아 꽃 향기가 몰려들었습니다.
자경 지회장과 초향 선생, 어중 선생, 신중 시인, 예송 국장 모두가 반가웠고 정겨웠지요.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에 힘든 줄 몰랐었는데, 그것도 잠시
갈림길에 이르자 다리에는 쥐가 나고 땀은 비오듯 흐르며 숨은 가빠졌습니다.
그래도 참가자들에게 미리 나누어준 긴 수건이 얼마나 유용하던지....
길섶의 찔레꽃은 또 어찌나 곱고 흐드러지든지...
아무리 힘들어도 떼밀려 올라가는 기세라 허위허위 올라야만 했습니다.
이제는 주막터가 가까워졌지 싶은데,
옛 선비 복장을 한 두 행객이 떡 하니 도랑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더군요.
아는 얼굴이라 가까이 다가가서 막걸리 한 잔 얻어마셨습니다.
주변에 얼추 사람들이 모이자 사설을 늘어놓는데 마치 연극 한 꼭지를 보는 것 같았지요.
등 두드려주고 혹여 맨 꼴지로 처질까 봐 먼저 출발은 했지만 아주 새로운 체험이었네요.
드디어 주막터, 고운 주모 역할 도우미 들이 수고롭게도 술 한 잔, 주먹밥 하나를 권하시더군요.
옷차림은 상가집 아낙네 같았지만 미소는 아주 정다웠습니다. ㅎㅎ
영주문화연구회 회원 한 사람에게 내년에는 복장에도 신경 좀 쓰자고 농담을 던지고는
바지런하게 걸음 내딛는 친구 뒤를 따라 거친 숨 내뱉으며 산길을 걸었습니다.
이미 받은 수건이 무거워질 정도로 땀이 줄줄 새더군요.
몸무게 좀 줄이라는 친구의 당부가 고마울만큼...
엄마 아빠를 따라온 초등학생들이 다람쥐처럼 가볍게 오르는 옛길을 허우적이는 어른들,
그게 나란 사실이 부끄럽다 느낄 때 미더운 후배 하나가 바짝 붙어서 말을 건네 주데요.
그 덕에 조금은 수월하게 고갯마루에 도착했습니다.
덩그런 누각이 하나 우리를 반기데요.
영남관문죽령 이란 돌 비석 하나만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각별한 영주시의 관심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돌로 된 가파른 계단이 부담은 되었지만, 4행시를 접수하는 예쁜 미소가 정겨웠습니다.
이미 고갯마루는 사물놀이팀의 공연이 시작되어 있었고 ...
여기저기 죽령 옛길을 오른 나그네들은 널부러져서 호흡을 가다듬기에 바쁘더군요.
내 친구는 이미 죽령주막집에서 부침개 하나 시켜둔채 동동주 한 퉁자를 받아 둔 상태이구요.
낯 익은 주인 내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숨을 골랐습니다.
한 사발 동동주 맛은 누각 아래에서 읽은 4행시만큼이나 시원했네요.
다시 시장으로 뽑힌 분의 함박웃음을 보았고, 모처럼 땀흘린 많은 분들의 여유로움을 보았으니
오늘 하루 멋지게 살았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소백산 산마루 식당에서 오리구이로 허기를 달랜 뒤 아침 먹던 집으로 돌아섰습니다만...
팔순 엄니와 장인 장모님께 저승 가기 전에 한번 죽령옛길 넘어보자는 말씀은 드렸습니다.
참 힘든 하룻길이었네요.
몸은 피곤해도 잠은 깊이 들 것 같아서 얼른 씻었습니다.
잊지 않으려 한 꼭지 글을 남깁니다.
내년에는 또 누구 뒷태를 보고 저 길을 올라야 할까... ㅎㅎ 그런 꿈을 꿀랍니다.
첫댓글 예정된 일이 있어서 참석 못해 아쉬웠는데 글을 읽고나니 반은 다녀온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내년에는 앞장 설테니 제 뒷태를 봐주세요.
뜨거운 날씨였는데도 완주(?)를 하심을 축하드립니다. 고운 주모들이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ㅎㅎㅎ 피곤하신 몸보다 죽령에서의 감흥을 전해주고픈 선생님의 마음이 느껴져 흐뭇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초향은 24인치를 자랑하셨는데, 여영님은 어떠하실지 ㅎㅎㅎ 기대만발입니다. 나른한 몸이지만 마음은 상쾌한 아침이네요. 두 분 모두 염려해조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죽령 옛길 어안 님 덕분에 다시오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