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마지막 원수가 아니다. 그것은 영지주의자들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다. ?죽음은 물질에 대한 영의 최종적 승리이며, 창조주 하나님이 만들어낸 사악한 작품을 최종적으로 끝장내 버리는 것이다. 죽음은 육신이라고 하는 속박의 힘을 깨뜨리고 몸으로부터 분리된 영들이 근본적인 자유로 향하도록 만드는 찬란한 문이다.
당신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영지주의는 지식에 초점을 맞춘 하나의 운동이다. 물론 모든 사상 체계가 지식을 주장하고 있지만 영지주의 지식은 기술적인 것도, 논리적인 것도, 철학적인 것도 아니다. 한 영지주의 서적은 철학, 의학, 수사학, 음악, 논리학 등 혼동으로 이끌 뿐인 헬라의 지식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들은 오로지 보이는 것들에만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리에 대하여 알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들을 속여서 그의 권위의 영역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속임수의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다운 지식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자이며 현대 심리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칼 융은 그 뱀에게서 인간의 내부에 있는 초인간적 특질을 보았으며, 냉혈동물인 뱀의 쏘아보는 눈은 인간의 시야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숭고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공포와 경외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았다.
4세기 교부 에피파니우스에 따르면, 보보리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성만찬의 풍성한 음식과 포도주가 동반된 미식가적인 애찬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형제와의 애찬식의 순서가 뒤따르는데, 그 순서에서는 결혼한 커플이 따로 흩어저서 그 집단의 다른 멤버들과 성적 관계를 갖는 것이다. 임신은 창주주의 구조 속에 속박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교의 중단이 수행된다. 남성의 정액은 다음과 같은 기도와 함께 하늘을 향해 사정된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것을 먹는 것이다. 만일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되면 그 태아는 낙태되었으며, 태아의 몸 역시 다음과 같은 기도와 함께 먹었던 것이다. "우리는 탐욕스런 지배자에게 조롱을 받지 않을 것이며 형제가 한 실수를 주워담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을 그들은 "완전한 유월절"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콘돔을 사용한 성교의 중단을 통해서 무제한적인 인간의 자유라는 한 신을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명상을 통한 상승의 단계로서 주문을 외는 것은 개인의 신비적 명상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지식은 역시 매우 개인적인 문제이다. 영성의 도전은 광대하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들 스스로를 육체의 몸에 갇혀 있으며, 또한 우주 속으로 뻗어가는 최소한 일곱 개의 동심원에 싸여 있다고 간주한다. 각각의 동심원은 대 지배자인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배치된 불법적인 권세와 정사와 능력자들이 위치하고 있는 다양한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영혼은 빛의 존재들에 의해 호위를 받으며 기독교인, 수도사 등 변변찮은 자들이 붙들려 있는 일곱 개의 무서운 영역들을 통과하여 마침내 빛의 세계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영지주의 일원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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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합법화하는 우리 시대의 다양한 주제들에는 하나의 중심적인 핵심이 있다. 다양성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이교적 문화 속에는 종교적인 이교주의(paganism). 즉 땅과 여신에 대한 숭배라고 하는 심오한 이념적인 통일성이 감추어져 있다. 사도바울은 이 종교를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섬기는 것이라고 묘사하였다(롬1:25). 그러나 일원론(monism)으로 알려진 이교주의의 외적 다양성과 미묘한 차이점들을 뛰어넘어 내적인 통일성을 간파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일원론이란 모노(mono)라고 하는 뜻으로 '하나'를 의미한다. 즉, 하나의 삶의 철학으로서 일원론은 우리 시대의 교회를 점유하려고 한다. 일부는 세속적이며 일부는 '기독교적인'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것들은 갱신된 지구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준다고 주장하며 대부분의 운동 속으로 파고 들었다. 일원론의 상징은 원이며, 그것의 목표는 원으로서 지구를 하나로 둘러싸는 것이다.
다음의 다섯 요소들은 일원론의 형태를 요약해 준다.
1. 모두는 하나이고 하나는 모두이다. 이것은 일원론의 본질이다. 우주는 질적으로 다르지 않는, 서로 연관있는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이다. 신은 우주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 자체가 우주이다. 기독교의 '창조주, 피조물'의 구분은 제거되었다. 일원론의 큰 '0'은 하나의 원이다.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것이 그 원 안에 있다. 고대의 상징이었던 원이 마법과 힌두교 의식과, 여신 숭배 등에서 재등장하였다. 심지어 '세계 종교 회의'의 상징도 원이었다. 이교주의는 관용과 인권이라는 감상적이고도 매혹적인 색상의 의복을 입고서 점차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것이 성공하는 것은 기독교의 종말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새로운 영성'의 궁극적인 원천은 이교주의이기 때문이다.
2. 인류는 하나이다. 만일 모든 것이 하나라면 인류는 '신적 단일성의 현현'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창조한 우주적 에너지의 응고체이다. 인간이 신성하고 그럼으로써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하는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의 영적 발견을 위해 분주한 탐구를 하게끔 한다. 신비주의가 진정한 영성을 대체해 버린 것이다. 신성의 현현으로서 각 개인이 자아는 바로 진리의 원천이다. 관용과 상대성은 필수적인데, 이는 모든 사람의 진리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관은 악에 대하여 우월한 선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직관에 의존하여 자기 자신과 자유, 그리고 힘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모든 종교는 하나이다. 이러한 에너지와 신성과 진리의 거대한 확장 속에서는 어떤 종교도 배타적인 진리를 주장할 수 없다. 그 가운데 정통 기독교는 이러한 용서할 수없는 죄를 어김없이 범하기 때문에 지구의 종교적,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데 주요한 방해물로 취급받는다. 종교들은 반드시 하나의 전지구적인 , 연합된 혼합주의로 섞여야만 한다. 사실 세계의 종교적 다양성의 표면 아래에서 여러 신조들은 상호 교환이 가능하며, 영적인 경험들은 동일한 신비적 실재와의 연합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종교 다원주의를 말하고 있다.
4. 하나의 문제 만일 모든 것이 하나라면, 가장 큰 문제는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 진리와 오류, 하나님과 사탄, 남성과 여성, 동성애와 이성애, 인간과 동물, 이교와 기독교, 합리와 불합리 등을 구분 지음으로서 실재를 적대적인 두 진영으로 분리시켜 놓는 것이다. 일원론자들은 그러한 서구 기독교 문화의 전형적인 구분이 인류를 마비시킴으로서 인간이 전체에 속하였다는 것을 더 이상 지각할 수 없도록 영적 기억상실증으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한다. 악이란 초월적인 창조주에 대항한 비극적인 도덕적 반역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망각이다.
5. 탈출을 위한 유일한 수단. 직관과 명상을 통한 영적 지각은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한 직관은 무한한 원의 중심에 있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바라보는 비합리적, 신비적 경험을 통해 온다. 자신의 무한한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자아는 필연적인 지고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 경험은 명상이나 약물을 통하여 발생한다. 그러한 명상은 올바로 수행되기만 하면, '정신, 영혼'으로 하여금 육체의 제한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신성하며 전체와 연합되어 있는 자아에 대한 지식의 경험 속에서 자신과 지구의 구속이 가능해진다고 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경험은 창조주의 계획과 대치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해로운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오한 해방과 자유의 느낌을 가져다 주는 '허상의 구원'을 제공한다.
그리고 정신이 모든 생각을 비움으로서 정신의 물질에 대한 승리가 일어나는 순간에 인간은 자신의 신성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에 의한 구원은 여기에서는 아무런 기능도 가지지 못한다. 각자는 각자의 구원자인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의 골격과 결합한 이 동양적인 일원론은 기독교 유신론 또는 그것이 파생시킨 문명과 직접적으로 대치된다. 여기에는 중립이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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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영지주의의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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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계에서 소피아를 본 것은 1993년 미네아폴리스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기독교 역사 초기의 이단인 영지주의 문서에서 등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1500년 이전의 영지주의 명상들은 그들의 공허한 상상력에 기시감(이미 본 적이 있다는 느낌.. 착각)이라는 놀라운 영기를 제공해 준다.
소피아는 영지주의자들 사이에서 매혹적인 새로운 사상들을 가진 신선한 젊은 여신으로 등장하였다. 그 사상들은 그녀에게 고초를 안겨준 동시에, 구속도 가져다 주었다. 성경의 남성적인 하나님에게 싫증이 난 자들에게 그녀는 해방과 근본적인 자유를 약속하였다. 그녀의 지혜는 잠언서의 성경적인 지혜를 능가하였으며, 그녀의 신비하고도 황홀한 망토 아래에는 지혜의 주와 어리석은 여신의 어두운 비밀들이 감추어져 있다.
소피아는 하나님의 최초의 정신이었다. 그녀는 지나친 호기심 때문에 타락한 지혜가 되었고, 물질적인 세계가 그 결과로 생겨나게 되었다. 그녀의 낙태된 태아, 즉 그녀의 알고 싶은 욕망 때문에 태어난 이알다보스(야훼)는 물질 세계를 창조한다.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기 때문에, 인간을 돕기 위해 기회를 보아 지배자들(하나님과 그의 천사)을 속였다. 그녀의 임무로서 하나는, 성경 하나님의 참으로 악한 본성을 폭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류로 하여금, 어리석게도 가시적이며 억압적인 세계를 만든 창조주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하나님을 향하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다.
소피아가 부드러움과 창조성의 개념을 연상시키지만, 진정한 사역은 기독교의 하나님에게 죽음의 치명타를 가하는 일이다. 영지주의는 남성적인 신을 전복하려는 페미니스트들의 시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평등주의적이고, 비가부장제적인 환상은 서구에서 첨단의 신학, 사회학, 정치에 있어서 광범위한 협약(agenda)을 형성한다. 소피아의 임무가 야훼의 전복이기 때문에 영지주의와 반가부장제의 페미니즘은 천생연분인 것이다.
소피아는 야훼가 바보라는 것을 입증한다. 자기가 남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안다고 뽐내는 지상의 야만적인 남자처럼, 모든 가부장적 억압의 천상의 원형인 야훼는 어리석게도 그가 모든 것의 창조자라고 생각한다. 지혜의 여신으로서 소피아는 지극히 지혜로우며 지적인 활력으로 가득차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눈먼 자이며, 소피아는 우주의 어머니로 말하여지고 있다.
성경의 하나님은 무지하고, 거만하고,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거드름을 피우며, 어리석고, 미친 암살자이며, 인류를 희생시켜 자신의 우스꽝스런 재능을 과시하려는, 사자처럼 생긴 변덕쟁이... 등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증오와 경멸의 완벽한 대상으로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천박한 남성적인 신에 비해, 섬세한 소피아의 황홀한 지혜에 의해 매혹 당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성에 대하여 혼동되고 있는 야훼로서 영지주의자들의 비평에는 하나님을 순수하게 남성적인 용어들로만 상상하는 어리석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 같은 비평은,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에게 성의 혼돈을 부과함으로서 성경의 하나님을 몰아내고자 시도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회 내에서의 포괄적인 프로그램들은 '성- 포괄적' 신적 이미지에 일치시키기 위해 찬송가와 주기도문과 심지어 성경 본문까지도 바꾸려 하고 있다.
그들은 야훼를 악마라고 주장하고 있다. 웃을 일이 아니다. 웃음이 멈추고 '쉿'하는 소리가 들린다. 중립지대란 없다. 창조주 하나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고 그들을 어리석게도 추종하는 모든 자들은 모두 악마적이라고 비난받게 되어 있다. 그들은 수많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악마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야훼는 악마처럼 생겼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하나님인 이알다보스는 뒤죽박죽된 사자의 머리를 하고 있는 생물체로 그려져 있다. 싸클라스, 곧 '미친 자'로 불리는 이 거만하고 난폭한 동물의 형상은 사자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불꽃같은 눈을 가진 뱀의 모양으로 등장하고 있다.
소피아가 야훼를 영원한 지옥에 던져 버린다. 야훼는 마귀들에게 마땅한 지옥에 던져진다. 하나님을 끝장내는 것, 그것이 바로 소피아의 근본적이며 파괴적인 사역이다. 이제 야훼가 지옥으로 추방되고 난 다음에는 무엇이 남는가? 정통주의의 싫증나는 늙은 하나님을 해체시키고 난 다음, 소피아는 참된 하나님의 계시자로서 그녀의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우주는 새로운 거주자들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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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의 여신 소피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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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의 신비로운 이름은 '천둥, 완전한 정신'은 우리가 모든 연합의 근원을 결코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피아의 우주적 포옹 안에서 모든 것이 연합한다는 것을 계시한다. 소피아는 이교적 영성의 완벽한 표현이다. 그녀는 서로 상반되는 것들의 일원론적 결합 속에서 합리적인 범주들을 해체한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나는 찬양과 멸시를 받는 자이다. 나는 창녀이자 정숙한 자이다. 나는 아내이자 처녀이다. 나는 어머니이자 딸이다.... 나는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고요이며, 생각이 수없이 많은 생각이니라, 나는 수많은 소리를 가진 목소리이며, 수많은 모양을 가진 말씀이다. 나는 소심하면서 두려움이 없다. 나는 부끄러움이 없으나, 부끄러워하는 자이며, 나는 생각이 없으나 지혜로운 자이니라. 나는 바로 그리이스의 지혜이며 야만인들의 지식이라. 나는 애굽에 위대한 형상이 있는 바로 그이니라. 나는 생명이라 불리며, 또 죽음이라 불리는 자이니라. 나는 법이라 불리는 자이면서, 너희들이 무법이라 부르는 자이니라. 신이 없는 자이나, 많은 신을 가진 자가 바로 나이니라. 나는 말할 수 없는 본질이요 또 말할 수도 있는 본질이니라. 나는 결합이요 해체니라. 나는 죄가 없으나, 죄의 뿌리가 나에게서 나며.. 진리이며 불법으로 불리는 자가 바로 나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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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주의는 사탄의 대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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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대다수는 순진하게도 가부장적 구조들을 자기들에게서 제거하고서, 자신에게 좀더 편한 방법으로 신에 대해 다시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imagine). 그것은 신화적 사도들의 한 체계를 다른 것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간단한 일이다. 새로운 유토피아를 건설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인간으로 대체하고, 하늘을 지상으로 끌어오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에서 우리가 등한시하는 요소가 하나 있는데, 곧 영혼을 뺏기 위한 우주적인 시합에서 자신을 감추고 몰래 숨어 들어오는 제3의 선수인 사탄이다. 인간의 마음은 영적으로 선한 자율적인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그 위에 하나님이 쓰든지 사탄이 쓰든지 해야 하는 하나의 서판이다.
소피아는 거드름을 피우는 야훼를 제3의, 낙관적인 개념으로 대체시킨 것이 아니다. 신비적 지혜의 여신인 소피아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대적한다. 그녀가 제공하는 새로운 영성은 그녀가 예전에 이미 제공한 바 있는 것이다. 그 영성의 지상 중심적인 지혜와 빛의 조명은 아무런 의심도 없는, 영적으로 굶주린 현대인들을 사탄 왕국의 휴게실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바로 그(사탄)의 목소리이다. 우리의 세계는 거대한 망상의 가장자리에서 흔들거리고 있다. 만일 고대 영지주의의 배교가 제공하는 경고를 무시한다면, 우리의 멋진 신세계는 해방된 인류라고 하는 찬란한 거짓 약속이 제공하는 행복감에 취하여 비틀거리며 걷게 될 것이다.
현대교회의 본질은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주장한다. 사회 정의를 위한 계급 투쟁에 있어서 제거되어야 할 새로운 악한인 이 가부장제도는 다음과 같은 것들과 동일시된다. 정사와 권세와의 싸움에 있어서의 대적, 남성다움의 우상, 아버지의 통치, 불꽃같은 눈과 연기뿜는 코를 가지고서 가부장제의 사원에서 신성모독의 연기를 분출하고 있는 기계적인 우상, '그 악한 세력이 우리 의식의 심층부에 너무도 깊이 파고 들어와' 등등... 일반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그러하듯이, 목소리가 클수록 페미니스트의 의식도 더욱 높이 고양되게 마련이다.
이교도들이 가부장적인 창조구조를 거부하는 것은 그럴 만하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어떠한가? 가부장제에 대한 비난을 확대하면서, 이성적 가부장제를 향해 인종주의와 계급주의를 포함하여 대표적인 사회악으로 비난하였다. "인간 성에 대한 왜곡된 개념들, 성의 왜곡, 신을 지칭하는 언어들의 잘못된 구조들이 인간의 자유와 건강한 관계성들을 저해하고, 그러므로 완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가질 가능성을 방해하여 온 방식들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있은 다음에야, 우리는 정확한 치료를 희망할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의 일원론적 영성에로의 개종과 성적 풍속, 성 역할, 가족 구조들에 있어서의 주요 변화가 동시에 일어난 것은 우연한 일인가? 서구 문명의 성 의식은 불과 한 세대만에 해체되어 왔다. 여성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였는데, 이는 인간의 성의 개념들에 있어서의 거대한 변혁을 대변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운동은, 그것의 주요 이론가들에 따르면, "개혁주의 운동이 아니라 혁명적인 운동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효과는 복합적이다. 사회와 교회 내에서 여성들의 지위에 대한 재고, 그리고 여성들의 재능을 활용할 창조적인 연구는 환영할 일이며 선한 일이다. 그러나 '진정한 영성'은 조금도 부끄럼이 없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계시한 성경의 계시와 창조 질서에 따른 성과 그리고 성경적인 성도덕을 사악한 억압의 표현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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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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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전세계에 걸쳐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소설 다빈치코드는 영지주의가 정통 기독교에 전면 도전한 사탄의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해체하려고 하는 분야는 기독교 역사, 성경의 정경성, 기독론 등이 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는 사람들의 폭넓은 수용을 받는 반면 기독교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기에 새로운 영성인 뉴에이지가 대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장하는 것은 페미니즘이다. 소설은 기독교가 이교도의 사상이 조합된 종교로서 남성중심의 종교라고 한다. 페미니즘이 유행하는 시대에 역시 이 소설은 마리아 중심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여성과 모계 사회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신비스런 여신(소피아)의 등장은 그런 의미와 맥락을 같이 한다.
소설 다빈치코드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영지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영은 고상하고 육은 저급하다는 사상으로 영은 육으로 갇혀 있어서 해방과 자유를 꿈꾼다. 육의 한계를 초월(구원)하기 위하여 어둠의 세력을 빛의 힘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고 창조 가운데 악의 긍정적 역할, 영을 앞세우므로 윤리적 생활을 문란케하는 등 신앙을 흔들고 있다.
미래사회는 이러한 다빈치 코드와 같은 반기독교적 문화가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교회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준비에 있어서 교계와 각 지역교회와 연합하여 기독교 문화의 확산과 정착에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프리메이슨(사탄숭배집단)이 만든 허구의 영화 다빈치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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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영적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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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독교 세력들은 언제나 세속적인 루트를 따라 교회에 몰래 접근하여 왔다. 그러나 종교적 이교주의가 오늘 이 시대처럼 허세와 악의를 품고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온 적은 좀처럼 없었다.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형태를 모두 취하고서 모든 것에 대한 관용과 전지구적 평화를 외쳐대며 승리를 거두고 있는 이 이교의 종교를 무엇으로 멈출 수 있을 것인가? 교회에 있어서나 대중 문화에 있어서나, 거대한 혁명의 물결이 우리를 덮쳐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거의 없다. 21세기는 동양 종교들과 기독교를 혼합한 제 3의 천년기의 거대한 보편 종교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신 소피아를 숭배하고 여신의 축복을 누리며, 모든 사람들과 종교들이 여신을 중심으로 연합하게 되는 시기인 것이다.
현재 서구 사회에서 성의 역할과 영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들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의 모든 프로그램이 사회의 모든 단계에서 '성의 정형'을 해체하고 극단적인 성의 평등주의 관점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것에 의해 언젠가 여성들이 권력을 잡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나타날 때, 성경의 남성적인 하나님은 시대착오적인 옛 유물로 전락하여 오로지 극소수의 보수주의자들에 의해서만 숭배를 받게 될 것이다. 결국 아무런 반대도 없이 여신 소피아가 권력을 쥐게 될 것이다.
문화 전쟁과 성의 전쟁 배후에는 영적 전쟁이 있다. 지배를 위한 마지막 전투에서, 이교의 여신 소피아는 창조주이시자 구속주이신 하나님의 지위를 강탈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것은 화려한 과장의 말이 아니다. 이 싸움은 실재이며, 싸움의 두 당사자들은 화해할 수 없다. 소피아는 성경의 하나님과 정반대되는 존재이다. 하나님이 유신론을 나타내듯이 그녀는 일원론을 나타낸다. 하나의 원으로써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그녀의 자궁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신에 대한 이교적 개념의 표현이다. 그녀의 이름인 소피아는 지혜를 자랑하고 있다. 그녀는 관용적이며 비교조주의적임을 내세우면서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현대의 정신을 유혹하고 있다.
이교의 일원론은 그 자체의 특성상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체주의적 운동이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관용적 세계관인 일원론은, 그러나 절대적 진리와 궁극적인 선과 악, 그리고 구별된 창조의 질서를 믿고 있는 자들에 대해서만은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의 연합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가장 깊은 차원에서 볼 때, 우리의 문명을 분열시키고 있는 이슈는 변화를 위한 헌신과 과거에 대한 향수 사이의 대결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여자와 여자의 후손과 뱀 사이에 대립인 것이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들과 동성애자들의 쓰라린 분노가 궁극적으로는 정상인들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곧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하나님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이교주의, 우상들과 살아계신 하나님 사이의 근본적인 대립은 언제나 있어 왔고, 지금도 있으며, 종말이 오기까지는 앞으로도 항상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그리스도의 모조품 의복을 입고서 자신의 창백한 몸을 가리고 있는 소피아는 요한계시록에서 땅의 왕들과 더불어 음행을 행하고, 예수의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피에 취해 있는, 곧 배교한 교회의 끔찍스러운 이미지인 음녀의 모습을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지금은 전쟁 초의 작은 접전들만을 목격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21세기 문턱에서 영적 전쟁은 진지하게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소피아는 그녀의 통치 기간을 막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
영적 전쟁에 있어서, 사용될 무기는 역시 영적인 것이다. 그리고 원수를 향한 사랑은 그 무기들 중의 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승리하신 방법이며, 또한 교회가 승리할 방법이다. 우리 시대의 진리와 거짓의 성격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행동을 취하고, 성경의 하나님, 곧 창조주와 구속의 하나님께 대해 순종하는 충실한 하와와 용기있고 사랑이 넘치는 아담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들이 그들의 경건한 가정에서와 거룩한 생활에서와 지치지 않는 복음의 전도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할 자들인 것이다. 그들은 악인을 악한 길에서 돌이키도록 경고를 할 수 있는 자들이다(겔3:18,19). 그들이 바로 성벽에 서서 시대의 징조를 미리 보고 준비하도록 하는 파수꾼이 될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어두움의 시대에 복음의 불을 환히 밝혀 비춰줄 사람들인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면, 곧 그의 아들과 그가 택한 열방들이 만나게 될 때, 진리는 지구와 온 우주를 가로질러 불타오를 것이며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런 고백을 외치게 될 것이다. "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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